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천국과 지옥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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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원륭이 일어나더니 말했다.
“이봐, 그만두지. 이쯤하면 됐어.”
“?!?”
여인이 전력을 다해 원륭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는데, 원륭은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힘을 주자 온 몸에 빽빽하게 꽂힌 바늘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쐐애액!!!
그 바람에 여인도 자신의 바늘에 자신이 맞을 뻔했는데, 그러자 그녀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흥, 다시 공격을 해놓고 뭐가 그만두자냐. 역시나 죽일 생각이었던 거냐?? 방심시켜서??”
“아니, 네 침이 너무나 단단하게 박혀서 그 정도 힘을 주지 않고는 뽑을 수 없었다. 참 깊숙이도 박아놨더군.”
“흥!!”
여인은 성을 내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다 다시 성난 말투로 물어본 것이다.
“왜 그만둘 생각을 한 거지??”
“네가 더 이상 나에게 위협이 안 되니까.”
“뭐라고?!?”
“네가 가진 모든 독과 수단을 다 쓴 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공격은 나에게 무효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내 손자들을 죽일 필요는 뭐가 있었지? 제압이 가능한 순간 죽일 필요도 없었던 것 아닌가?”
“미안, 미안. 그 녀석들이 그 정도 위치인 줄은 몰랐어. 실력이 너무 어중간해서 일개 조직원인 줄 알았거든.”
“······.”
“당신 손자인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조심해서 다뤄줄 걸 그랬군. 그건 그렇고, 손자라니, 당신도 나이가 참 많구만. 외모는 채음보양술로 유지하는 건가??”
“신경 꺼라.”
“차갑기도 해라.”
원륭은 너스레를 떨며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았다. 그런데 아까까지만 해도 작동하던 기관진식이 하나도 작동하지 않았다.
‘작동하지 않아??’
여인은 내심 움찔하며 기관진식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모두 정상이었다.
놀랍게도 이자는 잠깐 싸우면서 기관진식의 범위와 반응하는 수준을 살펴 더 이상 기관진식이 작동하지 않도록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치 허깨비처럼 움직여, 화살이 나와야 할 구멍 앞에 다가가도 화살은 나오지 않고 바닥이 무너져야할 곳에 올라가도 아무 일 없었다. 여인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후우, 당문 수 천 년 역사가 이렇게 조롱당하는 구나······.’
여인이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눈치를 챈 원륭은 씨익 웃었다.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 마. 기관진식은 처음 상대해보지만 그 이론은 충분히 알고 있었거든.”
“이 기관진식은 우리 가문의 수 천 년 기술이 집대성된 것인데 어떻게 이론만으로 단번에 실전에서 간파할 수 있었지??”
“가르친 사람이 제갈 가문의 사람이라서.”
“아······.”
그제야 여인은 납득했다. 제갈 가문이라면 그럴 만하다. 석병팔진을 비롯해서 제갈 가문은 기관진식, 도구, 발명에 능한 가문이었다.
심지어 시대를 앞서간 기계도 만들 줄 알았는데, 그런 자에게 교육을 받았다면 그 지식을 실제로 실현할 무공만 가지고 있다면 처음 보는 기관진식도 충분히 격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개량하고 포장해도 결국 원리는 하나니까.
“내게 기관진식을 가르쳐준 사람에게 난 항상 투덜했지. 요즘 시대에 이런 쓸모없는 것을 배워서 뭐하냐고 말이야. 하지만 그런 거라도 나름 쓸데는 있었던 모양이군. 그에게 감사해야겠어.”
“흐음······. 혹시 너, 본토에서 중국 정부와 맞붙은 그 여덟 명중 한 명이냐??”
“호오, 눈치 챘나?”
“사실이라니······. 놀랍군. 그들은 모두 죽은 줄 알았는데.”
“하지만 여기에 살아있지.”
“······그들은 모두 천안문 광장에서 죽었다고 들었는데.”
“······.”
그들 일행의 최후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원륭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그러나 결국 물어본 것이다.
“우리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지?”
“글쎄. 사천당문도 홍콩으로 본거지를 옮긴지 거의 100년이 지나, 본토의 정보는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들려오는 소식과 본토에 여전히 남아있는 정보원들을 통해 대강은 알고 있지. 듣자하니 너희들은 문화대혁명 시절부터 끈질기게 중국 정부를 괴롭혔다고 하더군. 듣기로는 중국 정부가 너희에 대해서 치를 떨었다고 하던데.”
