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 절정의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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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패라······. 자네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어쩌면 가장 빨리 죽을 수도 있고.”
“······.”
진룡은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입을 연 것이다.
“후회할지도 모르네.”
“어차피 누가 상대하든 저 금령이란 자를 상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령 진 대협이라도 저런 금강불괴의 소유자를 쉽게 이길 수는 없겠죠.”
사실이었다. 진룡의 황룡필법과 천하마룡심법이라면 이 세상에 한빙신공과 열양진경의 소유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든 할 만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당장 저 불사왕을 피를 뿌리며 파천황에게 쓰러질 위기에 몰려 있고 소형승 역시 목령에게 초죽음이 된 것이다.
이들 쪽방촌의 최고수층인 진룡이나 상인관, 제갈의라도 금령을 상대로 쉽게 승리를 쟁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원륭을 버림 패로 써야한다는 말인가??’
장원륭. 흑룡강성 출신의 조선인으로 올해 18세,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의 적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상대였다.
원륭이 지금껏 상대한 북경의 불량배들이나 당갈, 자효진 등의 풋내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불량배들이야 그렇다 치고 당갈이나 자효진 역시 한 수가 있는 만만한 무림인들은 아니었지만, 이 금령에 비하면 풋내기나 다름없었다.
금령은 칠십 여 년 전에 이미 소림사의 정식 무승으로 인정을 받고, 이후에 나한당을 거쳐 소림사 요직을 거친 무승중의 무승이었다.
아마도 목령을 제외하고는 소림의 수많은 승려들 중 최강일 텐데, 그런 적을 상대하라고 원륭을 보내려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진룡은 결심했다. 그는 무림인이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간 이보다 더한 결정도 많이 해보았다.
목표를 위해 같은 명교인들을 희생시키기도 했고 그들의 희생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진룡은 수없이 많은 경험을 가진 노련한 강호인이었다.
그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진룡은 입을 열었다.
“나를 원망하게.”
“! 어째서 그런 말을 하십니까??”
“어찌됐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엔 내 책임도 있네.”
“진 대협에게 무슨 책임이 있다구요??”
“내가 좀 더 잘 했더라면, 미행을 잘 따돌렸더라면 이렇게 다시 안전가옥이 들통 나 적들에게 둘러싸이는 일은 없었을 걸세.”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진 대협. 저 역시 사 대협과 같이 자금성 고궁박물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행을 당했으니까요. 애초에 책임을 따지자면 거기부터 있겠지요.”
“자네는 아직 무공을 익힌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햇병아리일세. 휘령 역시 자네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 배분에 비하면 미숙하지. 우리의 적은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닐세. 미행당했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지.”
“그렇게 따지면 진 대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진 대협의 무공이 고강해도 우리는 지금 공산당과 국가 전체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진 대협의 힘만으로 이 모든 것을 타개할 수는 없겠지요.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죽더라도 우리는 진 대협을 탓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진룡은 모두를 둘러보았다. 상인관, 제갈의, 사휘령, 하홍휘, 장원륭,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두 눈에는 진룡에 대한 믿음과 의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미 초죽음이 된 소형승 역시 아직 정신을 잃지 않고 두 눈만은 진룡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불사왕은 파천황을 상대하느라 돌아볼 겨를도 없었지만 진룡은 불사왕을 믿고 있었다.
평소 거만하고 독선적인 불사왕이지만 지난 수십 년을 함께 싸워왔기에 서로에 대한 믿음만은 확실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함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진룡은 마음을 굳혔다.
“원륭은 금령을 상대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최대한 빨리 소림칠승을 쓰러트리고 불사왕과 원륭, 소형승을 돕는다. 이의 있는가?”
“없소.”
“없습니다.”
상인관과 제갈의를 비롯해 사휘령과 하홍휘, 장원륭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룡은 덧붙였던 것이다.
“지금 형승이 쓰러져 우리 쪽 수가 부족하네. 저쪽은 소림칠승에 파천황까지 여덟 명인데 비해, 이쪽은 일곱 명이지. 그러니 난전을 벌이겠네. 원륭, 기본적으로 금령을 상대로 회피와 방어만 하게. 절대로 반격은 하지 말고.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은 금령을 제외한 소림칠승 중 여섯 명을 상대하고, 목령과 다른 한 명은 내가 맡지. 자네들은 다른 이들은 한 명씩 상대하게.”
“알겠습니다.”
사휘령이 대답하며 곧바로 쌍검을 휘둘러 나갔다. 그의 상대는 토령이었다.
“반갑소, 시주. 난 소림칠승의 막내 토령이라고 하오.”
“그딴 건 알 필요가 없소. 지금 우린 한 시가 급하오.”
“허허, 성급한 시주로군······. 모든 것은 다 때와 순리가 있거늘······.”
“개소리 집어치우시오. 때와 순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오. 그리고 정권에 굴복한 당신들 개 같은 자들의 상대를 할 시간이 없어!!!”
캉!!!
휘령은 불문곡직하고 자신의 음양쌍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토령은 그 공격을 맨손으로 막아낸 것이다.
“! 당신도 금강불괴인가?!”
“금강불괴가 그리 간단한 무공은 아니오. 하지만 난 그와 비슷한 외가기공의 금강토령술을 익혔지.”
“······당신의 독문무공인가?”
“그렇소. 우리 일곱 명은 모두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른 무공을 익혔기에, 같이 싸우면 서로 간의 힘을 증폭시킬 수 있고 그 무공 역시 음양오행의 법칙을 따르지. 흙이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 쉽게 부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그 이치는 유와 강이 함께 하지. 흙의 무서움을 한번 맛보겠소?”
