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5장(1)
“저 아이 보내기 싫군요.”
테라스에서 저택을 떠나가는 마차를 보면서 이베트가 한 말이었다.
그 마차에는 길리안이 타고 있었다.
“며칠 더 머물렀으면 좋았을 것을...”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참 이상하죠. 라미레스와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왜 이렇게 정이 가는 걸까요?”
라미레스는 그녀의 죽은 아들의 이름이었다.
카스트로는 뒤에 서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질문은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저 아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요.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는지, 어떻게 자라왔는지.”
“알겠습니다.”
관청에서 알 수 있는 간략한 조사는 이미 끝낸 상태였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주 세세한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농부라고 했죠?”
“예. 라이라프 영지에서는 영주다음으로 큰 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부농의 아이었군요. 그래도 이상하군요.”
“어떤 점이...”
“부농이라고는 하나 평민. 시골영지의 농부의 아내가 쓸 만큼 흔한 향수가 아니랍니다.”
“그렇습니까?”
“네. 어쩌면 그의 어머니는 귀족일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음...”
“몰락한 귀족이 부유한 평민과 결혼하는 것은 아주 없는 일은 아니니까요. 물론 조사해보면 알 수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확실히 알아보겠습니다.”
“아.. 실력은 어떻던가요? 어제 봤을 땐 상당히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기사인 경이 봤을 때는요?”
“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의외라는 듯 이베트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그 정도 인가요?”
“예. 저대로 잘 성장한다면 몇 년 후면 절 뛰어넘을 겁니다.”
그의 대답에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다행이군요. 다행이에요.”
그리고 다시 길리안이 떠나간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걱정이군요.”
“무엇이 걱정되십니까?”
“내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요. 내가 너무 성급했었나 봐요. 너무....”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아보였습니다.”
“그랬나요?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연신 다행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이베트를 보는 카스트로의 눈빛에 걱정이 어렸다.
죽은 아들의 또래 중에 비슷한 모습이 보이거나하는 아이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호의를 베푼 경우가 꽤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최근 2~3년 사이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래봐야 이제 서로 두 번 본 것이 전부인데 저러는 것이다.
옆에서 모셔온 자신이 당황스러울 정도인데 그 관심을 받는 길리안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 가장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것은 이베트일 수도 있었다.
‘부디 더 이상은 상처받지 않으시길...’
그게 옆에서 지켜보는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틀 묵은 여관이 내 집처럼 편할 줄이야.’
퇴근해서 여관에 와있던 알버트와 그의 부인이 반겨주자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만큼 이베트 자작부인의 집에서 받은 관심과 호의가 부담스럽고 불편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
길리안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다 한사람을 보고 멈칫했다.
“다녀오셨습니까요.”
보자마자 허리를 숙이는 이는 다름 아닌 한스였다.
“왜 이곳에 계신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요.”
“그렇다고 여기에 계시면...”
“졸업하실 때까지 제가 알아서 지내겠습니다요. 그러니 옆에서 모실 수 있게 해주십시오.”
기껏 평민 만들어 자유를 줬는데 이러면 원점이 아닌가?
“그건...”
길리안이 뭐라 하기도 전에 한스가 무릎을 털썩 꿇었다.
“말씀하신대로 노예의 문양도 지웠고, 전 자유인입니다요. 이건 다른 누구의 강요도 없는 제 뜻입니다요. 그러니 제발 받아주십시오.”
한동안 그를 내려다보던 길리안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일단 일어나세요.”
“받아주실 때까지 이렇게 있을 겁니다요.”
길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무릎을 꿇고 있는 한스와 그를 뚱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길리안. 방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혹시 빚을 졌다는 생각 때문이라면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말했듯이 제 실수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요.”
“그럼 도대체 왜이러시는 겁니까? 제 밑에 계실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그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말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요. 처음 자유를 얻었을 때도,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요.”
“후우... 동생들이 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을 찾아볼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왜 안 해봤겠습니까요. 하지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요. 동생들이 너무 어릴 때라 지금 보면 얼굴이나 알아볼 수나 있을지....”
말끝을 흐리는 한스를 보면서 길리안은 아무 말도 하질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에 공감은 갔다.
3년 전에 집을 나간 형도 찾을 길이 막막한데, 어릴 때 노예로 팔려간 동생들을 찾는 일은 더욱 힘들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이제는 다 컸을 그의 여동생들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자유를 갈망했다면서 막상 자유를 얻고 나서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도 참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십여 년이 넘는 노예생활이 홀로서기를 하는데 큰 방해가 돼는 것 같았다.
솔직히 현상법들을 끌고 다니는 동안 제일 억울하다는 말을 많이 한 것이 한스지만, 그러면서도 제일 말을 잘 들은 것이 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노예시절의 생활이 몸에 배서 그런 것 같았다.
생긴 것은 험악하지만 순박하고 고분고분한 성격인 것 같았고, 노예시절에도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고 했었는데 정말 그랬을 것 같기도 했다.
“음... 그럼 이렇게 하지요.”
“받아주시는 겁니까요?”
“제가 아저씨를 받아들이고 말고는 일단 뒤로 미루고 며칠 생각을 해보자는 말입니다.”
“며칠이라시면...”
