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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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머리는 몰랐지만 원륭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기운은 그의 진원진기였다. 후천적으로 익힌 내공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진기.
그러나 그것은 생명의 촛불이기 때문에 그 촛불이 꺼지는 순간 그 인간의 목숨은 다하는 것이었다.
본래는 잔잔히, 평생 동안 타올라야하는 촛불인데 그것을 억지로 태우니 순간만큼은 맹렬한 화력을 얻을 수 있지만 얼마 못가 곧바로 꺼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찰나의 불꽃이라도 사람을 하나 쓰러트리는 데는 충분한 것이었다.
원륭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의 진원진기를 너 같은 쓰레기 하나 데리고 가는데 쓴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탓하려면 동반자살하게 생긴 너의 그 어리석음을 탓해라!!!”
“으아아!!!”
쾅!! 겁에 질린 우두머리가 원륭의 가보인 단검을 들고 덤벼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단검은, 보이지 않는 막에 막힌 듯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원륭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파가 어설픈 공격을 차단해버렸던 것이다.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비롯 나 역시 수련이 부족한 자임에는 불구하나 어설프게나마 무공을 익히고 최후의 수단인 진원진기를 깨웠으니 너 같은 종자의 공격 따위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이제 죽을 각오가 됐느냐??”
“히이익!!! 으아아!!!”
우두머리는 대경실색하여 손에 든 단검을 버리더니, 급기야 두 주먹으로 맹렬하게 원륭의 몸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격은 통하지 않았고, 주먹질을 할 때마다 보이지도 않는데 계속해서 주먹에 와 닿는 충격으로 원륭의 몸 근처에 뭔가의 막 같은 것이 씌워져 있다는 것뿐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비록 잠깐이지만 내 몸은 금강불괴와 같고, 온 몸이 금강동인이나 다름없으리라. 그러니 너 같은 자가 아무리 주먹으로 친다고 한들 흠집이나 나겠느냐??”
실제로 원륭의 말과는 달리, 그의 몸은 금강불괴가 아니었다. 만약 고작 1년 무공을 익혔는데 진원진기를 썼다고 해서 순간적으로나마 금강불괴가 되면, 도저히 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설프게나마 원륭은 지난 1년간 열심히 무공을 익혔고, 그가 익힌 금종조와 철포삼과 같은 무공은 그의 몸을 엄청나게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원륭이 무려 열다섯 명이나 되는 무리들의 가공할 집단구타로부터 살아남은 비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년간의 수행으로는 그의 성취는 불과 5성에 지나지 않았고, 가뜩이나 내공이 부족해 그나마 익힌 무공도 제대로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금종조와 철포삼이라는 신공(神功)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삼류도 아닌 무공을 5성까지 익혔으니 그의 집념과 끈기를 알 수 있으리라.
엄연히 금종조와 철포삼은 소림칠십이종절예(少林七十二種絶藝)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비록 금강불괴는 아니지만 진원진기를 써서 순간적으로 모자란 내공을 보충한 원륭의 몸은 이 적대하는 우두머리에게는 그야말로 금강불괴, 금강동인이나 다름없었다.
무공이나 강함은 상대적인 것이니까. 원륭에게는 지금 이 순간 금강불괴 따위의 무공이 아닌 그저 눈앞의 악독한 이 종자를 쓰러트릴 만큼의 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저 맞고만 있던 원륭의 손이 앞으로 향했다.
퍽!
“으악!!!”
가볍게 쳤을 뿐인데 원륭의 주먹이 닿은 우두머리의 어깨가 터져버렸다.
그리고 머리, 허리. 원륭은 침착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우두머리의 온 몸을 파괴해버렸다.
“아까 내 종골건을 비롯해서 손발목의 모든 힘줄을 자르려고 했지?? 이 악독한 자식, 내 절대로 네 놈을 곱게 죽지 못하게 만들겠다!!”
“으아악!!!”
우두머리가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다. 원륭의 주먹이 강타하는 곳마다 어깨가 터지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손목이 꺾였다. 심지어, 우직!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까지!!
“크윽!! 살려줘!! 살려달란 말이다!!”
“이 자식!! 아까는 그토록 나를 죽이려 해놓고 이제 와서 목숨을 구걸한단 말이냐!!”
원륭의 분노가 극에 치솟았다.
고향에서도 본 것이지만, 악독한 자들의 공통점은 타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조금이라도 고통을 겪으면 바로 용서를 빈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네가 금품을 빼앗고 구타한 자들이 자비를 구할 때 넌 한번이라도 그에 응한 적 있느냐! 그들을 간단히 보내준 적이 있느냐!!”
“컥!!”
분노가 실린 원륭의 주먹이 우두머리의 복부를 강타하자 우두머리는 참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그리고 연이어 토사물까지.
“우웨엑!!”
좀 전까지 자신이 그러고 있던 모습을 이제 이 우두머리가 그대로 연출하자 원륭은 더욱 냉정해졌다.
토사물과 핏속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우두머리의 모습은 너무나도 추하기 그지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우두머리는 그런 비참한 모습의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며 폭력을 행사했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상황이 역전되니 네 놈의 인성이 더욱 구역질나는군. 이제 더 이상 역겨운 구걸 행위를 하지 말고 얌전히 잠들어라. 비록 중국에 쓰레기들이 많다하나 너 같은 자를 받아줄 곳은 더는 없다!”
그 말을 마친 원륭은 힘껏 정권을 휘둘러 우두머리의 심장을 강타했다.
쾅!!! 그 소리가 단순히 가슴을 세게 쳐서 난 소리였는지, 아님 실제로 심장이 파열되면서 난 소리였는지 원륭은 모른다.
