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악수와 중재
“저 자들은??”
원륭의 물음에 진흑창이 답했다.
“이런이런, 진짜 다른 경기들을 안 봤나보군······. 저 날카로운 눈의 사나이는 악무양이다. 손도끼의 고수지.”
“손도끼??”
“아아. 원래는 나무꾼이었나 뭔가였다는데, 일화가 섭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양손에 짤막한 손도끼를 들고 싸우는데, 그걸로 지금까지 싸우던 놈들의 대가리를 모두 쪼개버렸지.”
“자비가 없는 놈이군.”
“저 유연하면서도 잘 단련된 몸을 가진 자는 일지흔(一之痕). 자기 별호대로 모든 적들을 한 번의 흔적만을 남기고 모두 양단해버렸다. 별호인지 본명인지는 모르겠지만.”
“흥, 정신박힌 부모라면 그런 이름을 지어줬을 리가 있나. 아마도 별호겠지. 아무튼 그거랑은 상관없이 상당한 고수 같아 보이는군.”
“그래, 초식의 날카로움만 보자면 저 세 명중 가장 우위일지도. 그리고 마지막 녀석은 궁요(弓要)라는 녀석이다.”
“궁요??”
“그래. 그 이름대로 활을 쓰고, 정면에서 활을 쏘아 지금까지 모든 적들을 꿰뚫어버렸다. 솔직히 말해 가장 난해한 녀석이지.”
“난해하다라······.”
그러나 그 말엔 원륭도 동의했다. 활이라니?? 무림에서는 검, 창이 가장 많이 쓰였지만 그 외에도 온갖 무기가 다 쓰였다.
심지어 장강 근처에서는 그물과 단창 같은 걸 이용하는 무림인들도 있는데 그런 것에 비해서도 활을 무림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저 활에 비하면 손도끼는 양반이군. 일지흔이라는 녀석은 아마 검을 사용하겠지?”
“그래. 그 정도로 깔끔하게 적을 일격에 양단할 수 있는 무기는 검이나 창 정도밖에 없어. 실제로 봤는데 저 녀석의 무기는 검이었다.”
“활이라······.”
원륭은 묵묵히 궁요를 쳐다봤다. 그러자 궁요도 고개를 돌려 원륭을 쳐다본 것이다.
그런데 그 눈에는 어떠한 감정이나 동요도 없었다. 그저 무심히 원륭을 쳐다볼 뿐.
원륭도 무심히 그를 쳐다보는데 화구가 말했다.
“자, 그럼 대진표를 짜겠습니다. 먼저 조를 네 개로 나누고 각각 갑, 을, 병, 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시드제에 따라 4대 그룹의 총수들은 각각의 조에 한 명씩 분배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십니까?”
“없다. 아, 참고로 우리 4대 그룹의 총수들은 사전에 이 같은 연락을 받았다. 너희들 중에 이의가 있는 자들은 지금 말하도록.”
“······.”
그러나 화구와 진흑창의 말에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원륭이야 누가 붙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어차피 이들은 운에 의해 승패가 좌지우지될 수준의 실력들이 아니라 그런 건 아무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운이 작용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지, 이렇게 상위권으로 오면 운이 끼어들 여지도 없었다.
“그럼 모두들 동의하신 걸로 알고 나머지 네 자리를 채우겠습니다. 부정을 막기 위해 시드 선수가 아닌 나머지 네 분들이 각각 막대를 하나씩 뽑아 자리를 선택하겠습니다. 통 안에 든 막대에는 각각 갑, 을, 병, 정의 네 글자가 적혀있고, 그 글자가 적힌 패를 뽑으신 분은 그 조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진흑창 선수는 시드선수의 권리를 포기하고 128강부터 참여했지만 다른 재벌 총수들과 같은 처리를 하여 처음부터 네 개의 조 중 하나를 배정받았고, 본인도 이에 동의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진흑창 선수, 지금에 와서도 이의는 없으십니까?”
“없다. 어차피 누가 붙든 쓰러트리면 그만이다.”
화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통을 내밀었다.