“사양하지!! 흙 먹고 놀던 시절은 이미 지났단 말이다!!!”
카카캉!!!
휘령은 순식간에 18번의 칼 휘두름으로 토령의 움직임을 차단하는 덴 성공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효과는 없었던 것이다.
“시주의 공력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나의 금강토령술 역시 깨졌을지도 모르겠구려. 그 나이에 비해선 대단한 실력이오. 하지만 세월이 너무 부족해······. 앞으로 수십 년만 지난다면 강호에선 상대할 자가 없는 검성이 되겠거늘.”
“흥, 수십 년이 지나면 무림 자체가 사라질 것이오. 지금도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는 무림판인데 다 늙어 당신 같은 꼬부랑 늙은이가 되어 검성이 되어 뭣하겠소? 사람은 현재를 사는 것이오. 미래를 예언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와 함께 휘령은 다시 한 번 세차게 검격을 날려 토령을 떼어냈다.
금령과 마찬가지로 토령 역시 거의 금강불괴에 맞먹는 외가기공을 익힌 터라 자신은 공격을 받지 않으면서도 금세 적들의 간격에 들어갈 수 있는 위력이 있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타인의 공격은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공격만 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휘령은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검에 의해 유효타를 입을 수 있는 거리 안에 드는 것을 피하고 있다. 그렇다는 말은 확실히 금강불괴 이상으로 무적은 아니라는 말이야. 침착하게 상대한다면 반드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적은 무적이 아니야. 무적이 아냐!!!’
휘령은 확신했다. 검에 의해 유효한 공격을 줄 수 있는 길이는 쭉 뻗은 검신을 기준으로 1미터 안팎이다. 그보다 노련한 고수라면 2미터??
검신 그 자체의 길이는 물론이고 그 1, 2미터가 순간적으로 전진하거나 후진할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뒤로 물러서면서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전진하면서 휘두르는 것이 더욱 위력이 높다.
그런데 아까부터 토령은 철저하게 휘령의 검의 사거리 안에 드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원래 권이나 장을 사용하는 자가 검을 사용하는 자를 상대하려면 그 간격 안에 최대한 파고들어 검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거나 검의 위력을 줄여야 했다.
극단적으로 거리를 좁혀 파고든다면 권법이나 장법의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검을 사용하는 자는 그 각도 상 아예 검을 휘두르지 못하거나 휘둘러도 검신이 아닌 손잡이 부분으로 적을 타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검의 사용법 중 하나였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순간에나 한정된 조건 하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권법이나 장법의 대가를 상대로 할만한 짓은 아니었다.
언뜻 정석적인 권법 사용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자신의 검이 휘둘러질 수 있는 공간을 철저하게 피하며 순식간에 파고 들어오는 것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토령을 보고 휘령은 확신했다.
‘언뜻 난해해보이지만 이 싸움은 결국 정상적인 검법과 권법의 대결이다. 다만 적의 방어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을 뿐······. 그렇다고 해서 타격을 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은 어쩌면 일정 피해를 입는 것을 감수하고 들어올지도 몰라. 이 대결은 간격 읽기의 싸움이다!!!’
순식간에 이번 대결의 요점을 간파한 휘령과 토령은 숨 막히는 간격 싸움에 들어갔다.
토령이 거리를 좁히면 휘령이 물러나고, 휘령이 거리를 좁히면 토령 역시 거리를 좁혔다.
이하 반복. 토령으로서는 거리를 좁히는 것이 유리하고 휘령은 너무 멀지는 않은, 그렇다고 해서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휘령에게 불리한 면이 있었다.
‘먼저 상대는 나보다 수십 년을 더 수련한 고수다. 그리고 상대는 거의 무조건 나와의 거리를 좁히면 되지만 나는 거리를 너무 좁히거나 너무 넓혀도 안 돼. 좁히면 좁힐수록 나는 불리해지지만 그렇다고 거리를 너무 넓혀도 당연히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어렵구나, 이 싸움!!’
대결의 요점을 파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니었다. 휘령은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을 수련한 고수를 상대로 수 싸움을 펼쳐야 했던 것이다.
무공의 수준 자체는 몰라도 내공, 경험에서 휘령은 앞서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저 토령도 소림 최강의 절기인 역근경이나 그에 못지않은 금강불괴는 익히지 못했지만, 여래대천장이나 달마지 역시 무림 역사상 최고 수준의 장법이나 지법임은 분명했다.
거리를 좁히는 순간 자신은 그 여래대천장이나 달마지에 의해 박살나거나, 꿰뚫릴 수가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발이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령의 발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반면, 토령의 발걸음은 여유로우면서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휘령을 쫓고 있었다.
보법에서부터 두 사람의 수준이 드러나고 있었다.
토령은 사휘령보다 무려 30년을 더 수련한 고수이기에 내공 역시 최소한 반 갑자에서 일 갑자 이상은 차이가 나고, 무엇보다 그 군더더기 없는 보법에서 수십 년을 수련한 고수의 풍모가 물씬 풍겨났던 것이다.
몇 발짝 걷지 않으면서도 순식간에 자신을 따라잡는 토령의 발걸음에 휘령은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러면서도 확신은 잃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다, 반드시. 이번 대결은 얼마나 최대한 버티며 최선의 간격을 유지하냐는 것이 중요해!!’
휘령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상대는 수십 년을 수련한 절정의 고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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