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 잠든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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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령의 여래대천장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그 공격을 진룡은 가볍게 붓으로 막아내었다.
퉁!!
진기를 머금은 붓이 탄력 있게 장법을 튕겨내었다. 그러자 목령은 낭패한 표정을 지은 것이다.
“필법?? 요즘 세상에도 그런 걸 쓰는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그보다 내 기억속의 시주는 분명 검을 사용했소만······.”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법이지. 몇 년 전 성취가 있어 애병을 버리게 되었소.”
“그것 참 축하드리오.”
“무조건 축하할 일은 아니지. 이제 내 붓이 향하는 곳은 바로 당신의 목이니까.”
“······.”
목령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진룡의 말 그대로였다. 매서운 붓 공격이 목령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슈슈슉!!!
진룡의 붓이 자유자재로 목령이 생각하고 있는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간격’이란 것이 있는데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 허용범위가 늘어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조금만 더 가까이와도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무림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여기서 무림인들의 간격이란 말 그대로 ‘사정거리’였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절대 안전선 이상으로 상대의 공격이 들어오게 되면 극도의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목령 역시 지금 그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큭, 이렇게 안전선을 맘대로 넘나드는 공격은 처음이로군! 과연 썩어도 천마. 마교의 저력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인가?!’
진룡이 단순히 명교의 마지막 후계자였기만 한다면 그가 천마로 불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천마란 당대의 마도 최강자를 부르는 말이고, 어지간해서는 그런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명교를 연 초대 교주가 막대한 무공으로 인해 천마로 불렸고, 그 이후로 역대 교주들 중 극도로 뛰어난 자들만 그렇게 다시 천마로 불렸다.
말하자면 개중에는 명교 교주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천마로 불리지 못한 자들도 있었는데 진룡은 이 무림 및 명교의 쇠퇴기에 당당히 천마로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진룡의 붓끝이 날카로워졌다. 찌르기를 위해 예기를 머금은 것이다. 아까 전 목령의 여래대천장을 튕겨낼 때의 탄력과는 달리, 지금은 마치 날카로운 창처럼 예기를 머금고 있었다.
유와 강을 마음대로 다루는 진룡의 공력운용이 지금 그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룡의 붓끝과 목령의 여래대천장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끼기긱!!!
붓끝이 손바닥을 긁으며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냈다.
역근경을 통해 펼쳐낸 여래대천장이 감도는 목령의 손바닥은 그야말로 철판과 같다.
그 손바닥을 다시 창과 같은 진룡의 붓끝이 긁으니 당연히 소음이 났던 것이다.
그러자 목령은 여래대천장을 펼치던 손바닥을 거두고 단지 검지만을 내밀어 달마지로 초식을 변화했다.
“!!!!!”
그 모습을 본 진룡은 깨달았다. 손 바닥 전체를 통해 펼치는 여래대천장은 아무래도 공력의 집중도가 낮다. 본래 장법이란 것은 내장의 파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가위는 급소파괴, 바위는 신체파괴, 장법은 내장파괴를 전문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이 바로 가위바위보의 유래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굳이 내장만을 노릴 것이 아니라면 장법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이에 목령은 여래대천장이 아닌 지법, 달마지로 초식을 변환한 것이다.
챙!!!
마치 창과 창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나며 진룡의 붓끝과 목령의 손가락 끝이 마주쳤다.
그러자 진룡은 다시 공력의 특성을 변화하여 강에서 유의 공력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붓끝과 손가락 끝은 서로 미끌리며 스쳐지나가고, 진룡은 비어있는 왼손으로 잽싸게 목령의 복부에 장법을 강타한 것이다.
“마천장!!!”
쾅!!!
마천장.(魔天掌) 명교 최강의 장법으로 대성하면 하늘조차 뚫는다는 마공이다.
사실 명교란 것이 명나라에게 탄압을 받아 마교로 불려서 그렇지, 그 무공 자체는 정종무공 그 자체였으므로 일체의 사이함이나 기이함이 없었다. 오히려 현묘함만이 감도는 것이다.
목령 역시 그런 마천장을 맞고 움찔했다. 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복부를 툭툭 털며 말했다.
