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첩첩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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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룡은 뛰어나가던 기세와는 반대로 천천히 붓을 휘둘렀다.
스륵!!!
그러자 붓에서는 묘한 현기와 함께 막강한 위력의 내공이 흘러져 나왔다.
보통 화기가 아닌 냉병기는 검을 최고로 치고 그 외에 도나 창 등을 그 다음으로 치는데, 진룡이 쓰는 붓은 그런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무기였다.
사실 무림의 최전성기였던 명나라 시절에는 그만큼 무림인들도 많아서 주판이라든지 낫, 밧줄, 낚시용 삼지창과 그물 등 희안한 무기를 쓰는 자들도 많았다.
그만큼 다양성이 높았는데 지금은 무림인 자체가 급속히 줄어들어 거의 천연기념물 상태이기 때문에 대부분 검이나 권, 장을 썼던 것이다.
독특한 무기와 무공도 그만큼 무림이 활성화 됐을 때나 존재하는 것이지, 지금에 와서는 무림이 거의 사장됐기 때문에 그런 무기를 쓰는 자들도 거의 없었다.
하물며 총을 쓰면 몇 십 년 무공을 익힌 사람도 맞추기만 하면 호신강기를 뚫고 단번에 죽여 버릴 수 있는데 뭐 하러 무공을 익힌단 말인가??
다만 이 쪽방촌이나 무림맹의 무인들 쯤 되면 그런 총알을 피할 수 있기에 그들의 무공이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 외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능력들이 있었는데, 진룡 역시 파천황에게 달려들며 가볍게 붓을 흔들었다.
휘릭!!!
그러자 놀랍게도 진룡에게 다가오던 한방신공의 냉기가 저절로 물러나는 것 아닌가??
스르륵!!!
사방을 짙은 안개처럼 감싸 안은 냉기가 물러나자, 진룡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더욱 접근했다.
자신의 무공에 대해 믿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파천황은 역사상 손꼽힐만한 최강의 강자라 한편으로는 반신반의하는 게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갈고닦은 황룡필법은 역시나 진룡을 배신하지 않았던 것이다.
‘좋아, 통한다!! 이대로 좀 더 접근할 수만 있으면!!!’
진룡이 붓을 휘두르며 접근하자, 파천황은 금세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에게서 나오는 냉기가 더욱 강해졌다.
너무나 강한 냉기에 원륭은 접근조차 하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만약 근접한다면 오늘 내공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계가 있는 원륭은 그 여파만으로도 금세 얼어붙어 버릴 것이리라.
파천황은 딱히 원륭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진룡과의 싸움의 여파에 휩쓸려 원륭은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진룡의 붓 휘두름을 보고 있던 좌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화접목에 사량발천근, 역시······.’
지금 진룡이 하고 있는 것은 부드러운 붓이라는 매개체를 빌려 그 성질을 내공에 담고, 파천황의 냉기를 흘려보내거나 도리어 튕겨내는 것이었다.
진룡은 붓의 움직임으로 냉기를 흘려보내고 때때론 자신의 내공을 더해 몇 배의 힘으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그로인해 둘 사이에선 지금 치열한 내공의 격전이 진행 중이었다.
보통 본격적인 내공대결은 서로가 손을 잡는 등 신체가 닿아야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진지한 내공대결에 들어가면 한쪽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어야 서로 그만둘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둘은 워낙 경지가 높아 서로 몸이 닿지 않고도 본격적인 내공의 대결을 펼칠 수 있었고, 다만 둘 사이의 대결이 워낙 치열해 만약 지는 쪽은 그야말로 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온 몸이 바스라질 테였다.
두 사람이 서로 사량발천근의 원리로 돌아오는 내공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튕겨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중간에서는 지금 막대한 내공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에너지가 얼마나 막대한지 지금 그 중간에서는 충격으로 인한 균열이 유형화돼 공간마저 뒤틀리고 있었다.
