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 반박불가
진흑창이 실려 나가고 화구와 천만홍, 당화가 우승을 축하하러 나타났다.
그러나 그러도록 경기장에 가득한 환성과 야유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당화가 나선 것이다.
“잠깐, 이제 슬슬 멈춰주지 않겠나?? 자신들의 수장이 우승하지 못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알겠지만 여기선 우선 축하를······.”
“뭐가 축하냐, 할망구!!!”
“애초에 네년은 싸워보지도 않고 기권했잖아!!”
그렇게 야유가 날아오는 순간 극소수의 인간들만이 감히 알아볼 수 있을까 말까한 미세한 침이 급속도로 발출됐다. 그리고 야유를 지른 인간들만 정확하게 쓰러졌던 것이다.
“아아악!!!”
“윽!!!”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자들도 많았는데, 당화가 재차 한 번 더 침을 날리려는 순간 천만홍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상심은 이해한다. 하지만 여기선 우승자를 먼저 축하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홍콩인들로서의 자부심이라 생각한다.”
천만홍의 그 말에도 불구하고 ‘뭐가 홍콩인의 자부심이냐!!’ ‘우리 수장님 돌려내!!!’ 등 계속해서 야유는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야유의 빈도수는 확실히 줄어든 것이다.
진흑창의 흑룡 그룹 조직원들의 경우 힘을 숭상하고 진흑창처럼 화통한 기질을 가진 자들이 많아 사실상 이미 납득한 상태였다. 물론 마음속 어딘가 가시지 않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리고 천만홍과 당화의 조직원들도 각각 자신들의 수장이 말하자 모두 납득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아직도 야유를 퍼붓는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자들은 대체 어느 조직의 소속원일지······.
아무튼 계속해서 그치지 않는 야유에 원륭이 입을 열었다.
“아, 아. 모두들 잘 들리나??”
“그래, 대답해라, 이 사기꾼!!”
“대체 어떻게 그 쟁쟁한 네 명의 홍콩4대고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거냐!! 분명 무슨 독이나 암기를 쓴 거지!!”
“······.”
원륭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 대결은 신성한 대결이었다. 이 대결뿐만이 아니라 128강에서부터 올라온 모두의 대결이 전부 그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는 대결이었지. 무림이란 무엇이냐? 무공이란 무엇이냐? 사실 무림은 이 세상 그 자체나 다름없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어도 인간사는 세상이 험난하고 고달픈 것은 다름없지. 무림인들도 마찬가지다. 비록 그 대접이 박하고 형편없는, 사회의 이단자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 자신의 정의를 위해 말없이 구슬땀을 흘리는 자들이 존재한다. 나도 그들 중 한명에 불과하다. 아무 보답도 없고, 대가도 없는, 남의 일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
“······.”
어느새 경기장은 조용해져 있었다. 그리고 원륭의 사정을 아는 자들은 모두 그 숙연함에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헐크G등 5인을 비롯해서 홍콩4대 고수들도 모두 원륭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일행에 합류하며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아무 득 될 것도 없는 중국인들의 자유를 위해 공산당 및 중국 정부와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다. 그 뒤에 남은 것은 부모형제와 동료들의 죽음뿐.
그러니 그 사정을 아는 자들은 절대 그에게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경기장에 있는 자들도 그 사정은 모르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를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
이것은 그저 25년 넘게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온 그저 지치고 외로운 한 남자의 독백일 뿐이다. 하지만 그 여파는 대단했다.
계속해서 야유를 퍼붓던 누군가의 세력들도 이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야유를 퍼부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야유를 퍼붓는다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
사정도 모르는 자들에게도 원륭이 싸워온 25년의 진심은 먹혀들었다. 원륭은 조용히 말했다.
“어느새 야유가 그쳤군. 모두들 양해 고맙다. 오늘의 싸움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자세한 사정을 아는 자들도 있고, 모르는 자들도 있겠지만 언젠가 각 그룹의 수장들로부터 공지가 갈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적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고, 그 적은 너무나 거대하고 강대하지만 반드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대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너희들의 목숨과 달려있기에.”
그 순간 사정을 모르는 자들도 눈치가 빠른 자들은 알아들었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거대하고 강대한 적이란 누구겠는가?? 바로 중국이다.
오히려 대만이야 약소인 세력으로 본인들이 먼저 쳐들어오거나 할 리는 없다.
사정은 다르지만 그것은 소련이나 미국마저도 마찬가지였다. 홍콩의 가장 큰 적은 중국인 것이다.
