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5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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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1만4천 골드정도 됩니다.”
“으흠.. 그렇다면... 뭐?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놀라서 쳐다보는 라첼에게 길리안이 멋쩍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1만4천골드라고...”
“헉... 허허허...”
할 말이 없다는 듯 한동안 헛웃음을 흘리던 라첼이 길리안의 눈을 쳐다보고 말했다.
“자네 혹시 도박했나?”
그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게 어쩌다보니...”
“으음... 뭐 좋아. 훔친 건 아니겠지?”
“물론이죠.”
라고 대답은 했는데 조금 찔리기는 했다.
따지고 보면 현상범들이 가지고 있던 거니 어떻게 얻었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고, 그걸 다시 뺏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라첼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럼 됐네. 더는 묻지 않겠네. 그나저나 1만4천 골드라... 허허 이것 참 알면 알수록 날 놀라게 하는군.”
“저도 실감이 잘 안 나고 있습니다.”
“자네 부자야. 아주 큰 부자. 물론 돈 많은 귀족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일세. 자네 나이에 허허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버는지.”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 사람하고는 참. 아무튼 내가 5급행정관일 때 한 달에 50실버를 받았네. 지금은 대폭 올라서 이번 달 부터는 12골드를 받는다네. 1년은 12달. 그러면 144골드니까.... 내가 대략 97년을 넘게 일해야 만질 수 있는 돈이네.”
“그... 그렇군요.”
“뭐 대략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참 큰돈이지 않나? 보통 일을 해서는 평생 만질 수 없는 돈이니 말일세.”
“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큰돈이지. 하지만 돈은 쓰기 나름이라네. 자네 씀씀이가 크면 그 돈도 잠깐사이에 없어질 테고, 아껴 쓰기만 하면 조금씩 줄어들 테고, 뭔가 다른 사업을 해서 벌어들이면 더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지.”
“네.”
“돈은 가치 있게 써야한다고 생각하네.”
“어떻게 써야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쓰고 아깝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네. 적어도 난 그렇거든. 내가 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쓰고 아깝지 않으면 난 그걸로 만족하네. 물론 이건 내 얘기고, 가치 있게 쓴다는 건 나도 말은 꺼냈지만 정답이 뭐라고 딱히 말은 못해주겠군.”
“그럼...”
“다만. 그 돈으로 자네의 가치를 올리는 거지.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거라네. 자네가 뭘 하든,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고 꿈이 어떻든 간에 있어서 나쁠 것은 없다는 말일세.”
“음...”
“돈이 없어서 본래의 꿈을 접는 이들이 태반이네. 먹고살아야 하니 말일세. 돈 때문에 신념을 져버리고 이상을 버리기도 한다네. 돈 때문에 웃고 돈 때문에 울고 하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지.”
길리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제일 기본은 먹고사는 거다. 그게 해결 돼야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수 있고, 다른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어차피 기사가 될 몸이 아닌가?”
“네.”
“기사는 어차피 주군을 섬기게 될 때가 온다네. 대부분 평민 출신기사들은 학비대고 뭐하고 하면 빠듯해. 그들의 부모들도 아들하나보고 모든 것을 거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야.”
어지간한 부자들은 몰라도 보통 평인이 자식을 아카데미에 보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빚을 내야하는 것은 거의 당연한 것이고, 식구모두가 달라붙어 그 하나만 뒷바라지해도 버거웠다.
“그래서 대부분은 대 귀족 밑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 이유야 돈도 많이 주고 대우도 좋으니까. 그걸 목표로 삼는 이들도 많아.”
확실히 그건 라첼이 말이 맞았다.
“하지만 자네에게 여유가 있다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지. 그리고 예를 들어보세. 실력도 출중한 기사가 재력도 상당하다면 귀족들이 어떻게 할까?”
“글쎄요...”
“일반적으론 돈으로 움직이려 하겠지만 그게 안통하게 되니 다른 방법을 생각하겠지.”
“다른 방법이라면...”
“혈연.”
“혈연이라면...”
“사위로 들이는 거지. 뭐 실력이 엄청나야겠지만 그게 아주 없는 일은 아니라는 거네.”
“음... 하지만 전...”
“자네에게 그러라는 게 아니고 그냥 하나의 예일세.”
“하하하 네.”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살지 않는 한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네. 특히 수도처럼 큰 도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 그 돈이면 적당한 저택하나 사고, 경험삼아 작은 사업을 벌여도 될 거야.”
“저택에 사업. 음... 저택은 제겐 너무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택이라고 하니 자작부인의 저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정도면 너무 부담스럽게 크고 가격도 장난이 아닐 것 같았다.
저택이라는 말에 심각하게 반응하는 길리안을 보고 라첼이 웃으며 말했다.
“저택이라고 해도 남부지구에 몰려있는 귀족들의 저택 가를 생각하지는 말게나. 거기 있는 저택들은 가격이 정말 헉 소리 날정도지. 그리고 그 동네는 평민은 돈이 있어도 사지를 못해. 귀족들이 그 꼴을 못 보거든.”
“아.... 네.”
“어디보자... 적당한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 서류뭉치를 훑어나갔다.
한참을 뒤적거리던 라첼이 적당한 것을 찾았는지 길리안에게 내밀었다.
“이게 좋겠군.”
