넘버즈. 3장(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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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길리안은 침대에 걸터앉아 커다란 자루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수중에 너무 많은 돈이 생겨버렸다.
영지에서 생활할 때는 그다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버지 밑에 있으니 의식주는 모두 해결되고 농사를 돕고 검을 수련하고, 라이라프산맥으로 몬스터 사냥을 나가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산맥에 발을 들이면 며칠에서 길게는 두어 달도 지내봤지만 그때는 모든 자급자족해야했다.
물론 돈을 버는 일도 했다.
영지에서 벌이는 공사나, 몬스터 토벌 등에 참가했고 그때 받은 돈은 모두 아버지께 드렸다.
영지를 떠날 때 아버지는 그동안 네가 일해서 번 것이라고 20골드를 주셨다. 큰형이 여비로 쓰라고 손에 쥐어준 10골드도 받았다.
그 30골드를 손에 들고 무척이나 든든했었다. 그리고 그만큼 큰돈이기도 했다.
학비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했지만 어차피 그건 마정석을 팔아 마련할 생각이었으니까.
영지를 떠나 며칠 후에 도착한 곳에서 도적단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자기 영지에 도적단이 돌아다니는 걸 달가워할 영주는 없었다. 영주는 영지 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그래서 대부분은 직접 나서서 토벌을 한다.
헌대 이상하게 그 영지에서는 영주가 별로 움직일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로렌아저씨께 들은 대로 길드의 지부를 찾아가 정보를 받고 도적단을 토벌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도적이나 현상범을 잡아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고.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견문을 넓히고 구경이 목적이었던 여행길이 현상금사냥꾼의 길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어이가 없군.”
그래도 그렇지 1만 골드가 말이 되나 싶었다.
때려잡는 것은 그렇다 쳐도 뒤처리는 항상 문제였다.
내심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길드에서 그걸 해준다고 해서 그거 좋겠다싶어서 그에 대한 계약도 했다.
놈들의 현상범들의 은신처나 도적단의 본거지를 쓸어버리고 나면 검은 복면을 한 이들이 와서 뒷정리를 해줬다.
자신이 봐도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이 보였지만 그들이 계약대로 처리해준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어차피 목적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할 겸 현상범들을 처리하는 것이었으니까. 그저 잡은 현상범을 끌고 가서 관청에 가져다주면 끝.
사람을 무조건 믿는 것은 아니지만 로렌아저씨와 그들과 한 계약을 믿기에 전적으로 맡긴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다시 손에 들어온 것이다.
솔직히 자신이 처리했던 현상범들이 이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많이 잡고 많이 처리하기는 했지만 손에 들어온 돈도 너무 많았다.
여관에 돌아와 자루를 열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미 서류를 봐서 금액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이건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금화와 금괴, 보석을 합쳐 약1만 골드 정도.
어제 번 것이 3천 골드. 그 외에 오는 동안 직접 현상범들을 넘기고 지급받은 돈이 1천 골드 쯤. 다 합치면 수중에 1만4천 골드가 넘게 있다는 것이다.
낮에도 돈 때문에 잠시 고민했었는데 이제 더 늘어버린 것이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것인데 왠지 실감도 안 나고 그저 좀 멍할 뿐이었다.
“우리영지 기사님들 부업으로 이런 거나 좀 하시지... 그보다.”
정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이 무거운 걸 언제까지 짊어지고 다닐 수도 없고...”
만 골드가 넘어가는 금화를 들고 다니는 것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보통사람은 들지도 못할 것이다.
힘이라면 괴물소리를 들을 만큼 자신 있는 길리안도 그걸 계속 들고 다니면 허리가 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금화 1개의 무개는 25g. 40개면 1kg이다.
뭐 얼마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금화1만개면 250kg. 절대 혼자서 들고 다닐 수 있는 무개가 아니다.
때문에 마법사들이 만든 무게를 줄여주는 작은 주머니나 자루는 큰돈을 가지고 다니는 이들에게는 필수품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해도 무겁기 때문에 수만 골드가 오가는 큰 거래는 문서로 주고받을 때가 많다.
힘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영지에서도 따라올 사람이 없었고, 괴물소리 들을 만큼 힘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만 4천 골드면 무게만 350kg이다. 마법자루의 힘을 빌려 무게를 반으로 줄여도 175kg이다.
물론 모두 금화는 아니고 보석도 좀 섞여있어 무게가 줄었지만 그래도 무거운 건 마찬가지.
