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제3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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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침 악무양과 헐크G가 돌아왔다.
“누가 이겼지??”
태사향의 물음에 헐크G는 말없이 엄지손가락으로 옆을 가리켰다.
“······.”
모두가 침묵한 채 악무양의 얼굴을 주목했다. 악무양의 얼굴은 온통 부어올라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처참하군······.”
“뭐, 결국 운 좋게 8강 진출한 녀석과 운 없게 우승후보와 64강에서 맞닥뜨린 녀석의 차이라는 거지. 안 그런가??”
헐크G가 악무양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자 악무양은 흠칫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큭!!”
분한 표정을 짓는 악무양을 보고, 원륭은 가만히 생각했다.
‘흐음, 그래도 나름 괜찮은 대결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일방적 대결이었나······.’
말 그대로 차이는 확연했다. 헐크G의 외견이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반해, 악무양만 처참한 몰골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뭐, 이게 토너먼트의 무서움이지. 실력자도 초반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원륭의 생각대로였다.
원륭 말고도 헐크G가 대진만 잘 만났으면 최소 32강이나 16강에는 진출할 수 있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정말로 헐크G는 8강 진출자인 악무양을 꺾어 그 자신의 강함을 입증한 것이다.
‘결국 대회란 것은 그 자신의 강함만 가지고는 높이 올라갈 수가 없는 법이지. 그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말이야.’
원륭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헐크G가 물었다.
“이쪽 대결은?”
“아, 이쪽도 끝났네. 이제 곧 결과가 나올 듯 하군.”
무대에 가득했던 먼지가 걷히고, 그 결과가 드러났다. 온 몸에서 피를 흘리며 드러누워 있는 쪽은 일지흔, 서있는 쪽은 천만홍이었다.
“흐음, 예상했던 결과긴 하지만 놀랍긴 하군.”
“뭣 때문이지 원륭??”
헐크G의 물음에 원륭은 답했다.
“너희는 초반만 보다가 가서 모르겠지만 살짝 일지흔이 우세한 느낌이었다. 겉보기엔 천만홍이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것 같지만 일지흔은 최소한의 방어로 그 공격을 억제하고 있었지.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천만홍이 이겼군.”
“그래, 전 경기와는 반대가 되었다.”
태사향도 말했다. 태사향이 말한 전 경기란 당연히 진흑창과 악무양의 대결이었다.
그 둘의 대결에서는 밀어붙이던 악무양이 패했는데 이번엔 중간에 살짝 밀리는 듯 했지만 결국 천만홍이 이겼던 것이다.
“그 차이를 뭐라고 보나, 원륭?”
“글쎄, 내 생각엔 절기의 차이인 것 같군.”
“절기의 차이??”
“그래, 절기(絶技). 사실 절정과 그렇지 않은 무공을 가르는 것은 결국 ‘절기의 차이’다. 가령 예를 들어 묻지. 너흰 육합권의 초식을 알고 있나??”
“당연하지. 그건 기본 같은 거니까. 쓰지는 않더라도 그 초식 같은 건 전부 알고 있다. 사실 초식이라고 할 것도 없는 주먹질의 모음이니까.”
헐크G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원륭이 말한 것이다.
“그래. 육합권에는 절기, 즉 ‘필살기’가 없다. 제 아무리 육합권을 갈고 닦아도 삼류무인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야. 모든 초식이 전 무림에 다 알려져 있고 심지어 비장의 한 수인 절초도 없다. 말하자면 육합권의 사용자는 벌거벗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지. 그것은 삼재검도 마찬가지고.”
“그런 건가, 흐음······.”
헐크G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한테 진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군. 나는 초반에 프로레슬링 기술을 몇 번이나 먹였지만 너는 오뚝이처럼 일어났지. 솔직히 그 하나하나가 강력한 기술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정적으로 너를 쓰러트릴 만한 절초는 없었다. 그런 것 아닌가?”
“아니, 내 생각은 다르다, 헐크G.”
“응??”
헐크G의 말에 태사향이 반론을 택했다.
