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무림기

2-18 죽음과 부활

원륭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원륭도 무공을 익히면서 여기저기서 들었지만, 강호에는 소위 마공이란 것을 익히기 위해 사이한 수법을 쓰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다.

시체 썩은 물에 손을 담궈 그 시독을 흡수한다든지, 그렇게 완성되는 무공 중 하나가 시폭장(屍爆掌)인데 그런 시폭장에 맞으면 맞은 부위에 시독이 폭발하여 검게 썩어 들어가는 것이다.

인체에서는 여러 가지 독성 물질이 생성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방금 전 죽은 당갈이 쓰던 요독, 암모니아였고 그 외에도 흔히 똥독이라 불리는 변독, 그리고 시독이 있었다.

그 외에도 피를 빨아서 내공을 얻는 무공이라든지 사람을 강간한다든지 살해해서 그 정기를 이용하는 무공도 있었다.

사실상 무공이 아니라 사공(邪功)이었는데, 의화단이 그런 시체를 이용한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라 식인을 했다는 소리를 듣자 원륭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이다.

“원륭, 저 말 듣지 말게! 원륭!!”

“······.”

그러나 원륭은 말이 없었다.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쪽방촌 무림인들에 대한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온 것이다.

‘확실히 아무리 예전부터 무공 및 내공을 익혔다지만 저렇게 강한 내공 등을 가지고 있는 게 가능한가?? 특히 저 불사왕은······.’

원륭을 제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바로 불사왕이었다. 그는 너무나 성격이 괴팍하고 변덕스러웠으며,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짜증을 많이 내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무공의 연원도 불분명해서, 소림 무공을 쓰는 소형승이나 마교의 마공을 쓰는 진룡, 아마도 가문이나 자신의 독문검술을 쓰는 듯한 사휘령, 연검을 채찍처럼 쓰는 하홍휘 등에 비해서 수상한 데가 많았던 것이다.

권장을 쓰는 상관인과 의술을 중심으로 쓰는 제갈의 등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자신보다 고수고 진면모를 숨길 수 있다 해도, 1년 동안 숨길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들 모두가 크든 작든 자신의 진산절기를 조금씩이라도 내보였는데, 불사왕만큼은 자신의 무공을 조금도 선보인 적이 없었다.

그가 쓰는 무공은 모두 기본적인 금나수 정도였으며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무공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그로인해 원륭은 더욱 의심이 갔던 것이다.

게다가 무공은 쓰지 않지만 그의 눈빛이나 전신에서 가끔씩 피어오르는 사이한 기운이 더욱 그러한 기분을 강하게 했다.

원륭도 아직 절정고수는 아니지만 약자인 만큼 누구보다 강자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에 예민했다.

게다가 불사왕과는 지난 1년 동안 쪽방촌의 그 누구보다 갈등이 많았고 쪽방촌에 세들어 사는 입장에서 진룡 등 다른 무림인들의 눈치를 세밀하게 봐왔던 원륭인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원륭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이 복잡해지자 손발이 느려지고 안 그래도 강한 적인 파천황을 상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의 그런 모습이 행동으로 나타나자 누구보다 예리한 적인 파천황은 곧바로 원륭이 맡고 있는 그곳이 생문이라고 확정하고 무섭게 뚫고 들어왔던 것이다.

“피하게, 원륭!! 그곳에 서있으면 죽고 말아!!!”

어느 순간 들려온 진룡의 목소리에 원륭은 헉,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가 그런 의심을 품은 것은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0.1초? 0.2초?? 그러나 파천황은 그 한순간에 그 틈을 간파하고 매섭게 쳐들어왔던 것이다.

“미, 미친!!!”

원륭은 경악했다. 파천황은 아까 사휘령과 소형승을 떨쳐내 육방진을 깨부쉈음에도 불구하고 원륭과 제갈의가 합류해 다시 육방진이 재건되자 무서운 기세로 진을 파괴하려 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승부를 서두르려고 하고 있었다. 확실히 진룡이나 불사왕 등 이 쪽방촌의 무림인들도 가벼운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에 싸움을 질질 끌어서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무림이든 일반 저잣거리든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방심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틈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들 중 누구라도 숨겨놓은 절초가 있어 한순간에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므로 파천황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그들을 몰아붙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강함에도 자만하지 않고 상대를 경시하지 않는 무서운 자였다.

그렇게 파천황이 서리를 일으키며 무서운 속도로 원륭을 향해 다가오자 원륭은 피하려 했는데, 파천황의 한빙신공에 의해 발걸음은 얼어 느려지고, 마음과는 달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파천황이 자신의 주무기인 한빙장으로 원륭의 몸을 얼려 깨부수려 할 때, 누군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펑!!!

“!!”

“!!!”