“훗, 그래서 집요하게 추적을 당했지. 공안과 인민해방군 양쪽으로부터 말이야.”
“그런가. 아무튼 중화인민공화국 양대 무장조직인 그 양쪽으로부터 살아남다니 보통이 아니구나. 게다가 공안에는 무림맹이란 조직이 있으니.”
“뭐 그렇지.”
“······.”
말이 쉽지, 그들로부터 살아남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원륭을 비롯한 쪽방촌의 무림인들도 몇 번씩이나 위기를 거듭하며 간신히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것도 천안문 사태에 이르러서는 원륭을 빼고 모두 전멸을 해버렸지만.
여인은 물었다.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됐느냐?”
“그딴 건 알아서 뭐할 거냐?······라고 말하고 싶지만 숨겨 봤자 숨길 수 없는 내용이니 가르쳐주지. 모두 죽었다.”
“모두 죽었다고??”
“그래. 공안 무림맹과 인민해방군에 둘러싸여, 전차의 포격에 맞아 산산조각.”
“그런가. 그랬던 것인가.”
“······.”
풍문으로 듣기만 했던 소문과 사실이 실제로 일치함을 알게 되자 여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들고 있던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입을 가리고 깊은 생각에 빠졌던 것이다.
“그 오랜 시간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세를 버텨온 너희들도 결국 어쩔 수 없었나. 너희 일행은 모두 몇 명이었지?”
“······나 포함 여덟 명이었다.”
“그런 수로 잘도······.”
“이봐, 그런 건 왜 자꾸 물어보는 거지??”
아픈 과거에 대해 자꾸 물어보니 원륭은 짜증이 났다. 불과 1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것은 이미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만큼 아픈 기억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여인이 입을 열었다.
“존경하기 때문이다.”
“뭐라고??”
“당문의 시작은 보잘 것 없었다. 왜 당문이 독과 암기를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것은 시조가 약했기 때문이다. 수천 년 전, 당문이 처음 시작됐을 때 세상은 혼돈의 시기였다고 한다. 신수와 선인들이 선계와 신계 등으로 떠나고, 세상을 유지하던 음양혼돈공마저 쪼개지며 이미 말세가 시작되었다고 하지. 그래, 선인들에게 있어서 이 지상은 이미 말세였던 거야.”
“······.”
“그렇게 혼란의 시기가 계속되었다. 신수나 선인 중에는 몰락해가는 이 세계를 등지고 선계 등으로 얌전히 가는 자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남아 행적을 보인 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악한 자들도 있고, 강한 자들도 있었으며, 그들이 섞여 혼란을 만들었다. 그렇다. 그때를 대혼란시기라고 한다고 한다.”
“잠깐,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남아있었다고?? 신수나 선인이면 모두 선한 자들이 아닌가?”
“아쉽게도 그건 아니라고 하더군. 나 역시 어렸을 적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물어보았다. 그러나 초월자들에게 있어 선과 악은 하나라고 한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그렇군······. 그 이야기는 누구에게서 들었지?”
“물론 부모님이다. 당가에는 여러 무공뿐만 아니라 이런 당가 발생 초기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전해져 내려온다. 당가록이라고도 하고, 당문록이라고도 하지.”
“그렇군. 그건 진짜 보물인데.”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대의 이야기가 그렇게 자세히 적혀있고 그게 그대로 남아있다니 그야말로 보물임에 틀림없었다.
대만이나 중국에서는 도자기 쪼가리를 가지고 서로 자기네 보물이 더 낫다고 우기는데, 이 당가록이라는 것에 비하면 양국 최고의 보물도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다.
역사를 봐도, 그 가치를 봐도 차원이 다르다. 여인을 말을 계속했다.
“아무튼 그런 혼돈의 세상에서, 우리 선조는 살아남기 위해 독과 암기술을 익혔다. 우리 선조는 역사적으로 이 중국 대륙에서 독과 암기술의 시초 둘 중 하나인 것 같더군.”
“둘 중 하나라고? 그럼 남은 하나는 어디지?”
“맞춰 볼 텐가??”
“······.”
원륭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입을 열었다.
“살문인가?”
