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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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상인 척계광은 딱히 시류에 영합하는 분이 아니셨다. 그래서 장거정 사후 그의 부정부패로 인해 반대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비리를 찾아내려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도 털어서 나온 게 없으셨지. 그렇게 평생을 나라를 위해 바치고도 좌천을 당한 분이셨는데, 그런 분의 후손인 내가 불 보듯 뻔한 잘못된 길을 택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절강병법과 기효신서는 없다!! 대대로 전해져온 가르침은 있지만 문서로 남은 것은 전무하지!! 모두 입에서 입으로 내려져 전해져왔다!! 절강병법과 기효신서를 원한다면 청나라나 조선의 고문서라도 찾아보아라!! 차라리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 하하하하하하!!!”
척지효는 통쾌하게 웃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척지강은 처음 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항상 무술수련에만 힘쓰라 외쳤고 그런 잔소리 외에는 근엄한 모습만 보일 뿐이라 좀처럼 그렇게 통쾌하게 웃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저렇게 웃고 있으니, 어린 척지강도 잘은 모르지만 왠지 자랑스러워졌다.
아버지는 어린 자신조차 느낄 수 있는 이 괴물같이 강한 자에게 주눅 들지 않고 대담하게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척지강이 자랑스러움을 느끼는데, 그를 안고 있던 파천황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악! 악!! 아저씨 아파요!!!”
고통을 느낀 척지강은 비명을 질러댔다. 무공을 거의 익히지 못한 어린 아이가 대항하기엔 파천황이란 자는 너무나 강한 자였다.
그렇게 척지강이 비명을 지르자, 척지효는 고함을 질렀다.
“뭐하는 것이냐, 이 비겁한 놈!!! 설마 어린 아이를 핍박할 셈이냐!! 지강을 놓아주어라!!”
“후후후, 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어린아이 하나라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고문하고, 죽일 수 있지. 척계광의 가르침이 그저 구전으로 전해져 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자, 공안 수석 사범이 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애를 살리고 싶으면 병법서를 내놔!!”
윽박을 지르는 파천황이었으나, 척지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죽여라.”
“뭐라고??”
“차라리 죽이란 말이다. 내 애를 죽인다고 해서 없는 절강병법과 기효신서가 나오진 않는다. 그런데도 그 애를 죽인다면 어차피 너에게는 그냥 무고한 아이의 선량한 피가 또 하나 묻을 뿐이겠지. 이 살인자 놈!!”
“······.”
파천황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손에 쥔 척지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척지강을 척지효에게 그대로 던져버린 것이다.
툭!!
척지효가 최대한 부드럽게 힘을 죽여 척지강을 받아보니, 척지강은 이미 눈도 못 뜬 채 호흡이 가빠져있었다. 그 모습을 본 척지효는 한 마디 외쳤다.
“이 자식!!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글쎄······. 그렇게 힘은 주지 않았지만 아마도 내 한빙신공의 공력이 조금 들어갔나 보군.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조만간 죽을지도······.”
“이 자식!!!”
쐐애액!!!
방 안에서 척지효의 애검이 날아왔다. 그 모습을 보고 파천황은 순간 움찔한 것이다.
“어검술?!?”
“그래. 아직 미약하지만 난 어검술의 기초에 들어갔다. 하루하루 수련에만 매진하고 수련생들을 가르치며 조용히 살려했거늘······. 네가 오늘 내 검을 부르게 만드는구나!!!”
샤악!!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잘 관리된 검이 칼집에서 뽑혀 나왔다. 그런데 그 검을 본 파천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일본도? 아니 박도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이도저도 아닌데??”
파천황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건 당연했다.
일본도라 하면 보통 길고 날렵한 우치카타나나 타치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인데, 이 검은 길고 날렵했지만 은근히 칼끝으로 갈수록 두터워지는 중국 박도의 특징이 남아있었다.
검날의 폭이 항상 일정한 일반적인 일본도와는 좀 달랐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니 파천황으로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척지효가 말했다.
“나의 조상인 척계광께서는 왜구들의 검술을 연구하여 직접 일본도까지 사용해보셨지. 하지만 노획한 일본도는 역시 맞지 않아 중국 전통의 검술에 적합한 검의 형태와 접목시키셨다. 그것이 바로 용행검!”
“용행검!! 용행검법(龍行劍法)은 실재했군!!”
“그렇다. 이 역시 구전으로만 전해지지만 말이다!!”
