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25장(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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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직접 가볼래.”
움직이려는 라데카를 말론이 붙잡았다.
“안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계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여기 모시고 온 것을 로드께서 아시면, 전 문책정도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 안에 그가 있다고!”
‘미네르바 언니와 같이.’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말론을 라데카가 째려봤다.
“뭐? 결투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 거 잊었어?”
말론이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하하 그야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래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지금도 죽을 수도 있겠네. 안 그래?”
“음, 그렇긴 하지만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넘버즈 3명이 함께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도 이제는 넘버즈군요.”
그 말에 라데카가 인상을 썼다.
“그래 넘버즈지. 그래서 문제라고, 그래서···.”
“예?”
“아니야.”
그가 실력을 인정받고 넘버즈가 된 걸 마냥 축하해줄 수만은 없는 이유가 생겼으니까.
미네르바와 길리안.
별로 만날 기회도 없을 것 같은 둘이 벌써 할 건 다했다.
아카데미에서 자주 마주치려고 관심도 없던 조교 일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별 소용없는 일이 돼버렸다.
시작도 늦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자신이 마주칠 기회가 적어지게 생겼으니까.
지금처럼 같이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도 생길 테고, 넘버즈들은 거의 왕성에 머문다.
그러니 이젠 미네르바와 길리안이 더 자주, 아니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솔직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무리 넘버즈가 4명이라지만 별 준비도 없이 들어갔다고 들었기 때문.
“정말 걱정돼. 그가 괜찮은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말론 부탁해. 제발, 응?”
방금 전까지 인상을 박박 쓰더니, 이제는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를 보면서 말론은 한숨을 쉬었다.
이번작전에 넘버즈와 기사들만 나선 것이 아니다.
적들이 움직인다는 가정 하에 추적해서 그 본거지를 알아내겠다는 작전을 기사들에게만 맡길 수가 없었으니까.
여기저기서 조직원들이 열심히 적을 쫓고 있었다.
이곳도 그중 한곳이고 전투까지 벌어졌다는 보고에 직접 나선 것. 다른 출입구가 또 있는지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문제는 라데카를 떼고 올 수가 없었다는 거다.
이런 일이 생길 걸 예상하고 그녀에게 다짐을 받았지만 역시나.
난감해 하던 말론이 다시 한숨을 쉬고 말했다.
“아가씨.”
“응?”
말론은 부르자마자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라데카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안위가 걱정되신다니 제가 직접 안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럼 나도···.”
“안됩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 말에 라데카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우셔도 안 됩니다. 제가 확실히 보고를 드릴 테니 돌아가 계십시오.”
“싫어.”
“그럼 저도 싫습니다. 그가 죽든 말든 제가 알게 뭡니까.”
“말론!”
“돌아가 계십시오. 살아만 있다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리고 나오겠습니다.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잠시 말론을 쳐다보던 라데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돌아가 있을게. 대신 이거 가지고 가.”
그렇게 말한 라데카가 작은 자루를 내밀었다.
“이것저것 넣었어. 드겔 경이 마탑주한테 갔다며. 그럼 저안에도 마법사가 있을지 모르잖아. 그만 위험한 게 아니라 말론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가져가.”
그렇게 말하는 라데카를 보며 말론이 웃으며 그걸 받았다.
“알겠습니다.”
“하아~. 내가 정말 저 인간 때문에 제명에 못 죽을 거 같아!”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말론이 뒤쪽을 향해 손짓을 하고 몸을 날렸다.
자신을 따라 몇 명이 몸을 날렸고 나머진 라데카의 곁에 섰다.
돌아가지는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자신을 따라 오는 것은 옆에 있는 이들이 못하게 막을 테니까.
저택으로 향하며 뒤를 돌아보니 라데카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의지를 관철 시켰을 텐데 그러질 않았다.
순순히 포기하는 걸 보면 그가 많이 걱정되긴 하는 모양.
이제 사랑에 눈을 뜬 그녀.
시작은 두근거리고 달콤할지 몰라도, 사랑이란 건 때론 무엇보다 아프고 위험 할 수도 있는 것.
그런 경험을 통해 성숙해 지기도 하지만, 가급적이면 라데카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했다.
어제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들어온 걸 보면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저택을 보는 말론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아가씨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면, 죽여 버릴 테다.’
“막혔군.”
무너져서 막힌 것이 아니었다.
“설마 이게 문이야? 이런 걸 어떻게 열지?”
만져보니 돌을 통째로 깎아 만든 것 같았다.
위아래로 열리는지 옆으로 열리는 건지는 몰라도, 어딘가에 움직이는 장치는 있을 것 같아 미네르바가 주변을 살폈다.
“여닫는 장치가 안쪽에 있는 게 아닐까요?”
커다란 갑옷의 앞면을 벽에 기대 놓으며 말하는 길리안을 보고 피식 웃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였다.
“와~ 이제야 끝이 보이네.”
미네르바의 말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넷이 돌아가며 오크들을 처리했고 수백이었던 오크들은 이제 이십여 마리만 남았다.
그렇게 오크들을 거의 처리 했을 무렵, 뒤에서 삐익~ 하는 소리가 들리자 얼마 남지 않은 오크들이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쫓으려 할 때 들려온 포효소리.
미네르바는 인상을 찌푸렸다.
