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필살의 의지
“재미없었어.”
“응???”
“엿 같았다고. 비싼 돈을 들여서 고작 이딴 걸 만들다니 뭐하는 짓이야. 돈이 아깝군.”
“그 정도로 돈이 많다는 게 아닐까? 호호.”
여인의 말에 원륭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네놈들의 드러난 꼬리를 쫓아 여기까지 왔지. 하지만 그 결과가 홍콩 4대 부동산 재벌 중 하나인 지평선(地平線)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너야말로 대단하구나, 아이야. 여태까지 이곳에 도달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본사 건물 지하에 만들어진 이곳 집무실에 도착한 자는 아무도 없었어.”
“흥, 집무실은 무슨. 지옥의 함정이겠지.”
“우리에게는 이곳이 천국이나 마찬가지란다.”
여자는 당문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당건과 당령의 기억을 쫓아 도착해보니 그곳은 홍콩 4대 부동산 재벌 중 하나인 지평선의 본사 건물이 있었던 것이다.
“무림세가가 홍콩 4대 재벌의 일원이라니, 이 사실은 거의 다 모르겠지. 아마 알게 된 자들도 기겁을 했을 거야.”
“호호호, 그렇지 않겠느냐??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로부터 관과 무림은 불가침이라는 말이 있었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것은 온 세상이 관과 무림으로 양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학자와 상인들이 자신들만의 작은 영역을 갖추고 있었지.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황조(皇朝)는 무너졌다. 더 이상 황제는 없어. 국가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가운데, 구성원들은 각자의 영역을 찾아 고군분투했다. 그 중에 새롭게 탈바꿈한 자들이 바로 우리 같은 자들이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금과 인맥, 무공을 사용하여 상회를 만들었다. 그것이 점점 더 커져 지금에 와서는 기업에 이르게 되었다. 참 대단하지 않느냐?”
“그렇군. 누군지 몰라도 처음 그 생각을 한 자는 대단한 선견지명을 가졌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러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100년 전부터 먼저 시작을 해야 하니까.”
“칭찬해주니 고맙군.”
“······. 설마 네가 그 계획의 발안자냐??”
“그렇다. 호호호호호호!!!”
‘노괴물!!’
원륭은 입술을 비틀어 쯧! 하는 소리를 냈다. 100년 전 이라하면 서구 열강이 들어와 청나라가 붕괴하기도 전의 이야기다.
그 후로 군벌들이 난립해 서로 난전을 벌이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국공내전을 벌인 후 국민당이 대만으로 떠나고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했는데, 그러한 난세에 홍콩으로 빠져나와 기업을 설립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뭘,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당문은 인력도 자금도 넉넉했고, 혼란스러운 중국 대륙을 떠나 홍콩으로 세가를 전부 옮긴다는 것은 엄청난 결정을 요구했지만, 한번 옮기고 난 뒤에는 모든 게 순조로웠지. 영국 정부의 관리 아래 막대한 발전을 이룬 홍콩에서 우리 세가 역시 무궁한 발전을 이루었다. 다만 문제는······. 우리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는 거지······.”
“기존의 삼합회 말인가??”
“그렇다.”
기존의 삼합회란, 청방, 흑사회, 홍화회를 말한다.
“삼합회 중 하나인 청방은 대만으로 떠났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잘되었다고 하더군. 국민당은 공산당에 패해 쫓기듯이 대만으로 떠났지만, 청방은 그런 국민당에 영합하여 비밀조직을 만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탄압하고 정부의 도움을 받아 마약 사업까지 하는 등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걸 보면 우리도 대만으로 가는 게 나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보이는 여인을 향해, 원륭은 비웃음을 지어보였다.
“웃기고 있군. 당문이 언제부터 마약팔이를 그리 동경하게 됐지?? 내가 아는 당문은 비열하게 독과 암기로 승부하는 겁쟁이들이긴 하나 마약은 팔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마약을 팔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비열하게 독과 암기로 승부한다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 독과 암기가 비열하다고 생각하느냐, 애송아??”
“적어도 남자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
“호호호, 어차피 사람을 죽이는 도구인데 독이든 암기든 무슨 소용이냐. 죽으면 모두 다 같은 건 아니냐?”