우지직!!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공간이 뒤틀리며 비명을 지르자 상관인과 제갈의는 소리를 질렀다.
“내공으로 인해 절대적인 개념의 공간이 뒤틀리다니, 미친!!!”
“저 둘의 대결은 이미 공간의 개념을 넘어섰어!!”
이 세상의 가장 절대적인 두 가지 개념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시간과 공간일 것이다.
결국 싸움이란 누가 더 빨리(시간) 상대방의 영역(공간)에 들어가 제압하느냐, 인 것인데, 내공이니, 무공이니, 무기니, 싸움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고 한들 그것은 궁극적으로 상대보다 시공간적 요소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 목적인 것이다.
시간은 인간이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요소였고 어찌 보면 공간 이상으로 난해한 개념이었다.
만약 자신의 무공이나 경공이 높아 상대방에게 빨리 접근할 수 있고 빨리 검을 뽑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름 높은 쾌검수로 명성을 날릴 수 있을 것이다.
시공간의 개념이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시공간을 지배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고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순간이동을 하는 경지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그 영역을 넘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두 사람은 그런 영역을 넘보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몰라도 두 사람은 모두 허공섭물과 공간을 뛰어넘어 상대를 타격할 수 있는 격공장을 익혔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는 서로가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라면 상당한 거리에서도 상대방을 타격할 수 있었다.
물론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위력은 현저히 감소하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둘 사이가 가깝다면, 그 대결은 역사상 그 어떤 대결보다도 더 치열한 것이다.
그 순간 마침내 진룡의 붓이 한 마리 연어처럼 폭포 같은 파천황의 냉기를 가르고 도달했다.
진룡의 붓이 이리저리 꼬리를 흔들고 파천황의 한빙신공을 벗어난 순간, 진룡은 눈을 부릅뜨고 붓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일장을 날렸다.
“천상천하유아독장!!!”
쾅!!!
이 천상천하유아독장이라는 것은 마교의 역대 교주중 하나가 만든 것으로, 마교, 아니 명교가 탄압받게 시작한 명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자 명교의 최전성기에 수준 높은 교주가 만들어 매우 위력이 높았다.
언뜻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무공명의 유래가 된 천상천하유아독존은 세상에서 나 혼자 잘났다는 말이 아니었다.
석가모니는 태어날 때 이 말을 외쳤다고 하는데 그 말뜻은 세상에서 자기 혼자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로 그 두려움과 고독함에 그런 말을 외쳤다는 것이다.
사람의 따라 해석은 갈리지만 동시에 유아독존의 아(我)는 단순히 석가모니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을 가리키며 석가모니는 삼계와 육도를 거의 영원히 윤회할 운명을 가진 모든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사실 진룡이 펼친 천상천하유아독장은 그만큼 그 위력이 강맹하고 매섭다는 의미도 있었다.
과장 좀 보태 마도천하제일장이라 할만 했는데, 소림을 제외하고는 그 장을 따라올 곳이 없었던 것이다.
소림의 여래신장만이 그 천상천하유아독장과 자웅을 겨룰 만 했고, 다시 과장을 좀 더 보태면 이 천상천하유아독장을 맞았을 시 정말로 삼계와 육도를 윤회하는 고통, 도피안에 갈 수 없이 욕계를 떠돌 수밖에 없는 무한히 혼이 방황하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이름으로는 탈혼파괴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말 그대로 혼을 끄집어 내 파괴할 정도로 지독하다는 것이다.
사마외도의 사악한 기교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강맹한 내공과 마교의 정통한 무리(武理), 시전자의 자질이 합쳐지는 천하제일장 중 하나였다.
인간이 만든 장법 중에서는 여래신장과 함께 쌍벽을 이룬다는 그 무적의 장법이 몇 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진룡이 펼친 천상천하유아독장, 일명 탈혼파괴장은 단단한 파천황의 냉기와 그가 급하게 끌어올린 빙벽, 호신강기를 뚫고 그에게 깊은 타격을 입혔다.
