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특진
진룡의 상대는 화산의 장문환이었다.
“화산파의 무공은 익히 잘 알고 있지. 자네를 가벼이 보지 않겠네.”
“그러는 게 좋을 거요.”
“······.”
장문환은 들고 있던 검을 양손으로 잡고 수평으로 눕혔다. 그 자세만을 보고 진룡은 상대방이 대단한 검의 고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수!!’
수평 베기나 수직 베기라는 건 의외로 힘들다. 사람의 신체구조는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베는 사선 베기를 하는데 가장 적합하고, 실제 그 위력도 가장 큰 것이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그런 사선 베기만을 주구장창 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수직 베기나 수평 베기 역시 필요한데, 훈련이 돼있지 않은 검사는 그런 사선 베기가 아닌 다른 베기를 할 때 미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근육에 거슬리는 동작을 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이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수직 베기는 그나마 낫지만, 수평 베기는 인체가 할 수 있는 베기 자세 중 가장 불편한 자세중 하나인 것이다.
중력의 도움을 받으며 내려칠 수 있는 사선 베기나 수직 베기와는 달리, 수평 베기는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고 특히 양손으로 수평 베기를 하면 어느 방향으로 하든 한쪽 팔이 거슬린다.
차라리 양손이 아닌 한손으로 하는 게 수평 베기는 더욱 쉬울 지경이었는데, 그런 수평 베기 자세를 자연스럽게 잡으니 그것만 봐도 진룡은 장문환의 경지를 알 수 있었다.
‘검사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군!!’
진룡은 망설이지 않고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고색창연한 느낌의 보검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검집에서 뽑아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장문환은 물었다.
“당신이 무리의 우두머리인 진룡 아니오??”
“우두머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진룡은 맞네.”
“듣기로 진룡은 검을 안 쓴지 20년이 넘었다고 하던데······.”
“그런 시절도 있었지. 하지만 그것은 내 오만임을 깨달았네.”
“오만??”
“한때 난 더 이상 검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에 빠져, 검 대신 붓이나 장 만으로 적을을 상대했지. 하지만 그건 오만이었어. 검으로 상대하면 더 쉬울 적들을, 어설픈 붓 같은 걸로 상대하니 대응이 더 어려워졌네. 만약 내가 계속해서 검을 들었다면 우리들도 좀 더 피해를 덜 입었겠지.”
“자신이 검을 들었다면 피해를 덜 봤을 거라는 것이 더 오만 아니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걸 확인하는 건 자네 몸일세. 어디, 직접 확인해보겠나??”
스윽. 가볍게 검을 휘두르고 자세를 잡는 진룡을 보고, 장문환은 오한이 들었다.
‘검귀!!!’
진룡은 장문환이 무림에 나와 본 검사들 중 가장 충격적인 무인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데 온 몸에서 기세가 나와 무형의 기운으로 장문환을 압박했던 것이다.
그 기세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했고, 반대로 맹렬하게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장문환은 어떤 상태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경력의 수발이 신의 경지에 다다랐군. 조금만 방심해도 단번에 공력을 뿜어내어 날 격살하겠다는 의도다. 나도 처음부터 전력으로 승부를 봐야겠구나!!!’
장문환은 전신의 공력을 12성으로 올렸다.
화르륵!!! 불타는 듯한 자하신공의 기운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보랏빛 기운이 온 몸을 감싸 단단하게 호신강기를 형성했던 것이다.
“좋은 내공이로다······.”
진룡은 한 마디 내뱉고 곧바로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챙!!
그러자 장문환 역시 곧바로 받아치며 공세를 전개한 것이다.
채채챙!!!
두 사람의 검법은 절정의 경지에 달한 터라,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진룡은 수십 년 동안 절정무공을 연마한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장문환 역시 20살부터 최근 10년 동안 위구르 자치구 등 분쟁지역을 전전하며 무공을 연마한 실력파였다.
오히려 중국 정부에 쫓기느라 최근엔 실전 경험이 띄엄띄엄 있는 진룡보다 감이 더 좋은 것이다. 실전을 반복해서 온 몸의 감이 다 살아있었는데, 진룡 역시 그것을 느꼈다.