“반대로 내가 원륭에게 먹인 초식은 나의 절초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먼 조상인 태사자 때부터 전해지던 주제를 철저하게 연구했지. 그래서 궁술과 창술의 조화를 통해 태어난 것이 나의 절초, 역수 사일창법이다. 하지만 어떻게 됐지? 나는 창을 적중시켰지만 결과적으로 패했다. 중요한 건 절초의 유무가 아닐지도 몰라. 그렇다고 해서 절초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흐음······.”
헐크G가 생각에 잠기는 가운데, 원륭이 입을 열었다.
“글쎄, 나 같은 경우는 좀 특수한 경우고, 일반적으로 보자면 이 악무양과 일지흔의 공통점은 절기가 없다는 것이야. 반대로 이 둘을 쓰러트린 진흑창과 천만홍은 각각 그 절기를 선보였지. 이봐, 악무양. 너 절초가 없는 건가? 아님 미처 보여주지 못한 건가?”
“······.”
악무양이 침묵하고 있자, 원륭은 말했다.
“절초가 없겠지. 듣자하니 너는 나무꾼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평소에 사람을 상대해본 적이 별로 없지??”
“······그렇다. 내 수련의 상대는 항상 나무였다. 그리고 가끔씩 달려드는 산적들 정도.”
“그렇겠지······. 산적들이야 허구한 날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그 수준도 그리 높지 않지. 그리고 혼자서 나무를 베다가 그 정도 무공을 터득한 건 대단하지만, 반대로 항상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고 반격하지 않는 나무는 단단하기는 해도 결국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할 뿐인 대상이라는 거다. 확실히 너의 도끼질엔 패기가 있었다. 대결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대상으로는 그 기를 압도해 단번에 쓰러트렸겠지. 하지만 나무와 달리 계속해서 움직이는 살아있는 인간, 상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초조해졌을 것이다. 맞나?”
“후우······.”
악무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맞다. 나의 상대는 거의 다 나무뿐이었다. 그러다 산적 목 몇 번 벤 것이 유명해져서 이번 대회에 초빙 당했지. 솔직히 사람 목 베는 것도 나무 베는 거랑 뭐가 다를까 생각했는데 착각했었어. 우물 안 개구리라고밖에는 말할 도리가 없군.”
“뭐, 아무튼 너의 대결은 단 한번밖에 보지를 못했지만 개선만 한다면 발전할 여지가 많아 보이더군. 실전 경험이 거의 전무한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 공격력이니 말이야. 신법과 보법을 좀 익히고,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대련을 꾸준히 한다면 훨씬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충고는 고마운데 좀 거슬리는군.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같아서 말이야.”
“실제로 너와 나의 무공은 지금 상하관계에 있다. 나에게 이기지 못하는 헐크G에게도 진 너를 우습게 볼 권리정도는 당연하겠지.”
“어이, 지금 나 까는 거야?? 한 번 더 해볼까??”
짐짓 화가 난 척 눈을 부라리는 헐크G를 보고, 원륭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후후, 그 전에 태사향과도 한번 붙어보라고. 너희 둘의 싸움은 좋은 승부가 될 테니까. 개인적으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매우 궁금하기도 하다. 대충 내 예상가는 자는 있지만······.”
“그게 누구지??”
태사향의 물음에 원륭은 답했다.
“그건 셋이서 붙어보라구. 그 대결의 승자와 다시 한 번 붙어주지.”
“왠지 열 받지만 이미 졌으니 할 말이 없군······. 좋아, 그 도발 받아주지. 그건 그렇고 아까 그 천만홍이 쓴 초식 말이야. 그건 대체 뭐라고 생각하나??”
“그래, 나도 그게 궁금한 참이었다. 난 아예 못 봤으니까 말이다.”
헐크G의 말에 악무양도 고개를 끄덕였다. 천만홍과 일지흔의 대결을 놓쳤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재미있는 승부를 하여 딱히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아, 그 초식 말인가?? 채홍검법 절초, 칠색채홍폭격이라고 했지. 말 그대로 폭격 같은 검격이었다. 원래 검격은 그렇게 거칠게 쏟아내기도 힘든데, 잘도 해내더군. 일지흔의 그 검결과는 전혀 반대 성격이라고 해야 되나.”
