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향기
이후에 영화는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됐다.
그렇게 양조위에게 호감을 보이던 페이였지만, 양조위가 정식으로 그녀에게 잘해보려고 술집에서 만나자고 하자 그녀는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고 사라진다.
다만 그녀가 남긴 편지만이 평소 그녀가 일하던 식당 주인을 통해 전해졌는데, 양조위는 이별의 편지임을 직감하고 아예 뜯어보지도 않고 버렸다가 나중에 비에 젖은 편지를 주워와 겨우겨우 읽는다.
편지는 1년 후에 다시 만나자는 페이의 말이 적혀있었는데, 문제는 젖어서 어디서 만나자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년 후 스튜어디스가 된 페이는 홍콩으로 돌아와 자신이 일했던 식당을 찾는다.
그곳에는 경찰을 그만두고 가게를 사들인 양조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양조위는 여기 식당 사장 수완이 대단하다며, 자신에게 음식을 팔더니 이젠 아예 가게를 팔았다고 농담 삼아 말한다.
마지막으로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묻는 페이의 말에, 양조위는 당신이 가고 싶은 곳이라 대답하며, 페이가 부른 몽중인이라는 노래가 울려퍼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두 사람은 영화관 밖을 나왔다.
“이야, 정말 좋은 영화에요~~ 그렇지 않아요??”
“으음, 좋긴 하네.”
“무슨 대답이 그래요??”
“뭐야, 좋다고 하잖아.”
“어쩐지 시큰둥하네요?”
“좋다니까 참나······.”
“······.”
임소교는 잠시 빤히 노려보고 있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뭐가 안 좋은지 말해 봐요.”
“좋다고.”
“말해 봐요!!”
“······.”
이번엔 원륭이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좋게 말하면 감각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것뿐이야.”
“뭐라구요??”
“저 영화는 사랑에 대처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다루고 있지. 둘 다 떠나간 옛 여인을 잊지 못하며, 그에 매달리고 있지만 실제 대처하는 모습은 달라. 가네시로 타케시가 그녀가 좋아하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사 모으며 자신의 생일이 지나갈 때까지 그녀의 연락이 오지 않으면 포기하겠다 하는 것은 일반적인 남성,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지. 마치 그렇게 하면 다시 연인이 돌아올 것만 같은 느낌, 그렇게라도 함으로써 자신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행위로 말이야.”
“호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음에 안 드는 줄 알고 뾰로통해져있던 임소교는 의아해졌다.
원륭은 제대로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원륭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반대로 양조위 같은 경우에는 똑같이 미련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가네시로 타케시 정도로 구애되지는 않아. 그는 파인애플 통조림 같은 걸 모으는 미신과 기원 같은 행위로 자신의 아픔을 달래려 하지도 않고, 그저 아쉬워하기는 하지만 하루하루 경찰임무를 수행하며 열심히 살아가지. 가네시로 타케시도 절제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양조위쪽이 긍정적이다 해야 할까?? 똑같은 이별에 대처하는 방식이 약간 다르지.”
“그렇군요.”
“그래서 넌, 뭐에 주목했는데??”
“······.”
임소교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양조위가 무척 잘생겼더군요.”
“······.”
“가네시로 타케시도 잘생겼지만 특히 그 양조위의 얼굴!! 봤어요?? 처음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모자를 벗는 양조위의 모습?!”
“그래, 아주 오질라게도 잘생겼더구나.”
‘실제로 봐서 잘 알지, 씁······.’
원륭은 인상을 찡그렸다. 양조위는 얼굴도 잘생긴 주제에 연기도 잘하고, 게다가 연인 유가령을 향한 일편단심의 순애보로 흠잡을 것이 없는 홍콩의 영화 황제로 불리고 있었다.
유가령이 납치되어 알몸 사진을 찍히는 등 몹쓸 짓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곁에 머물며 계속해서 그녀에게 위안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유가령은 그에게 떠나라고 했지만, 양조위는 듣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영화가 나온 것을 보고, 원륭은 깨달았다.
‘이쯤 되면 유가령의 상처도 어느 정도 회복했나보군.’
유가령 일편단심인 양조위가 유가령의 상태가 심각한데 그녈 놔두고 영화계에 복귀할 리가 없었다.
실제 양조위는 유가령의 납치당시 영화 아비정전을 촬영 중이었는데 그녀가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자 촬영을 그만두고 뛰쳐나갔고, 공교롭게도 그 영화 역시 이번 영화와 같은 왕가위 감독의 작품이었다. 그것을 떠올린 원륭은 생각한 것이다.
‘두 영화가 나오는 동안 두 남녀는 서로 상처받고, 다시 극복했군. 왕가위 감독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맞아떨어질지도.’
