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3 인중용(人中龍)
무공이 경지에 이르면 의지만으로도 사람을 해할 수 있다하여 의기상인(意氣傷人)의 경지라는 말이 있었는데, 원륭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결과 악무양은 지금 온 몸의 구멍에서 피를 다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원륭은 정말로 악무양을 죽일 듯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보다못한 천만홍이 원륭을 말렸다.
“원륭!! 그러다 죽겠소!! 적당히 하는 게!!”
“흥······!!”
원륭은 마지못해 기운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악무양은 결국 자신이 내뿜은 피 위에 쓰러진 것이다.
쿠웅!!
‘의료반. 즉시 지금 들 것을 가지고 와라.’
진흑창은 지하 경기장에 대기하고 있는 의료반에 전음으로 연락하여 그들을 불렀다.
이 지하 경기장은 이들이 중국 정부와 공안, 인민해방군에 대항하기 위한 최후의 요새라 무장병력이 대기하고 있는 것은 물론, 온갖 시설과 자재가 다 있었다.
의료반, 행정반, 자재반 등 어지간한 규모의 단체가 가지고 있어야할 모든 부서가 다 갖춰져 있고 그들이 원륭 등 9인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다.
진흑창이나 천만홍, 당화의 그룹은 겉으로는 표면적인 영리활동을 하는 기업이었지만, 과거에는 암흑무림계의 범죄조직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홍콩의 정세도 안정되고 적대 조직들도 대부분 사라지자 합법적인 영리활동에 뛰어든 것인데, 아무튼 그러한 과거로 인해 어지간한 기업이나 조직보다 체계와 질서가 잘 잡혀있었던 것이다.
범죄조직이라고 해서 보통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세 총수가 너무나도 뛰어난 능력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홍콩의 암흑기에는 범죄조직으로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고, 홍콩이 안정되니 기업인으로서의 활동을 모색한다.
사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범죄조직이 너무나 커지면 일반 기업의 흉내를 내다가 나중엔 진짜 기업이 되는 경우가 잦았는데, 아무튼 진흑창의 부름에 의해 의료반은 들 것을 들고 오자 그들은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쓰러진 악무양을 실고 나갔다.
그리고 악무양은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원륭의 마지막 비웃음 어린 소리를 듣고 만 것이다.
“궐기를 하려면 무엇보다 화경의 경지는 이루고 나서 말해라, 애송이. 이곳에 너보다 약한 자는 아무도 없다. 이들이 너보다 생각이 모자라고 겁이 나서 감히 나서지 않겠는가?? 어디까지나 신중하게 나서기 위해서이다 신중하게. 우리의 행동은 지뢰밭에 발을 들여놓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야.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다리는 물론이고 온 전신이 날아가고 만다. 너 하나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우리 조직이 날아가면 우리 아홉 명은 물론, 지금도 이 지하 경기장 및 각종 도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수만 명의 직원들은 어떻게 책임질 건가?? 그들은 모두 반동으로 낙인 찍혀 해고당하고, 아니, 애초에 이들 세 명의 그룹 자체가 철저히 분해돼버리겠지. 홍콩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기업 째로 아마 적당한 친중국 인사에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 대가는 어떻게 치를 것이냐?? 감히 너 따위가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말이다 악무양!!!”
그 말을 들은 악무양은 정신이 가물가물한 가운데에서도 할 말이 없었다.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확실히 이제 그의 목숨은 그만의 것이 아니게 됐다.
그가 혼자 나서다 공안 무림맹에라도 잡히게되면 모든 계획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파천황은 어설픈 무림인이 아니다. 이들 중 누구라도 그에게 잡히면 고문과 세뇌, 섭혼술과 최면 등 온갖 기술에 당해 모든 계획을 낱낱이 털어놓게 되고 마는 것이다.
세계를 연 창세의 무공 음양혼돈공의 조각인 한빙신공과, 그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큰 두 무기 중 하나인 암살공마저 동시에 가지고 있는 파천황을 상대로 해서 조심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모자랐다.
같은 음양혼돈공의 일부인 열양진경을 가지고 있는 강호육이나 강씨 세가마저도 파천황에 대해서는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아무튼 가물가물해지는 정신 속에, 악무양은 원륭의 마지막 외침을 듣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잠꼬대는 꿈에서 해라 애송이!! 세상은 너에게 상냥하지 않아!! 존재하는 것은 냉혹한 현실과 엄준한 심판뿐이다!! 네 미숙한 행동의 대가는 언젠가 너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해라!!”
‘제길······.’
악무양은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악무양이 실려나간 후 한동안 회의실의 공기는 뒤숭숭했다. 무엇보다 기운에 민감한 무림인들이라 그런 분위기가 더욱 예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불쾌한 침묵이 한동안 감돌 때, 일지흔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원륭······.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오??”
