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 오늘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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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도 쏘라고?!”
흠칫!! 쪽방촌 무림인들은 움찔했다. 제아무리 파천황이라도 총알에 의한 피격은 막을 수 없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들은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빙주결계!!!”
파천황이 자신의 몸 주변에 거대한 얼음기둥을 돌게 만드는 빙주결계는 날아오는 총알을 전부 다 막아버렸다. 워낙 고속인데다 얼음기둥들의 크기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천황은 지시했다.
“지금부터 이 주변에 안개를 만들 테니 그 곳으로 총알을 쏘시오.”
“언제까지??”
“안개가 걷힐 때까지.”
“알겠소······.”
인민해방군 지휘관은 곧바로 지시했다.
“쏴라!!”
투타타타타탕!!!
거센 총격이 재개된 것과 동시에 곳곳에 자욱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 결과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서로의 얼굴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자욱한 안개 속에 갇히게 되었다. 원륭의 어깨 옆으로 총알이 하나 스쳐지나갔다.
“큭!!”
“괜찮나?!”
“전 아직 괜찮습니다!!”
원륭은 쓰라린 어깨를 감싸고 주변을 경계했다. 다행히 혈귀인 원륭의 몸은 아직까지 재생이 뒷받침 돼주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가능할는지······.
피와 내공이 다 떨어지면 혈귀도 평범한 인간이나 다름없다.
안개를 뚫고 계속해서 총알이 날아오자 원륭은 허리춤에 찬 낙일검을 뽑아 총알을 하나 튕겨냈다.
캉!!!
검날과 총알이 맞부딪치며 불쾌한 소리를 내었다. 원륭은 총알을 튕겨내기는 했지만 완전히 반으로 가르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다.
자욱한 안개 속에 갇혀 사실상 어둠 속에서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주변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 소형승은 갑자기 자신의 뒤를 노리는 파천황의 기운을 눈치 채고, 뒤돌며 장법으로 응수했다.
쾅!!!
“어떻게 알았지?”
“아무리 안개 속이라 해도 숨기기에는 네놈의 존재감이 너무 커. 숨길 수가 없다.”
“과연 그런가······.”
파천황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다음 작전을 생각해봐야겠군.”
스윽.
그 순간 파천황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니, 이게 무슨?!”
“모두 주의하게! 파천황은 본디 살문의 고수야!! 저런 것도 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거네!!”
“과연 진룡. 곧바로 파악했군.”
안개 속에서 파천황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살문의 암살자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배우는 건 당연히 암살기술이다.
암살기술에는 상대의 공격을 버티는 것은 포함되지 않고, 오직 단번에 적의 숨통을 끊는 것과 그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은신술, 그리고 장기간 은신술을 펼치는 동안 생리현상을 통제하는 잡다한 기술들을 배운다.
따라서 은신술은 파천황의 장기 중 장기인 것이다. 만약 파천황이 이대로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먼저 찾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파천황은 하홍휘부터 먼저 습격했다.
“이들 중 가장 약한 건 네년이겠지!!!”
“!!!”
캉!!!
하홍휘는 말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연검술을 펼쳐 파천황을 몰아냈다.
파천황은 웃으며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사소한 상처지만 계속해서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처는 입지 않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파천황은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왜지? 놈들의 방어가 생각보다 견고하다. 이 정도 실력들은 아니었는데??’
진룡이나 불사왕 정도면 몰라도, 다른 이들의 방어 초식이 너무 뛰어났다.
하다못해 실력이 크게 증진된 원륭이나 소형승이면 모르겠는데, 이들 중 가장 약한 편이라 판단했던 하홍휘나 사휘령 등도 엄청난 방어를 선보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곧바로 다음 습격에서 알게 되었다.
쾅!!!
안개 속에 숨어 사휘령을 향해 장력을 날리며 다가간 파천황은 움찔했다.
그를 맞이한 것은 사휘령이 아니라 바로 진룡이었다.
“어째서?!”
“보아하니 이 안개 속에서는 네놈도 완전히 모든 걸 파악할 수 없나보군.”
“팔괘진 때문인가!!”
