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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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파천황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 기운을 감지한 진룡은 급박히 외쳤던 것이다.
“피해!!!”
콰앙!!!
파천황에게서 솟아나온 기운이 물밀 듯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샘 솟아오른 기운은 곧 사방을 덮쳐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파천황의 절기, ‘대빙하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펼쳐진 기운들이 주변의 집, 건물, 땅들을 전부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파천황의 기운들은 운 없게 근처에 서성거리고 있던 사람들이나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집 안에 꼼짝 않고 틀어박혀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얼려버렸다.
“살려줘!!!”
“아아악!!!”
그런 이들은 채 비명도 완전히 지르지 못하고 사망했다. 지독한 한기가 건물마저 뚫고 엄습해 사람들을 모조리 얼려버렸던 것이다.
“후우······.”
한바탕 기운을 쏟아낸 파천황은 한숨을 쉬었다.
이 초식은 체내에 있는 온 한기를 일시에 뿜어내는 것이라 제 아무리 강한 그조차 잠시 동안은 시전 후 꼼짝할 수 없었다.
일시적으로 온 몸의 기운이 소진되고 신체는 대자연의 기를 흡수해 반강제적으로 휴식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상태야말로 파천황을 노리기에 가장 좋은 상태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이 초식은 정면으로 막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초식이었다.
대만에서 강호육과 음양당 등의 요원들에게 둘러싸인 파천황이 탈출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그것이었다.
파천황은 절체절명의 순간 대빙하시대를 펼쳐 일시적으로 강호육 및 음양당의 요원들을 마비시키고 곧바로 금문도 쪽으로 피신해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대만의 수도인 대북(臺北. 타이베이)에서 금문도로 추격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 어려웠지, 일단 바다에 뛰어들자 대만의 요원들은 아무도 파천황을 쫓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빙신공으로 즉석에서 얼음 굴을 만들며 시속 수십 km의 속도로 미끄러져 이동하는 파천황을 쫒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동하며 만드는 얼음 굴이 총격마저 막아줘 파천황은 유유히 얼음 굴을 타고 다시 중국 대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대만과 중국 대륙은 가장 가까운 금문도에서 하문 시까지 무려 몇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
심지어 이동하는 동안 바다 속에서 음기를 보충해 파천황은 강호육에게서 입은 화상마저 상당히 회복했던 것이다.
물론 모든 상처나 내공을 완전히 회복할 순 없었지만, 며칠 동안 정양하고 숭산 소림사를 거쳐 소림칠승을 데리고 다시 쪽방촌의 무림인들에게 나타날 즈음에는 거의 대부분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다.
최고 상태의 몸의 8할에서 9할은 회복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소림육승과 쪽방촌의 무림인들이 합공하려 해봤자 상대를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파천황은 대빙하시대를 그들 소림육승과 쪽방촌의 무림인들이 있는 쪽으로 집중시켜 반대로 그의 옆이나 뒤는 전혀 타격이 없는 상태였다.
완벽하게 전방부만 괴멸적인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우지직, 콰쾅!!!
자신의 대빙하시대에 의해 파괴돼 무너지는 주택 하나를 바라보면서, 파천황은 무심히 공안의 요원 하나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추격하시오.”
“네, 이미 추격중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부부장님의 초식이 펼쳐진 직후 쫒기 시작한 것이라 어느 정도 시간을 주고 말았습니다만······.”
요원은 눈치를 살폈다. 그 말대로 파천황의 대빙하시대가 펼쳐지는 동안에는, 그 영역 안에 들어갔다간 누구나 죽음이기 때문에 감히 추격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빙하시대가 끝난 이후 아무도 그 초식에 당한 자가 없자 곧바로 공안의 요원들은 추격을 했으나 상대적으로 소림육승이나 쪽방촌의 무림인들에 비해 경공이 느린 요원들은 절대로 그 뒤를 쉽게 추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을 말했으나 본의 아니게 이것이 파천황의 탓인 것 같은 말이 되어버리자 요원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파천황은 싱긋 웃으며 요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괜찮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것 같군.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추격해보시오. 어차피 그들은 죽은 목숨이니까.”