그러나 그의 18년 인생을 통틀어서 그토록 분노에 가득 찬 정권을 날린 적은 없었다. 그건 원륭의 눈물이자, 포효였다. 아마 다시는 이토록 분노할 일도 없으리라. 원륭은 이제 죽으니까.
진원진기를 모두 소비한 원륭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자신의 피와 타인의 피, 자신의 토사물과 타인의 토사물이 뒤섞인 역겹고도 끔찍한 바닥에서, 원륭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죽는 건가. 이제······.’
원륭은 흐릿한 눈으로 먼 하늘을 쳐다보려 애썼다. 그러나 평소 그렇게 쉽게 고개만 들면 볼 수 있었던 하늘이 이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원륭이 하늘을 보았더라도 금세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찌푸린 먹구름에, 이내 시름에 빠졌으리라.
‘하늘이시여, 이제 죽는 겁니까? 내가? 아직 못 다한 일들이 많은데······.’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원륭은 생각했다. 먼저 고향에 있는 그의 부모와 형제에게 돌아가, 따뜻한 고향의 향기를 맡고 싶었다.
진림에게는 무공을 익혀서 모택동을 때려잡겠다 어쨌다 큰 소리를 쳤지만, 사실 불가능하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아마 진림도 알고 있으리라.
다만 모택동과 주구들을 향한 그의 분노는 진심이었고, 진림의 분노 또한 진심이었다.
실제 무공을 익히며 모택동을 쓰러트리겠다고 한 그 당시의 마음에 한 점 거짓은 없었고, 만약 여기서 살아나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분명 그리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갈 때는 명리(名利), 탐욕(貪慾), 대의(大義) 이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결국 마지막에는 가족과 친구가 생각날 뿐이었다. 그리고 연인?
원륭은 연인이 있어본 적은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단 하나 생각나는 사람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보고 싶은 고향의 그의 친구와 가족들. 그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으리라.
‘하늘이여! 하늘이시여!!’
진원진기가 다 떨어지고 순간적으로 회광반조(回光返照)현상이 와 환해졌던 원륭의 얼굴도 어느새 저 하늘처럼 시커멓기 짝이 없었다.
여기서 더 시간이 지나 죽으면 그의 얼굴은 푸르딩딩해지고, 결국 썩어 한줌의 벌레먹이나 잿더미가 될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던 원륭의 손도 결국 힘을 잃고 바닥에 추락했다. 원륭은 이 순간 졌다. 패배한 것이다. 그 대상이 죽음? 세상? 그 무엇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원륭은 졌다.
하지만 원륭은 인정하지 않았다.
‘흐흐흐, 난 지지 않았어. 내가 이긴 거야!!’
원륭이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죽어 나자빠진 우두머리의 시체였다. 이름도 모를 그 악귀. 그러나 일개 불한당의 이름을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그들 사이에는 대화가 필요 없었고 그런 이름 따위 저승까지 알고 가기엔 쓸모없는 것이었다. 원륭은 필요 없다 여겼다.
‘너 같은 쓰레기의 이름을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이름 없는 악귀여······. 아니, 너는 나의 이름을 알고 싶었을까···??’
이 우두머리가 원륭의 이름을 알고 싶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두 눈도 감지 못한 채 원통하다는 듯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이 우두머리는 어쩌면 알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저승길 가는데 자신을 죽인 자의 이름 정도는.
그래야 저승에 가서도 가능하면 복수를 하지 않겠는가?? 불과 두 번 얽혔을 뿐이지만 원륭이 볼 때 이 악귀는 가능하다면 분명히 저승에서도 복수를 할 종자였다. 그럴 위인(爲人)이었다.
‘아, 이제 죽는다. 정말로 죽는다······.’
두 번째로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이었지만 정말로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온 몸에서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하고 이 순간 이 순간에도 생명의 기운이 수없이 빠져나갔다. 이런 기분을 또 한 번 맛봐야 한다니, 원륭은 얼마나 불행한 자인가??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이 지긋지긋하고 불행한 인생의 끝······. 다만 부모님, 형님, 죄송합니다. 저 먼저 갑니다······.’
그 생각을 끝으로 원륭의 사고는 멈추었다. 자신이 쓰러트린 우두머리와 마찬가지로 원통한 듯 두 눈은 감지 못했고,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다 피를 흘리고 있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는 뼈가 보일 정도로 개방성 골절이 일어나 있었고, 손, 발, 머리, 다리, 허리, 가슴, 한군데도 성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주변에 가득한 토사물과 피.
이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자도 몇 없으리라. 원륭의 목숨이 꺼진 그때, 장내에 한 사람의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한시의 지체도 없이 원륭에게 날듯이 다가가 상태를 살펴보더니, 곧바로 손바닥을 펼쳐 원륭의 가슴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가하는 충격!!
쿵!!
움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죽은 원륭의 몸이 움찔했다. 그러나 노인은 멈추지 않았다. 파직!! 원륭의 몸이 다시 한 번 움찔한 걸 보니 분명 노인이 다시 무언가 수를 썼음이 분명했다.
노인은 그렇게 몇 번이고 어떤 수단을 가하더니 갑자기 이젠 본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부르르!!
“살았다!! 살아났다!!”
노인은 기쁨에 겨워 탄성을 지르더니 이내 품에서 커다란 천 하나를 꺼내 원륭의 몸을 감쌌다. 천은 워낙 커서 성인 남성인 원륭의 몸을 감싸고도 충분히 남았다.
노인은 원륭의 몸을 잘 감싼 뒤 자신의 등 뒤에 업고 나는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살아있어라! 살아있어라 원륭!! 학구방(學區房)에 다다를 때까지만!!”
학구방은 원륭과 노인, 진림 등이 살고 있는 건물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 노인은 제갈의. 당대 제일의 의사이자 제갈세가의 가주인 그가 원륭을 업고 달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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