그 모습을 본 원륭과 다른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모두 놀랐다. 심지어 파천황마저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놀랐던 것이다.

“진 대협!!!”

중간에 끼어들어 원륭을 구한 것은 진룡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는 순식간에 굳어 하나의 얼음 동상이 되었던 것이다.

“······.”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이 얼음 동상이 되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룡의 공허한 시선이 아득한 허공 저 너머로 사라졌다. 좌중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파천황이었다.

“아가야, 아직 미숙하구나. 실력도 심계도······.”

“파천황, 날 속인건가!!”

원륭은 분노해서 외쳤다. 그는 더 이상 이 쪽방촌의 무림인들이 식인을 했다는 의심도 잊어버리고 그저 순수하게 파천황을 향해 분노한 것이다.

1년 전 이 쪽방촌의 무림인들에게 거두어지고 난 후 불사왕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대체로 잘 해주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지극 정성인 자가 바로 진룡이었다.

진룡은 원륭이 그 특성상 자신의 무공인 마교의 마공을 익히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소형승에게 부탁해 소림칠십이종절기를 배우게 해주었던 것이다.

소형승은 까닭이 있어 소림사에서 나온 자였고, 소림은 무당 등과 더불어 아직도 건재하기에 그가 함부로 무공을 전수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본래대로라면 소림사에서 나올 때 그도 단전이 파괴당하는 식으로 무공을 회수당해야 했지만, 어째선지 그는 온전히 그 몸과 무공을 가지고 나오는데 성공했으며 그로인해 소림의 최고절초는 아니지만 소림칠십이종절기 등 다양한 무공을 알고 있었다.

진룡의 부탁에 소형승은 한참동안이나 생각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 대협, 그 아이에게 소림 무공을 가르쳐주는 건 좋지만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

“제가 그 아이에게 소림 절기를 가르친다는 건 다른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마십시오. 심지어 이 쪽방촌의 무림인들에게도.”

“!, !! 자네, 설마?!”

“네, 만약 문제가 되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저 혼자 지겠습니다.”

“······.”

진룡은 잠시 뭐라고 할려고 하다가 소형승의 굳은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뭐라고 했던 것이다.

“미안하네. 원랜 이런 부탁을 해서는 안 되는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누군가에겐 이어져야 하는 의지니까요. 하지만 책임은 저 혼자 지겠습니다.”

그 말대로 소형승은 사문인 소림의 허가 없이 소림 무공을 전수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자기 혼자 지고, 만약 문제가 되면 원륭을 자기가 죽더라도 끝까지 보호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는 소림을 나올 때 소림사 방장과의 약속으로 무공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지만, 그 약속에 다른 누군가에게 소림 무공을 전수하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방장은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약조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자라는 말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소형승은 진룡과 새롭게 약조를 했고, 그 사실을 진룡이 말해주어 원륭도 알고 있었다.

진룡은 만약의 경우 소림사의 추적이 오면 원륭보고 몸을 피하라는 의미에서 그 사실을 몰래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비록 자신의 무공은 아니지만 남의 무공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달라는 무리한 부탁을 하며 애써 간청한 진룡, 그리고 무공을 가르쳐준 소형승은 원륭에게 있어 가장 큰 고마움의 대상이었다.

사휘령이나 하홍휘, 제갈의의 무공은 원륭이 익히기에 보다 부적합하며 난해했고, 상관인은 진룡보다 강호의 배분이나 연배로 봐도 더 높았으므로 부탁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거쳐 힘들게 무공을 배웠는데, 정작 가장 고마운 사람 둘 중 하나인 진룡이 꽁꽁 얼어붙어 버리자 원륭은 눈에서 불길이 치솟을 정도로 분노했다.

무공 외적인 측면에서 봐도 그는 쪽방촌의 주인으로서 원륭을 총무로 쓰고 쪽방촌의 일이나 그가 북경에서 적응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것이다.

만약 그가 돕지 않았다면 원륭은 다른 시골에서 몰래 이사 와서 북경 거주증이 없는 농민들처럼, 북경 시민들의 반이나 삼분의 일도 안 되는 푼돈을 받으며 허드렛일을 해야했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아는 원륭은 분노하며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입에서는 격노의 외침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파천화아앙!!!”

쾅!!!

얼마나 분노했는지 그가 한발 내딛는 순간 포장된 도로가 푹 하고 꺼졌으며, 그 추진력을 바탕으로 원륭은 쏜살같이 나아갔다.

몸을 낮춰 숙이고 쐐애액 달려가는 원륭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 제비 같았다.

그런데 그를 잡는 자가 있었다. 바로 제갈의였다.

“그만두게!!”

“?? 이거 놔요!! 저 자를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가만두지 않으면 뭐 어쩌겠다는 말인가?!”

“죽여야지요!!”