일국양제가 끝난 후 언젠가 완전히 중국의 품으로 돌아갈 홍콩은 크나큰 벽에 직면해야만 했다. 점점 성장해가는 중국의 도시들로 인한 홍콩의 줄어드는 입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 영국의 통치 아래 일반적인 민주주의 사회의 자유를 누린 홍콩 시민들이 억압된 통제 사회 중국의 자유를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사람은 억압된 곳에서 자유를 얻게 되면 살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참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바다 위로 끌어올려진 물고기와 같은 꼴이 나겠지.
아무리 아가미를 놀려도 산소는 들어오지 않고, 그대로 메말라 죽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선 중국에 복종해 작디작은 어항에라도 들어가야 하는 법.
그러나 모든 홍콩인들이 납득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충돌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원륭도 그 점을 깨달은 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덧붙여 말을 끝냈다.
“재앙은 이미 다가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준비하는 것 뿐. 만반의 모든 준비를 갖추고 그러고도 막지 못할 미증유의 재난 앞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피나는 눈물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비록 막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한 모든 준비를 한다면 후회는 없을 것이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우승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앞이다. 모두들 이 대회를 바탕으로 단합하여 다가올 재앙에 대비하길 바란다. 이상이다. 감사한다.”
그렇게 원륭은 우승소감인지 아닌지 모를 알쏭달쏭한 소감을 남기고 떠났다.
그 뒤엔 원륭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과, 그 의미를 알기 위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자들만이 남았던 것이다.
“야~ 원륭, 축하하네. 설마설마했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우승할 줄은 몰랐어. 이걸로 자네에게 진 내 체면도 덩달아 사는구만! 하하하!!!”
헐크G의 얼굴엔 웃음이 가능했다. 애초에 이 대회에 초빙당할 때부터 그는 진흑창과 한번 겨루어 지긴 했지만 그것은 비공식적인 대결이었다.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불과 64강이라는 초반에 원륭에게 지는 바람에 그는 나름 개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호탕한 척 했지만 무림인으로서 낙심하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우승자인 원륭을 나름 팽팽하게 몰아붙였던 사람으로서 헐크G의 평판은 더불어 상승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륭을 상대로 그 정도로 버틴 헐크G도 상당히 강한 것 아니야??”
“그러니까 말이야. 실제로 일화는 4대고수니 어쩌니 하더니 쪽도 못쓰고 당해버렸잖아??”
헐크G의 평가가 올라가는 것과 반대로 일화의 평판은 수직으로 낙하하고 있었는데, 4대고수니 어쩌니 하더니 헐크G는 물론 태사향만큼도 버티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깨진 것이 컸다.
물론 제 멋대로 행동하는 일화에게 분노한 원륭이 필요이상의 진심을 보여준 탓도 있었지만 실제로 일화의 실력은 홍콩4대 고수라기엔 조금 모자란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헐크G가 지나갈 때마다 ‘헐크G다!’ ‘사실은 강한 헐크G다!!’하면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통에 헐크G의 어깨는 한껏 올라가 있었다.
똑같이 태사향도. 그는 자신을 그리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대놓고 흐뭇해하지는 않았지만 그 입가엔 웃음이 어려 있었던 것이다. 그도 사람이었다.
“축하하네, 원륭.”
“아, 고맙네, 태사향. 실은 자네와의 대결이 꽤 도움이 되었어.”
“왜지??”
“아, 실은 나 창술의 고수랑 맞붙은 것은 자네가 처음이거든. 그만큼 진흑창과 싸울 때 상당한 참고가 되었지.”
“아, 그렇군.”
태사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와 진흑창의 창술은 같은 창술이라고 해도 상당히 달라서 태사향이 상당히 고전적인 형태의 창술가라면, 진흑창은 무에타이 기법을 도입한데다 맨손의 양팔을 창처럼 사용하는 정말로 기괴한 스타일이었다.
실제 그 팔은 창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쌍단창이라니, 그런 건 무림사는 둘째 치고 전쟁사를 모두 뒤져봐도 매우 희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팔랑크스라는 방진을 썼던 고대 그리스 보병이든 로마 군의 레기온이든 보통은 밀접하게 방진을 짜고 마치 고슴도치 같이 무수히 창과 방패를 든 보병 집단이 기본이고 거기에 추가로 적이 방진을 뚫고 근접전을 벌일 때를 대비하여 검을 장비시키는 것이 상식.
일개 무인의 영역으로 넘어가더라도 창 하나만 들든, 창과 방패를 들든, 창과 방패에 검까지 착용시키든 창은 하나만 드는 것이 상식이다. 투창병이 아니고서야.