한번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좁은 통로라서 그 울림은 전에 들었던 것 보다 훨씬 컸다.
도망치는 오크들을 밀치고 밟으며 나타난 것은 오우거였다.
그것도 갑옷을 입은.
오우거를 보자마자 미네르바와 로렌스가 달려 나갔다.
로렌스는 다리사이로 스쳐지나가며 검으로 발목을 베었고, 미네르바는 높이 뛰어올라 밑에서 보이는 턱을 노리고 검을 찔렀다.
“베지 못했다.”
로렌스의 말에 미네르바가 씨익 웃다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뚫리질 않아!”
자신의 검이 휘어지는 것을 본 미네르바가 급히 오우거의 가슴을 차고 뒤로 몸을 날렸다.
“뭐야 저거?”
분명 몇 달 전에 처리해본 적이 있었다.
그땐 분명히 검을 박아 넣었었다.
로렌스가 상처를 많이 입혀 놓은 것도 봤었는데, 지금 나타난 녀석에겐 둘의 공격이 통하질 않았다.
땅에 내려서자마자 녀석이 커다란 도끼로 내리찍는 것을 보고 피하려고 할 때.
“으아아아!”
드레드가 함성을 지르며 해머를 위로 올려쳤다.
도끼와 해머가 공중에서 부딪치고 쿵 소릴 내며 해머가 바닥을 쳤지만 오우거의 도끼도 위로 튕겨져 나갔다.
“대단하네.”
라는 말을 할 때 또 다른 함성이 들렸다.
이번엔 길리안.
크게 휘두른 그의 해머가 노출 돼있는 오우거의 발등을 때렸다.
오우거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괴성.
그게 시작이었다.
길리안이 막고 드레드가 때리고, 드레드가 막으면 길리안이 때렸다.
자신과 로렌스가 나설 것도 없이 손발이 척척 맞는 둘이 오우거를 상대했다.
둘은 말 그대로 오우거를 때려잡았다.
그리고 잡은 오우거에게서 벗겨낸 갑옷을 방패삼아 전진했다.
활로 공격해도 이쪽을 어쩔 수 없자 적들의 공격도 끊겼고 빠르게 이동이 가능했다.
그 무거운 것을 들고 앞장서서 이곳까지 온 길리안은 조금 쉬어도 될 텐데 그러질 않았다.
드레드에게 건네받은 해머를 손에 쥐고 문 앞에서 서서 마주보고 웃는 둘을 보며 말했다.
“설마 부수려고?”
고개를 끄덕이는 둘.
“정말 힘이 넘쳐나는 구나?”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드레드가 해머를 들어 문을 쳤다.
쿵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길리안이 해머를 들어 올렸을 때 진동과 함께 문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효과가 좋군요.”
그렇게 말한 길리안이 재빨리 오우거의 갑옷을 집어 들었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 안쪽은 굉장히 넓었고 마법등이 밝혀져 있어서 대낮처럼 환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정렬해있는 백여 명의 기사들.
그들에 가려 뒤쪽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기사는 아닌 것 같은데?”
드레드의 말에 로렌스가 답했다.
“맞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그럼?”
“장식이 어울리는 곳은 아니지만 그냥 갑옷 같다.”
드레드는 고개를 끄덕일 뿐.
확실히 느껴지는 것이 없었으니까.
“화살은 날아오지 않는 군요.”
길리안의 말에 다들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살펴봐도 활 쏘는 자들이 보이질 않았다.
“누가 문을 연 것이냐?”
“적이다.”
라는 소리가 기사의 갑옷 뒤쪽에서 들렸다.
“뭐 어쨌든 상관없지.”
일행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 갑자기 갑옷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식이··· 아니군.”
“길리안 드레드 부탁하마. 미네르바.”
미네르바를 부른 로렌스가 우측으로 달리자 그녀가 뒤를 따랐다.
길리안과 드레드는 움직이는 갑옷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런 곳에 마법사?”
“마법사군.”
로브를 입은 자들이 20여명.
대부분 빛이 나는 곳에 둥글게 모여 팔을 올리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자신들을 향해 서있는 마법사가 다섯.
미네르바와 로렌스는 그들에게 달려들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검을 휘둘렀다.
허공에 막힌 둘의 검.
“오늘따라 내 검이 많이 막히네.”
“나도 그렇다.”
마법사들이 미리 쳐놓은 것 같은 마법실드.
“궁금하긴 했어. 이것도 뚫을 수 있는지.”
뒤로 물러났던 미네르바가 빠르게 쏘아져나가며 검을 뻗었다.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탑주가 마법을 영창하고 있었다.
“한번 보도록 하지. 정말 가능한지 궁금하지 않나?”
솔직히 루퍼드도 궁금하기는 했다.
대륙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마법.
일전에도 산맥에 나타난 오우거를 두고 말은 많았지만, 결국 텔레포트가 아닌 것으로 판명 됐었다.
그런데 마탑주가 그걸 보여주겠다고 하고 있었으니까.
모여드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다.
가능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마법 영창이 다 끝났는지 마탑주가 드겔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 있으시오 드겔. 다음에 봅시다. 텔레포트!”
마탑주가 올라서 있던 마법진에서 눈부시도록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루퍼드는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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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늦었습니다.
연참대전만 아니면 이번 편에 끝내려 했는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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