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25장(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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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퍼드는 팔다리가 잘려 죽은 웨어울프 두 마리와 목이 잘려 쓰러진 대형 몬스터를 보다가 검을 털고 검 집에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어깨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근위병의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견갑은 떨어져나갔고 옷도 뜯겨져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세 줄기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웨어울프의 날카로운 손톱에 당한 상처.
몸에 상처를 입어보기는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위협적인 몬스터였고 그나마 물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거기에 바닥을 뚫고 나온 대형 몬스터도 무시할 수 없었다. 녀석이 자신을 잡겠다고 바닥을 거의 다 부순 탓에 발 디딜 곳이 부족해졌었으니까.
결국 지하로 내려가서 웨어울프를 상대해야 했다.
대형 몬스터도 갑옷 틈새를 노려 베었지만 가죽이 어찌나 질기고 튼튼한지. 잘 베이지 않아 놀라기도 했고 발목을 베는 것도 꽤나 고생했었다.
목을 벨 때는 정말 전력을 다했다.
루퍼드는 여기저기 너덜거리는 갑옷을 벗어던지며 고개를 들어 드겔이 사라진 쪽을 봤다.
이제는 계단이 부서져버려 이층 난간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는 생각에 몸을 날려 난간위에 올라섰다.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비릿한 피 냄새.
안으로 들어서니 사지가 모두 잘린 웨어울프의 시체가 보였다.
세 마리.
복도를 걸으며 부서진 벽이나 문 사이로 보이는 시체는 더 많았다.
루퍼드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늦으면 재밌는 구경을 다 놓칠 거라던 드겔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쥐새끼 같은 것들.”
드레드의 말에 미네르바는 피식 웃으며 털썩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적들이 있던 공간은 무슨 용도인지는 몰라도 꽤 넓었다.
그곳의 길목을 막아 저지선을 만들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길리안이 만들어준 공격타이밍을 이용해 적들을 모두 해치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확은 생각보다 적었다.
적들도 바보가 아니어서 이미 반수이상이 반대쪽 통로로 이동해 있었고, 주변에 있던 횃불도 제거해서 불을 밝힐 수도 없었다.
발리스타는 모두 제압했지만 성가신 암살자들은 열 명도 처리하지 못했다.
거기에 자신은 체력소모가 심했던 탓인지 마음처럼 스피드를 낼 수도 없었다.
이대로는 다른 이들의 짐이 될 지도 몰랐다.
동굴이 얼마나 긴지도 모르고 적들이 또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니, 지금은 조금이라도 쉬면서 체력을 회복해야할 때.
로렌스는 일행들을 둘러보며 보며 쓰게 웃었다.
드레드는 어제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임무를 맡은 이상 대충하는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한참동안 홀로 적들의 공격을 견뎌내느라 왼팔에 받은 충격도 꽤 되는 것 같았다.
미네르바는 어제 술을 과하게 마셨고 적을 쫓아오느라 체력소모도 심했다.
힘든 티를 내지는 않고 있지만,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길리안도 어제 수십 명과 결투를 벌이고 드겔과 붙어 상처도 입었었다. 거기에 과음도하고 잠도 많이 못 잤는데 적을 쫓아 이곳까지 왔다.
그런데 웃긴 건 정말 별로 힘들어 하고 있지 않다는 거였다.
미네르바가 무척 지쳐 보이는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의 체력.
아직도 팔팔해 보이긴 해도 그 역시 사람이니 휴식은 필요해 보였다.
자신도 그저께는 한숨도 못 잤고 어제는 술을 많이 마시고 별로 쉬지 못한 상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것도 아닌데다가 다들 컨디션까지 별로라는 것이 문제였다.
“우리가 적을 너무 가볍게 본 것 같다.”
그 말에 미네르바와 드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리안, 쉴 때는 조금 편하게 쉬라고.”
적들이 가지고 있던 화살로 자신의 비어버린 화살 통을 열심히 채우고 있는 길리안에게 미네르바가 말했지만.
“예.”
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적들의 몸을 뒤져보고 옷을 찢어 뭔가를 만드는가 싶더니 뒤로 부리나케 달려갔다가 뭔가를 등 뒤에 한가득 메고 나타났다.
바로 횃불들.
금방 꺼서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드레드에게 가서.
“방패 좀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드레드가 피식 웃으며 방패를 건네자 그걸 들어보더니.
“좋은 방패네요. 저도 비슷하게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럼 잠시 쉬고 계십시오.”
“길리안!”
“그냥 정찰입니다. 정찰. 걱정 마세요.”
라고 말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으! 정말!”
미네르바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로렌스가 만류했다.
“자신이 있어 보이니 맡겨보자. 조금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게 너에게도 좋을 테니까.”
“하지만···.”
“그도 넘버즈다.”
“안다고. 하지만 지금은 내가 넘버즈라고 불리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야.”
로렌스는 미네르바가 왜 저러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좀 더 노력하면 되겠지. 그는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하며 지금의 실력을 쌓았다. 목숨을 건 횟수만 따져도 몇 배는 될 만큼.”
“마치 본 것처럼 말하네.”
“아직 그 얘기는 못 들었나보군. 나중에 아무 기사나 잡고 물어봐라 그의 몸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몸?”
“뭐 둘이 잘 지내다보면 직접 볼 기회도 있겠지만.”
능글맞게 웃는 로렌스를 보며 미네르바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너! 예전부터 자꾸 길리안이랑 나랑 뭔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와 함께 있을 때 거울을 한번 봐라. 네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음.”
“벌써 꽤 멀리 갔다.”
