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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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장원륭은 진림을 비롯해 그곳에 있는 무림인들에게 지난 1년 동안 무공을 배운 것이다.
알고 보니 진림 뿐만 아니라 제갈의와 불사왕이라는 노인 등, 그곳에 살고 있는 자들은 죄다 무림인들이었다. 단 한명만 빼고.
그렇게 무공을 배우며 뒤틀린 심맥과 기혈을 고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자신을 습격한 무리들을 다시 만났던 것이다.
그 자들은 1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고, 곧바로 장원륭을 알아봤다. 그리고 공격.
그들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이 개새끼!! 너 때문에 1년을 고생했다, 1년!! 감히 시골 촌놈 같은 새끼가 이 몸의 배때지에 칼빵을 놔?!”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장원륭은 달려드는 졸개의 턱주가리를 주먹으로 쳐날려 머나먼 꿈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리고 그가 쓰러지기도 전에 다음 졸개의 배에 앞차기.
그렇게 대여섯 명을 쓰러트렸는데 남은 열 명은 그들과는 다른지 순식간에 장원륭을 포위해 궁지로 몰았던 것이다. 제 아무리 1년간 수행했더라도 장원륭은 아직 미숙한 햇병아리였다.
만약 일대일로 계속해서 붙었다면 모두 쓰러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이 불한당들이 그리 정정당당한 자들이었다면 애초에 이 지경이 되었겠는가??
세상이란 약육강식인 것이다. 배운 것 하나 없는 이 불한당 무지렁이들도 그 정돈 알고 있었다.
쓰러져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장원륭을 두고, 우두머리는 품속에서 단도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알지?? 네가 1년 전 내 배때지에 칼빵을 놓은 그 검이다!!”
뻑!!
다시 한 번 우두머리가 장원륭의 뒤통수를 밟자 원륭은 개구리처럼 꿈틀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한번만 더 그렇게 밟히면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출혈과 타박상, 골절이 심해서 그냥 놔둬도 죽겠지만은. 하지만 우두머리는 그런 원륭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아마 이대로 가만히 놔둬도 죽겠지만은, 그럴 순 없지. 일검의 원한은 일검으로 갚아야하는 것 아니겠나??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말라구. 이 어르신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은 죄다.”
‘요구? 그딴 걸 요구라고 하는 건가??’
쓰러져 흐리멍덩해지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들고 있던 원륭의 눈에 불길이 치솟았다.
1년 전 이들은 흑룡강성에서 올라와 숙소와 일자리를 찾으려던 원륭에게 가진 것을 모두 내놓을 것을 요구했고, 원륭이 거부하자 무지막지한 폭력을 퍼부었다.
아마 진림과 일행이 그를 구하지 않았으면 그는 진작에 죽어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한줌 원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륭은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
그의 부모가 공산당의 감시를 피해 어떻게 숨긴 돈과 물건인데, 그것을 어떻게 넘겨주라는 말인가??
게다가 그가 가지고 있던 단검은 단순한 단검이 아니라 집안의 가보로, 쉽게 넘겨줄 수 없는 것이었다. 공산당의 감시와 닦달을 피해 숨겨 토법고로에 던져져 고철이 되는 것도 막았는데 그것들을 넘겨달라니??
아마 그것들을 넘겨주고 위기를 무사히 넘겼더라도 원륭은 분통이 터져서 참지 못했을 것이다. 자존심을 잃은 남자는 거세된 개와 같다는 것이 평소 원륭의 생각이었다.
그때 우두머리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끝내지. 너와의 질긴 악연도 이걸로 끝이다. 아마 네놈을 죽이고 나면 지난 1년간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마다 쑤셨던 내 배때지도 이젠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야. 하하하하하하!!”
우두머리는 그렇게 웃고 단검을 원륭의 종골건(아킬레스건)에 갖다 대었다. 자신의 발뒤꿈치 부근에서 차갑게 느껴지는 금속의 감촉을 깨달은 원륭은 다시 한 번 분노했다.
‘이 개자식!! 쉽게 죽이지 않겠다는 뜻이구나!!’
만약 원륭을 죽이기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단번에 그의 목이나 심장, 혹은 두 눈을 찔렀으면 됐을 것이다.