“그래. 사실 천만홍은 가끔 지나가다 봤지만 굉장히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그런 폭탄같은 절초를 선보일 줄은 몰랐다.”
태사향의 말에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사실 사람 겉모습으로 그 무공을 측정할 순 없지······. 어쩌면 그게 천만홍의 본성일지도. 못 본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마치 유성우 같은 검격의 폭격이 와르르 쏟아져 단번에 일지흔을 뒤덮어 버렸다. 그 뒤로는 폭연에 무대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제 아무리 방어에 능한 일지흔이라도 그 검결은 못 버텼나보군. 저렇게 실려나가는 것을 보면 말이야.”
“······.”
그 말대로 일지흔은 지금 구급대에 의해 들것에 실려 나가고 있었다. 제발로 걸어 나기가도 힘든 기색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천만홍은 약간 지친 것 같긴 했지만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나가고 있었다.
“천만홍의 기색도 약간 지친 것 같은데.”
“그래. 평범한 초식으로 상대하기엔 일지흔의 방어가 너무나 두터웠겠지. 일지흔은 공격력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 방어능력만은 일품이었어. 개인적으론 여기 있는 이 악무양이랑 둘이 붙으면 좋은 승부가 될 것 같군.”
“!!”
가만히 듣고 있던 악무양이 움찔했다. 그리고 확실히 생각해보니 그 정도로 방어가 뛰어나다면 과연 자신과 붙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부어오른 얼굴로 히죽 웃는 악무양을 보고 원륭도 싱긋 웃었다.
‘후후, 역시 무림인이군. 방금 전까지 줘터지고 나서도 바로 붙을 생각에 저리 신난 걸 보면.’
그런 생각을 하다 원륭은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추측하건데 일지흔은 아마 무공을 가르치는 자가 아닐까 싶다.”
“무공을 가르치는 자??”
“그래. 중국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 제 아무리 무림이 쇠퇴한 지금이라도 숨어서 지방의 한적한 도장에서 사람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자도 있을지 모르지. 일지흔의 무공은 그렇게 보일 정도로 너무나도 깔끔하고 담백했다. 남에게 뭔가를 가르치기에는 최적의 무인이나, 실전에서는 조금 약하지. 물론 그것도 본인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겠지만······. 저 자 역시 탐나는 자로군. 비록 8강에서 떨어졌지만 필히 손에 넣어야겠어.”
“손에 넣다니. 저 자도 대상에 넣을 생각인가?”
“물론. 아주 재밌는 소재야.”
중국을 대상으로 한 단합된 홍콩 무림의 저항세력에 원륭은 4대 그룹 말고도 이번 대회에 초빙된 유능한 자들을 모두 참가시킬 작정이었다.
그러지 않기에는 그들의 재능이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그래. 사나이가 태어났으면 옳은 일을 위해 살아가야지. 부와 명예가 아니라 말이다.’
어둠의 무림인, 원륭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날에는 8강 세 번째 경기인 병 조의 경기가 있었다. 병 조에서는 당화와 궁요의 경기가 있었다. 으레 원륭과 그 무리들은 관중석에서 두 사람의 시합을 지켜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일행이 더 하나 늘어있었다. 바로 어제 천만홍에게 패한 일지흔이다.
“나는 대체 왜······. 나는 혼자 보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일지흔이었으나, 원륭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같이 보면 무공에 대해 서로 견식을 나누고 토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억지로 원륭에게 끌려왔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일지흔이었는데, 원륭의 중얼거리는 말 한마디에 순간 움찔했다.
“왜 천만홍에게 졌는지 알려주려고 했더니만······.”
“뭐야, 진짜냐??”
일지흔의 눈이 번뜩거렸다.
“그 말 진짜냐고 물었다.”
“무슨 말이야??”
“시치미 떼지 말고. 방금 천만홍에게 진 이유를 가르쳐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그랬던가??”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만 말해라. 가르쳐 줄 건가, 안 가르쳐 줄 건가??”
“글쎄, 네가 이 경기를 전부 다 본다면 가르쳐줄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한데······.”
“치잇!!”
일지흔은 성질을 내더니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도 천만홍에게 진 이유를 대강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은 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섯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가 곧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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