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3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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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무척 넓구나.”
길리안은 슈발리에 아카데미의 정문에 서있었다. 오기 전에 높은 담벼락을 따라 한 바퀴 돌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수도는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이곳은 그렇지가 않았다. 큰형과 영지의 기사님들에게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았다.
아직 입학한 것도 아닌데 이곳에 다닐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렜다.
안쪽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물론 입학원서를 접수해야 하기에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정문에 붙어있는 공고를 보니 3일 후.
“그래도 다행이네. 처음인데도 익숙하게 느껴져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아카데미를 쳐다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와 정말 엄청나게 복잡하구나.”
길리안은 지도를 보고 주변을 둘러보고 하면서 두리번거렸다.
지도는 알버트가 준 것이었다.
성문에서 수도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파는 것인데 길리안에겐 복덩이라면서 그냥 주었다.
무슨 지도가 필요할까 했지만 이거 막상 혼자 나와 보니 있어도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건물들, 수많은 사람들, 바쁘게 지나다니는 마차와 짐수레들.
오면서 동부의 큰 도시들을 들렀지만 수도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라이라프 산맥을 손바닥 보든 훤히 알고 있던 자신인데, 대도시의 한복판에 서있으니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돌아다녔지만 원하는 곳을 찾는 게 쉽지가 않았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엄청 신경 쓰이는 일이구나.’
그 문제도 있었다.
올라오면서 잡은 현상범들을 처리하고 받은 돈보다 어제하루 라첼이 일처리를 해주고 준 돈이 몇 배는 많았다.
‘어쩐지 후하게 쳐주더라니.’
해당 영지에 넘겼을 때 행정관이라 관리들 외에 몇 번은 영주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밑에서 일 해보겠냐는 제의를 받기도 했었고, 현상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수고비로 받은 적도다.
그때는 이게 무슨 행운인가 싶었는데 어제 일을 겪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영주들은 다른 귀족들에게 그자를 넘기고 생색을 내기 좋았을 테고, 행정관들은 어제처럼 돈을 벌었을 것이다.
‘모르면 손해 보는 세상이라더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이 돈을 어쩐다.’
어제 라첼이 자신의 몫으로 준 돈이 3천 골드 정도 됐다. 챙겨준 보석과 장신구를 합치면 그보다 더 될 것이었다.
1:3:6으로 나눈다고 했으니 5천 골드를 넘게 받았다는 말이 된다.
실버도 아니고 골드다.
통화의 제일 낮은 단위는 브론, 100브론은 1실버고, 100실버는 1골드이다. 브론은 구리에 다른 여러 가지를 섞어 만들고 실버에도 다른 것들이 섞인다고 들었다. 하지만 골드는 진짜 금이다.
농노들은 금화는 꿈도 못 꾸는 거고 평민들도 평생 만져보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제 본 자작부인은 2천 골드나 주고 갔고, 다른 귀족들도 몇 백 골드씩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던져주고 간 것이다.
‘영지에 있는 아가씨께서 들으면 입에 거품을 무시겠군.’
부유한 영지가 아니었다.
어제 귀족들이 던져주고 간 5천 골드면 영지의 1년 수입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거기에 왕실에 바치는 세금도 있으니 실제로는 금액이 더 적다.
아무튼 그 돈이 고스란히 영주의 주머니로 들어간다고 해서 이상할건 전혀 없는 세상이지만, 영주님은 그 돈을 다시 풀어 영지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다.
그런 것이 스스로와 가문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워낙 검소하고 영지 민들은 진심으로 위하는 분이셨다.
아가씨나 남작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자작부인이 입고 있던 화려한 드레스 같은 것을 입은 걸 본 기억이 없었으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귀족이라기 보단 부유한 평민정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수도에선 귀족들의 파티가 많이 열린다는데 그런 것이 없어서일 수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영지에 귀족이라고 해봐야 영주가족4인과 가신에 속해있는 평 귀족 1명이 전부였고,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파티는 주변 영주들과 친목을 다지는 수준이었으니까.
‘아카데미 입학금과 등록금을 내도 남겠네.’
슈발리에 기사아카데미의 입학금은 200골드. 그리고 일 년에 2번 50골드씩의 등록금을 내야한다.
보통6년의 과정이기에 졸업까지는 총500골드의 학비가 필요했다. 그 외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도 꽤 있다고 들었다.
물론 학비로 들어가는 돈 말고도 쓸데가 생기겠지만 그걸 생각해도 너무 많이 남았다.
아카데미의 등록금은 솔직히 말하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지만, 슈발리에는 다른 아카데미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었다. 그래도 보통사람은 꿈도 못 꿀 돈이긴 했다.
하지만 그 학비를 댈만한 능력이 길리안의 아버지에게는 있었다. 영지에서 가장 많은 땅과 가축을 소유한 것이 길리안의 아버지였고, 당연히 세금도 가장 많이 내는 부농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기사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큰형이 기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그랬고, 작은형이나 자신이 기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큰형이 말을 꺼냈을 때는 그렇게 하고 싶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길리안보다 12살 많은 큰형은 정말 혼자 힘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정식기사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기사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첫 전투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왼팔이 잘리고 다리를 다쳐 절룩이는 신세가 되어 기사로서의 인생은 너무 짧게 끝나버렸다.
고향으로 돌아온 큰형을 영주님은 남작가의 기사로 임명하고 영지 병의 훈련을 맡겼다. 비록 정상적인 전투력을 낼 수는 없지만, 병사를 훈련시키고 지휘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까.
형은 지금도 기사되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큰형의 일 때문에 작은형이 기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반대는 그 어떤 때보다 심했다.
무척이나 완고하셨고 그 때문에 작은형은 아버지와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 집을 나가버렸다.
작은형의 일 때문인지 길리안이 말을 꺼냈을 때는 억지로 막거나 그 꿈을 꺾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저 큰형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들었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던 바였고, 스스로 아카데미에 입학해 졸업할 학비를 버는 준비는 차곡차곡 하고 있었다.
그 노하우를 일러준 것은 역시나 큰형이었다.
동생이 자신과 같은 불행을 당할까봐 걱정하면서도 그 꿈을 응원해줬다.
형에게 배운 노하우는 다른 것이 아니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수백골드나 되는 학비를 마련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 작은 시골영지에서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돈이 될 만한 것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라이라프 산맥에 아직 남아있던 몬스터들이었다.
지금은 대륙중심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유물이 돼버린 몬스터들.
길리안의 고향에서도 십 수 년 전만해도 겨울이면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내려오던 몬스터들을 막고, 토벌하기 위해 해마다 전쟁을 치르다 시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된 토벌에 그 수가 줄어 이제는 산맥의 깊은 곳에나 들어가야 종적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몬스터 사냥이란 것이 당연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고 몬스터를 사냥하러 오는 헌터들의 안내부터 시작했었다. 그들의 사냥법이나 추적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했었다.
형에게도 많이 배웠고 몬스터 사냥을 위해 수련에 더욱 박차를 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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