“예, 예!!!”
어깨를 두드리는 파천황의 손에서 묘한 한기가 느껴지자 요원은 기겁하며 곧바로 포권을 한 뒤 경공을 펼쳐 사라졌다.
이들 요원은 화산이나 소림 같은 유서 깊은 구파일방을 사문으로 가진 자들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흑도 출신의 인물들이었다.
과거라면 그들은 배척 받고 흑도의 뒷세계에서 더러운 일들만 맡다 시궁창 인생을 살며 비참하게 죽어갈 자들인데, 공산당은 그들을 모두 공안 무림맹 소속의 인물들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더러운 일들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시궁창 인생을 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아무 뒷배 없는 흑도의 삼류무인들에서 공산당의 주구가 됐을 뿐······.
그리고 화산파나 태산파 등 세력 있는 구파 일방의 무인들이 공안 무림맹에 합류하자 이 흑도 출신의 무림인들은 그들의 지시를 받아 공산당의 명을 수행하는 형태로 일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이어져온 구파일방 중심의 무림 체계는 아직도 암암리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구파일방의 무공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구파일방의 구성원은 그 수로는 사파의 인물들보다 적지만 무공 면에선 압도적이었다.
물론 사파에서도 극소수 정파의 무공에 뒤지지 않는 무공들이 있지만 전체 사파의 무공에 비하면 극소수인 것이다.
애초에 사파 자체가 정파가 되지 못한, 정파에 원한을 가진 대부분의 삼류무인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 세계라 이는 어쩔 수 없는 생리였다.
한편 파천황은 자신의 손이 닿자 급하게 포권을 하고 사라지는 요원을 묘한 눈으로 쳐다보며 생각했다.
‘흐음, 그 쪽방촌의 무림인들과 소림육승을 물러나게 한 것은 좋은데 하나도 붙잡지는 못했구나. 뭐 적어도 목령과 그 원륭이라는 애송이를 처치한 것만으로도 수확으로 삼을까······. 그 애송이의 발전은 눈부신 데가 있었으니까.’
원륭과 당갈의 대화를 통해 공안 무림맹은 원륭이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시기와 나이 등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원륭의 외모와 말투 등을 통해 그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북경을 비롯한 중국 전역의 조선인 마을을 조사하여 그의 고향을 알아냈던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는 사실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공산주의 국가의 정보력이나 감시 능력은 일반적인 상상을 초월한다.
전 국민의 정보가 평균적인 국가의 수준 이상으로 자세히 문서화돼있으며 불순분자들을 걸러내기 위해 그것만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을 정도였다.
중국의 경우엔 공안이 그것을 담당하는데 공안 내에도 교통경찰이라든지 외국인의 여권을 담당하는 등 여러 가지 잡다한 부서들이 있지만 실은 가장 무서운 부서가 바로 이 감찰부서인 것이다.
특히나 중국은 한족을 제외하고도 55개의 소수민족들로 이루어진 국가이므로 소수민족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일상화돼있었다.
원륭이 무림에 출두한 순간, 그의 신상정보가 다 까발려져 고향이 추적당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한편 추적을 피해 달아난 쪽방촌의 무림인들과 소림육승은 외딴 산에서 가뿐 숨을 내쉬었다.
“헉, 헉!!”
“여기라면 안전하겠지?!”
그들은 공안 요원들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벗어난 참이었다.
비록 공안 요원들 대부분은 이들에 비해 그 무공이 일천하기 짝이 없었지만 너무나 그 수가 많고 체계적이었다.
공안 내부의 지휘체계를 따라 일사분란하게 숨통을 조여 왔는데 그 기세가 가히 과거 무림의 천라지망을 능가했던 것이다.