“아카데미 입학까지는 시간이 좀 있습니다. 당장 가실 곳이 없고 뭘 할지 모르겠다니 저랑 지내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시란 말입니다. 얘기를 나누다보면 좋은 길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건..”
“우선은 일어나세요. 아직 식사 안하셨죠?”
“예... 그렇습니다요.”
“그럼 우선 식사부터 하죠. 얘기는 그다음에 하죠.”
“한번 찾아올 줄은 알았네만... 이렇게 아침 일찍 올 줄은 몰랐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는 라첼에게 방안을 들러보던 길리안이 말했다.
“이런 방에서 혼자 일하십니까?”
“내가 이방에 있는 게 다 자네 덕이라네.”
“네?”
“자네를 만나고 다음날 바로 승진했다네.”
“아 승진하신 거군요. 축하드립니다.”
“우리 처음 봤을 때 난 5급 행정관이었네. 이일을 20년 가까이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지금 내가 몇 급인 줄 아는가?”
길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를 보며 라첼이 웃는 얼굴로 손가락을 두 개 펴보였다.
“2급이네. 2급.”
“허어...”
길리안도 행정관의 급수정도는 알고 있다.
처음 행정관이 되면 9급에서 시작하고, 2급이면 평민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자리라고 봐도 좋았다. 게다가 5급에서 바로 2급으로 승진한 것은 엄청난 것이다.
“이 자리가 마침 노환으로 그만둬서 비어있던 자리거든. 누굴 앉히나 했는데 그게 나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 운이 좋기도 했지만 자네한테 아주 큰 빚을 졌어.”
“그게 어떻게 제덕입니까. 다 라첼 행정관님의 능력이시죠.”
“모르는 소리. 이 자리에 앉으려고 3,4급 행정관들이 얼마나 줄을 섰는지 아나?”
당연히 알리가 없었다.
“행정관들도 귀족들하고 알게 모르게 다 연결이 돼있다네. 이정도 자리면 귀족들도 자기 사람을 앉히려고 하지. 그들 입장에서도 말 잘 듣는 개가 좋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내가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두게. 뭐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만하게. 이제 나도 힘이 좀 있어. 하하하. 내 뭐든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 테니까.”
“뭐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일단은...”
길리안은 말끝을 흐리며 옆에 서있는 한스를 쳐다봤다.
그가 뭐라 하기 전에 라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 한스 프리덤.”
“어? 알고 계셨습니까?”
길리안이 놀란 듯 묻자 라첼이 웃으며 답했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거의 20년을 일한 내 일터라네.”
“아하하하...”
“뭐 문제 될 것이야 없지. 어차피 자네 뜻대로 하라고 맡긴 거였으니까.”
“네.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문제라니? 저 친구가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
“그게 아니라... 이분이 계속 절 따르겠답니다.”
그 말에 라첼이 한스를 다시 한 번 쳐다봤다.
“뭐 괜찮지 않겠나? 자유의 몸이 됐는데도 스스로 자네를 따르겠다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을 굳힌 모양이지.”
“그게 마땅히 지낼 곳도 없고, 제가 딱히 시킬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 서요.”
“딸린 식구하나정도야 뭐 별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 아닌가? 돈도 좀 있고, 아니지 그 정도면 조금이 아니지.”
“아 그 문제로도 상의드릴 것도 있습니다.”
길리안의 말에 라첼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돈을 그냥 가지고 있자니 불안하고 딱히 쓸데는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고 그러던가?”
“하하... 네. 잘 아시네요.”
“그럼 수도에 집한 채 사게나.”
“집이요?”
“뭐 자네를 따르겠다는 저 사람도 지낼 곳은 있어야 할 테고, 집이 있으면 여러모로 편하기도 할게야. 아카데미에 입학하겠지만 졸업 후도 생각해본다면 집 하나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네만.”
“음...”
잠시 생각을 하던 길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서 나쁠 것은 없어보였다.
“말씀하신대로 집이 필요하긴 하겠네요.”
“그럼 어디보자 비어있는 집이...”
그러면서 사람을 불러 뭔가를 지시했다.
다른 일상적인 대화를 조금 나누는 동안 행정관하나가 서류뭉치를 전해주고 밖으로 나갔다.
“이게 세금이 밀려있거나, 국가에 압류당한 집들이라네. 보통 사고파는 것보다 싸게 살 수가 있지. 그래 자네가 가진 돈이 3천 골드 쯤 됐지? 학비를 빼고 뭐하면 한 2천 골드 쯤 되겠군. 그 정도면 괜찮은 집을 사고도 남을 걸세.”
“저기...”
“뭔가?”
“그게 제가 가진 돈이 좀 불어났습니다.”
“음?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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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4년 만에 돌아온 월드컵인데 이번엔 이상하게 별 관심이 안가네요. 하암...
이렇게 말하고 낼 새벽같이 일어나 경기를 챙겨볼지도... 어쨌든 이겼으면 좋겠네요. 응원해야죠.
말나온 김에 월드컵 이벤트나 해볼까요?
그건 바로 연참 이벤트~ 두둥!
우리나라가 승리 할 때마다 연참을!(승리 시 2회 연재.)
16강 진출 시 3연참!
8강진출시 5연참!(8강 가려나;;;;)
그게 무슨 이벤트냐!
그러니까요... 호응 없으면 안하는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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