척지효가 자세를 잡고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파천황은 묘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호오, 구전으로 전해진다면 네 아들 녀석 역시 알 가능성이 높겠군.”
“흥, 멍청한 녀석. 아까 내 아들에게 공력을 집어넣을 동안 너라면 충분히 간파했을 텐데. 내 어리석은 아들 녀석은 그동안 놀기에만 열중하느라 무공에 대해선 일절 공부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몸 안엔 단 한줌의 진기도 없지. 너도 알고 있지 않나??”
“······.”
그 말에 파천황은 잠시 말이 없었다. 확실히 그랬던 것이다.
최근 중국의 공업화가 시작되며 확실히 대자연의 기가 많이 흩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내공을 익힐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런데 이 아이의 몸에는 단 한줌의 진기도 없다, 정말로.
내공도 익히지 못했으니 척씨 집안에 전통으로 내려오는 가전무공 용행검법은 물론, 그 오성으론 설령 기효신서나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인 절강병법이 실재한다 하더라도 익히진 못했으리라. 파천황은 입을 열었다.
“그렇군. 결국 기효신서가 있든 없든 나는 너를 굴복시켜야 되겠군. 어차피 저 애한테서는 기대할 게 없으니까 말이야.”
“후후후. 만약에 너에게 진다면 나는 그 순간 온몸의 심맥을 끊어버리겠다. 네 말대로 기효신서가 있든 없든, 네가 얻을 것은 없다. 그저 네가 얻을 것은 나와 저 아이의 시체뿐이다!!”
“고오얀 노오옴!!!”
콰아앙!!!
파천황이 장력을 내질렀다. 겉모습은 훨씬 더 젊어 보이지만 무림인으로서의 경험이나 배분은 파천황 쪽이 훨씬 높다.
그런데 국가를 위해 봉사하라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고 죽어도 지지 않겠다는 척지효의 저 집념. 파천황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다 망해가는 무관의 관장 주제에 매우 오만하고, 시류를 파악할 줄 모른다.
그러나 척지효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저 남은 것은 조상의 뜻을 기리고 그에 부끄럽지 않게 휘두르는 단 한 자루의 검뿐!!
써걱!!
척지효와 파천황이 스쳐지나갔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척지효가 쓰러진 것이다.
털썩!!
그러나 파천황 역시 무사하지 않았다. 파천황의 목덜미 옆으로, 가느다란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어느새 그 실선에선 피가 주륵 흐르다, 갑자기 얼어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파천황은 입을 열었다.
“과연······. 척계광의 후손이라 할 만하군. 그리고 소문의 용행검법······. 왜구들을 때려잡으며 극도로 실전화 됐다는 그 소문의 검법의 위력은 진짜였나······. 덕분에 전설의 그 무공의 위력은 잘 보았다. 정말 아쉽군, 척지효. 10년만. 단 10년만 더 수련했더라면 정말로 내 목을 땄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하하하하하하!!!”
파천황은 목을 문지르며 돌아섰다. 그런 그의 뒤에서 척지효가 말한 것이다.
“파천화아앙!!!”
“호오, 아직 살아있었나. 심장을 관통 당했는데 살아있다니.”
쿨렁쿨렁. 척지효의 뻥 뚫린 심장에서 피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어린 척지강은 그 모습을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달려들어 미친 듯이 막으려 시도했다.
“아버지! 아버지!!!”
“흐흐흐, 아이야. 네 아버지는 어차피 죽는다. 그래도 네 아버지는 그 신념에 걸맞는 강인함과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다. 이 60년, 그동안 나의 몸에 생채기 하나라도 낸 사람은 네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단 한명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하하하하하하!!”
“이 개자식······.”
“뭐라고?”
“복수할 테다. 반드시 복수할거야!!!”
어린 척지강은 분노하여 외쳤다. 그 모습은 이미 더 이상 열 살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척지강은 이 사태를 계기로 어른이 된 것이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는 나이와 상관없는 법······.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되지 못하는 자들도 있고, 나이가 어려도 일찌감치 어른이 되는 자들도 있었다. 척지강은 후자였다. 파천황은 말했다.
“후후후, 어린 녀석이 참으로 갸륵하구나. 좋다. 그 의지를 봐서 네놈은 살려주지. 하지만 이 집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기효신서가 혹시라도 남아있는 건 곤란한 일. 모조리 태워주마!”
찌릿!!
파천황이 눈에 힘을 주자 그 의지만으로도 커다란 무관이 일제히 활활 타올랐다.
