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1 피로 물든 시작
“당신 스승이 마교인이었다고?? 당신, 마교인이었소?? 헙!!”
섣부르게 입을 놀리다 악무양이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당황했다.
명교인들은 자신을 마교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은 주원장에게 배신당하고 그저 중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들일 뿐이었는데, 구파일방을 비롯한 중원 무림은 어떻게 보면 주원장의 개가 되어 그들을 배척하는 주구들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명교라는 것은 지난 100 여 년 전 의화단 운동의 참여로 인해 멸망했다고 알려지고, 마지막 명교인이자 교주인 진룡이 죽으면서 명교인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어졌다.
명, 청 당시만 해도 살아남은 명교인들이 대명저항운동이나 반청복명운동 등을 일으켰고 비록 소수지만 그들의 무공과 위세가 너무 강해 아무도 감히 명교인들을 무시하지는 못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명교의 전성기에는 명교인들은 신강에서 하남까지 무려 3500km가 넘는 길을 넘어 쳐들어왔는데, 인류 역사를 봐도 이토록 오래 행군해서 전쟁을 벌인 집단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물론 내공이라든지 경공의 도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 집념 자체가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공격하는 쪽이 행군하는 동안 지쳐서 공세종말점을 지나 제풀에 와해될 정도였는데, 명교인들은 악독할 정도로 자신들의 교리를 바탕으로 신념을 지키며 굳은 마음으로 그 먼 거리의 행군을 견디고 중원을 초토화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구파일방 및 무림맹의 연합에 의해 그들의 시도는 좌절되기는 했지만, 이런 가공할 만한 명교인들의 모습을 본 중원 무림인들이 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중원 무림인들의 뇌리 속에는 항상 그런 지독한 명교인들의 모습이 악귀처럼 남아있었던 것이다.
악무양 역시 부족하기는 하나 무림에서 칼밥을 먹은 지도 이젠 꽤 되어서, 그런 명교인일지도 모를 원륭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당황한 것이었다.
게다가 원륭은 성격이 결코 착한 것만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배로 불려서 갚아주었는데, 그런 원륭의 성격을 아니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악무양의 전신이 긴장으로 곤두섰는데,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륭은 나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교인은 아냐. 마공을 배운 적은 없으니까.”
“마교인이 아니다??”
스스로 마교 운운하는 그 모습에 모두는 원륭이 명교인이 아님을 확신했다. 명교인들은 스스로 명교인이라 자부하지 마교인이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원륭은 계속해서 말했다.
“처음 무공에 입문할 당시 난 마공을 배울 기본적인 자질이 되어있지 않았거든. 그래, 그때의 자질은 오히려 악무양보다 못했지.”
“진짜요??”
“그러면.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는가??”
“······.”
악무양은 순간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납득했다. 그가 겪어본 원륭은 정말로 말을 하지 않으면 않았지 거짓말은 잘 하지 않는 남자였다. 귀찮아서 안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기운이 나쁘든 말든 해야할 말은 하는 남자가 원륭이었는데, 그러니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스스로의 자질을 폄하까지 하면서. 악무양은 입을 열었다.
“당신도 참으로 대단하구려. 그런 상태에서 지금의 상태를 이룩하다니.”
“뭘, 운이 좋았어. 처음 북경에 올라왔을 당시 난 그저 대약진운동으로 인해 초토화된 고향을 등지고 올라온 꼬질꼬질한 애송이일 뿐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나라도 활로를 잡으라고 북경으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서 보내주셨지.”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오??”
“돌아가셨어. 파천황에게 인질로 잡혀서.”
“헉!!”
누군가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설마하니 원륭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경악하고 있는 가운데, 원륭은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
“내가 북경에 올라오고 무공을 배운 뒤 다음 해 문화대혁명이 일어났거든. 나는 처음 북경에 도착했다가 불량배들에게 걸려 죽을 뻔했는데, 그걸 진 대협 등이 구해주었지. 그렇게 우연히 연이 닿게 되어 무공까지 익히고, 수련하고 있는데 다음 해 문화대혁명이 터졌다. 나는 그대로 홍위병들의 패악질을 참다못해 그들과 맞서 싸웠는데, 그때 파천황이 나타난 거야. 그는 강한 자였지만 진룡 대협들도 절정에 이른 고수들이라 파천황은 손쉽게 우리를 제거하지 못했지. 그래서 우리 부모님을 인질로 삼은 거야.”
“왜 하필 당신의 부모님을??”
악무양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원륭은 대답한 것이다.