단검으로 단번에 사람을 베어 죽이는 건 매우 쉽지 않고, 아무리 무리의 우두머리라 해봐야 북경 골목에서 불량배 짓이나 하는 이 우두머리에게 그럴 실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그 악독함만큼은 강호의 어지간한 흑도잡배들을 능가하는 것으로써, 괜히 불량배들의 우두머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곳 해전구는, 주변에 전 중국 대륙을 통틀어 가장 수준 높은 대학들이 몰려 있었고 거주하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잘 사는 사람들이나 학생들이었다.
그들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부터가 이 불량배 우두머리의 인성을 알 수 있는 것이리라.
심지어 이 우두머리는 원륭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종골건을 비롯해서 손목힘줄까지 사지의 힘줄을 모두 끊고 천천히 죽일 생각인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설령 살아난다 해도 원륭은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폐인이 되고 말 것이며, 오히려 죽느니 만도 못하게 될 것이다. 살아도 산 게 아니게 되겠지.
차라리 죽음을 바라게 될 것이고. 지난 1년간 진림과 일행에게서 무공을 배우며 깨달은 것은 아무리 그들이 난다긴다하는 무림인이라고 하더라도 명백히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으며, 분명히 손발목의 힘줄을 재생하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들은 바로는 문파의 대죄인은 죽이거나 단전을 폐하고 손발의 힘줄을 자른 후 추방, 혹은 구금하는 것이 관례였다는데 힘줄과 단전이 재생가능하면 뭐 하러 그런 처벌을 내렸겠는가??
만약 그 정도의 의술이 있다면 자신의 뒤통수에 있는 뒤틀린 혈맥과 기혈도 진작에 나았으리라.
원륭의 뇌리에 죽음을 눈앞을 두고 온갖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는 동안, 우두머리는 결국 마음을 굳혔는지 원륭의 종골건에 댄 단검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있으면 원륭은 부모님이 주신 가보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폐인이 되리라.
그 순간 원륭은 눈을 떴다.
번쩍!! 콰직!!
“으악!!”
“으아악!!!”
산송장이나 다름없이 축 늘어져있던 원륭이 갑자기 일어나 반격하자, 아무 대비도 하지 않고 있던 우두머리와 다른 졸개 하나는 순식간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도 그럴법했다.
원륭은 일어나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두 손가락을 펼쳐 그 둘의 눈을 찔렀던 것이다.
온 몸에 부상을 입고 힘이 떨어진 그로서는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지법뿐이었다. 고작 두 손가락을 펼쳐 눈을 찌르는 것이 지법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지법이었다.
원륭의 몸에는 미미하지만 아직 내공이 흐르고 있어 부상으로 체력이 떨어진 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수월하게 그의 손가락은 적들의 안와(눈구멍)를 파고들었던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공격이 완벽히 먹혀들어갔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원륭은 미친 듯이 손가락을 찔러댔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적들에게 공격이 먹혔는지 안 먹혔는지는 그의 귓가에 들리는 비명, 그리고 눈구멍을 파고들 때 느껴지는 그 특유의 처음엔 물컹하면서도 나중엔 딱딱한 촉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뺄 때 같이 따라 뽑히는 안구, 혹은 피로.
사람의 눈을 처음으로 찔러보고서야 알았지만, 원륭은 듣던 대로 부드러운 안구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뼈의 감촉을 확인했다.
무공을 배울 때 진림과 그의 동료들은 인체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는데 실제로 쑤시고 보니 과연 그러했던 것이다.
‘과연 진림. 당신들의 말은 하나도 허튼 게 없군요······.’
생각보다 수월하게 눈 찌르기 만으로 몇 명을 쓰러트린 원륭이었지만, 그 역시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아까부터 쓰러진 채 짓밟혀서 손가락의 감각이 이상했는데, 급박한 상황에서 힘 조절이고 뭐고 없이 원륭이 미친 듯이 손가락을 쑤셔대자 자신의 손가락에도 충격이 전해져왔다.
부드러운 안구를 손가락이 스치고 지나가자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안와(안구 주위의 뼈)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고, 안와는 갈수록 좁아지는 구조라 그것을 피할 수도 없었다.
하물며 미친 듯한 기세로 손가락을 찔러대고 있는 상태임에야······.
그렇게 몇 놈을 더 쓰러트리고, 다음 적을 찾아 손가락을 휘두르던 원륭은 깨달았다.
“누구냐! 다음은 또 누구냐!! 헉!!”
그 순간 원륭은 충격을 받았다. 어느새 주변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열 명의 불한당들은 전부 자신들이 뱉어낸 눈알과 피의 향연 속에서 쓰러져있었던 것이다.
