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 짐승
“원륭, 괜찮나?”
“······36년 만에 그녀의 모습을 다시 TV에서 보았지······. 그녀는 딱히 첫사랑 같은 건 아니었지만 내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어······. 다른 쪽방촌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젠 전부 죽어버렸군. 하하! 하하하하하하!!”
원륭은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쳐다봤다.
“전시회에서 저리 크게 웃기는······.”
“몰상식한 사람 같으니라고······.”
그렇게 원륭을 비난하던 주변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어느새 뭔가 이상한 기미를 눈치 챘다.
“저기, 뭔가 갑자기 더워지지 않아??”
“그러게. 난방장치가 고장 났나??”
때는 그리 더운 날이 아니었고 아무리 더운 날이라 해도 실내에 있는데 갑자기 이렇게 온도가 올라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이상 현상을 눈치 챘다.
“저기, 저것 좀 봐!!”
“저 남자 주위로 아지랑이가!!”
누가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원륭의 주위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극도의 분노와 절망으로 인해 원륭이 무의식적으로 혈귀의 권능을 끌어올렸던 것이다.
혈귀의 권능 중 하나는 피를 태워 열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으로, 이는 소모가 심해 원륭조차 평소에도 잘 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커다란 분노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피의 권능이 발동된 것이다.
급작스런 사태에 헐크G는 당황하여 원륭을 이끌고 데려 나가려 했다.
“일단 나가지, 원륭. 앗 뜨거!!”
급한 마음에 내공을 끌어 올리지 않고 원륭의 어깨를 잡은 헐크G는 하마터면 화상을 입을 뻔했다.
그가 단련된 무림인에다 천부적으로 뛰어난 신체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바로 손이 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엄청난 열이었다.
그렇게 헐크G는 원륭을 데리고 어찌어찌 전시회장 바깥으로 나가는데 성공했다.
원륭의 몸에서 일어나는 열기가 아직 걷히지 않아 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유리문이 급격한 온도 변화로 인해 갈라졌다.
쩌적!!
“이제 정신이 드나??”
“······.”
원륭은 아무 말 없이 헐크G가 사온 생수를 몸에 뿌렸다. 그리고 남은 양은 바로 마셨다.
치이익!!!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젖은 옷은 곧바로 말라 바로 뽀송뽀송해졌다.
너무나도 엄청난 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헐크G는 혀를 찼다.
“생수를 몇 통 더 사와야겠군.”
큰 통으로 몇 통 더 사와야겠다고 헐크G가 생각하는 순간, 원륭이 말렸다.
“됐어, 헐크G. 이젠 진정됐다.”
“하지만······.”
“보게. 아직 열이 발생하고 있나??”
“······.”
확실히 그랬다. 다시 한 번 바라보니 원륭의 몸에서는 언제 발생했느냐는 듯 모든 열이 사라지고 없었다. 과연 혈귀의 권능. 능력의 사용이 자유자재다.
물론 이것은 혈귀라고 해서 무조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원륭의 수련이 뛰어나기 때문이지만은······. 더 큰 능력을 쓸수록 혈귀의 권능에 필요한 피는 더욱 많아진다.
게다가 충분한 수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마성이 골수에 침투하여 그야말로 피만 갈구하는 괴물이 되기 때문에 이건 그야말로 줄다리기였다. 도박이었다.
원륭도 그 점을 눈치 챘다.
‘이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하여 매일 같이 수련하는 것인데······. 결국 막지 못했군, 쓰읍······.’
원륭은 속으로 혀를 찼다. 천안문 사태 이후 지난 20년 동안 매일 같이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수련에 몰두했는데, 결국 자기 통제에 실패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르니 바로 혈귀의 권능이 발동해 버렸는데, 이는 불사왕의 경우를 보면 통제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백 년 이상 살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불사왕마저도 대마초를 피우지 않으면 혈귀 특유의 파괴본능이라든지 금단증상을 억누르지 못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다.
원륭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아무튼 원륭은 한숨을 쉬었다.
“후······.”
“이젠 조금 속이 후련한가??”