“혈육이 살아있는 사람은 그 무리에서 나밖에 없었으니까. 진룡 대협 등은 모두 그 당시에도 나이가 80세가 대부분 넘었고, 젊은 사람들은 3~40대의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들 가족들은 없었지. 모두 고아들이거나 중국 역사의 격동기에 태어났기에 가족들을 잃었어. 항일전쟁이라든지 국공내전의 과정에서 일본군들에게 학살되거나 내전으로 인해 죽어버렸지. 당시 우리 가족들은 비교적 변방에 떨어진 흑룡강성에 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파천황 그놈은 직접 공안요원들을 데리고 찾아가 우리 부모를 협박했다고 하더군. 당신 자식이 반정부 운동을 하고 있으니 설득하라고 말이야.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 과정에서 협박을 하다 파천황은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죽여 버렸지. 남은 건 형이 남아있었는데, 파천황은 남은 형마저 협박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북경으로 끌고 올라왔다가 내가 보는 눈앞에서 그를 죽여버렸어. 하하! 하하하하하하!!!”
원륭은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자 모두의 표정이 심각해진 것이다. 사실 일지흔의 과거라든지, 악무양의 과거 등을 들으면서 모두들 다른 이들의 과거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륭의 과거도 그에 못지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악무양의 부모는 공산당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 벌목꾼이자 숲지기였던 두 사람이 대약진운동으로 인해 피폐해져가는 숲들을 바라보다 시름에 쌓여 홧병으로 죽고 만 것인데, 그것보다 더욱 원륭의 이야기는 처참한 것이었다. 그러자 악무양은 머뭇거리며 말했던 것이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니······. 당신은 괜찮소?? 어찌하여 그런 서글픈 사정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이오??”
그러자 원륭은 다시 한 번 웃었다.
“하하!! 감정은 영원한 것이 아니야!!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닳아 없어지지!! 이제는 한 줌의 슬픔도 남아있지 않아!! 그저 소모된 감정은 풍화되어 절벽에 묻은 핏자국처럼 한없이 풍화되어 희미해졌을 뿐이다!! 나에게 남은 것은 그저 광기와 분노뿐이다!! 그러니 어찌 웃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하! 하하하하하하!!!”
그 순간 모두는 오한이 들었다.
오싹!!
가끔씩 원륭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악무양을 단련시키는 모습이나 무공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힘을 숭상하고 그것으로 패도를 행사하는 무림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원륭은 정말로 광기에 젖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미쳐버린 것은 아니었다.
광기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완전히 미쳐버린 것과 침착하게 미쳐버린 종류가 있다.
원륭은 침착하게 미쳐버린 것이다. 완전히 돌아버린 광인들은 피아식별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순수하게 분노만을 발산하며 모든 것을 파괴할 뿐이었는데, 원륭과 처음 만났을 당시의 살문의 영혼이 비교적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다 살문의 영혼은 원륭에게 호되게 당하고 어느 정도 생전의 이성을 되찾았는데, 보통 주화입마에 걸린 무림인들이 그러한 광기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무리한 운공으로 마성이 골수에 침투하여 완전히 돌아버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러면 희대의 색욕마인이 된다든지 살성이 되어 모든 것을 죽이고 강간해버리는 경우가 잦았다.
인간의 생식 본능과 살상 본능만이 뚜렷해진 마인이 되는 것인데, 명교인들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진정한 마인인 것이다.
그런 주화입마는 무공을 무리하게 익히다보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라, 과거부터 무림에서는 주화입마와의 싸움이 어떻게 보면 정, 사, 마 간의 대결보다 더욱 중요했다.
정, 사, 마 간에도 말은 통하고 대화로 싸움을 풀 수가 있지만 미친 마인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명문 세가의 후계자가 조바심에 가전무공을 급하게 익히다 색욕마인이 되어 강간을 반복하다 가문의 정예들이 희생을 치르며 비밀스럽게 포박, 감금하여 평생을 지하 창고에서 썩었다는 이야기나, 명문 도가나 불가의 고수가 갑작스럽게 주화입마에 걸려 살성이 되어 무림 고수들이 연합을 하여 가까스로 토벌을 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무림사에서는 전해져왔다.
그렇게 주화입마에 걸려 광인이 되면 이성은 잃지만 인간으로서의 제약을 벗어나기 때문에 예전 자기 실력의 몇 배는 더 강해지는데, 원륭은 주화입마에 걸린 건 아니지만 혈귀가 되기도 했고 그도 광기에 휩싸인 편이라 어쩌면 그의 강함의 비결은 오히려 혈귀가 된 것 이상으로 광기의 영향이 클지도 모른다.
아무튼 악무양은 침을 삼켰다.
꿀꺽!!