들 수는 있지만 계속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길리안에게도 무리였다.
성문경비대장이 하는 여관이라고는 하나,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보니 그냥 두고 다니기에도 찜찜했다.
이미 몇 천 골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알버트도 잘 간수하라고 당부를 했었다.
“하아.. 돈이 많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솔직히 한숨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아무래도 내일은 라첼아저씨를 만나봐야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3일후에 입학 원서를 내고 입학시험까진 한 달 정도가 남았다.
수도생활에 적응도 좀하고 길도 익혀두려고 여유 있게 도착한 것인데 그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대로들은 그나마 괜찮지만 미로처럼 복잡한 수도의 골목길까지 익히려면 꽤나 고생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쿵쿵.
“어이 길리안.”
“윽...”
“설마 벌써 자는 건가?”
문을 두드리며 부르는 알버트의 목소리에 길리안은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또 술을 마시자는 건 아니겠지?’
어제일이 생각나서 일부러 일찍 저녁식사를 마치고, 주인아주머니에게 피곤해서 빨리 잘 거란 말까지 강조하고 올라왔는데 밖에서 알버트가 부르는 것이었다.
“후우...”
그래도 모른척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정중히 거절하려고 방문을 열었다.
“다행히 자는 건 아니군. 꽤 피곤한 모양이야?”
“아하하... 예. 오늘 길을 좀 헤맸더니...”
“하하하 수도에 처음 오면 다들 그래. 큰길들은 몰라도 작은 골목도 무척 많거든. 아 피곤할 텐데 용건만하지. 어이.”
알버트가 뒤쪽을 보고 손짓을 했다.
“라첼이 자네에게 데려다 주라더군. 이걸 받게.”
길리안은 알버트가 건네는 문서를 받아들었다.
“이건 뭡니까?”
“보면 알걸세. 그럼 난 이만 가네. 푹 쉬게나.”
그러고선 돌아서 가버렸다.
“음... 당신은...”
문밖에 서있는 이는 어제 계속 신경이 쓰였던 현상범이었다.
“일단 들어오시죠.”
“그러니까 제 노예로 6년을 살면 자유가 된다는 말입니까?”
“예.”
“후우...”
길리안은 한숨을 쉬었다.
사내의 이름은 한스. 무척이나 흔한 이름 중 하나였다.
그보다 문제는 사내가 길리안의 노예로 등록돼있다는 것이다. 알버트가 건네준 서류가 노예문서였다.
“전 노예는 필요 없습니다만.”
“그럼 저는 다시 감옥에 갇히거나, 강제노동에 끌려갈 겁니다요. 받아주십시오.”
“겪어봐서 아시겠지만 저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 말에 한스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후우... 산 넘어 산이군.”
방금 전까지 돈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이제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겨버렸다.
노예는 같은 사람이지만 절대 사람대우를 못 받는 그런 위치에 있었다.
서류상으로도 가축으로 분류되고 거래도 되지만 재미있는 건 돈만 있으면 다시 사람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신분제 사회이고 노예제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다만 이렇게 꺼려하는 것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고, 또 노예의 모든 잘못은 주인의 책임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수도에 도착했고 적응도 안됐고, 지낼 곳도 마땅치 않은데 노예까지 달고 다닐 생각은 없었으니까.
연신 한숨을 내쉬는 길리안을 보면서 한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는 건 모든 따르겠습니다요. 그러니....”
“문제가 있습니다.”
길리안이 한스의 말을 끊으며 손가락하나를 펴보였다.
“첫째. 전 여관에 묵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그곳에서 생활해야합니다. 그리고 귀족이 아닌 이상 하인이나 노예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아저씨가 지낼 곳이 없습니다.”
길리안의 손가락이 하나 더 펴졌다.
“둘째. 전 지금까지 시중을 받거나 한 적이 없습니다. 혼자서도 알아서 잘 합니다. 시킬 일이 없으니 하실 일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셋째. 앞서 말한 이유로 전 노예가 필요 없습니다.”
“그럼 저는...”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 아직 입니다요.”
“그럼 일단 내려가서 식사부터 하세요.”
길리안의 말에 한스는 대답은 했지만 머뭇거렸다.
“후우... 그럼 같이 내려가죠. 아저씨일은... 내일 라첼 아저씨를 만나 다시 얘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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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돈이 많아서 고민 좀 해봤으면...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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