“자, 그럼 누가 먼저 뽑으시겠습니까? 어차피 이건 누가 먼저 뽑으나 사실 별로 달라질 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했을 때는, 누가 먼저 뽑느냐를 결정하기 위해 다시 규칙을 정하면 끝이 없으므로 그냥 아무나 뽑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진흑창이 대답하고 모두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언의 긍정을 했으므로 화구는 넘어갔다.
“자, 그럼. 원륭 선수부터 먼저 뽑으시죠.”
“그럴까.”
어찌됐든 상관없는 일이라 원륭은 바로 통 속에 손을 집어넣고 패를 하나 뽑아버렸다.
그러자 그 패에는 정(丁)자라고 적혀있었다.
“정 조군.”
“예, 원륭 선수는 정 조입니다. 가장 마지막 조죠. 그리고 그 조에 이미 있던 시드 선수는······. 보다시피 일화 선수입니다.”
‘잘 걸렸다, 이 년.’
원륭은 씨익 웃었다. 일화는 그가 이 대회의 개최를 위해 네 그룹의 총수를 모았을 때부터 상당히 틱틱거리던 인간이었다.
그래서 원륭이 언젠가 한번 참교육을 해주마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걸린 것이다.
‘사실 이 대회에서 상위권에 남으면 붙을 확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넌 죽었다. 그 경기 날이 바로 네 제삿날이다.’
씨익 웃는 원륭을 보며 진흑창이 쓴웃음을 지었다. 딱 봐도 원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에 다 보였던 것이다.
“자, 그럼. 궁요 선수 뽑으시죠.”
“음.”
궁요가 담담히 패를 뽑았다. 그 패에는 병(丙)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 이건 세 번째 조인 병 조군요!! 병 조에 속한 궁요 선수의 상대는 당화 선수입니다!!”
‘당화라 흐음······. 그럼 당화와 이 녀석 중 승자가 나와 일화 중 이긴 자와 붙는 건가.’
대진표 상으론 그랬다. 솔직히 원륭은 일화에게 이길 자신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기를 통해 대체로 느껴지는 실력을 파악했던 것이다.
하지만 더욱 궁금한 것은 바로 당화와 궁요의 대결이었다.
‘당화의 무공은 암기술과 그 절기인 만천화우다. 하지만 화살로 만천화우를 상대할 수 있나??’
그것이 가장 핵심이었다. 아무리 활의 고수라 해도 상대가 권이나 검, 창의 고수라면 그나마 할 만할 것 같지만 하필 암기의 고수를 만나면 서로 상대의 무기를 쳐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일단 예상은 당화가 더욱 우세하려나······. 직접 붙어봐서 알지만 그 무공도 강하고 무엇보다 상성에서 당화가 앞설 듯 하다. 궁요라는 녀석,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상당한 무공을 가졌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 됐군.’
원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동안, 화구가 추첨을 계속했다.
“자, 남은 자리는 두 자리 뿐입니다. 악무양 선수, 일지흔 선수. 남은 건 갑 조와 을 조 뿐입니다. 누가 먼저 뽑으시겠습니까??”
“난 상관없다.”
“나도 상관없어.”
“······.”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악무양과 일지흔을 보고 화구가 말했다.
“자, 그럼 제 임의로 악무양 선수에게 먼저 드리죠. 어차피 상관없으니. 자 악무양 선수. 뽑아주시기 바랍니다.”
악무양이 말없이 패를 뽑았다. 그리고 그 패에는 갑(甲)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 악무양 선수는 갑 조군요!! 그러면 자동적으로 남은 을 조의 패는 일지흔 선수가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악무양 선수의 상대는 진흑창 선수! 일지흔 선수의 상대는 천만홍 선수가 되었습니다!!”
“호오, 자네가 내 상대란 말인가? 악수나 한번 하지. 이렇게 붙게 된 것도 인연인데 말이야.”
“······.”
악무양이 손을 내미는 진흑창을 묵묵히 바라보다 이내 자신도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 직후 악수한 두 사람의 손에서 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우직! 우지직!!!
‘이 자식들······.’
‘시작해버렸군······.’
원륭과 주변 사람들은 모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진흑창은 상대를 시험해보기 위해 악수, 즉 악력과 내력대결을 건 것이다.
그리고 악무양 역시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라 그걸 알면서도 응한 것이었다.
우직!!!