“누가?? 내가??”
“그렇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렇게까지 몰아붙일 필요는 없었을 터인데······.”
일지흔의 염려는 그럴 만도 했다. 악무양도 이젠 일류 무림인이라 자기 무공에 대한 자부심도 있을 터인데 원륭은 그런 걸 산산이 깨부숴버렸던 것이다. 그러자 원륭은 냉정히 말했다.
“오히려 봐준 거야.”
“봐줬단 말이오?!?”
일지흔은 깜짝 놀랐다. 사람이 온 몸의 구멍에서 피를 뿜으며 고꾸라졌는데 봐줬다니. 그런 게 과연 사실이란 말인가. 그러나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군. 자넨 파천황을 직접 본 적이 있지??”
“그렇소.”
“자네가 본 파천황과 지금의 나. 어느 쪽이 더욱 더 강한가??”
“······.”
일지흔은 잠시 말을 멈췃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일지흔의 머릿속 판단력은 파천황이 월등히 더욱 더 강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림인뿐만 아니라 싸움을 조금 하는 일반인들도 싸움을 해보면 싸우기도 전에 눈앞의 상대에 대한 전투력이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된다.
체격, 골격, 만두처럼 접힌 귀나 반대로 납작해진 귀, 상처가 생기고 다시 회복되길 수도 없이 반복한 결과 굳은살로 뒤덮인 손과 발. 코, 이마 등을 보면 대체로 상대에 대한 전투력이 파악되는 것이다.
그것 외에도 두텁게 솟아오른 승모근이라든지 각종 근육, 무엇보다 눈빛, 그리고 그 정기만으로도 사람에 대한 분위기는 쉽사리 파악할 수 있겠는데, 일지흔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만난 파천황은 인간이 아니었다.
대낮인데도 두 눈에서 귀화가 피어오르고, 마치 호랑이 같은 두 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질적인 것은, 그런 파천황이 의외로 여성적인 모습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은 무척 길고, 한빙신공의 영향인지 푸른 빛 머리를 하고 있었다.
사실 머리카락이 극도로 긴 것도 음공의 정점인 한빙신공을 익혀서인데, 그렇게 자주 잘라도 금방 길어지는 것이 파천황의 머릿결의 특징이었다.
파천황은 그렇게 기나긴 푸른 머릿결을 휘날리며 웃고 있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 중 하나인, 아니, 그의 인생 가장 큰 트라우마이자 악몽인 파천황의 모습을 떠올리자 일지흔은 그만 속이 불편해져 버렸던 것이다.
“우욱!!!”
놀랍게도 일지흔이 토할 뻔한 것은 피가 아니었다. 순수한 구토. 토사물이다.
일지흔은 가까스로 절정 무림인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그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는데, 화경에 경지에 이르러서도 어린 시절 새겨진 악몽의 낙인은 일지흔을 그리 괴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구토를 참느라 두 눈에 눈물이 괴일 정도였는데, 그런 일지흔을 보고 원륭은 턱에 한 손을 괴고 심드렁하게 말한 것이다.
“그가 더 강하지??”
“!!”
“지난 10년 넘게 네가 지켜본 나. 하지만 30년도 더 넘게 전에 만난 파천황은 그것보다 더욱 강하다. 한빙신공을 얻었을 때부터 그의 무공은 절정에 다다라있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암살공을 익혔을 때부터 이미 강했지. 한빙신공과 열양진경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공이니 말이야.”
“암살공이라니??”
헐크G가 물었다. 그러자 원륭은 깨달은 것이다.
“아, 미안 설명을 하지 않았군. 이건 내 독자적인 경로로 알아낸 정보인데, 파천황은 본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살문의 계승자였고 어느 날 배신해 강씨 세가의 한빙신공을 훔친 뒤 살문의 수장인 살황을 비롯한 모든 일족을 살해해버렸지. 소문에 의하면 한빙신공을 익히기 전에도 파천황은 무척이나 강했지만, 한빙신공을 익히고 나서는 그 적수가 없어졌다고 하더군.”
“그런 얘기를 왜 이제 하는 건가!!”
헐크G는 원륭은 질책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가장 먼저 알려야 할 정보 중 하나인데 원륭은 그만 살문의 원혼과의 만남 때 들은 정보를 깜박 잊어버리고 동료들에게 전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기도 했다. 살문의 원혼에 대한 정보는 이들에게도 절대로 알려서는 안 되는 특급중의 특급 정보였다.