사방에 십 수 명의 남자들이 쓰러져 있고, 태반이 눈알이 뽑히거나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제 아무리 자기방어를 위해서 한 것이라고는 하나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사람을 이렇게 상하게 해 본적이 없던 원륭이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에게 있어서 싸움이란 어린 시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님에게 대들어서 몇 번 투닥거린 것이 전부인데 갑자기 그는 너무나 엄청난 짓을 저질러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무림인가?? 아니, 강호?? 나는 대체 무슨 짓을 저질러버린 거지?!’
이런 무공도 배우지 않은 삼류무명잡배들이 속한 곳이 무림은 아니겠지만, 원륭은 비록 자기방어였다고는 하나 스스로 저지른 끔찍한 결과를 보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오른손에는 아직도 피인지 안구액인지 모를 걸쭉하고도 눅눅한 액체가 질척, 하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원륭은 잠시 자신의 끔찍한 오른손을 지켜보다가 힘겹게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했다. 그때였다.
“어딜 가려는 거냐!!”
흠칫!! 원륭이 돌아보자 그곳에는 한쪽 눈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마치 흉신악살과 같은 표정으로 그를 지켜다보는 우두머리가 서 있었다.
처음에 불량배치고는 잘 정돈돼있던 머리는 어느새 봉두난발로 풀어헤쳐진지 오래였고, 그의 오른 눈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온 몸이 피 칠갑이 돼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원륭의 가보, 단검. 그 단검을 쳐다본 원륭은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군. 그 단검을 회수하는 걸 깜박했군.”
“······할 말은 그게 다냐??”
“뭐?”
“할 말은 그게 다냐고 물었다!!!”
쾅!!! 분노한 우두머리가 발을 굴렀다.
“왜 화를 내는 거지??”
분노한 가운데서도 진심으로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짓는 우두머리에게 원륭은 담담한 어투로 물었다.
“몰라서 묻나? 감히 내 형제, 부하들에게 손을 대고도 이대로 무사히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나!! 네 놈은 절대로 살려두지 않겠다! 산 채로 포를 떠서 그 몸에 소금을 뿌리고 온 북경 시내에 끌고 다닐 것이다!!”
“하하, 한낮 불량배 우두머리 주제에 눈에 보이는 게 없군. 아니, 진짜로 이젠 안보여서 그런 건가??”
“뭐라고?!”
“먼저 시비를 건 것은 네놈들이지 않나!!!”
콰앙!!! 이번엔 원륭이 발을 굴렀다. 일체의 내공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발을 구른 우두머리와는 달리, 원륭의 발에는 미미하지만 공력이 깃들어 있어 제법 큰 소리를 내었다.
이에 우두머리는 움찔했다.
“1년 전 시골에서 올라온 나는 다짜고짜 금품을 내놓으라는 너희들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하고 결국 가진 것도 다 빼앗겼다. 그 단검은 우리 집안의 가보이고 네가 뺏어간 돈!! 그건 우리 부모님과 형님의 피땀이 서려있는 것이다!! 네가 그것들의 가치를 아느냐!!”
“당한 놈이 잘못한 것이지!! 이 시국에 혼자 어슬렁어슬렁 북경에 올라온 촌놈이 그런 것을 당할 수도 있으리라고 예상치 못한 것이냐!!”
“호오, 그래? 그럼 네 놈이 당하는 것도 네 놈이 잘못해서 그러는 것이겠군.”
스윽. 원륭이 한발을 내딛자 우두머리는 크게 놀라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우두머리의 말대로 현재 중국의 시국은 좋지 않았다. 중일전쟁이 끝난 지 불과 막 20년 정도가 지났고 국공내전이 끝난 지 15년이 지났다.
그리고 삼반오반운동, 반우파투쟁을 거쳐 대약진운동에 절정에 이르면서 중국대륙은 초토화되었던 것이다.
삼반오반운동으로 수많은 지식인이, 반우파투쟁으로 모택동과 공산당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무수히 희생되었다.
그리고 농촌을 중심으로 초토화한 대약진운동······. 원륭은 앞선 두 사건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랐으나 대약진운동에 대해서만큼은 치가 떨릴 정도로 잘 알았다.
그와 가족, 마을사람들 모두가 이가 갈릴 정도로 겪어왔기 때문에.
그런 어수선하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 식량과 금품을 노리는 범죄자들이 중국 전역에 허다했는데, 원륭 역시 거기에 걸린 것이고 이 우두머리는 시국 탓을 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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