내가기공 최고의 수법중 하나인 삼매진화······.
보통 최상위 무림인조차도 삼매진화는 그저 서신을 태우는 것 정도가 한계이지만, 초절정 무림인인 파천황은 그 의지만으로 저택을 불사 지르고 있었다.
심지어 파천황의 최고 무공은 한빙신공이라 그 성질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반대되는 속성의 무공을 이렇게나 강렬하게 쓰다니······.
물론 양의 무공의 으뜸인 열양진경의 소유자인 강호육에게는 못 미치겠지만, 그래도 강호에 어지간한 양공을 쓴다는 자들은 모두 기가 죽어 더 이상 자신의 무공을 쓰지 못할 정도였다.
극강의 양공을 익힌 자들도 기죽고 자신의 무공을 폐할 정도로 강한 양공······.
이것이 바로 파천황의 무공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 말은 파천황을 위해 준비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잠시 척지강은 멍하니 불타오르는 무관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무공을 수련하라는 사람들을 피해 술래잡기를 하고 놀았던 무관은 더 이상 그의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그저 불타는 한줌의 잿덩어리가 되어갈 뿐.
그 순간 척지강은 누군가 생각났다.
“어머니!!!”
아마도 이 순간 어머니는 동네 여인들과 함께 수련생들은 물론 척지강과 척지효의 점심을 준비하느라 바쁠 것이다.
그렇게 부엌에 있을 확률이 많았는데 불타오르는 저택에서 아무도 뛰쳐나오지 않았다.
아니, 뛰쳐나오지 못했다. 불길이 너무 거세 미처 나오지도 못하고 그 순간 타죽었던 것이다.
“아아악!!!”
“아악!!!”
사방에서 온갖 비명소리만 들려왔다. 불타는 저택. 들려오는 비명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척지강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를 찾아 뛰어 들어가려는데, 그 순간 누군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척지강이 고개를 돌려보니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인 척지효였다.
“아버지! 살아계셨군요!!”
“아니다, 지강아. 나는 곧 죽는다. 그보다 할 말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지강아. 너의 어머니는 이미 죽었다. 아무도 저 불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만 잊어버려라!!!”
쿠웅!! 척지강에 머리에 거대한 충격이 내달렸다. 어머니가 죽었다고?? 그러나 척지강은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에요 아버지, 아직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들어가면 아마!!”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지강아. 내가 외우라고 한 문구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느냐??”
“아버지 그보다 중요하다는 게 뭐에요!! 설마 어머니가 중요하지 않다는 거에요!!”
“내 말을 들어라, 지강아!! 이제 시간이 없다!!”
척지강은 다시 한 번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에게 윽박을 지른 적이 없었다.
그는 늦둥이에 외동이라 매번 애교만 부리면 아버지는 허허 웃으면서 아무 말도 못했고, 그는 그 점을 자주 이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강하게 나오다니.
척지효는 낮은 어조였지만 강하게 말했다.
“지강아. 다시 한 번 말하마. 네 어머니는 이미 죽었다. 저 불길에선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나마 네가 살아남고 혹여 복수라도 하려한다면 내가 가르친 구절들을 전부 기억해야 한다. 그것을 잊어버려선 안 된다. 알아들겠느냐??”
“······.”
“알아듣겠냐고 물었다!!”
“네! 네!!”
척지강은 울면서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무공을 배우게 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항상 척지강이 도망쳐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몇 개의 기나긴 문구들을 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바로 전설의 용행검법과 기효신서의 구절들이었던 것이다.
- 작가의말
최근 화에서 나온 척지강이나 척지효는 모두 실제 척계광과 그의 부친인 척경통의 관계를 참고한 것입니다.
실제 척계광 역시 늦둥이였고, 척지강 역시 늦둥이로 설정되었습니다.
부정부패 없고 능력 있는 무인이었던 척계광이 모함으로 인해 좌천당한 것이나, 그 후손으로 설정된 척지효-척지강 부자의 비극 역시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척계광의 경우 그 능력이나 업적에 비해 묘하게 현대의 매체에 등장하는 경우가 드문데, 그나마 2015년에 항왜영웅 척계광이라는 이름의 드라마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척계광은 젊은 시절 여자문제 때문에 시름하고 그런 척계광을 아버지인 척경통이 꾸짖으며 정신차리라하는 장면이 나온다는데, 실제 역사속에서 척계광이 그런 모습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척계광하면 그저 왜구들 때려잡기의 달인이라는 정보만 나와서······.
