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죽음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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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무림인들은 어느 수준에 이르면 호신강기를 터득해 자신보다 수준이 낮은 자들의 공격으로부터는 아예 피해를 입지 않거나 입더라도 그 피해를 감소해서 받았다.
그리고 그런 호신강기를 깨기 위해 만든 암기 같은 것도 있었고 그런 암기를 강호십대금용암기 등으로 꼽았다.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훼하기 위해 만든 무공도 있었는데 총기나 화기가 등장하면서 그런 암기가 무용해졌던 것이다.
호신강기를 깨기 위해 고도의 수련을 거쳐 무공을 익히거나 암기를 던질 필요가 없이, 그저 총 한방 쏘면 모든 호신강기가 다 깨졌기에 이젠 그런 암기나 무공들이 의미가 없었다.
무림이 쇠퇴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런 것들인데 물론 정말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면 그런 총기나 화기의 위협 역시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원륭은 초절정은커녕 절정의 경지도 넘보지 못하는 이류라서 당연히 그런 공격들을 피해야만 했던 것이다.
쾅!!!
굉음이 터지고 나서 원륭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수류탄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곧바로 내공을 끌어올려 청력을 보호했지만, 너무나 강한 충격에 사방이 분간되지 않고 온 앞이 어지러운 것이다.
그러나 원륭은 지난 일 년 간 이 쪽방촌에서 생활했기에 북경, 특히 쪽방촌이 있는 이 해전구의 주변 지리는 샅샅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룡이 지시한 일이기도 했다.
“만약을 위해 이 주변 지리를 외워놓게. 특이한 장소, 지형. 그리고 안전가옥까지도.”
“안전가옥이요??”
“이 쪽방촌과 마찬가지로 만약을 위해 준비한 비밀 기지일세. 우리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모두 흩어졌다가 다시 그곳으로 모이게 되지.”
“그곳도 들키면요??”
“그럼 다시 그 다음 안전가옥으로 모이면 되네.”
그렇게 진룡이 북경 곳곳에 준비한 안전가옥이 무려 열일곱 채였다.
그러나 그럴 만도 한 게 진룡은 과거 마교의 소교주였고 의화단 운동 이후 정식으로 교주가 죽은 마교를 이끌었기에 마교의 모든 인력과 자금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경 내의 주루와 객잔, 전장, 표국 등 마교가 직접 운영하거나 영향력이 닫는 수많은 업장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고려하면 열일곱 채의 안전가옥도 매우 적은 수에 불과했다.
더 이상 준비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오히려 지나치게 관리할 주택이 많아지고 중국 당국에 꼬리를 밟힐 염려가 있으므로 심혈을 기울여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안전가옥이 그것들인 것이다.
원륭은 진룡이 가르쳐준 북경 내의 안전가옥 위치를 떠올리며 고민했다.
‘지금 바로 안전가옥으로 가야하나?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싸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부상당한 사 대협을 놔두고 갈 수도 없고···!!’
원륭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그렇게 고민에 빠질 시간도 많지 않았다. 적들은 곧바로 그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나섰던 것이다.
저벅, 저벅.
“이보게, 나를 기억하나??”
“엇, 당신은 자효진?!?”
쿠웅!!!
원륭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바로 죽은 줄 알았던 자효진이었다.
자효진은 화산파의 기재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공안 무림맹 내에서 파천황 다음의 위치를 맡고 있었는데 지난 번 싸움에서 같은 편이었던 당갈을 너무 우습게 보다 당했다.
평소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당갈이 원륭에게 당하자 기회다 싶어 마지막 마무리로 숨통을 끊어주려고 했는데 만만해 보였던 당갈이 마지막 순간 필사의 독공을 내뿜어 그 대가로 한쪽 팔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무림인에게는 생명과 다름없는 오른팔이라, 살아도 자효진의 무림인으로서의 생명은 이미 끝난 듯 싶었다. 그런데 다시 나타나다니?? 원륭이 충격을 받은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자효진의 모습은 얼마 전의 그가 아니었다.
