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반성하시오
“검이란 그저 사람을 죽이기 위한 흉기이자 도구다! 그 외에 다른 존재이유는 필요 없다!!”
“쯧쯧, 당신의 검론은 그 정도 수준인가······. 승부를 내기 전에 상대와 검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은 내 신조다. 하지만 당신과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죽어라!!!”
캉!!!
강문기가 검을 누르는 압력이 점점 더 강해졌다. 천근추의 수법을 응용해 검에 중(重)의 묘리를 더하는 것이다. 그런 강문기에 대항해 사휘령은 검기를 날렸다.
“음양십자검!!!”
“큭!!”
강문기는 순식간에 검을 맞댄 것을 유지한 채로 옆으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사휘령의 검기가 자신의 검을 뚫고 그대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검기를 운용하고 있지 않았다지만 중검의 묘리를 운용하고 있는 자신의 검을 뚫고 검기가 날아오자 강문기는 움찔했다.
“생각보다 제법 하는군! 하지만 이건 어떻소!!!”
“네놈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마 검을 휘둘렀을 나다!! 어디서 함부로 감히 검을 논하는 거냐!!!”
쾅!!!
중검과 중검이 맞부딪치며 굉음을 내었다.
검을 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보통 일반적인 검보다 더 빠르게 운용하면 쾌검이라고 하고, 느리지만 장중하고 무거운 맛이 있는 운용법을 중검이라고 한다.
그러나 각자 그 특성만 다를 뿐 어느 하나가 무조건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사휘령은 상대가 중검의 묘리를 살려 계속 공격하자 자신도 중검의 묘리로 맞섰다.
“후후, 중검으로는 자신도 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건가?? 과연 그 정도가 상당하군. 하지만 이건 어떨까!!!”
“!!!”
강문기의 검이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들어오며 사휘령의 목을 노렸다.
강문기가 지금 쓰고 있는 방법은 중검과 쾌검의 신속한 조화다.
중검이었던 것이 쾌검으로 변하고, 쾌검이었던 것이 중검으로 순식간에 변하는데 그렇게 하니 중과 쾌의 묘리가 거의 같은 순간에 검에 실려 매우 막기가 까다로워지는 것이다.
이것을 막으려면 상대보다 더욱 무겁게, 혹은 더욱 빠르게 검을 휘두르던가 아니면 그 변화를 정확히 읽어나가서 상대보다 앞서야한다.
상대방의 변화보다 빠르게 이를 예측하고 빈틈을 찔러 승기를 잡아야하는 것이다.
사휘령은 압도적인 무거움이나 빠름보다는 상대방의 변화를 예측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점도 쉽지 않았다. 본래 이런 경우엔 예측하는 쪽보다 행동하는 쪽이 더 빠른 것이다.
예측하는 쪽은 상대의 어떤 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긴장하고 한 박자 늦게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공격하는 쪽은 그저 마음껏 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되므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사휘령은 잠시 대응을 유지하다 상대방의 공격을 완전히 읽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반격에 들어갔다. 수비는 도외시하고 완전히 공격에만 들어간 것이다.
상대의 목을 향해 찌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목에도 검이 날아오는 것을 본 강문기는 기겁해서 몸을 돌렸다.
빙그르!!!
‘이 자식, 방어를 안 해?!’
검뿐만이 아니라 모든 병장기를 다루는 대결에서 방어를 하지 않는 것은 금기이다.
맨손끼리의 대결이면 수준이 비슷할 경우 잠시 방어를 소홀히 해도 그리 치명적인 상태에 쉽게 빠지진 않는다.
하지만 병장기를 다룰 경우, 특히 둔기가 아닌 날붙이를 다룰 경우 조그마한 상처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출혈이 일어날 수 있고 상대가 독이라도 발라놨을 경우 아주 작은 상처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상대에게 공세를 완전히 밀리더라도 보통 방어에 치중하지 이렇게 생명을 도외시하고 공격하지는 않는다.
이 수법은 어차피 죽을 거 상대나 같이 데리고 가자는 동귀어진의 수법인 것이다.
“못이길 것 같으니 같이 저승길 동무나 하자는 건가!! 당신의 검기는 상상 그 이상으로 최악이군!!”
“아가야,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구나······.”
“뭣??”
사휘령의 기세가 갑자기 스산해졌다.