드레드의 말에 대화를 하던 둘이 고개를 돌렸다.
적들이 퇴각하면서 횃불을 수거해 간 것 같았는데 길리안이 뒤쪽에서 들고 온 횃불을 군데군데 꽂아서 앞을 밝히고 있었다.
“오늘은 신세를 많이 지는군.”
“그러게.”
길리안은 횃불을 꽂으며 전진하다가 걸음을 멈추고 벽에 귀를 댔다.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음.”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가 아주 많은 것 같았다.
확인을 하기 위해 앞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한동안 달리다가 횃불을 양쪽 벽에 걸어 어둠을 밝히고서 다시 뒤로 물러났다.
오십여 미터를 물러나 한 생각은 이 동굴이 정말 길다는 거였다.
거기에 갈수록 폭이 넓어지기 까지 한다.
저택에서 이곳으로 내려온 계단과 이 동굴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만든 것 같았다.
다른 이들도 알아봤는지는 몰라도 함정이 있었던 흔적도 있었는데 이미 파괴됐거나 작동이 중단 된 것 같았다.
어쩌면 적들은 이곳의 원래 주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 있을 때도 라이라프 산맥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동굴에 들어가 본적이 있었다.
이것보다는 짧았고 얻은 거라곤 읽지 못할 책 몇 권과 지금도 쓰는 가면이 전부였지만 그보다 좋은 경험을 했었다.
꽤 많은 함정을 경험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 모습을 드러낸 것들을 보고 저게 뭔가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익숙한 소리와 익숙한 냄새.
다만 익숙하지 않은 겉모습에 어이가 없어서였다.
적들이 미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이언트 오크는 오크들 중에서도 몸집이 크고 강하다.
수십 마리가 모여 있으면 오우거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잡으려고 덤벼드는 것들이 저것들이다.
그런 자이언트 오크에 갑옷을 입히고 무기를 들려놓았다.
생각을 하면서 뒤로 물러나며 계속 활을 쐈다.
갑옷에 맞아도 박히기는커녕 화살이 부서지거나 튕겨나가는 것을 보니 두께가 상당한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갑옷의 틈을 노려 쏴서 맞추니 몇 마리가 쓰러졌다.
괴성을 지르며 득달같이 달려오는 놈들과 거리를 벌리며 계속 활을 날리는데, 오크들의 머리위로 날아오는 화살에 급히 방패로 몸을 가렸다.
‘오크를 조종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는 사람이 길들일 수가 없다고 했다.
자신도 몇 마리 잡아서 실험해 봤는데 개만도 못하더라.
두려워해서인지 익숙해서인지는 몰라도 공격성을 드러내진 않았다. 먹는 걸 주면 잘 받아먹지만 아무리 공을 들여도 명령을 알아듣지는 못하고, 묶어 놓은 것을 풀어주면 바로 도망가 버렸다.
오크에게 무기를 쥐어주고 가르쳐 보기도 했었다.
손에든 무기를 휘두르는 건 몰라도 활은 다루지 못했다. 시범을 보여줘도 마찬가지.
그래서 몬스터를 길들이는 것은 포기.
오크가 활을 쏘는 건 본적도 들은 적도 없으니 계속 상대하던 적이라는 말.
그런데 저런 놈들 틈에서 활을 쏠 수 있다는 건 저 녀석들을 조종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저런 군대를 만든다면 상당히 위협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 무장이면 보통 사람은 상대하기도 힘들고 병사들도 여럿이서 한 마리를 상대해야 할 정도.
저런 것을 상대하려면 기사가 직접 나서는 게 가장 좋다.
딱 봐도 그런 오크의 수가 수백.
지휘가 가능해서 명령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정말 무서운 전력이 될 것이다.
적의 견제만 없으면 혼자 저속으로 한번 뛰어들어 볼만도 했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다른 넘버즈들과 힘을 합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공간도 그쪽이 넓어서 더 나아보였으니까.
“음?”
멀리서 들려오는 괴성과 진동에 세 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네르바가 달려 나가려고 했지만 로렌스가 더 빨랐다.
하지만 그도 얼마가지 못해 달려오던 길리안과 마주쳤다.
“뭔가?”
“오크입니다. 숫자는 수백정도. 활 쏘는 적들도 함께 옵니다.”
그 말에 로렌스도 살짝 놀란 표정을 했다.
달려온 길리안이 등에 메고 있던 횃불에 불을 붙여 여기저기에 걸었다.
계속 확인했지만 저들이 오면서 자신이 걸어 놓은 횃불을 끄고 있었으니까. 어둠속에서 상대하기엔 아무리 넘버즈들이라도 무장한 수백의 오크는 부담스러울 테니까.
움직이면서 길리안이 상황을 설명하자 미네르바와 드레드도 움직였다.
드레드는 망가진 발리스타 몇 대를 통로 쪽으로 집어던져 방해물을 만들었고 미네르바는 횃불을 거는 걸 도왔다.
로렌스는 작동하는 발리스타에 장전을 했다.
그 정도 준비를 했을 때쯤에 적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레드는 방패를 들고 정면에 섰다.
미네르바와 로렌스는 검을 뽑아들고 입구의 양쪽에 포진했다.
길리안은 로렌스가 장전해 놓은 발리스타를 한 번에 발사 할 수 있도록 줄을 묵고 대기했다.
수백의 오크가 몰려오는 긴장된 순간이었지만 넷은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추천과 댓글은 글쟁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작가의말
이번 장도 끝나갑니다.
내일은 일요일!
일요일은! 쉽니다. 하하하하;
쉬기는요, 다음 주에 연재할 걸 준비해야죠.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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