“······.”
원륭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의 고열까지 발생시켰는데 아직도 속이 후련하지 않군. 그리고 자네도 알지 않나. 한숨 따위 쉰다고 해서 마음의 시름이 가셔지지 않는 것을.”
“그야 그렇지······.”
모든 이는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마찬가지다.
마음의 공허함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어떤 종류의 결핍 같은 것이라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설령 채워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마음의 결핍은 마치 밑 빠진 독처럼 순식간에 행복을 바닥내기 때문에, 우울해지지 않기 위하여 인간은 쉴 새 없이 행복을 갈구해야 한다.
마치 헤엄을 치지 않으면 죽는 상어처럼.
상어는 부레가 없어 계속해서 헤엄을 쳐야 한다는데, 중국의 시인이자 작가인 장쓰안은 자신의 저서인 평상심에서, ‘바다에 사는 수많은 물고기 가운데 유독 상어만 부레가 없다. 부레가 없으면 물고기는 가라앉기 때문에 잠시라도 멈추면 죽게 된다. 그래서 상어는 태어나면서부터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하고, 그 결과 몇 년 뒤에는 바다 동물 가운데 가장 힘이 센 강자가 된다’라고 한 적이 있다.
실제로는 전체 상어 종들 중 오히려 끊임없이 헤엄치지 않으면 죽는 종이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도 잘만 산다고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범고래나 고래 등 다른 강자들이 있어 가장 힘이 센 강자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그런 부레가 없어 끊임없이 헤엄치는 상어처럼 인간도 항상 노력해야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원륭은 항상 노력한다. 그의 동료들도 항상 노력하고.
아무튼 천안문 사태 이후 22년, 문화대혁명 전부터 하면 47년을 넘게 수련했는데도 아직까지 미흡한 부분을 발견하자 원륭은 다시 한 번 한숨지었다.
“나도 아직 멀었군. 일단 홍콩으로 돌아가지.”
“그녀의 유해는?? 수습하지 않아도 되나??”
“······.”
원륭은 잠시 이를 악물었으나 겨우 참고 다시 말했다.
“여기는 미국이야. 만일 전시회 ‘물품’에 손을 댄다면 미국 경찰이 개입하겠지. 우리로서는 미국 정부까지 감당할 여력이 없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면 미국과는 척을 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태워버리고 싶지만은······. 지금은 어쩔 수 없지. 그냥 돌아간다. 뭘, 수습은 언제라도 할 수 있어. 언제라도 말이야······.”
“······.”
헐크G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원륭을 따라 홍콩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그는 도중에 딱 한 마디 했다.
“원륭, 자네가 발생시킨 그 열의 정체에 대해서는 언제 말해줄 건가?? 우리가 함께한 지도 거의 20년이 넘었는데. 그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않나??”
“······.”
원륭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군, 헐크G.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야. 하지만 언젠가는 꼭 말해주지. 다른 사람은 아니더라도 분명 자네에게만은 말이야.”
“자넨 너무 비밀이 많아.”
“그런가.”
원륭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홍콩으로 돌아온 원륭에게 다른 이들은 물었다.
“그녀가 강유걸이 맞던가?? 진짜인가??”
“······.”
원륭이 눈을 감고 있자 헐크G가 대신 말했다.
“그녀의 신체 특징은 내가 꼼꼼하게 확인했다. 사실이다.”
“그런······.”
설마가 사실로 드러나자 모두들 당황했다. 원륭은 아니라고 하지만 20년 동안 홍콩에서 두문불출하던 원륭이 직접 미국까지 날아가 시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그에겐 너무나도 큰 의미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무림인들의 시각은 정확해서, 한번 본 상대의 신체 특징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한 번의 승부에서 생과 사가 갈릴 수 있는 무림인은 누구든 보는 사람의 신체를 유심히 살폈다.
가령 약간의 긴 팔이라든가 다리가 사정거리 승부에서 우위를 점해 승부를 결판낼 수도 있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얼굴이라 무시했더니 나중에 약간의 변장을 하고 살수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도 민감했는데, 헐크G와 원륭 두 사람이 모두 확인했으니 그 여자는 강유걸이 맞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헐크G는 품 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다.