“검이란 상대와 자신의 목숨을 저울에 놓고 논하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지······. 사소한 상처는 입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누가 더 먼저 상대방의 목숨을 꿰뚫느냐하는 것이다. 생사를 도외시한 싸움을 반복했다면 그런 것쯤은 알 터!!”
“뭐라고?!”
강문기도 그런 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 위구르 자치구에는 아직까지도 방사능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마교의 잔당들이 남아있었다.
그 자들은 매우 지독해 자신들의 생명을 도외시하고 아주 매섭게 공격을 감행하는 특성이 있었는데, 지금 사휘령의 검법이 그와 비슷했던 것이다.
“네놈, 마교의 잔당이냐?”
“우리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알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아니란 것쯤은 알 텐데.”
“그럼 마교의 잔당에게서 검법을 배웠나?!”
“나에게는 우리 사씨 세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검법이 있다. 다른 검법은 필요 없다.”
“!!”
확실히 쪽방촌 무림인들의 우두머리격인 진룡의 황룡검법은 강력하다.
사휘령 역시 그와 대련해보았지만 황룡검법을 펼치는 진룡은 자신의 위라고 판단했다.
그것이 황룡검법 자체의 강력함인지, 진룡의 강력함인지 아님 둘 다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휘령은 자신의 음양쌍검을 버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황룡검법을 배워볼 생각이 없나? 사용하지 않아도 익혀둔다면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걸세. 적어도 자신의 검법이 더욱 넓어질지도 모르지.’
‘괜찮습니다, 진 대협. 저는 저희 세가의 음양쌍검만으로 승부하겠습니다.’
‘내가 괜한 실수를 했군 그래. 자신의 검법에 자신을 가지는 것도 무인의 도리 중 하나지. 그대로 계속 정진해보게. 언젠간 큰 성과가 있을지도 모르지.’
‘감사합니다.’
그 같은 대화가 있었던 지가 언제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오래되 기억조차 채 나지 않았는데 그동안 나이든 진룡이 오히려 검을 버리고 붓을 사용하는 필법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 반면 자신은 전혀 발전이 없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사휘령 역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지만 그가 느끼기에 자신의 발전은 너무 느렸다. 물론 다른 이들도 전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때 강문기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네가 사휘령이랬나?? 몰락한 사씨 세가의 후손이군······. 아마도 네가 마지막 생존자겠지?? 그리고 너의 죽음으로 인해 사씨 세가도 여기서 끝날 것이다.”
“사씨 세가가 마지막이라고?! 그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
콰아앙!!!
사휘령의 몸에서 은빛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내공을 전개했나!!!’
저런 기류 현상은 절정의 고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특징 중 하나다.
육안으로 확연히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사람마다 그 특징이 다른데 사휘령은 은빛 기류로 몸을 감싸며 돌진했던 것이다.
“사씨 세가가 멸망할 일은 없다!! 내가 살아있는 한 그건 절대적이다!!!”
“그러니까 너를 죽여주겠다!!!”
쾅!!!
강문기와 사휘령의 검이 맞섰다. 사휘령이 전력을 다 끌어올렸지만 강문기 역시 밀리지 않았다. 그도 10성 공력을 사용하여 사휘령의 검을 막고 있는 것이다.
사휘령이 전력을 다해 미친 듯이 쌍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강문기의 검은 밀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사휘령도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왜 외검술은 쌍검술에 밀리지 않는 걸까??’
그도 이상하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왜 검을 하나만 휘두르는데 두 개를 동시에 휘두르는 상대에게 밀리지 않는 걸까??
모든 병기 중에서도 오직 검만 그런 현상이 유독 두드러지게 강했던 것이다.
과거 강호에서는 검을 제일 많이 병기로 사용했지만 창이나 도를 사용하는 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검과 비슷한 도 역시 비슷한 현상을 보여주지만 창이나 다른 병기의 경우에는 외팔의 고수 전설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오직 외팔로 독수검법을 펼쳐 천하를 평정한 검마의 얘기 정도가 들려올 뿐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매우 이상하긴 했다. 유독 검만이 그렇게 특이하단 말인가??
그때 사휘령은 밀리기 시작했다. 잠시 잡생각을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이 강문기의 검법이 정교한 것이다.
공안 무림맹의 새로운 무림인들은 쪽방촌 무림인들에 비해 나이는 어렸지만 그 집중도가 달랐다.