‘젊은 친구라 그런지 기세가 좋군······. 게다가 이쪽은 녹슬었는데 저쪽은 최근까지 실전을 반복해온 걸로 보인다. 좋아, 몸을 좀 풀어볼까??’
채챙!!
다시 한 번 검격을 교차하며 두 사람은 스쳐지나갔다. 진룡은 노련한 무인답게 승부를 서두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다.
승부란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어 이길 때가 되면 서두르지 않아도 이기고, 서두르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수십 년 동안 수도 없이 해온 터라, 진룡의 검격은 담담하기 그지 없었다.
반대로 장문환은 태산과도 같은 상대의 기세에 압박감을 느꼈다.
‘뭐 이런 늙은이가 있지?? 파천황 부부장만큼은 안 되어도 나름 한 가닥 하는데?? 과연 20년 넘게 중국 정부로부터 도망 다닌 이유가 있구나!!’
사실 의화단 운동 때부터 치면 거의 90년을 도망 다닌 것이다.
의화단 운동 때는 청나라와 서구 열강의 추적을 피해 잠적했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해서 반정부 운동을 벌이며 도망 다녔는데 그 끈질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장문환은 그래서 진룡의 검에서 태산 갚은 압박감을 느낀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한다고 하지······. 이 자의 인생이 이 검에 온전히 드러나는구나!!!’
캉!!
두 사람은 손목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검을 부딪쳤다.
둘 다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어서 어지간한 충격에는 자동으로 면역이 되었는데, 대체 얼마나 강하게 쳤는지 그 반탄력에 손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나 장문환은 눈에 띄지 않게 손목을 한번 으쓱한 후,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여기서 손목이 아프다고 대놓고 주무르는 건 하수다. 고수는 상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주지 않는 것이다.
카카캉!!!
두 사람은 숫제 다른 사람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검을 겨루었다.
그 결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 눈에는 거의 뭐가 번쩍! 하는 수준으로 밖에 보이지 않은 것이다.
오늘 이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대결 중 가장 빠른 속도전이었다.
“자넨 뭔가 보이나?”
“아뇨, 거의 안보입니다. 뭐가 번쩍번쩍하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군요.”
“나도 그렇네. 저 정도 무인들이 아직도 남아있었다니, 과연 공안의 비밀병기라 할 수 있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며, 천안문 광장에 투입된 인민해방군의 지휘관과 그 부관은 말했다.
직접적으로 시민들을 진압하는 인민해방군 졸개들과는 달리, 이 둘은 전체적인 상황을 지켜봐야 하므로 직접 참가하지는 않는 것이다.
어차피 시민들의 진압은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 두 사람은 각종 무림인들이 서로 대결을 펼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진룡과 장문환의 대결이었다.
“누가 이길 걸로 보십니까?”
“글세······. 패기나 젊음으로는 저 청년이 나아보이지만, 늙은이도 한 가닥 하는군. 과연 중국 정부로부터 살아남은 비결을 알겠어.”
“저들은 오랫동안 그런 반정부 행위를 계속한 겁니까??”
“그렇다고 하네. 나도 이번 작전 때문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들은 20년도 전에 일어난 문화대혁명 때도 활동했다고 하더군. 심지어 그 까마득하게 옛날에 일어난 의화단 운동 때부터 활동하던 무림인도 있다고 들었어.”
“의화단 운동이면 거의 90년 전 얘기 아닙니까?? 그때 활동했다고 해도 아무리 적어도 20살은 돼야했을 텐데요.”
“그러니 지금은 110살 가까이 되었겠지.”
“무섭군요. 인간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는 겁니까??”
“살아있으니 지금 눈앞에 있지 않겠나. 아무튼 대단한 자들이야. 저러니 일개 개인으로 일인군단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를 알겠어.”
“아무리 그래도 일인 군단은 좀 무리가 아닙니까?? 군단이란 건 장난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든 일개 군단 규모의 병력이면 전쟁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일개 군단이란 건 비유지만······. 그들이 그만큼 강력한 전력이란 건 분명해. 생각해보게. 저 정도 전력을 가진 무림인이 야밤에 부대에 쳐들어와서 조용히 기습을 하고 다니면 막을 수 있겠나?? 온 사방이 암흑천지인데 소리 소문도 없이 목을 따이는 병사들이 부지기수일 걸세.”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정면으로 상대하면 저 자들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공안의 특수부대나 인민해방군 모 부대가 차출되어 저 자들의 진압에 나선 적이 있다고 하네. 하지만 총기와 폭약을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전멸했다고 하더군.”