아무튼 제 작품의 척지강 역시 드라마 속 척계광처럼 어린 시절 약간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척계광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니 드라마속 척계광도 그런 비슷한 모습이 있어 참 묘하더군요. 물론 척계광도 사람이라 젊은 시절에는 좀 방황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다만 실제 척계광은 21살의 젊은 나이로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한 터라 아마 젊은 시절 여자문제로 인해 고민하는 것은 그저 드라마 속의 창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시험에 합격했는데 과연 그런 문제로 방황을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척계광의 이후 행적이나 보여준 능력들을 보면 진짜로 그런 방황을 했더라도 합격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것 같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외 본편에 등장하는 용행검법 역시 실제 척계광이 만들었다는 검법인데, 척계광이 왜구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검술을 파악하여 그에 대항하는 초실전적인 검법으로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편에서 절강병법과 기효신서를 따로 구분하기도 했는데, 본래는 절강병법은 기효신서 내의 일부분이라고 하기도 하고 기효신서 그 자체의 다른 이름을 절강병법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절강병법이 포함된 기효신서의 이론을 바탕으로 척계광은 확실히 왜구토벌의 업적을 올렸고, 절강병법을 익힌 병사들이 임진왜란에도 투입되어 조선은 그 효과를 보고 절강병법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이여송을 꼬드기다가 군사기밀이라 해서 안 된다고 퇴짜를 맞으니 이후 이여송의 부관을 포섭하여 기효신서를 얻어내고, 또 그 이론을 완전히 파악하기 힘들어 마찬가지로 이여송의 부관인 낙상지에게서 완전히 그 이론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효신서라는 이론이 굉장히 필요한 말만 초 간략하게 적혀있어 실제 그 이론에 정통한 낙상지에게서 구체적인 기효신서에 나오는 병법들의 사용법을 배웠다는 말이지요.
이 낙상지라는 장수는 이여송에 가려져서 은근히 별로 유명하진 않은데, 이런 낙상지 외에도 천만리 등 이여송 밑에는 그늘에 가려진 유능한 장수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낙상지 같은 경우에는 그저 명령에 의해 조선으로 파병을 온 것이 아니라 조선쪽에 많은 조언도 해주고, 총검술, 검술, 포술, 화약제조법을 알려준다든지 그 당시 문신인 이시발(李時發)에게 고서 수 천 권을 줬다는 얘기도 있고, 천만리 같은 경우에는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조선 땅이 마음에 들어 귀화하고 관직을 받아 잘 먹고 잘살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 천 씨가 일천 천(千)씨와 하늘 천(天)씨가 있는데, 하늘 천 씨는 거의 드물고 대부분 일천 천 씨라고 보면 됩니다. 가령 연예인 송지효씨(본명 천수연)가 이 임진왜란 후에 귀화한 천만리 장군의 후손이지요.
아무튼 기효신서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 기효신서는 이후 명나라 및 청나라는 물론 조선에도 군사이론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고, 이미 언급했지만 실제 청나라에서는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할 때 증국번이라는 자가 이 기효신서의 병법을 이용했고, 조선에서도 무예도보통지를 만들 때 절강병법과 기효신서의 내용을 참고함은 물론 군제개편을 하는데도 이용하기도 합니다.
당시의 조선은 궁병은 강했으나 근접 병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전투에는 약했던 편이라 척계광의 절강병법을 통해 이를 보완한 것이지요. 참고를 많이 한 탓에 실제 서술방법도 기효신서와 무예도보통지 및 그 이후의 무술교본은 대개 비슷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지식이란 끊임없이 연계가 돼있듯이, 이 척계광이라는 장수를 파고들면 반드시 조선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의 기효신서나 그와 관련된 낙상지 등의 인물들도 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본편에서 모두 다루기는 힘들어 여기에 밝히는 바이고, 본편에 다시 정리가 되어 나올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러한 배경을 아시면 더욱 이해가 수월해지실 겁니다.
아, 그리고 문피아에 글을 쓴지가 2년이 좀 넘었는데, 처음으로 후원금이라는 걸 받아봤습니다.
감개무량하더군요. 솔직히 글을 쓰면서 참으로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설명은 어느 정도나 해야 하는가? 무협소설이자 역사소설로서 무협의 비중은 얼마나 잡아야하고 역사적인 사실의 내용은 얼마나 다루어야 하는가? 그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아무튼 계속해서 봐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하고, 후원금 보내주신 분에게도 감사합니다.
더 잘 쓰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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