“이렇게 집요한 추적은 수십 년만이군.”
진룡의 말에 금령이 물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추적을 당했소??”
“칠십 년쯤 전에 의화단 운동을 할 때······.”
“아······.”
금령은 입을 다물었다.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기 전 명교의 소교주였던 진룡은 소림 등을 찾아 의화단에 합류할 것을 종용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금령은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그때 당신을 본 적이 있소. 목령과 우리는 한창 소림사 연무장에서 나한공을 수련 중이었는데, 그때 이미 고수의 경지에 다다른 20대의 당신이 멋지게 칼을 차고 소림사를 방문했던 기억이 나는군.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소.”
“아까 목령 방장, 아니 전 방장도 그런 말을 하더군.”
“전 방장이라······.”
금령의 말에 모두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목령은 지금 월령의 품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영원하고도 달콤한 잠에 빠져 편안히 쉬고 있었던 것이다.
진룡은 물었다.
“목령의 시신을 소림사로 운구할 생각이오?”
“그렇소.”
“하지만 지금쯤 소림은······.”
“어쩌면 불바다가 되어있을지 모르지.”
금령을 비롯한 소림육승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파천황은 한다면 하는 자였다.
절대로 허언을 하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금령은 입을 열었다.
“그래도 가기는 가야하오. 목령은 수십 년 동안 숭산에서 살아 그곳 말고는 그가 쉴 곳이 없을 것이오.”
“그럴지도 모르지······.”
진룡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신강 위구르 자치구가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대부분이 사막 지대인 척박하고 메마른 땅이지만 그곳이 바로 명교도들의 고향인 것이다.
고향이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다.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한편 진룡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소림으로 돌아갈 생각이오? 천라지망을 펼쳤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놓쳤으니 파천황은 필시 소림 주변에 무수한 덫을 깔아놨을 것이오. 그곳은 사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돌아가겠다는 말이오?”
“우리 입장에서는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소. 그 어떤 불구덩이가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오······.”
“그렇군······.”
진룡이 말끝을 흐렸다. 사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파천황이 군대를 보내 신강 땅의 명교도와 위구르인들을 학살하고 있다고 하면 그 역시 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결국 파천황은 너무나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형세로 보나, 국가라는 뒷배가 있는 것으로 보나 압도적으로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가 가진 한빙신공이라는 절세의 신공절학까지.
진룡이 아파오는 머리를 문지르며 두통을 억누르자, 금령이 물었다.
“그건 그렇고 저 소년은 어떻소?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소??”
“그건 우리도 봐야할 것 같소. 불사왕, 어떻소? 원륭은 무사할 것 같소??”
“······이 애송이는 무사할 것 같다. 하지만 이놈의 형은······.”
“흠······.”
그 말에 모두가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원륭은 그 참사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듯 했다.
파천황의 음기가 너무나 급속히 원륭을 얼려버린 데다 명색이 무림인이라 그 상태에서도 살아남은 것이다.
“흥, 게다가 이놈은 운이 좋았어. 이놈은 온 몸의 기혈이 뒤틀려서 점혈도 안통하고 내공이 제멋대로 흘러가지 않느냐? 음기가 완전히 체내를 잠식하지 못하고 맴돌고 있어. 그러니 살아있는 것이야!!”
불사왕의 말 대로였다. 원륭은 그 지독한 무공에 당하고도 살아남았던 것이다.
두근!! 원륭의 심장박동이 뛰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퇴근하고 왔더니 글마다 추천이 박혀있네요. 추천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사실 글쓰는 사람에게 있어 후원금같은 것도 좋지만 그에 못지 않게 힘이 되는 것이 바로 추천입니다.
저도 더 많은 추천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9월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예전 같았으면 가을의 정취가 느껴질 시기인데 잠자리도 보이지 않고 가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덥네요.
늦더위에 잠설치지 않고 더위드시지 않는 9월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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