“모두 전멸했단 말입니까??”
“저 자들은 단순한 무림인이 아니네. 총기와 폭약에 대해 상세한 지식을 알고 있고, 그런 현대병기와 현대전술을 쓰는 군대에 대한 대응법이 탁월하네. 괜히 정부나 공안으로부터 수십 년 간 도망쳐 다니는 게 아니야.”
“하긴······.”
말을 마치며 부관은 권총을 꺼냈다.
“뭐하려는 건가??”
“저 자를 노려 권총을 쏴보겠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틈이라면 절대로 피하지 못할 겁니다.”
“저렇게 빨리 움직이는 자를 권총으로 쏘겠다고?? 가만 놔두게. 그러다 아군에게라도 맞으면 자네도 책임을 피하지 못할 걸세.”
“저는 사격으로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전 전 하달된 문서의 무림인 대응법을 보면 무림인의 호신강기란 것도 총알엔 면역이 아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잘 맞추기만 하면 적 전력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귀관······. 아니, 해보게.”
지휘관은 말리려다 그냥 놔두었다. 그 역시 무림인을 총으로 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내심 궁금했던 것이다.
부관은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진룡과 장문환의 싸움을 한동안 지켜보며 총을 겨루고 있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발사했다.
탕!!
‘맞았나?!’
지휘관이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갑자기 묘한 소리와 함께 옆에 있던 부관이 쓰러졌다.
푸슉!!
지휘관이 고개를 숙이고 살펴보니 부관은 이미 죽어있었다.
부관은 자신만만했던 것만큼 사격에는 재주가 있어 분명 진룡의 방향을 포착해 쏘는 건 성공했지만, 진룡은 곧바로 총알을 튕겨내 죽여 버렸던 것이다.
검신을 이용해 날아오는 총알을 빗겨 받아낸 뒤, 그 타고 오르는 총알을 다시 검을 휘둘러 날려 보낸다. 수십 년을 무림에서 굴러온 진룡은 암기에 대응하는 방법도 탁월했다.
본래 이것은 표창 같은 암기를 되돌릴 수 있는 수법으로서 회표류(回鏢流)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날아오는 암기를 되돌리는 것이다.
호신강기로 총알을 받아낼 수는 없지만 숙련된 무림인이라면 피하거나 되돌리는 것쯤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어설프게 총알을 발사했으니 죽는 건 당연한 것이다.
심지어 부관의 사격솜씨가 형편없어 애초에 진룡의 근처에 도달하지조차 못했다면 이렇게 당할 일도 없었는데, 어설프게 솜씨가 좋아 그는 죽어버렸다.
지휘관은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끌끌 차고 말했다.
“쯧쯧, 그러게 하지 말라니까······. 왜 하지 말라는 짓은 해서 죽고 그러나.”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과, 찝찝한 느낌이 들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걸 무시하고 감행하면 한 치의 예외도 없이 무조건 불행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군에 몸담고 있는 자라면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지키지 않았으니 죽는 건 당연했다. 지휘관도 어깨를 으쓱했다.
“찝찝한 느낌이 들면 하지 말게. 그게 인생의 법칙일세. 아, 이미 죽어서 들을 수 없나? 이봐, 거기 이리 와봐. 자네는 1계급 특진일세. 전임자가 죽어 부관 자리가 비었거든.”
“예? 아, 네!!”
불려온 장교는 잠시 얼떨떨해 하다가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경례를 올렸다. 이런 전쟁터나 같은 상황에서는 전임자가 죽어 승진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이다.
지휘관은 죽어나자빠져 있는 부관, 아니 전 부관에게도 천천히 말했다.
“자네도 특진일세. 공무 중 사망이니 2계급 특진은 바랄 수 있겠군. 덕분에 자네 가족은 여생이 불편하지 않겠어.”
“······.”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자고로 죽은 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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