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정체불명의 독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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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룡? 당신이 바로 그 진룡이란 말이오?? 하지만 당신은 의화단 운동 때 죽었다고 들었는데······.”
“죽은 건 내 밑의 부하들이었다. 난 그 덕에 구질구질한 목숨을 이어가고 있지.”
“후후, 그런 당신이 왜 다시 나타난 거요??”
“몰라서 묻나??”
“······.”
진룡에 말에 자효진은 침묵했다.
“국가가 도탄에 빠지고 인민이 신음하고 있네. 의화단 운동 이후로 나는 우리들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고민하며 깊은 칩거에 들어갔지. 하지만 가면 갈수록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파멸뿐이었네. 이대로 가면 중국 대륙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거야. 그렇게 되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하네.”
“모택동 주석이 복귀했으니 중국 대륙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갈 거요.”
“아니, 그가 복귀했기 때문에 더욱 가망이 없는 걸세.”
“······.”
“애초에 그가 물러난 것이 대약진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일들의 실패로 인한 폐해 때문이었네. 그런 재앙의 근원인 그가 다시 돌아왔는데 뭐가 바뀐단 말인가? 오히려 거꾸로 갈 뿐이지.”
“대약진운동이 실패한건 유소기와 등소평, 주은래 등이 주석을 잘못 보좌했기 때문이오.”
“흥! 네가 말하는 그자들이 모택동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위치인가?? 그들 역시 결과적으로 책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되도 않는 토법고로라든지 제사해운동을 벌여 온 대륙의 강철과 참새를 못 쓰게 만든 원흉은 모택동이야!”
“그건 당신 생각이오.”
“자넨 부끄러움도 없나!! 시골에선 수천만 명이 불과 지난 몇 년 동안 굶어죽었는데 자신이 배를 곪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발언을 하다니!!”
“······중국 대륙은 식량이 부족하지 않소. 그 증거로 제3세계에는 오히려 식량을 무상원조하고 있고 도시에선 식량이 남아 오히려 흥청망청할 때도 있었소. 식량을 낭비한다고 하면 모를까 부족하다고 하면······.”
“그 식량이 바로 다 농촌에서 수탈한 거야!!”
버럭!! 진림은 크게 목소리를 높여 소리 질렀다. 그러자 그 대담한 자효진도 움찔하고 몸을 움츠렸던 것이다.
“농촌에선 식량이 없어 살충제 범벅이 된 오리와 물고기를 먹고 사람이 죽고, 자기 자식을 먹거나 차마 자식을 죽일 수 없어 옆집과 자식을 바꿔 잡아먹었거늘······. 네놈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님 그렇게 믿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나 네놈들은 공산당의 주구!! 모택동의 개새끼나 다름없는 네놈들을 하나도 살려두지 않겠다!!”
“후후, 뭔가 착각하는 거 아니오?? 그건 우리가 해야 할 소리요. 그러니까 당신들은 몇 십 년 전 의화단 운동에서 패한 거야!! 당신들이 왜 그 전쟁에서 패했는지 다시 한 번 가르쳐주겠소. 이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들이!!!”
그 말과 동시에 자효진이 돌진하자 진림, 아니 진룡 역시 그에 맞서나갔고 나머지 여섯 명의 무림인들도 각각 상대를 찾아 싸우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오직 당갈과 장원륭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당갈도 한숨을 쉬며 나섰던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할 수 없군. 나에겐 나에게 주어진 책무가 있네. 비록 자효진 등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자네에게 승산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이젠 너무 늦었네. 자네 말고도 심문할 대상이 늘었으니 굳이 자네를 살려두지 않아도 되겠지. 그러니 날 너무 원망하지 말게 젊은이.”
그렇게 말하고 당갈은 손을 뻗었는데 그 손에는 이상야릇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 기운은 너무도 괴이하고 기묘해서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꺼려할 기운이었는데 그런 무시무시한 기운이 원륭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 기운에 반응했는지 마치 죽은 것처럼 조용히 쓰러져있던 원륭이 일어섰다.
스르륵.
“?! 정신을 차리고 있었나??”
“저들이 시간을 벌어줬소. 짧게나마 운기조식을 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지.”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닐 텐데······.”
“당신 하나 쓰러트리기에는 충분하오.”
“그건 자네 착각일세. 말하지 않았나. 이젠 너무 늦었다고.”
스으윽. 그리고 다시 당갈이 손을 뻗자 원륭은 자기도 모르게 피했다.