“대단하군. 지금에 와서는 영화사나 부동산회사로 위장하고 있는 우리 당문보다 더 존재감이 없는 게 그들인데.”
“살문의 생존자와 맞붙은 적이 있거든.”
“뭐라고?? 그게 누구지?”
“공안 무림맹의 수장인 파천황이다. 그는 음양혼돈공의 한 조각인 한빙신공마저 익혔지.”
“그런······. 살문의 생존자가 아직까지 살아있었다니······. 게다가 그런 마공마저 익혀서······.”
“한빙신공이 왜 마공이지? 그것은 이 세상의 질서를 연 음양혼돈공의 중요한 반쪽이 아닌가??”
“모르는 소리. 그건 마공이다. 나 역시 실제로 그걸 본 적이 있다.”
“어디서?!”
“1900년 여름, 북경에서.”
여인은 90년 전 북경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의화단 운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너도?!”
“너도라니, 아는 사람 중에 참가한 사람이 있었나?”
“네 사람이나 있었다.”
“호오, 누군지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나? 혹시나 알 수도 있으니.”
“아마 모를 수가 없을 걸. 진룡과 상인관, 제갈의, 불사왕이다.”
“과연, 그 네 명인가. 그리고 그 네 명이 여덟 명의 네 동지들 중 하나였군.”
“그렇다.”
“그렇군. 이제야 이해가 간다. 왜 그토록 중국 정부에 오래 대항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말이야. 하지만 이해가 가. 의화단은 서구 열강에 침탈당하는 청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일어났다. 심지어 그 중에는 명나라가 청에 망하면서부터 반청복명 운동을 시작한 자들의 후예도 있었다. 그들이 청에 가진 원한은 사무칠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세에 나라가 망하게 생기자 지금까지 적대하던 국가라도 일단 살리고 그 다음에 다시 싸우자는 마음으로 외세에 대항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실질적인 국가 원수인 서태후는 능력이 없었고, 원세개나 이홍장 등은 우리를 황건적 정도로 여겨 서태후의 명령을 무시하고 토벌해댔다. 그 결과 안 그래도 모자란 의화단의 힘은 갈가리 찢겨져, 결국 북경은 함락당하고, 이후 청나라의 각종 이권은 서구 열강에 넘어갔다가 결국 나라마저 망하게 되었다. 이후가 그 혼란의 연속이었지. 하지만 그런가. 그랬던 건가······.”
“······.”
100년 만에 진상을 알게 된 여인이 생각에 잠기자, 원륭은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생각에 잠긴 것이다. 그때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가. 결국 너는 내 옛 동료의 제자 격인거군.”
“뭐, 따지고 보면 그렇게 되는 건가.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되겠지만 말이야.”
“뭘, 신경 쓸 것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예의를 차리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 무림은 강자존의 공간. 아무리 오랜 기간 내 무림을 떠나있었다고 해도 그것을 잊어 먹지는 않는다. 나와 대등, 혹은 그 이상인 네가 나에게 예의를 차릴 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는군.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이해해 준다니 다행이군. 미안하지만 나도 그리 싹싹한 성격이 아니라서 말이야.”
‘예전의 나라면 모르지만.’
원륭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의화단의 궤멸이 사천당문의 대대적인 이주를 부르게 된 건가??”
“그렇다. 혼란스러운 당시를 난 주목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의화단에 참가한 것도 외세를 물리치자는 것도 있었지만 어지러운 시국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자 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의화단이 궤멸된 이후 난 도망쳐 와서 가문에 모든 것을 전했다. 웃어른들은 한참을 고민했으나 의화단의 참가자인 내가 추적당할 수도 있고, 결국 혼란스러운 그 상황에서는 중국 대륙에서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단단히 마음을 먹고 아예 홍콩으로 이주를 해버렸지. 그렇게 사천당문 전체가 옮겨졌다.”
“대단하군······.”
원륭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사천당가는 사천의 전통적인 맹주였다. 그 위세는 사천 내에서라면 하늘을 찌를 정도였는데 그것을 다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신천지로 이주한 것이다.
그 판단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실제로 지금 중국은 갖가지 학살들이 일어나며 통제당하는 지옥으로 변해버렸고, 홍콩은 그나마 자유로운 천국이 되어버렸으니. 천국과 지옥은 상대적인 것이다.
게다가 이처럼 바로 옆에 붙어있을지도 모르고.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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