“이것이 명교의 마천장이구려······. 하늘조차 뚫는다는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군. 방금 전의 공격은 대체 몇 성이요?”
“8성이오.”
“으음, 8성으로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본 사의 여래대천장에 전혀 뒤지지 않는군······.”
소림의 여래대천장은 역대 방장 및 기재들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연구, 발전시킨 것이라 천하제일의 장공이라 할 수 있었다.
한빙신공을 통해 펼치는 한빙신장을 제외하면 아마도 그렇다고 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 외에도 최강의 장법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해야할 것이다.
“내가 보아하니 명교의 마천장에 개방의 삼복장. 이것들은 모두 본사의 무공에 뒤지지 않는 절기이구려. 그려니 그토록 오랜 세월 명교가 저 멀리 신강 땅에서 몇 천 km를 달려 중원을 질타할 수 있었겠지. 명교의 저력을 알 수 있는 멋진 무공이었소.”
“그렇게 따지면 본교의 행사를 가장 철저하게 막았던 것은 소림이었소. 마치 집 지키는 개가 주인 없는 집을 지키듯 열심이었지.”
“······.”
목령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명나라를 건국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주고도 이들의 세력을 경계한 주원장에 의해 명교가 탄압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탄압받는 명교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그 당시 세력이 약했던 구파일방은 명나라에 붙어 명교를 저지하며 세력을 쌓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진룡이 그 점을 지적하니 목령은 차마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명교는 역대 교주님들이 하신 말씀이 있소. 어떻게 소림이 1500년 동안 멸문당하지 않고 그 영화를 지킬 수 있나 하는 것이었지. 그리고 오랜 숙고 끝에 모두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셨소. 그것은 소림이 자존심을 개처럼 버리고 주어진 보상을 개밥 먹듯 열심히 받아먹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하하하!!!”
진룡의 웃음은 호탕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러나 목령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전투를 벌이던 나머지 소림 칠승 중 육인이 분노하여 따져들었다.
“방장, 아무리 당대 천마라도 그렇지 너무 오만방자한 것이 아니오?! 저런 자는 혼쭐을 내줘야하오!!”
“맞소!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마교의 교주에게 철퇴를!”
“철퇴를!!!”
소림칠승이 연달아 소리 높여 말하자 그 음성이 사자후처럼 주변에 퍼져나갔다.
그러자 공력이 약한 자들이나 일반인들은 그것만으로도 괴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형님은 괜찮으시려나······.’
원륭은 전투를 벌이느라 잊어버렸던 형의 존재를 찾았다. 형은 저 멀리 건물 뒤 구석진 곳에 숨어 자신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원륭과 눈이 마주치자 아무 말 없이 입만을 뻥끗뻥끗하며 자신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던 것이다.
‘원륭, 이리 오거라!!! 거기 있어선 안 돼!!!’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고 자신에게 의도를 전달하느라 형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손짓발짓을 다 하고 있었다.
원륭은 그 모습을 보고 싱긋 웃으며 전음을 보냈다.
‘형님, 그렇게 하셔도 전 갈 수 없습니다. 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잠시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만약 제가 죽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십시오. 부모님에겐 제가 대의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고 전해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원륭의 전음을 받은 형은 움찔했다. 설마하니 그런 초능력 같은 방법으로 자신에게 전갈을 보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형은 멈추지 않고 더욱 격렬하게 손짓발짓을 해댔다.
그 모습을 보고 원륭은 의아함이 들었다.
‘형님이 왜 저토록 필사적이시지? 설마하니 내가 죽을까봐 그러시는 건가?? 물론 오늘이 내가 죽을 확률이 높은 날이기는 하다만······. 형님의 행동은 너무나도 이상하구나······.’
원륭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전투에 들어갔다. 형의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래도 자신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전투가 끝나면 모두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때까지 살아남기만 하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원륭이 그렇게 결심을 한 순간, 목령이 사자후를 외쳤다.
“갈!!! 모두들 조용히 하시오!!!”
그 순간 정적이 퍼졌다. 목령의 심후한 공력으로 펼친 사자후는 사방을 흔들었다.
소림 방장의 사자후는 잠시나마 모두를 멈출 위력이 있었던 것이다.