“왜 이런 보잘 것 없는 늙은이의 손길을 피하는 건가? 후후······.”
“······.”
“자, 이리 가까이 와보게.”
“싫어.”
“싫다고 해서 세상 모든 일을 다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자, 가까이 와보라구. 더 이상 이승의 고통도 없이 편안해질 테니!!”
당갈은 소리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원륭은 무림인들이 나려타곤이라 부르는 가장 근본적인 초식으로 당갈의 손길을 피했는데 이 나려타곤(懶驢打滾)이란 것은 말 그대로 게으른 당나귀가 땅을 구르듯 데굴, 굴러 적들의 공격을 피하는 기술이었다.
말하자면 사실 무슨 대단한 초식도 아니고 그저 본능적인 움직임일 뿐인데, 중국 무림인들은 체면을 극도로 중시하기에 다른 나라의 무술과는 달리 관절기 등을 넣기 위해 땅바닥에서 구르는 행위 자체도 극도로 환멸 하는 것이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런 기술을 쓰면 사파, 사마외도, 흑도의 방식 등으로 불렀고 그들이 쳐주는 방식은 검이나 창, 장법 등으로 그저 ‘우아하게’ 적들을 쓰러트리는 것이었다.
오직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으면서 자신은 가능한 한 타격을 입지 않고.
그리고 그 와중에도 같은 적의 공격을 피하는 공격이라도 나려타곤 같은 기술은 길거리 무명 잡배들이나 쓰는 ‘쌍놈의 기술’로 치부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모습을 본 당갈도 웃었다.
“허허, 명색이 무림인이 나려타곤 같은 걸 쓰다니. 과연 자네 스승이 마교의 교주인 티가 나는군.”
“저 분은 내 스승이 아니오.”
“그렇다면??”
“나는 저 분에게서 진산절기를 단 하나도 배우지 않았소.”
“배우지 않은 건가, 배우지 못한 건가.”
“둘 다요. 저 분은 나에게 자신의 진산절기를 가르쳐봤자 내공이 희박한 이 시대에는 제대로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지.”
“틀린 말은 아니군. 마교 교주 진룡의 진산절학이면 환경오염으로 인해 대자연의 기가 희박한 이 시대에는 오히려 무리하게 익히려다 주화입마나 오겠지.”
“그래서 배우지 못한 거고, 배우지 않은 거요.”
“확실히 자네의 말은 일리가 있네. 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하지만 그렇다면 자네에겐 승기가 없는 것 아닌가??”
“잊었소? 그런 나에게 아까 두들겨 맞은 것이 당신이오.”
“······.”
“대체 뭘 하면 그 나이에 그리 약할 수가 있소??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오.”
“······.”
당갈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히 나는 권에도 장에도, 창에도, 검에도, 암기에도 소질이 없어 가문에서도 내쳐졌지.”
“당신······ 당 씨인걸 보니 혹시 사천당문 소속이오??”
“그랬지······. 옛날에는 그랬네.”
사천당문!! 그것은 사천성에 있는 최고의 무림 명문가로 암기와 독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문이었다.
정사를 막론하고 암기와 독에 있어서는 그 가문을 능가하는 세력도, 개인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사천당문이라고 해도 당신 같은 사람이 나올 수가 없을 텐데.”
“그랬다. 나는 사천당문 역사상 최악의 열등아였다. 뭐 하나 잘하는 것 없었고, 그래서 가문에서도 쫓겨난 것이지.”
“그런 당신이 날 이길 것 같소??”
“그렇게 약한 나의 이 손길을 왜 피하는 것인가??”
“······.”
그 말엔 원륭도 입을 닫고 말았다. 확실히 아까 겪어본 바에 의하면 이 당갈이란 자는 신법도, 권법도, 장법도 너무 빈약해서 고작 1년을 배운 자신보다 못한 수준이었는데, 다만 저 손에 서린 괴이한 기운이 너무나 섬뜩해 다가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자, 자. 그리 걱정하지 말고 이리 와보게. 해치지 않는대두??”
“칫!!”
다시 한 번 달려드는 당갈을 피해 원륭은 몸을 피했다. 그렇게 몇 차례 피하다 원륭은 가까스로 몸을 뺐는데, 당갈 역시 마지막 순간에 맞췄다고 생각했는지 그 손을 거두지 않고 끝까지 내밀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크아악!!!”