애초에 딱히 불행이나 사건 없이 그저 평범한 연인들의 헤어짐을 맞았던 중경삼림의 작중 인물들과는 달리, 유가령과 양조위는 더할 나위없는 불행을 겪었다.
본인이나 연인이 범죄조직에 납치되어 알몸 사진까지 찍힌다면 그 얼마나 불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두 사람은 아픔을 털고, 미래로 나아갔다. 한편 원륭은 따지기 시작했다.
“그래, 너는 나보고 왜 영화가 마음에 안드냐고 하더니 결국 양조위의 얼굴만 보고 있었구나······. 그래, 그랬구나······.”
원륭은 빤-히 임소교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어떤 감정도 없는 묘한 원륭의 눈초리에, 임소교는 기분이 왠지 이상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지 않았다.
“뭐야, 나뿐만이 아니라 극장 안의 모든 여자들이 다 그랬을 걸요?! 양조위 나온 순간에 여자들이 내는 소리 못 들었어요??”
원륭은 다시 한 번 그때를 되새기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양조위가 모자를 벗고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극장 안에서 충격을 받은 듯 여자들이 헉!! 하는 소리를 내었던 것이다.
심지어 남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그런 걸 보고 원륭은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양조위가 잘생겼나?? 그냥 평범한 얼굴 같은데 하······.”
탄식하는 원륭이었으나, 임소교는 묘한 얼굴로 째려봤다.
“적어도 당신보다는 잘생긴 것 같은데요.”
“그래, 미안하다 못생겨서.”
“알면 됐네요.”
“······.”
한마디도 지지 않는 임소교였는데, 원륭은 잠시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너 말이야, 왠지 왕페이 닮았다??”
“어머, 미모가요??”
자신의 볼을 감싸 쥔 채 수줍은 얼굴로 미소를 짓는 임소교에게, 원륭은 말했다.
“아니, 싸가지 없는 게.”
“······.”
“생각해보니 말도 없이 문 열고 들어오고, 지 맘대로 가구 바꾸고 하는 게 아주 너 같잖아. 놀라워라. 감독이 널 보고 페이의 성격을 참고한 거 아냐??”
그러자 임소교는 버럭 화를 내었다.
“그때 일은 잊으라고 했잖아요!! 나도 그렇게 그 가구가 싸구려일 줄은 몰랐다구요!!”
“으음, 이렇게 적반하장인 것까지. 역시 넌 페이보다 더 못됐다.”
“그래요! 난 어차피 왕페이보다 얼굴도 더 못생기고 성격도 나쁘다구요!!”
씩씩, 거리더니 임소교는 어느새 달려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원륭은 머리를 긁적거린 것이다.
‘으음, 너무 놀렸나.’
원륭은 홍콩 뒷골목으로 걸어가며 품에서 대마초 하나를 꺼내 피웠다.
혈귀가 된 원륭은 체내에 받아들인 여러 무림인이나 인간들의 내공, 생기를 융합시키기 위해 그 촉매로 대마초 등의 마약을 이용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공이 충돌해 폭발하고 내상이 일어나거나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원륭은 대마초를 피우는 불사왕을 경멸했었는데, 자신도 혈귀가 되자 어째서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고 묘한 웃음을 지었다.
“후······.”
불쾌한 대마초 냄새가 홍콩 뒷골목 벽을 타고 올라 퍼졌다. 자신도 어쩔 수 없이 피우기는 하지만 이 냄새는 결코 좋지 않은 것이다.
대마초를 합법화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르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냄새였다.
담배보다 대마초가 더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대마초 냄새는 담배 그 이상인 것이다.
아무튼 이런 냄새를 지우기 위해 원륭은 대마초를 피우면 한동안 바람을 쐬다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비록 그렇게 해도 잘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임소교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중경삼림은 남녀간의 사랑 문제보다 더욱 복잡한 의식의 흐름이 그 수면 밑을 흐르고 있었다.
남녀 간의 애정이 그 겉 표면이라면, 심층엔 홍콩인들의 불안과 열정, 그리고 허무가 담겨 있었다. 중영공동선언 이후 이제는 완전히 중국 땅으로 반환되기로 결정된 홍콩.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생활하던 홍콩인들에게 통제된 중국의 손길은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손이다.
홍콩 구룡성채의 철거 역시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런 홍콩반환협정의 결과인 것이다.
홍콩반환 이전 미리 홍콩을 깨끗하게 정비하려는 중국 정부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었고, 그런 것들을 포함해 여러 가지 사건이 시작되려고 하는 홍콩에선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원륭은 피식 웃었다.
‘어쩌면 저 영화 속 전 여친들은 영국이고, 새 여친들은 중국인가.’
영국의 품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홍콩. 사실 두 이야기가 하나의 영화에 같이 들어있는 중경삼림에서는 두 여주인공이 모두 좋은 모습만을 보이진 않는다.