쪽방촌 무림인들이 무공을 수련함과 동시에 얼마 모이지도 않는 내공 역시 수련해야했던 반면에, 공안 무림맹의 무림인들은 내공을 포기하고 온전히 그 무공에만 정신을 쏟았다.
그리고 나중에 내공은 마환단으로 얻고 무공 초식만을 집중적으로 연습했으니 그 정교함은 절대 쪽방촌 무림인들에게 밀리지 않는 것이다.
공안 무림맹 요원들에 비해 나이가 적게는 세 배에서 많게는 다섯 배 이상까지 차이가 나는 최고령 진룡이나 제갈의, 상관인 등은 모르겠지만 하홍휘나 사휘령, 소형승은 두, 세배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니 무공 초식의 완성도만 높고 보면 의외로 크게 밀리지 않는 것이다.
공안 무림맹 요원들은 쪽방촌 무림인들보다 초식에 들인 시간이 두 배 이상이니.
게다가 그들의 성취를 대륙최고고수인 파천황이 봐주었기에 더욱 그런 것도 있었다.
진룡 등도 사휘령이나 원륭 등의 성취를 꾸준히 지켜봐주고 대련을 통해 수련을 해주었지만 초절정고수인 파천황이 봐주는 것보단 아무래도 못미친다.
절정과 초절정 사이에는 엄청난 벽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룡 등이 절정의 벽을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당국의 추적을 피해 계속해서 도주, 은신해야 하므로 온전히 수련에 집중할 수 없는 쪽방촌 무림인들과 달리, 공안 무림맹 요원들은 최고의 환경에서 수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영약이나 다름없는 마환단을 제공받고 실전경험을 위구르 자치구 등에서 쌓으며 그 성과는 파천황이 봐주는 것이다. 그러니 강할 수밖에······.
그들의 강함은 2, 30대의 청년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사휘령 역시 이 같은 점을 대략 짐작했다.
‘이들이 자신 있게 오늘 나타난 이유가 있구나!! 과거 문화대혁명 때 공안 무림맹의 고수를 몰살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오늘 당당히 나타나더라니!! 오늘은 길보다 흉이 더 많을 날이로다!!’
사휘령은 죽음이 두렵진 않았다. 그런 건 예전에 각오한 거니까. 하지만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가는 건 두려웠다. 그의 사명이란 무너진 세가의 복구가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지나가버렸다. 자신의 세가의 운명은 이미 옛날 옛적에 끝난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이미 무너진 세가의 복원에도 힘쓸 생각은 없지만,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죽는 것은 두려웠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강문기의 검이 너무 만만치 않았다.
“맹공위(猛攻爲)”
카가각!!!
강문기의 검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사휘령을 난도질했다.
그 바람에 사휘령은 검마저 놓치고 피투성이가 되어 비참한 신세로 뒤로 나동그라졌던 것이다.
털썩!!
“검의 명가였던 사씨 세가 최후의 생존자도 이 꼴인가······. 명가의 몰락은 언제나 가슴을 아프게 하는군······.”
빈말이 아니라 이건 진짜였다. 강문기는 위구르 자치구에서 마교의 잔당들에 대항해 싸워왔는데, 마교 역시 세월이 흐르다보니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새로운 시대의 마교인들은 돌연변이나 장애가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기존의 마교인들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핵실험장이 되어 방사능 천지가 되었어도 내공을 익히고 있으므로 무사했다.
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날 때부터 그런 방사능을 가지지 못해 당연히 면역이 아니었다.
부모가 내공을 익힌 무림인이면 다행히 그런 악영향에도 면역이 되지만, 만약 부모가 무림인이 아닌 자가 뒤늦게 내공을 익혀도 이미 생긴 돌연변이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오직 악화만 막을 뿐. 과거 그 무공의 심오함과 정순함만을 따지자면 오히려 어지간한 정파 무림인들을 능가한다던 마교인들은 온데간데없고, 전장에는 온갖 돌연변이를 가진 자들만 가득하자 그들을 상대하는 강문기도 마음이 찝찝했다.
실력이 아닌 타고난 조건으로 이긴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문기는 내뱉었다.
“당신은 내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검사들 중 최악의 인간이오. 별다른 장애도 없는데 그 나이 먹고 이렇게나 약하다니!! 반성하시오!!”
그리고 강문기는 사휘령의 음양쌍검 중 하나인 떨어진 막야를 집어 천천히 살펴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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