“감시 카메라와 경비, 관객들의 눈을 피해 한 장 찍어 가져왓다. 살펴보도록.”
그것은 강유걸이라 의심된 시체 표본의 사진이었다. 헐크G가 몰래 찍어 가져온 것인데 그걸 본 이들은 모두 신음을 뱉어냈다.
“으음, 이건 진짜군······.”
“의심의 여지가 없어······.”
화경에 이른 무림인 아홉 명이 생각했다. 이것은 ‘진짜’라고. 재판이라면 배심원 만장일치로 유죄. 확정판결이다. 원륭은 감았던 눈을 떴다.
“뭔가 새로 들어온 정보는 없나??”
“그게······. 자네가 미국에 가있는 동안 어느 언론사에서 강유걸 관련 사건을 보도했네.”
“뭐라고??”
“보쉰이라는 언론사인데······. 한번 읽어보게.”
“······.”
원륭은 곧바로 태사향이 건넨 자료를 살폈다. 자료에 따르면 포틀랜드에 전시되어 있는 시체 표본이 강유걸로 의심된 것은 그 곳에 가 본 중국인 관객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강유걸은 대련 시의 아나운서이기는 했지만, 대련 시를 넘어 중국 전역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녀는 대련 방송국의 간판 프로그램인 태양비의 진행자로 활약했고, 중국 최고의 아나운서로서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그녀는 사라졌고, 10년 쯤 지난 뒤에 인체 표본으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관객들의 눈썰미는 속일 수가 없었다. 비록 무림인은 아니더라도 일반인들 중에서도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게다가 강유걸 역시 실종 당시 임신 8개월 차였는데 문제의 그 인체 표본도 임신 8개월 차였던 것이다.
게다가 발 사이즈라든가 기타 세세한 신체 사이즈들이 정확하게 일치하여, 더 이상 의심의 여지도 없어졌다. 이쯤 되면 확정이다, 확정.
그때 일지흔이 원륭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추가 자료를 넘겼다.
“그게······. 이번 사태로 인해 그녀의 정보를 조사하다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사실 강유걸은 대련 시장이었던 보시라이와 내연관계였다고 하오······. 그녀는 공공연히 그 사실을 드러내길 꺼려하질 않았는데, 이는 보시라이의 인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오.”
“······.”
원륭은 일지흔이 넘긴 보시라이에 대한 자료도 살폈다.
“보시라이. 전 대련 시장. 전 요녕성 성장, 전 중경시 시위원회 서기, 현 중앙정부 상무부장, 흐음······.”
원륭은 하나하나 자료를 꼼꼼하게 읽고 살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시절부터 공신으로 인정된 원로들의 자제들로 구성된 태자당의 일원. 공산당 원로이자 재정부장을 역임한 보이보의 아들. 아버지도 8대 원로의 한 사람이고 그야말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군······.”
그의 말에 태사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지······. 원로들의 발언은 주석조차 쉽사리 무시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혁명의 산 증인들이니까······. 장쩌민 이전의 주석들인 양상쿤이나 리셴녠도 주석직을 그만둔 후엔 원로로 들어가지 않았나??”
“······.”
원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침없이 자료들을 읽던 그의 눈에 무언가 뜻밖의 사실이 들어왔다.
“그가 중학생이던 시절 문화대혁명이 터지고 그도 홍위병이 되어 활동했는데 그는 아버지가 영웅이면 아들도 호걸, 아버지가 반동분자면 아들도 반동분자라는 혈통론을 선전했다. 그런데 당시 원로이던 자신의 아버지 보이보가 반동으로 몰리자 그는 홍위병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 아버지를 두들겨 패 갈비뼈 3개를 부러트렸다?? 뭐야, 이거. 이거 완전 개새끼 아냐??”
“······.”
그 말에 모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에 불과한 나이에 자신이 반동으로 몰리려 하자 순식간에 아버지를 구타하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라 생각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