유난히 청력이 밝은 무림인들의 귀에 악무양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원륭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 옛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본론으로 돌아가지. 아무튼 내 스승이자 동료였던 그들은 천안문 사태에서 몰살당했는데, 그런 이상 명교의 생존자들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있다면 진룡 대협이 우리에게 소개를 시켜주지 않았을 리가 없어. 아니, 그건 또 아닌가?? 하긴 다른 분들도 자신의 후계자들을 소개해주지 않았으니······.”
원륭은 중얼중얼 거렸다. 그러자 의문에 찬 일지흔이 물어본 것이다.
“후계자라니??”
“아, 진룡 대협 뿐만이 아니라 나와 행동을 함께하던 분들은 모두 한 가닥 하는 분들이었다. 제갈의라는 분은 제갈세가의 마지막 생존자였고, 불사왕이란 자도 사파의 거두였지. 개방의 방주였던 상인관, 소림사 출신인 소형승, 사씨 세가 검법의 달인 사휘령, 하오문의 문주 하홍휘. 나와 그분들을 공안 무림맹은 ‘쪽방촌의 무림인들’이라고 불렀지.”
“쪽방촌의 무림인들?? 그건 무슨 말이냐??”
헐크G의 물음에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은신처가 보통 쪽방촌에 있었거든. 쪽방촌, 그 중에서도 학구방이라 불리우는 곳이었지. 좋은 학군 근처에 있는 쪽방촌. 그런 곳들은 좋은 학교에 자식들을 전입시키기 위해 학부모들이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니까 말이야. 그런 건물들이 중국 여러 곳에 있었는데, 그것이 진룡 대협의 주 수입원이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년은 간다고, 진룡 대협은 남은 명교의 자산들로 미리 미래를 꿰뚫어보고 그런 부동산 투자들을 했던 거지.”
“······.”
모두가 잠시 침묵하는 가운데, 원륭은 아련한 기억에 사로잡혔다.
‘쪽방촌이라······. 참으로 그리운 기억들이로군······.’
그가 처음 북경에 도착한 것도 1965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5년 전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세월은 어느새 순식간에 지나서 의기에 넘치던 한 소년은 성인이 되고 어느덧 시니컬한 한 사람의 무림인이 되어있었다. 원륭의 나이 올해로 53세였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했던가······.’
물론 원륭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무공의 대성이든 중국 정부의 타도든 그의 갈 길은 아직도 요원했다. 너무나 먼 길인 것이다.
35년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너무나 소수의 동료들만을 가지고 거대한 중국에 맞서 싸우고 있었는데, 어찌어찌 목숨은 부지하고 있지만 저 강한 중국에 대항하는 것은 가끔씩 강인한 원륭으로서도 회의감에 들게 할 때가 있었다.
‘중국을 정말로 타도할 수 있을까?? 우리들만으로??’
중국 공안의 수는 100만 명이 넘고, 인민해방군은 한술 더 떠서 200만 명이 넘는다.
그들이 일제히 몸으로 깔아뭉개기만 해도 원륭 일행은 압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물론 뭐 무공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게 죽을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망적인 전력 차였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코끼리 앞의 개미였던 것이다. 그러나 원륭은 마음을 바로 잡았다.
‘그 어떤 제국이라 해도 끝은 난다. 그것은 역사가 보증한 진실이다. 우리가 투쟁을 멈추지 않는 한, 언젠간 중국은 끝이 날 것이다. 언젠간.’
그것은 원륭의 바람이기도 했고,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기도 했다. 그렇게 원륭은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 잡으며 중국 공산당의 파멸 및 올바른 시민정부가 들어서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35년 이상 투쟁을 해온 원륭. 그 외모는 청년과 같았지만 오늘따라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는 깊어보였다. 원륭도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루하루 지치게 하는 고뇌와 갈등 속에서, 그는 오늘도 싸우고 있었다. 마치 무림인들이 항상 주화입마와 대적하듯이.
한편 원륭은 한때 무림의 최강 집단 중 하나였던 소림육승을 거론하며, 과연 팔배란 조직의 정체가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빨리 그들과 접촉하지 않으면 팔배 역시 소림육승과 같은 꼴이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림육승은 문화대혁명 이후 그 연락이 끊긴 상태였는데 제 아무리 고강한 그들이라도 이렇게 연락이 오랫동안 닿지 않는 이상 이미 공안 무림맹에 당했을 거라고 원륭은 추측했던 것이다.
한편 그해 마카오가 정식으로 중국에 반환되었고, 해가 바뀌어 20세기의 마지막 해이자 2000년대의 시작을 알리는 2000년이 되었다.
2000년에는 별다른 큰 사건이 없었으나, 2001년 1월 1일이 되자마자 중국 공안은 북경 천안문에서 시위를 벌인 법륜공 수련자들을 강제로 진압하여 700여 명을 체포했다.
21세기의 시작을 중국 정부는 피로 물들이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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