목령은 입을 열었다.
“명교 교주의 말이 지나친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할 말이 없소.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소림사를 영위해왔기 때문이오.”
“방장, 그런 것을 인정하면!!”
“조용하시오! 부정한다고 해서 있던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오!!!”
그러자 토령은 입을 다물었다. 본래 소림칠승은 모두 같은 배분에다 비슷한 나이또래라 수십 년 동안 고락을 함께하여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이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방장인 목령도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해주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단호하게 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소림은 대대로 역대 왕조에 협조하여 그 영화를 이루어왔소. 사실 그건 당연한 일이지. 아무리 무림인들이 날고 긴다고 해도 관을 이길 순 없소.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다소 떳떳하지 못한 일들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오. 관을 상대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지. 불문의 수호자인 소림이라도 관을 대신해 더러운 일,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해야 될 때가 있었소. 그래서 청나라 때는 반란을 경계한 옹정제의 심기를 거슬러 전각이 불탔던 때도 있었고, 그것이 다시 견륭제 때 복구되기도 했소. 1500년 동안 역대 왕조를 상대하며 쓴 맛 단 맛을 다 보았지.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있었소. 소림은 항상 살아남았고 불문의 수호자로서 최전선에 있었다는 것이오. 같은 불문의 문파로서 아미파, 항산파, 보타문 등이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우리 소림을 최고로 쳤소. 그 이유가 뭔지 아시오? 우리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하기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근본이기 때문이오.”
“!”
“!!!”
‘근본.’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 이 세상의 모든 무공은 소림에서 다 나왔다는 말이다.
소림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태초에 세상을 연 무공인 음양혼돈공은 반으로 쪼개져 세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알음알음 전해져 내려오던 어설픈 무공이란 체계를 초우 선사, 불타 선사, 달마 대사 등 고승들이 다잡아 세상에 전파했다.
그렇게 소림에서 아미나 항산 등 같은 불문의 문파들이 갈라져 나오고, 속가제자들이 갖가지 문파, 표국, 전장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혀 그 갈래가 다른 것처럼 보이는 무당이나 청성파 같은 도가의 문파도 알고 보면 소림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다.
천하공부출소림. 그것이 소림이 무림의 종주로 남아있는 이유였다. 모든 무공은 소림에서 출발했고 소림으로 돌아간다.
물론 그 이상의 무공인 한빙신공이나 열양진경, 음양혼돈공 같은 것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 선계나 선인들의 무공이고 인간들이 익히기에는 소림의 무공만도 벅찬 것이다.
이에 모든 소림 무승들은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의 사문을 경배하고 공경했다.
소림이란 하나의 자부심이었다. 무림에 존재하는 하나의 거목이었던 것이다.
그때 목령이 말했다.
“소림은 뿌리요. 제거할 수 없는 뿌리.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나 그 뿌리 역시 시들고 썩긴 했으나 아직까지 뿌리는 건재하고 뿌리가 건재하면 나무 역시 건재하오. 나무를 베어도 뿌리가 살아있으면 다시 자랄 수 있지만 뿌리가 상하면 그 어떤 나무도 다시 자랄 수 없소. 소림이 건재하는 한 무림은 영원히 유지될 거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노력할거요.”
“무엇 때문에? 소림이 존재해서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요?? 무림 자체가 시든 이 시기에.”
진룡이 말했다. 천하무공의 근본인 소림이 뿌리라면, 그 무공을 먹고 자란 무림은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아무리 뿌리가 건재해도 총기의 등장, 그리고 그것들을 운용하는 현대적 군대의 존재는 무림 그 자체를 위협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목령은 말했다.
“씨앗이 하나 있소. 이 씨앗은 너무도 메마르고 토양이 좋지 않은 곳에 묻어져 수백 년, 수천 년을 잠들어 있었소. 하지만 때가 되어 비가 내리고 조건이 충족되면 이 씨앗은 다시 자랄 것이오. 소림은 그때를 위해 기다릴 것이오. 지금이 아니라 하더라도.”
목령은 선언했다. 언젠가 꽃피울 씨앗을 위해, 자신들은 그 어떤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존재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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