하지만 맨손으로 펼친다고는 해도 쌍창술. 그 괴이함은 시대와 역사를 뛰어넘어 매우 특이한 것이다. 원륭도 그 점을 지적했다.
“진흑창의 쌍창술은 너무 상대하기 난감했다. 뭐 그것도 다 검과 창의 특성 때문이겠지만······.”
“검과 창의 특성?? 그게 무슨 말이오??”
악무양이 묻자 원륭은 조용히 바라보더니 친절히 답해주었다.
“일반적으로 검과 창이 붙는다면 동일한 실력일 경우 창이 사정거리 면에서 확실히 우월하다. 하지만 진흑창은 맨손으로 창술을 사용했기에 실제 그 사정거리는 나와 그리 다를 바가 없었지. 우리 둘은 신장과 팔 길이도 비슷하고 말이야. 하지만 창술의 오의는 찌르기, 검술의 오의는 베기에 있는 법. 찌르기와 베기 중 어느 것이 더 막기 쉽지??”
“아······.”
악무양은 깨달았다. 가령 원륭이 사선 베기를 하든 수직 베기를 하든 수평 베기를 하든, 진흑창은 그저 팔을 창대처럼 사용하여 똑같이 비스듬히 흔들어 막으면 된다.
그러나 찌르기는 베기와 달리 선이 아니라 점의 형태로 상대방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약간 막는 법이 더 까다로운 것이다. 악무양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찌르기 역시 정면에서 보았을 때, 즉 당신 관점에서 볼 때 점으로 보이는 것이지, 좌우, 위아래 시점으로 보면 마찬가지로 선이 되는 것이 아니오?? 그렇게 막으면 됐을 텐데.”
“실제로 그렇게 막았지. 찔러 오는 걸 위아래로 쳐내거나 옆에서 쳐내거나 옆으로 피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찌르기랑 베기랑 어느 쪽이 더 빠르나??”
악무양은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찌르기만이 가지는 강점. 베기가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장점. 그것은 ‘속도’이다.
찌르기란 목표지점과 자신을 최단거리로 관통하는 공격이기 때문에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똑같은 사람이 움직인다면 베기보다는 찌르기가 더 빨리 나가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궤도와 물리법칙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원륭도 그 점을 설명했다.
“즉, 수준이 높은 검사라면 자신보다 수준이 낮은 창술가의 찌르기보다 먼저 베기를 먹일 수가 있지만, 동일한 수준의 무인이라면 절대 창술가의 찌르기보다 검사의 베기가 먼저 적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진흑창이 단창과 같은 팔을 사용해서 그렇지, 진짜 일반적인 창을 사용했다면 더욱 힘들었을지도. 뭐, 그거는 실제로 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야, 멧돼지. 너 멧돼지 치고는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후후, 진흑창에게 지고서 나름 좀 궁리를 해보았나??”
“누가 멧돼지요!! 날 모욕하지 마시오!!”
“그럼 돌진밖에 못하는 게 멧돼지이지 돼지인가? 하하하!!!”
“이 사람이!!!”
악무양은 얼굴이 시뻘개져서 씩씩 거렸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자신의 행태를 돌이켜보면 정말로 자신은 멧돼지라고 밖에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과 거의 상대하지 못하고 산에서 나무나 하며 무공을 단련한 악무양으로서는 나름 최선을 다해 이번 대회에서 분전했지만, 결승이 가까워질수록 다른 무인들의 모습을 보고선 그야말로 쪽팔려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수준차이가 났던 것이다. 회피와 방어의 초식은 물론이고, 그 경기의 운용이나 흐름을 다루는 법마저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촌스러울 정도였는데, 스스로 그것을 깨달았으니 부끄러울 만도 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우물밖에 처음 나간 개구리가 느끼는 충격······. 그야말로 천지개벽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악무양을 한껏 놀린 원륭은 갑자기 정색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뭐, 자신의 한계는 너 스스로도 깨달았겠지. 그렇게 정진하면 되는 거야. 열심히 하도록.”
“고맙소······가 아니라 왜 내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야!! 사람을 놀려놓고 은근슬쩍 격려를 하고 있잖아!!”
“그야 왜긴. 난 수많은 쟁쟁한 무인들이 모인 이번 대회의 우승자. 넌 대진을 잘 만나 8강까지 안착한 희대의 행운아. 그렇지 않나?? 그러니 고수의 말은 잘 들어야지.”
“익! 익!!!”
악무양이 붉어진 얼굴로 여전히 씩씩 거렸다. 그러나 그로서는 반박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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