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3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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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몬스터 사냥.
말이 좋아 사냥이지 언제든 이쪽이 사냥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몬스터라는 족속들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수련이라 생각하고 몬스터들을 찾아 열심히 산맥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고생한 만큼의 보람도 있었다. 운 좋게 몬스터의 몸속에서 콩알만 한 마정석이라도 얻으면 그야말로 대박이었으니까.
형은 그걸 20개 모아서 학비로 썼다고 했다. 몬스터들이 모아놓은 금붙이나 보석도 몇 개 건져서 졸업할 때까지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길리안도 열심히 모았다.
거의 라이라프 산맥을 이 잡듯 뒤져 몬스터의 씨를 말려버렸으니까.
이렇게 위험한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아는 것은 당연히 큰형뿐이었다. 나중에는 너무 열심히 여서 형도 말릴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 생각을 하자 피식 웃음에 새어나왔다.
‘괜히 목숨 걸었네. 그거 없어도 졸업하고 남겠네.’
하는 생각에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지금생각해보면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었다.
‘아니면 피가 나고 상처가 되는 경험이었나?’
하지만 이번에 번 돈도 그리 쉽게 번 것은 아니었다.
대상이 몬스터에서 흉악범으로 바뀌었을 뿐 목숨을 걸어야했던 것은 똑같았고, 어떤 면에서는 사람과의 싸움이 더 힘들기도 했으니까.
‘그나저나 이 돈을 영지로 보내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나쁘지는 않은 생각이다.
이 돈이 영지발전에 기여를 할 것이고, 영주님은 받은 투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보답을 해주는 분이셨으니까.
하지만 돈을 보내면 당연히 아버지의 귀에 들어 갈 테고, 영지를 떠난 지 몇 달 만에 이렇게 큰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걱정하실 것이 뻔했다.
그러면 수도로 찾아오실 지도 모르고 돈을 벌게 된 일을 일일이 설명하면 당연히 좋아하실 분이 아니다.
기사의 길을 가는 것도 이미 반대를 무릅쓰고 하는 것인데 더 이상 걱정을 끼치기는 싫었다.
‘어?’
길 한복판에 서서 생각에 빠져있던 길리안과 살짝 부딪친 남자.
길리안이 그의 팔을 잡았다.
남자는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손버릇이 나쁘군요.”
그렇게 말하며 남자의 팔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줬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보이나? 수도에서도 여지없군.”
작년가을 추수가 끝나자마자 영지를 떠나 수도에 도착하기 전까지 근 반 년 가까이 동부를 여행했다. 그러면서 큰 도시들은 거의 한 번씩 들렸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도시에만 가면 이런 소매치기들이 꼭 한두 번씩은 꼬인다는 거다.
“음?”
“그 손 놓아주는 게 어떨까?”
낯선 사내가 길리안의 등 뒤에 바짝 붙어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밑을 내려다보니 옆구리엔 어느새 날카로운 단검이 닿아있었다.
“손을 놓고 조용히 따라오면 별 문제는 없을 거야.”
다시 들려오는 사내의 목소리에 길리안은 피식 웃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사내의 일행으로 보이는 이들이 그의 주변을 포위하듯 서있었다.
길리안은 남자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속박이 풀리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치는 남자를 보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말이 잘 통하는 친구로군.”
그러면서 길리안을 툭 밀었다.
길리안은 사내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걸음을 옮겼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와 들어선 골목.
“어?”
좁은 골목에 들어서 걸음을 옮기던 길리안이 뭔가를 본 듯 걸음을 멈췄다.
뒤에 붙어있던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이 얕은수는 쓰지 말... 응?”
단단히 붙잡고 있었는데 가볍게 뿌리치고 앞으로 달려가는 길리안을 본 사내가 당황해서 외쳤다.
“뭐해 쫓아!”
사내의 말에 뒤따르던 사내들이 길리안의 뒤를 쫓았다.
“무슨 술집이 이런 구석에 있어. 이러니 찾을 수가 있나.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길리안은 멀리 간 것이 아니었다.
그가 찾는 간판이 보였기에 뛰었을 뿐이었다. 로렌이라고 쓰여 있는 작은 간판을 보고 쓰게 웃는 동안 뒤쫓아 온 사내들이 그를 포위했다.
하지만 그는 사내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 다시 간판을 확인하고 문을 두드렸다.
“거기 볼일이 있나?”
칼로 위협하던 사내의 물음에 길리안은 고개를 돌렸다.
“네.”
“흐음... 그런 식으론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는 곳이고.”
“이문을 지키는 분 혹시 아세요? 가면 있을 거라던데...”
“네 녀석 누구냐?”
“길리안 후버라고 합니다만... 모르실테고...”
말을 하면서 미리 준비해온 숯 조각을 꺼내 벽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이. 뭘 하는...”
말을 하려던 사내가 길리안이 그리는 모양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다 그렸는지 손을 털고 멋쩍게 웃었다.
“하아.. 역시 그림에는 소질이 별로... 그런데 제게 아직 볼일이 남으셨습니까? 요구한건 다 들어드린 것 같은데요.”
태연하게 말하는 길리안을 보면서 사내의 눈가가 실룩였다. 잠시 쳐다보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게 줄 것은?”
사내의 말에 길리안이 씨익 웃었다.
“아 아저씨셨군요. 여기 계신다는 분이.”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대답이나 해라. 답을 모르면...”
“반지의 주인을 찾아왔다. 라고 하면 된다더군요.”
“음...”
잠시 길리안을 쳐다보던 사내가 눈짓을 하자 일행이 앞을 막아섰다.
“돌아서시오. 잠시면 되니까.”
사내의 말에 길리안은 알았다는 듯 순순히 돌아섰다.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 더 기다리니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시오.”
“음...”
문 안으로 들어선 길리안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자욱한 연기와 진동하는 술 냄새, 그리고 여러 가지 향과 이상한 냄새가 섞여 코를 자극했다. 술 마시거나 도박을 하는 이들, 반라의 여자들과 엉켜있는 사내들의 모습도 보였다.
“내 뒤만 따라오시오.”
사내의 말에 그의 뒤를 따랐다.
방 몇 개를 지나 계단 앞에선 사내가 턱짓을 했다.
“올라가시오. 다른 사람이 있을 테니.”
그의 말에 길리안은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 계단을 올라갔다.
“어?”
계단을 올라가 코너를 돌자마자 보이는 벽에 길리안은 고개를 들었다.
‘와.. 크다.’
벽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키가 180Cm인 자신보다 적어도 50Cm는 더 클 것 같은 거구.
거인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았다.
‘영지에 있는 오거기사님보다 더 큰 것 같네.’
라는 생각을 할 때 자신을 내려다보던 거구의 입이 열렸다.
“목적은?”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목소리에 살짝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로렌의 약속을 확인하러 왔다. 라고하면...”
길리안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거인이 돌아서며 손짓을 했다.
“되는 거군요.”
길리안은 그를 따라 한동안 꼬불꼬불한 통로를 걸었다.
‘무슨 구조가 이래?’
하나의 건물인지 몇 개의 건물을 이어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복잡했다.
그러다 멈춰선 거인이 손을 내밀었다.
“검.”
“후우...”
한숨을 쉰 길리안이 등에 메고 있던 검을 풀어 그에게 건네자 막고서있던 문을 열어줬다.
그렇게 안내된 방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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