임청하는 기본적으로 마약상이고 작중에서도 사람을 죽인다.
그러면서도 가네시로 타케시의 생일에는 그저 하루 밤 스쳐지나간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삐삐로 메시지를 보내서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편 2부의 여주인공인 왕페이 역시, 언뜻 겉으로 보기엔 명랑하고 쾌활한 말괄량이 같지만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양조위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와 집안 살림을 바꾸고, 심지어 정작 양조위가 고백하려 하니 떠나버린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멋대로 돌아와 관객들에게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원륭은 다시 한 번 웃으며 대마초의 재를 털었다. 고양이라 하면 변덕의 상징이었는데, 현재 중국의 최고 권력자인 등소평이 내세우는 가장 큰 논리가 바로 흑묘백묘론이었다.
과거 그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주은래가 사천성 격언인 황묘흑묘론을 자주 인용했고, 그것을 다시 등소평이 약간 말을 바꿔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말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일만 잘하면 된다는 것인데, 사회주의라는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정책을 펼치는 그 혼용된 이론은 중국 정부를 여타 망한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다른 행보를 걷게 하고 있었다.
실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으로 초토화가 된 중국의 경제는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드넓은 영토, 막대한 자원, 엄청난 인구수로 중국은 지금 세계의 공장이 되려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시골에서 올라온 농민공 등에게 헐값을 주고 일하게 만들고, 집값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니 인민과 지방 정부는 헐벗고 있어도 중앙 정부는 부강하기 그지없다.
문제는 그런 중국이 고양이처럼 변덕스럽다는 것이었다. 대국을 자처하면서 하는 행태는 소국이나 다름없었는데,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인민들을 착취하며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그런 행보를 넓혀가려하니 자연스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열강들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후우······.’
원륭은 거의 다 타버린 대마초를 바닥에 던져 발로 비벼 끈 뒤,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엔 기묘한 대마초 향기만이 코를 찌르고 있었다.
- 작가의말
이번화에 중국 지방 정부 얘기가 잠깐 나와서 하는 말인데, 기본적으로 중국 정부는 자신들의 빚을 지방 정부와 기업 등으로 떠넘기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중앙 정부의 빚이 없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나 가능한 일인데, 일본이 반대로 정부부채가 한중일 3국 중에서 최고로 많은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죠.
뭐 그것도 한계에 부딪치면 일본 정부가 예금 몰수를 통해 중앙 정부의 빚을 갚을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 이미 일본이 과거 세계대전때 생긴 빚을 그런식으로 예금자들의 통장을 출금불가 상태로 만들어 압류하고, 거기서 무단으로 돈을 빼내어 나라빚을 갚았다고 하죠.
그래서 그때 불신감을 가진 일본인들이 예금을 잘 하지 않아 일본인들은 집에 보통 현금을 보관하고 있고, 카드나 QR코드 등으로 결제를 자주하는 한국이나 중국등과 달리 일본은 현금으로 가장 많이 결제를 합니다.
한편 최근 코로나 사태와 관련하여 중국의 광둥성이 격리된 한국인들에게 비용을 자비부담하라고 하였다가 외교부가 항의하여 철회되는 웃긴 일이 바로 어제 있었죠.
원래 국제법으로도 그렇고 중국 국내법도 그렇고 외국인여행자나 체류자의 경우 그 검사와 격리부담은 체류하는 국가에서 지원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우리도 그같은 논리에 근거하여 중국인 확진자를 치료해주고 있고, 예전부터 그래왔는데 돌연 중국의 지방정부인 광둥성이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꺼냈다가 항의를 받고 철회한 것이죠.
이 소설은 이미 결말과 그 시점이 정해져있는데, 바로 2020년까지입니다.
우한폐렴이 창궐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이 엔딩의 시점인데, 현재 작중 시점은 1994년이고 앞으로 26년이 남았습니다. 소설의 시작이 1965년 문화대혁명 전해였으니까 30년 정도 지난 셈인데, 14권 초입에 들어섰지만 그렇다고 해서 14권 정도를 더 해서 28권이나 30권 정도에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문화대혁명이나 천안문사태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이미 지나가서, 앞으로의 일들은 좀 더 속도감있게 전개될 겁니다.
실제로 1990년부터 1994년까지는 얼마전 보셔서 알겠지만 중요한 사건들만을 언급하고 통으로 날려버렸죠. 앞으로도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해는 그런 정도로 비슷하게 날려버릴 것입니다.
그동안에 주인공들은 폐관수련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건 일반적인 무협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들이죠.
아무튼 계속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요약하자면 좀 더 속도감있고,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도록 조절할 것입니다.
실제로 대외표면적인 중요한 사건들은 대부분 지나갔지만, 그에 못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아직 더 많습니다. 오히려 어쩌면 더 충격적일지도 모르겠네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때에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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