당갈의 공격이 닿은 것은 쓰러져 있던 홍위병들 중 하나였는데, 그 자는 정신을 잃고 있었으나 당갈의 손이 닿자마자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바람에 도로 깨어나고 말았다.
본래는 쓰러진 그가 공격을 받을 리는 없지만 원륭이 다시 한 번 나려타곤의 수법으로 땅을 구르자 그것을 노리던 당갈의 손이 홍위병에게 닿고 말았던 것이다.
칙, 치이익!!!
“미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원륭은 이를 악물었다. 당갈의 손이 닿은 홍위병의 얼굴은 그대로 녹아 사라지고 없었다. 손자국 그대로 살이 타들어가 있었는데 대체 무슨 공격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화골산을 쓴 거냐!!”
“흐흐, 그리 단순한 물건과 이 나의 수십 년 고행이 들어간 연구를 비교하면 안 되지. 아까 말하지 않았나. 난 대부분의 무공에 재능이 없었고, 그 결과 가문에서 내쳐졌다. 그럼 이 내가 무엇을 연구할 것 같은가??”
“······독공!!”
“정답일세.”
“······.”
원륭은 잠시 입을 다물고 당갈을 노려보았다. 원륭의 말대로 당갈이 익힐 것은 독공밖에 없었다. 사천당문은 기본적으로 암기와 독을 사용하는 법을 익히지만, 자신들이 상대할 적들의 무공의 특성을 알기 위해 검이나 창 등도 약간은 가르쳤다.
그러나 당갈은 그 어느 무공에도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버려진 것이다. 그렇게 가문에서 내쳐져 독이 바짝 오른 당갈이 손댈 곳은 역설적으로 독공밖에 없었다.
독이라면 비록 무공이 떨어져도 적에게 중독 시키기만 하면 확실하게 적을 제압하거나 살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원륭은 뭔가 의문을 느꼈다.
“이상하군.”
“응??”
“사천당문은 독과 암기의 명문이오. 당신이 비록 재능이 없어 암기술은 익히지 못한다 하더라도 독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네······.”
당갈은 뿌연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독을 익힌다는 것은 이 세상 온갖 화학물들에 정통해야 한다는 것이지. 독이라고 해서 단순한 것 같은가?? 소재로 보면 동물독, 식물독, 광물독 등으로 나뉘고 그 형태에 따르면 혈관독과 신경독으로 또 나뉘네. 혈관독은 출혈을 일으키는 독이고 신경독은 마비를 일으키는 독이지.”
“독에 대한 정보 고맙소. 덕분에 독공을 익힌 자들을 상대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군.”
“도움이 된다면 말이지만······. 자네가 정말 사천당문의 제대로 된 인물을 만났다면 자넨 벌써 녹아 한줌 독물이 되고 말았을 걸세. 누가 알겠는가?? 자네가 벌써 중독됐을지?”
흠칫!! 원륭은 움찔 놀랐으나 이를 내색하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내공 및 신체를 점검했다.
그러나 비록 내공은 부족했으나 좀 전의 전투로 인해 이미 그 정도인 것은 확인한 상태였고, 신체 역시 별반 이상이 없었다. 전에 몇 번이나 맞아 아직도 기혈이 뒤틀린 뒤통수를 빼고는.
자신의 몸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원륭은 내심 안도했지만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되도 않는 수작 걸지 마시오. 당신이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벌써 날 녹여버리고 말았을 것이오. 자, 녹여보시오. 어서!!”
원륭이 대뜸 소리치자 당갈은 잠시 그를 빤히 쳐다보았으나, 이내 한숨을 쉬었다.
“후우······. 자네 말이 맞네. 자네는 중독되지 않았어. 정확히 말하면 내 독공이 그런 종류의 독공이 아니지만. 본가의 독공을 익히지 못한 나는 나만의 독공을 창조하는데 수십 년 세월을 쏟았네. 그걸 제대로 사용하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
독공인데 중독 시키지 않는 독공이라니 그런 독공이 있단 말인가?? 원륭의 머리는 금세 복잡해졌다. 독공에 대해 잘 모르는 원륭이었지만 그런 독공이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자, 여기서 문제일세. 독공이지만 중독 시키지 않고, 이렇게 닿은 곳의 신체를 녹여버리는 독은 무엇일까?”
“······독은 독이오??”
“독은 독일세.”
‘설마······.’
원륭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현실성 없는 것이라, 아무리 기괴한 무공이 난무하는 무림이라도 그런 무공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원륭의 머릿속에는 딱 하나 떠오르는 독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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