머리는 풀어헤쳐져 산발이고,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그리고 추레한 옷차림을 한 채 남루한 꼴로 서 있었는데 예전의 자효진을 아는 사람이라면 얼핏 그라는 걸 믿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당신, 자효진 맞소??”
“방금 불러놓고도 왜 또 묻는 거지?? 왜, 내 모습이 다르게 보이나??”
“······며칠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군.”
“시간은 애송이 무림인을 한 사람의 어엿한 무림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장래가 촉망되던 무림인도 한 사람의 병신으로 만들기도 하지. 무림이란 세계에서 며칠이란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도 남기에 충분한 시간이야, 하하핫!!”
“······어찌 살아남았소??”
“당갈 그 늙은이의 독에 당한 나를 파천황이 얼려 구한 뒤 공안 전용의 병원에서 소생시켰지.”
“파천황이??”
“파천황의 한빙신공은 순간적으로 모든 물질을 정체시키는 효과가 있다. 당갈 정도의 요독공은 그의 손짓 한 번이면 단번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되는 거지.”
“······그런 것 치고는 파천황에게 별로 고마워하는 것 같지 않구려. 일단 그는 당신 생명의 은인이자 상관 아니오??”
“그렇지. 그건 사실이지.”
그러나 자효진의 일그러진 얼굴은 여전했다. 평소 절대 강자인 파천황에 대한 질투심과 시기심,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자효진은 하필 껄끄럽게 생각하던 그에게 구해지자 더욱 묘한 감정들이 폭발했던 것이다.
그것은 분노? 부끄러움? 파괴욕?? 지금의 자효진은 침착해 보이지만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었다.
목숨 같은 오른팔을 잃고 무인으로서의 자부심도 잃었는데 눈에 뭐가 보일리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파천황은 자효진에게 또 하나 뭔가의 빚을 베풀었는데, 그것이 자효진을 오히려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자효진은 남은 왼팔로 오른쪽 허리에 찬 검을 스르릉 뽑았다.
“자넨 처음부터 뭔가 맘에 들지 않더군. 그래서 줄곧 내 손으로 장사지내주려고 생각했지.”
“후후, 당신이 우리 일행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소?? 그리고 외팔이가 된 당신의 그 병신 검법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군.”
“이 개자식이!!!”
캉!!!
자효진은 섬전과 같이 검을 휘둘러 원륭을 베어갔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고 있던 원륭은 가까스로 그 검격을 막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알고 있었는데도 막기가 힘들다니, 이 무슨!!!’
원륭은 일부로 상대를 분노시키기 위해 그러한 말들을 뱉은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자효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하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곤 해도 너무나 빨라 하마터면 원륭은 그 공격을 막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오른팔을 잃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지난번에 검을 휘두르던 손은 분명 오른손이 아니었나?!’
그러나 자효진이 검을 휘두르던 손은 분명히 오른손이었다.
지금 원륭은 자효진이 너무나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기에 마치 처음부터 좌수검을 쓰던 자인가하고 혼란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자효진은 대부분의 무림인들과 같이 평범히 우수검을 쓰는 자였고, 그 비밀은 파천황에게 있었다. 며칠 전 깨어난 자효진에게, 대만으로 떠나기 직전인 파천황이 찾아왔다.
“여, 자 대협. 별 일 없소??”
“별 일 없냐니 누굴 놀리는 것이오??”
“응??”
“무림인의 생명과도 같은 오른팔을 잃고 병신이 되었는데 별 일이 없냐니, 누굴 놀리냔 말이야!!!”
쾅!!!
폭음과 함께 자효진의 병실에 있던 거울이 터졌다. 자효진의 강렬한 기파에 의해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이 감정과 내공의 영향을 받아 터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멀스멀. 터진 거울 조각들이 다시 공중으로 모여들더니 원래 거울이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녹아내리더니 다시 엉겨 붙어 원래대로 하나의 거울이 된 것이다.