여전히 두 손에서는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악수란 것은 가볍게 보이지만 진심으로 하면 꽤나 무서운 동작이지. 요즘 사람들은 그걸 알까.’
원륭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대로 악수란 단순히 손을 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상대방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금나수(擒拿手)의 수법 중에는 악수중인 상대의 손을 제압하는 방법도 있고, 애초에 악수 자체가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하면서도 서로 무사히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끝났을 때 ‘봐라. 나는 적의가 없다.’란 뜻을 보여주는 행위란 해석도 있었던 것이다.
마치 서양에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선술집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하고 술을 마실 때, 서로 상대방이 무슨 짓을 하나 ‘지켜보고 있다.’라는 의미에서 시작한 눈과 술잔을 마주치며 하는 건배가 이후엔 그저 별 뜻 없는 일상적인 일 중 하나가 된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진심을 담으면 악수란 행위 자체도 무시무시한 공격이 된다.
실제로 악수의 연장선인 팔씨름 역시 일반인 수준이라도 전력을 다해 힘을 주거나 상대의 팔을 꺾으면 부상을 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의외로 전력으로 팔씨름을 하다 다치는 일은 많았다.
그런데 이 정도로 본격적으로 내력대결을 해대니······.
두 사람은 지금 서로의 내력을 주고받는 데다 서로가 가진 완력을 전부 다 끌어내 쓰는 수준이라 그 손에 실린 힘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때 원륭이 나섰다.
“이봐, 대결은 경기장에서 하면 되는데 이렇게 장외에서 하면 여러모로 곤란해지지. 너희한테 돈을 거는 도박꾼들은 물론이거니와 순수한 구경꾼들도 실망한다고. 이런 흥미진진한 대결을 뒤에서 우리들만 볼 수야 있나.”
“?!”
“?!?”
원륭이 온 힘을 다 주고 있는 두 사람의 손을 양 손으로 잡고 벌렸다.
그러자 주변에서 소리친 것이다.
“잠깐! 내력 대결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억지로 벌리면!!”
“셋 다 타격을 입는다!!”
뜻밖에도 지금까지 거의 말없던 악무양과 일지흔이 소리 높여 원륭을 말렸다.
그리고 궁요도 아무 말은 하지 않았으나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원륭은 아주 간단하게 두 사람을 떼어놓아 버렸다.
“자, 됐지? 그럼 뒷일은 경기장에서 계속 하자고. 이봐, 화구. 대진이 다 정해졌으니 이만 돌아가도 되겠지?”
“아, 예! 예!!”
화구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원륭은 문을 닫고 돌아갔다.
탁!!
그저 무심히 닫은 특유의 크게 들리는 문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리에 남은 자들은 각각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내력대결에 들어간 두 사람을 저리 가볍게 말리다니, 저건 엄청난 내공이나 아님 신의 경지에 다다른 내공운용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과연 8강에 오른 자. 절대 가볍지 않군.’
일지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력대결에 들어간 두 사람의 내력은 말하자면 일종의 난잡하게 묶인 끈이나 다름없다.
내력대결이란 보통 깔끔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난잡하게 이루어진다.
서로 상대의 몸속을 침입해 들어오는 상대의 내공은 막고, 자신의 내공은 침투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전신의 온 혈도에서 다 이루어진다.
그렇게 얽히고설킨 내공을 푸는 것은 당사자들도 힘들어 보통 진심으로 내력대결에 들어가면 한명이 죽어야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무림인들도 차라리 칼부림을 하지 내력대결은 잘 하지 않는 것이다.
칼을 맞아도 금창약 좀 바르고 운기조식을 하며 정양하면 급소만 치명타를 맞지 않았을 경우 낫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력대결로 온 몸의 혈도가 만신창이가 되면 살아도 정양하는데 몇 년이 걸리는 경우가 있었다. 혹은 평생 후유증이 갈지도??
그런데 그걸 저리 간단하게 풀어버렸으니, 자리에 남은 자들이 원륭에 대한 경계심이 올라가는 건 당연했다.
‘원륭.’
‘원륭인가······.’
그러나 정작 문제의 중심인 그 원륭은 대결을 말리고 곧바로 야간노점들에 들러 군것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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