“바로 맞췄다.”
파천황은 바로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기본적으로 진법이란 형성하기 위해 일정한 배치를 요구한다. 특정한 형식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구성원들이 서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냥 마구잡이로 그 자리에 서있는 게 아니었는데 그 말인즉슨 진법의 형식만 파악할 수 있으면 파천황도 적들이 펼친 진법의 형태에 따라 그 구성원들의 위치를 알 수 있고, 반대로 펼치는 쪽방촌의 무림인들도 그걸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몇 번에 걸친 습격으로 파천황이 팔괘진의 구성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안개에 숨어 교묘히 배치를 바꾸었다.
배치를 바꾼다고 해서 팔괘진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고, 배치가 잠시 바뀌는 동안 팔괘진은 무력화되거나 약화되지만 자리를 바꾼 후 다시 발동하면 얼마든지 사용가능하다.
본래 전쟁터에서도 군대를 이용한 진법은 일정한 자리만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진퇴를 반복하며 계속해서 그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팔괘진을 사용하여 유기체로 연결된 이 여덟 명은 서로 간의 간극을 좀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고, 내공을 이용한 감지능력도 증폭되어 시각이 거의 봉인된 상태에서도 파천황의 위치를 그나마 상당히 잘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파천황은 씨익 웃었다.
“좋아, 해보자!! 누가 더 강한자인지를 말이야!!!”
그리고 그 와중에도 총알은 빗발치듯 쏟아지고 있었다.
타타탕!!!
인민해방군들은 어차피 시민들의 진압도 대충 다 끝났겠다, 남은 총알들을 전부 다 파천황이 지시한대로 안개 안에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파천황 뿐만 아니라 날아오는 눈 먼 총알마저 신경 쓰며 싸워야했던 것이다.
타타타타타탕!!!
사방에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쪽방촌 무림인들은 외롭게 싸우고 있었다.
파천황이 습격해 오지 않는 가운데에도 이들은 안개 속에서 언제 날아올지 모를 총알을 피하거나 막고 있었고, 슬슬 한계를 느꼈다.
‘헉헉, 시야라도 탁 트여있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제갈의가 가쁜 숨을 내쉬며 간신히 날아오는 총알을 또 막았다.
검으로 총알을 쳐낼 수 있는 진룡이나 사휘령, 하홍휘, 원륭과는 달리 장법을 주로 사용하는 불사왕이나 상인관, 소형승, 제갈의는 총알을 막기가 상대적으로 좀 더 어려웠다.
이들이 가진 막강한 호신강기로도 총알은 막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날아오는 총알을 그냥 피하거나, 정 피할 수 없다면 옆면에서 밀어버렸던 것이다.
스으윽!!!
총알 같이 직선적인 힘이 강한 물체들은 옆면에서 밀어버리면 의외로 간단히 그 궤도가 꺾인다.
다만 문제인 것은 그런 총알이 날아오는 궤도를 파악할 동체시력이 대부분의 인간들에겐 없다는 것······. 하지만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할 수 있다. 왜?
사실 쪽방촌의 무림인들 뿐만 아니라 삼류가 아닌 이류, 일류 수준의 고수만 되도 총알은 피하거나 도구를 쓰면 막을 수 있다.
내공을 통해 그 정도의 동체시력은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내공은 치유에 특화된 힘이었지만 동시에 신체를 강화해주는 힘이었다.
그러니 하루에 천리를 뛰어다닐 수 있게 해주고 산과 바위를 부수고 물 위를 걷게 해주었는데, 다만 문제는 그런 동체시력으로도 총알의 궤도를 파악하려면 가능한 한 길게 보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안개 때문에 총알이 날아오는 궤도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본 순간 이미 너무 가까이 왔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이들이 총알을 막기 더욱 힘든 이유였다. 만약 이들이 처음부터 인민해방군이 총을 쏘는 장면을 목격한다고 생각해보자.
총알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막는 게 아닌 피하는 것이다. 그 편이 더욱 안전했는데 처음부터 발사장면을 보고 궤도를 파악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피할 수 있었다.