퍽!!!
의외로 그 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파천황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더니 결국 피를 쏟아냈던 것이다.
“우웩!!!”
겨우 피 한 줌 이었으나 그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컸다. 파천황도 결국 인간이었으며 그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진룡을 상대하는 파천황의 냉기는 갈수록 세졌지만 그와 비례하여 그의 내공이 전해오는 기파가 점점 약해짐을 장내의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의 내공은 무한이 아니었고 한빙신공은 천하제일의 무공 중 하나인 만큼 그 내공의 소모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반대로 진룡의 황룡필법은 상대적으로 적은 힘으로 파천황의 냉기를 뚫고 들어갔기에 진룡은 힘을 온존하여 파천황에게 한방 먹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한바탕 피를 흘린 파천황은 웃으며 말했다.
“후후, 유는 강을 제압한다. 무림의 오래된 진리는 틀리는 법이 없군. 덕분에 좋은 피를 쏟았소. 몇 십 년 만에 이같이 피를 흘리는지 모르겠군.”
그 말에 진룡을 비롯한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피는 토했지만 검은색 피가 아니라 붉은 선혈이다. 게다가 한 점 내장 조각도 없어. 파천황은 생각보다 타격을 입지 않았다.’
만약 진룡의 장법이 그에게 괴멸적인 피해를 줬다면 그는 참지 못하고 최소한 검붉은 피에 내장 조각이 섞인 피를 토해냈을 것이다.
그러나 파천황은 비록 타격을 입긴 했지만 상당히 개운한 표정으로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사왕은 깨달았다.
“너 이 자식, 진룡의 장법으로 몸의 탁기를 제거했구나······.”
“그 말대로요. 역시 혈마······. 다른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군.”
“뭐라고?!”
“탁기를 제거해?!?”
제갈의와 상관인이 화들짝 놀라 입을 벌렸다. 그리고 제갈의는 이마를 탁 쳤다.
“그렇구나! 그 수가 있었구나!!”
“어떻게 된 거요, 제갈 대협?!”
놀라는 상관인 등 좌중을 향해 제갈의는 설명했다.
“여러분들도 무공을 익히다보면 어느 순간 막히는 때가 있을 것이오. 작게는 세세한 혈도부터, 크게는 기경팔맥과 임독양맥까지.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도 생사현관이라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 임독양맥이나 생사현관을 같은 것이라 혼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론 다르오. 기경팔맥에는 임맥, 독맥, 충맥, 대맥, 양교맥, 음교맥, 양유맥, 음유맥이 있고 그 중 가장 뚫기 힘들고 난해한 두 맥만을 따로 임독양맥이라 부르지. 그 외에도 십이경맥이 있는데 십이경맥은 별로 중요시하는 사람이 적으나 사실 기경팔맥은 이 십이경맥 사이에서 서로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오. 설명하자면 긴데······. 말하자면 파천황은 평소 자신이 막혀있던 경지를 진룡의 탈혼파괴장으로 뚫어 새로운 경지에 이른 것이오. 과연 어떤 경지를 뚫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마치고 제갈의는 파천황을 노려보였다. 지금 보니 파천황이 진룡의 공격을 맞은 것은 일부러였던 듯 싶었다.
그는 고의로 빈틈을 보여 아슬아슬하게 진룡이 자신의 방어를 뚫고 타격을 입혔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걸 이용해 자신의 경지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던 것이다.
그것을 안 좌중은 생각했다.
‘미친놈······.’
‘상대방의 타격을 이용해 막힌 맥을 뚫다니 저것이 인간인가??’
이 쪽방촌의 무림인들도 대부분 수십 년 이상 활동하고 무공을 수련한 자들인데, 일부러 적의 공격을 받아 자신의 경지를 올리는 자는 본 적이 없었다.
오직 그와 비슷한 자라면 당갈의 요독공에 중독됐다 이를 해독하여 내공을 올린 원륭 정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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