“그건 맞아.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란 말이다. 너 같은 계집애나 쓸 법한 도구란 말이지.”
“호오, 너 같은 계집애라······. 그런 말을 들은 지 거의 100년은 지난 것 같구나. 그럼 그런 계집애가 쓰는 독과 암기를 한번 상대해 볼 테냐!!”
슈슈슉!!!
어둠 속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여인이 부채를 펼치자 순식간에 무언가가 쏜살같이 날아왔다.
그러나 어둠을 대낮과 같이 볼 수 있는 원륭은 그것의 정체를 곧바로 알아차렸던 것이다.
‘바늘!!’
무수히 많은 바늘이 허공을 날아오고 있었다. 그 수는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
점점 늘어만 갔던 것이다.
‘치잇!!’
도발에 대한 대가치고는 너무 크지 않나 싶어서, 원륭은 입술을 비틀었다.
수를 알 수도 없는 무수한 바늘이 그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원륭은 벽을 박차고, 허공을 박차고, 심지어 천장마저 박차고 중력을 무시한 채 종횡무진 날아다녔지만 그 바늘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도망 다니는 것이 고작이다.
‘그렇다면 이럴 땐 본체를!!!’
조종하고 있는 여인을 향해 다가갔지만, 그 순간 무수히 많은 바늘이 구름덩이처럼 뭉쳐 앞을 가로막았다. 저걸 뚫느니 차라리 인민해방군 일개 중대를 학살하는 편이 더욱 빠르리라.
‘이럴 때 검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러나 아쉬워해봤자 소용없다. 낙일검은 이미 잃어버렸다. 만주국의 철도로 쓰여 단련된 그 철로 만든 검만 있었더라도 어지간한 상대는 제압할 수 있겠는데, 그 검은 없다.
그러니 차선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흐으읍!!!”
원륭은 온 몸에 힘을 주었다. 곧 그의 몸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친듯한 속도로 가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아앙!!!
“아닛?!”
여인이 깜짝 놀라며 부채를 연달아 흔들었다.
스륵!!
부채의 움직임에 따라 바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륭의 온 몸을 순식간에 뒤덮은 것이다.
푸슉!!
순간 원륭은 온 몸이 바늘로 덮여 마치 고슴도치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차라리 고슴도치가 더 나으리라. 고슴도치는 몸을 웅크리지 않으면 얼굴이나 배에는 가시가 없어 보호받지 못하니까.
그런데 지금 원륭은 온 몸에 가시가 잔뜩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빼곡히 박혔는지 빈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원륭의 손도 여인의 목을 붙잡고 있었다.
“크윽!!”
여인의 얼굴이 빨개지며 숨 가쁜 소리를 내었다. 그녀가 바늘을 조이는 힘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신의 목을 조이는 손도 더욱 힘이 강해졌던 것이다.
우직! 우지직!! 두 사람의 몸에서 불쾌한 소리가 났다.
바늘이 원륭의 몸을 터트리는 것이 먼전가, 여인의 목이 부러지는 것이 먼전가.
그때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만하지. 이쯤하면 서로의 실력은 다 보았다고 생각하는데. 동귀어진하면 서로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게 아니겠나??”
“허튼소리. 무림인들의 대결에서 이만큼 왔는데 끝을 보지 않을 수 있나. 나는 널 꼭 죽여야겠다.”
“나한테 원한이라도 가진 게 있는 거냐??”
“그런 건 없다만??”
“그런데 왜 그러는 거지?”
“말했지 않나. 무림인들의 승부에 그런 건 상관없다고.”
“······.”
여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소리를 얼마 만에 들었는지 모르겠군. 가문의 부흥에 힘쓴 지, 100년. 우리 가문에도, 경쟁자들에게도 그런 자는 없었다. 오직 부귀영화를 위해, 그리고 명성을 위해 힘썼지. 물론 그 명성이라고 해도 무공의 수준이 아니라 기업으로서의 가치와 명성이지만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너는 좀 다르군.”
“이게 원래의 무림인들의 자세가 아닐까? 너희는 타락한 것이고 말이야.”