스르륵. 녹아내린 거울이 다시 평평한 원래 모습을 되찾자 자효진은 맥이 빠져 더 이상 화도 내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요??”
“당신이 터트린 거울 조각을 허공에서 붙잡아 뭉친 것이오. 그리고 녹여 제 자리로 되돌린 것이지. 이 병원은 모두 인민의 재산으로 지어진 것이오. 그러니 그 비품도 소중히 여겨야지. 이 모든 것엔 인민의 피땀이 깃들어 있소.”
“허공섭물에 삼매진화······. 그런데 당신 한빙신공을 익힌 것 아니었소?? 어떻게 저런 양공을······.”
“후후후, 한빙신공을 익혔다고 해서 양공을 익힐 수 없는 건 아니오. 당신은 내가 열양진경을 찾는 걸 알고 있소?”
“그렇소.”
“그 열양진경의 초식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어느 정도의 삼매진화는 쓸 수 있지. 그리고 그 위력은 당신들보다 강하면 강하지 못하진 않을 거요.”
“······.”
자효진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음공을 시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차가운 성질의 무공을 쓴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열을 다루는 것이다.
자신이 목표로 하고자 하는 지점의 열을 빼앗아 차갑게 만드는 것인데, 엄밀히 말하면 빼앗은 그 열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어디론가 이동한 것인데 즉 그렇게 생각해보면 음공을 다루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양공을 다루는 것과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파천황은 열양진경을 구하지 못해도 그 점에 주목해 자신이 음양혼돈공을 복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그 반에 해당하는 한빙신공을 가지고 있기에 조금만 더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면 단번에 큰 벽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벽을 넘어본 파천황으로서는 그것이 추측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웠다.
조금만 더 무언가 깨달으면 될 것 같은데······.
한편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파천황에게 자효진은 물었다.
하지만 그 말투는 어딘가 약간 주눅이 든 채였다.
“그래서 내게 이런 것을 보여주는 이유가 나를 위압하기 위해서요??”
“응??”
“무공으로 날 핍박해 주눅 들게 만들기 위해서냐고.”
“자 대협, 자 대협.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자 대협은 정말로 예의가 없구려.”
“큭!!”
“무공으로 보나 배분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내가 자 대협에게 꿀릴 건 없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존대를 해주는데 자 대협은 항상 왜 내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거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
“으아아악!!!”
자효진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지금 자효진의 전신을 강타하는 고통은 바로 분근착골의 고통이었다.
근육을 뒤틀고 뼈를 어긋나게 만드는 고통인데 놀랍게도 파천황은 지금 손도 대지 않고 그런 분근착골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근착골은 본래 내공으로 상대방의 신체를 헤집는 것이라 반드시 신체의 어딘가는 상대방의 신체에 닿아야 했다.
보통 가장 편한 손이 닿아야 하는데 파천황은 아무런 접촉도 없이 자효진을 죽음의 고통으로 몰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비결은 바로 격공점혈이었다. 공간을 뛰어넘어 점혈을 하는 것. 이론상으로 허공섭물 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거리를 넘어 물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혈도를 그런 허공섭물을 응용해 자극하면 상대를 제압하는 것도, 고통을 주는 것도 가능한 것인데 가뜩이나 파천황에 비해 실력도 부족한데다 지금 한 팔을 잃는 부상을 당한 자효진으로서는 절대로 그런 격공점혈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자효진이 최상의 몸 상태라 하더라도 그 점혈은 절대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파천황은 계속해서 분근착골을 가하며 자효진에게 물었다.
“자, 자 대협 어떻소, 이젠 좀 생각이 바뀌었소??”
“죄, 죄송합니다, 파 대협!!”
“파 대협??”
“부부장님!!!”
그러자 파천황은 분근착골을 가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효진은 마치 시체처럼 자신의 침대에 널부러졌던 것이다.
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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