비록 살문의 원혼은 지금은 원륭보다 약하다고 해도 차근차근 홍콩의 마기를 먹고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가끔 원륭을 상대하면서 그의 기술도 진보하고 있었는데, 아무튼 파천황과의 일전에서 일종의 비수가 될 살문의 원혼에 대한 정보를 원륭은 공개할 수 없었다.
절대로 공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원륭은 이번 살문에 대한 정보나 암살공에 대한 정보는 언급하면서도 살문의 원혼에 대한 정보는 절대 언급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언급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조커다. 암기다. 방심하고 있을 때 급소를 찌르는 암살자의 비수인 것이다.
예측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얻어맞는 먼 거리에서 날아온 치명적인 일격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비록 지금도 상당히 강하다고는 하지만 원륭의 선에서 정리되는 살문의 원혼을 동료들이라고 해서 그들에게 공개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최후의 순간까지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원륭도 모르게 파천황의 심장을 찔러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원륭은 기대하고 있었는데, 살문의 원혼이 이들에게 드러나는 것은 파천황과의 결전 때여야만 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존재가 드러날 곳은 그 때밖에 없었는데, 아무튼 원륭은 시치미 뚝 떼고 파천황에 대한 정보만을 이야기했다. 그때 드물게 침묵을 깨고 궁요가 말했다.
“원륭. 파천황이 강하다는 것은 알겠소. 절대무공을 둘이나 가진 그의 강함도. 그런데 그러면 대만 쪽의 세력과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내가 알기로 대만 강씨 세가의 강호육은 열양진경 하나만을 익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러면 강호육이 파천황보다 뒤처지는 것은 아니오???”
드물게도 입을 연 궁요의 말에 원륭은 적잖이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본론만을 이야기했다. 궁요는 말이 적지만 말을 안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어디까지나 입을 꾹 닫고 있다가 남들이 물어보지 않는 궁금증, 그렇다고 절대로 상상만 해서는 풀리지 않는 궁금증 등은 반드시 물어보았는데, 그런 궁요의 침묵과 발언은 원륭에게 있어 매우 고마운 것이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까지 사사건건 따지고 물어보는 악무양 같은 존재도 있었으니. 아무튼 원륭은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아니야. 강호육과 파천황의 실력은 완전히 호각일세.”
“어째서??”
“그 둘이 처음 맞붙은 것은 내가 알기론 100여 년 전인데, 그때는 의화단 운동의 말기였지. 증오해 마지않는 존재라고는 하지만 서양인들에 대한 식인이라는 자충수를 저지른 의화단, 청 내 군벌들에 의한 탄압, 그리고 서구 열강 연합군에 의한 탄압,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의화단을 끝낸 것은 단 두 명의 무림고수들의 대결이었지. 그래. 파천황과 강호육이었다. 강씨 세가에서 한빙신공을 훔쳐 익히고 그때부터 청 황조에 붙어 권세를 누리기 시작한 파천황. 그런 파천황은 청 황조의 명령에 의해 의화단을 진압하러 나섰지. 아마도 서태후의 명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선 강호육. 강호육은 가문의 비전이자 수천 년을 넘게 내려온 음양혼돈공의 반쪽을 훔쳐간 파천황을 붙잡아 한빙신공을 되찾기 위해 싸웠다. 그들의 대결로 반경 수 km는 초토화가 되었지. 불과 얼음이 동시에 공존하며 한쪽은 계속해서 불타고, 한쪽은 계속해서 얼어붙는 열한지옥이 이루어졌다고 하지. 그것은 현세에 일어난 지옥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모두는 상상했다. 화경에 이른 모두였지만, 그들은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없었다. 아니, 도달하지 못했다.
인간이 화염과 냉기를 자연스럽게 부리며 마치 지옥의 악마처럼 다른 인간들을 자연스럽게 유린하는 모습. 의화단 운동의 참가자들도 엄청난 고수들이었지만 그 둘은 그것을 능가했던 것이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생각은 버려라.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세에 나타는 용, 인중용(人中龍)이나 다름이 없지. 전설에 따르면 용은 불과 뇌전을 자연스레 내뿜으며 수천 리 하늘을 날아가고 온갖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일지흔. 그런 파천황과 강호육에게 대항하는 내가 너무 조심스럽게 보이는가??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보이는가??”
그러자 일지흔은 한숨을 내쉬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아니, 당신은 지나치지 않소. 당신의 행동은 정당했소. 사과드리지. 당신의 행동에 한 점 그름은 없소.”
일지흔이 한숨을 내쉰 까닭은 마지못해 원륭의 말을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가 원륭의 말에 납득했기 때문이었다. 원륭의 말로 인해 일지흔은 그 자신도 무의식중에 봉인해놓고 있던 파천황의 진면모와 그에 대한 공포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원륭의 말대로 파천황은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랄 것이 없는 상대였다. 상대는 용(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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