라첼이 건넨 서류를 받아든 길리안이 꼼꼼하게 살폈다.
“세금도 밀려있고, 담보도 걸려있군요.”
“자네 서류 좀 볼 줄 아는군.”
“예. 티롤아저씨가 바쁘실 땐 좀 도와드렸거든요.”
“하긴 그분 밑에서라면 아주 제대로 배웠겠군. 그래 어떤가?”
“그래도 제게 저택은 좀 과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도 과하지 않네. 일단 자넨 돈이 있어. 그리고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몇 년 후면 기사가 될 몸일세. 아닌가?”
“제가 기사가 된다고 어떻게 그리 장담하십니까?”
“허허 나도 사람 보는 눈은 있네. 그리고 궁금해서 서류를 좀 뒤져봤지. 자네 이름 있는 현상범들은 아주 쓸어 담았더군. 동부에서 아주 소문이 자자해. 특히 현상금 사냥꾼들 사이에선 아주 유명하더군.”
“제가요?”
놀란 듯 묻는 길리안을 보며 라첼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정작 당사자는 모르고 있었나보군. 그 뭐더라... 아 은빛 가면의 악마라던가? 몇 개월 사이에 현상범이란 현상범은 죄다 잡아들인 특급 현상금 사냥꾼이 알고 보니 자네더군.”
“그런 게 서류에 나옵니까?”
“서류에 나오는 것은 자네가 현상범을 잡아 넘겼다는 기록이고, 별명은 아는 현상금 사냥꾼한테 들었다네. 그 둘이 딱 맞아떨어지니 그게 자네라는 말이 아닌가?”
“그...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자네가 벌어들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대충 알겠군.”
“하하하... 그게 저도정말 어쩌다보니...”
“괜찮네. 그런 놈들이 가지고 있던 거는 주인 없는 보물이라고 봐도 좋아. 말했지만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쓰는지도 중요하네.”
“네.”
“그리고 이정도 저택은 저택도 아니야. 귀족들이나 부자들 입장에서는 방 20개짜리 큰집 정도지. 또 이건 일종의 투자네.”
“투자요?”
“자네가 그 집을 사고 성공을 했을 때는 지금보다 몇 배는 비싸질 거야.”
“그런 게 영향이 있습니까?”
라첼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암 있고말고. 누가 소유하고 있고 누가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당연히 다르지. 그리고 생각해보게. 어떤 집을 샀는데 들어가는 사람마다 병 걸려서 죽고 사업이 망해. 그런 소문이 나면 멀쩡하던 집 탓이 돼서 사는 사람이 없어. 그런데 어떤 집에 살던 누구는 성공했다 그러면 거기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당연히 가격이 오르지. 이런 건 미신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걸 믿는 편이거든.”
“하하하. 그... 그렇군요.”
“그리고 이정도면 부유한 평민이나, 기사가 살기에는 적당하고 좋지. 절대 과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네.”
“음...”
“집사하나 두고 하인과 하녀 몇 명두면서 관리하면 나중에 팔아도 절대 손해는 안볼 걸세. 그리고 위치를 보면 자네에겐 아주 딱 이라고 할 수 있지.”
“위치가...”
서류를 본 길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여기 행정식별번호는 낯설겠군. 이거 자네도 봤을 거야. 슈발리에 아카데미 맞은편에 있는 거네. 그 정문에 독수리 문양 있는 저택 본적 없나?”
“음... 본 것 같습니다.”
“바로 그거라네.”
“그렇군요. 그럼 확실히 제겐 좋은 위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때 이걸로 하겠나?”
“조금 생각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런데 직접 관청에서 판매도 하는 겁니까?”
“세금이 많이 밀리면 강제로 경매에 붙이긴 하지만 그건 아직 그 정도는 아닐세.”
“그럼 직접 거래를 해야 하는 거군요.”
“왜 별로 내키질 않는가?”
“글쎄요. 이런 식의 거래도 처음이고, 소유주가 귀족인 것도 조금 걸리네요.”
라첼이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많이 생겼다고 수천골드나 하는 저택을 선뜻 사겠다고 바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귀족과의 거래는 항상 신중해야한다.
나중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손해는 보는 것은 신분이 낮은 쪽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법은 귀족들의 편에 있었으니까.
“그리 걱정할 것은 없네. 소유주도 신용이나 평판이 나쁘지 않아. 그리고 이쪽에서 중계하는 거니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거네.”
“원래 이런 일도 하시는 겁니까?”
“공식적인 업무는 아니지. 나야 자네를 돕기 위해 그러는 것이고.”
“그렇군요.”
“내 말을 들어서 손해는 보지 않을 테니까 잘 생각해보고, 결정을 내리면 언제든 찾아오게. 아 그리고 내가 업무파악이 안 끝나서 한동안은 몸을 빼기가 힘드네. 사람을 하나 붙여줄 테니까 좋은 관계를 만들어서 자네사람으로 만들어보게나.”
“제 사람이요?”
“말단이지만 젊은 아이네. 자네가 성장하면서 녀석도 같이 크면 서로 좋고 나중에 도움이 될 걸세. 행정관을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말이야.”
라첼의 말에 길리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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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아 이기는 줄 알았는데 흑흑.... 아쉽지만 승점1점도 소중한 거니까요. 아침부터 응원하느라 고생하셨겠네요.
저녁때 한편 더 가지고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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