“타락한 것이라······.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리가 맞다고 생각한다만.”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넌 무림인이 아니라는 거겠지.”
“그럴지도······.”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맥이 빠졌다. 무림인과 무림인이 아닌 자가 더 이상 싸워봤자 무엇하겠나. 네가 진정 무림인이라면 이 손을 풀지 않겠나? 대화는 그 다음에 하지?”
“싫다면?”
“뭐라고?”
“미안하지만 난 무림인도 아니거든.”
“그럼 대체 뭐지??”
“마(魔)다.”
“마??”
“그래. 마(魔) 그 자체다. 마가 행하는 일에 무슨 의미를 찾는 거지??”
“······.”
여인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래, 마인가!! 호호호!!! 확실히 현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의미를 찾아봤자 소용은 없지!! 태풍이 불고 용오름이 솟는 것에 의미를 찾아봐야 무엇하겠는가, 호호호!!!”
여인은 한참동안 웃더니 이내 정색하고 말했다.
“하지만 넌 인간이야. 진정한 마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단번에 목을 꺾었겠지. 하지만 대화가 통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네가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아이야, 그만하고 풀어주지 않겠느냐?? 네가 나의 목을 꺾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나 역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몸에 닿아있는 그 침들에는 나조차 풀 수 없는 해독약이 없는 극독도 하나 섞여있지. 네가 아직 죽지 않은 것에는 그 극독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다. 이제 그만하지 않겠느냐??”
“쫄리나?”
“뭐라고??”
“쫄리면 그 독을 사용해보시던지. 너의 그 침이 닿은 순간 내 몸으로 수많은 독이 유입된 사실은 알아차렸다. 그래서 너도 대화로 풀어보든지 아니면 시간을 벌 겸 나와 계속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겠지. 해봐.”
“······.”
“그 독을 써보란 말이다!!”
“큭!!”
여인은 마지막 남은 침을 원륭의 몸에 깊숙이 꽂아 넣었다. 거의 뿌리까지 파묻힐 정도로 깊이 집어넣었는데, 그러자 갑자기 원륭의 몸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큭! 크아악!!!”
원륭은 여인의 목을 잡고 있던 것까지 풀고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온 몸에 바늘이 꽂힌 채 버둥거리는 원륭의 모습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그 모습을 여인은 목을 주물거리며 지켜보았던 것이다.
“후우, 정말로 죽을 뻔했군. 금침압박의 초식을 버티고 이 정도 완력을 가하다니. 오늘은 명부의 저승사자가 왔다갈 뻔한건가······.”
여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쓰러져 있는 시체를 쳐다보았다.
“그러니 서로 양보하자 했을 때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간만에 재밌는 장난감이 들어왔는데 곧바로 망가졌구나······.”
여인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집무실이네 어쩌네 하긴 했지만 입구가 없었다. 물론 출구도 없다. 정상적인 출입구가 없는 밀폐된 공간이었는데 원륭은 침입한 것이다.
물론 여인 역시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문이 없다고 해도 침입하는 방법은 있었다.
그런 공간에 침입해, 당문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기관진식으로부터 살아남은 후 자신의 만천화우 역시 버텨냈는데, 그런 자를 죽일 수밖에 없으니 여인은 안타까워졌다.
“이만한 장난감도 구하기 힘든 법이지. 이제 한동안 무얼 가지고 놀아야할지 모르겠구나. 역시 남은 세 재벌을 끌어내려야······.”
그렇게 여인이 중얼거리고 있는데, 시체가 꿈틀거렸다.
“어엇?!?”
“좋은 독이었다. 정말로 맛있는 독이로군.”
“!!!”
여인은 경악했다. 해독제도 없는 당문삼대극독 중 하나를 투입했는데 원륭은 살아남은 것이다. 그것은 독을 쓴 그 여인이라도 당하면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한 독이었다.
그런 걸 당하고 살아남다니······. 여인은 전력으로 원륭을 죽일 태세에 들어갔다.
‘이놈은 살려둬서는 안 돼!! 반드시 죽여야 한다!!’
여인의 눈초리가 매섭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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