총을 발사하는 사람의 시선, 방아쇠를 당기는 타이밍, 총구의 방향 등을 보면 충분히 여유롭게 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인민해방군은 한두 명씩 총을 쏘는 게 아니고 수십, 수백 명이 동시에 쏘지만 쪽방촌 무림인들 정도의 능력이면 대부분 파악가능하다.
그리고 만약 놓친 총알 몇 개는 지근거리에 왔을 때 파악하고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짙은 안개가 그것을 방해했다. 그 결과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갑자기 눈앞에서 나타나는 수십 개의 총알을 피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것이다.
쐑!!!
‘큭!!’
심지어 일행 중 가장 강한 편인 진룡마저도 몇 개는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스쳤으니, 그 정도를 알만했다.
그나마 이들은 아직까진 치명상을 입지 않고 가벼운 상처는 출혈을 막는 금강대 변인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그 한계는 머지않은 듯했다.
제 아무리 팔괘진을 잘 이용하더라도 인간을 초월한 파천황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인민해방군 대부대의 총알마저 피하는 건 무리인 것이다.
‘안되겠소, 피합시다!’
‘제갈 대협?!’
‘어차피 시민들은 이미 대부분 죽거나 도망쳤소!! 이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소!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우리까지 죽게 될 거요! 우리가 죽으면 누가 더 중국 정부에 대항하겠소!!!’
‘······.’
안개 속에서 날아온 제갈의의 전음에 진룡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선택은 뻔한 것이었다.
‘확실히 그 말이 맞소. 모두에게 퇴각신호를 보냅시다!!’
퍼펑, 퍼퍼펑!!!
진룡은 품에서 다발로 된 폭죽 하나를 꺼내 땅바닥에 던졌다. 땅을 튀며 요란하게 터지는 이 폭죽은 중국 폭죽의 하나로, 진룡이 퇴각을 위해 준비해놓았다.
퇴각을 위해 단 하나만 준비하면 됐는데 보통은 전음이나 그냥 의사표시만으로 퇴각이 가능하지만, 이처럼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힘들 때를 대비하여 무조건 하나는 챙겨놓는다.
지금까지는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처럼 안개가 짙어지자 진룡은 폭죽을 사용해 모두에게 퇴각의사를 알린 것이다.
“모두 퇴각하세!!”
“누구 마음대로!!!”
퇴각을 알리는 진룡의 말에, 파천황이 곧바로 달려들며 따졌으나 그때 안개를 뚫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진 대협. 저는 그 퇴각에 반대하겠습니다.”
“원륭?!”
“어째서?!”
안개 속에서 상인관과 제갈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은 그동안 파천황에게 조금이라도 자세한 자신들의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침묵 속에서 싸우고 있었으나, 마침 진룡이 입을 연대다 원륭이 퇴각을 반대하자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입을 닫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원륭은 설명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파천황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을 때는 혼란을 틈탄 상황이거나, 파천황도 상당히 기력을 소모했을 때입니다. 문화대혁명의 말에 소림육승이 나타났을 때가 그랬죠. 강청을 잡으러 갔다가 치열한 대결이 펼쳐진 상황에서 저와 불사왕이 위기에 빠졌을 때 소림육승이 나타났고, 그들의 추격을 피해 파천황은 도망쳤습니다. 그 전에 우리가 도망쳤을 때도 파천황이 대빙하시대와 같이 자신의 시야까지 가리는 너무나 큰 초식을 사용했을 때에나 우리는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도망치기에는 시기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그 말 대로였다. 파천황은 아직 기진맥진할 정도로 기력을 소모하지도 않았고 이 주변은 전부 이미 인민해방군이 빙 둘러싸고 있어서 탈출하기도 힘든 것이다.
그러나 원륭은 상황을 비관적으로만은 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역시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우린 모든 힘을 다 쓰지 않았습니다. 이 날을 위해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무공을 수련한 게 아닙니까? 어디, 이 중에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한 분 계십니까??”
“······.”
“······.”
확실히 그 말 대로였다.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이들 중에 전투가 불가능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원륭은 단언하며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잡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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