“자네 실력에??”

“!!”

원륭은 분노해서 제갈의를 노려보았다. 평소대로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원륭의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제갈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원륭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룡도 얼어붙었는데 자네 실력으로 어떻게 쓰러트린다는 말인가!!”

“쓰러트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쓰러트려야 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겁니다!!”

“그런 걸 개죽음이라 하는 거야!!”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단 낫지요!!”

“······.”

원륭은 지난 1년간 죽을 뻔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이미 생사를 초월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이미 죽은 목숨이라 여겼고 산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그에게 생과 사는 의미가 없고 중요한 것은 목적을 이룬다는 것이다.

진룡과 이 쪽방촌 무림인들의 목적이 공산당과 모택동 등 그 간부들을 쓰러트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감화된 원륭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그 목적을 이룰 각오가 되어 있었다.

비록 자신이 죽는다 해도······. 그 사실을 아는 제갈의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 자네 성격은 진룡의 젊은 시절과 같군. 그도 어렸을 적에는 그리 물불 안 가리고 날뛰었지.”

“그렇습니까? 그도 젊은 시절 그랬습니까??”

“그래, 의화단 운동을 하던 젊은 시절에는 그랬지. 지금으로부터 몇 십 년 전의 일이로군······.”

“······.”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원륭은 내심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싱긋 웃고 있었다.

그는 진룡을 진심으로 존경했기 때문에 그와 닮았다는 제갈의의 말에 기쁨을 참지 못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제갈의는 이때다 싶어서 원륭을 설득했다.

“생각해보게, 진룡이 자네가 개죽음 당하는 걸 원했겠나?? 그는 자네가 살길 바랬을 걸세. 그래서 1년 전에도 구한 후에 치료해서 무공을 가르쳐준 것이고.”

“아뇨, 제 결심은 변함없습니다. 저는 그 분 앞에 한점 부끄럽지 않게 싸워서 그 분 곁으로 갈 것입니다.”

“이 고집불통!!!”

제갈의는 대노해서 외쳤다. 좋은 말로 원륭을 구슬려 피신시키고 자신과 다른 무림인들만으로 다시 육방진을 펼쳐 파천황을 어떻게 해볼 생각이었는데 그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확실히 원륭은 무공이 비교적 약해 좋은 먹잇감이었지만 반대로 그걸 이용하여 파천황을 유인하면 소모전으로 그의 체력을 깎고 그를 궁지로 몰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파천황이 이상하게 승부를 서두르는 건 제갈의 뿐만 아니라 모두가 눈치 채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최소 일이십년동안 실전을 겪어온 강호의 노련한 무림인들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륭이 끼면 칠방진이 되기 때문에 다시 진이 애매해져서 제갈의는 재빨리 머리를 놀려 어떻게 해야 될지를 고민했다.

‘칠방진이라도 원륭을 미끼로 쓰고 나머지 우리들이 보호할까?? 아님 정석대로 원륭을 빼고 육방진으로?? 하지만 사람이 하나라도 아쉬운데······.’

제갈의는 끄응, 하고 신음을 흘렸다. 아까 전 파천황에게 타격을 입은 사휘령과 소형승은 멀쩡한 척 서 있었지만 누가 봐도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었다.

사실상 문제는 원륭 뿐만이 아니었는데 그럼 아예 그 셋을 빼고 사방진으로 가야되나 제갈의는 고민되었던 것이다.

그는 제갈세가의 생존자답게 엄청나게 머리가 좋았지만, 파천황이라는 일세의 강적을 두고서는 사고가 꼬이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파천황은 부담스럽고 강한 존재인 것이다.

지금 파천황이 고민하는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 것도 그 나름의 뭔가 제약이나 이유로 인해 잠시 싸움을 멈추고 힘을 축적하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들이 정비를 끝내고 다시 공격한다면 파천황도 몰아붙일 것이다. 쉰만큼 더욱 확실하게. 그렇게 제갈의가 고민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전음이 들려왔다.

‘쯧쯧, 제갈 대협은 항상 그 머리가 문제요. 머리가 너무 좋아 본인도 어찌해야 될 바를 모르지. 그럴 땐 그냥 순리대로 하시오, 순리대로. 의(義)와 협(俠)이 있다면 두려울 것이 뭐가 있소??’

“?? 진룡?!”

제갈의는 깜짝 놀라 진룡을 쳐다보았다. 그의 몸은 얼음에 갇힌 채 그대로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얼음이 흔들린다 싶더니 부르르 떨리며 그곳에선 대량의 열과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치이익······.

잠시 대량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그곳에는 진룡이 멀쩡히 서있었다.

“이거이거, 잠시 쉬지도 못하겠군.”

그가 씩 웃었다.

[널향달]

잘 봤습니다~

[김유진]

감사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