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 이유
“자, 아무튼 이걸로 내가 결승전에서 너와 붙어도 불리함은 없겠지. 혹시 모르니 조금이라도 확실히 정양을 하고 있으라구, 진흑창.”
“······.”
진흑창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이건 어떤 의미로 있어선 내게 굴욕이군, 장원륭. 좋다. 나를 치료해준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그러자 원륭은 진흑창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의 성을 아는 자는 드문데······. 조사를 많이 했나보군.”
“중국 정부가 지정한 특급 테러리스트의 성을 아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우리 중 누가 이기든 지든, 우리는 앞으로 많은 대화를 해야 할 거야. 그러기에 위해선 성을 아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럴지도······.”
원륭은 어깨를 으쓱하고 VIP룸을 나갔다.
탕. 방문이 닫히자 헐크G는 물었다.
“정말로 괜찮나, 진흑창??”
“아아. 저 자식,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을 완전히 치유해버렸어. 오히려 평소 컨디션 그 이상이다.”
“말도 안 돼······. 상대의 진기에 간섭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야. 타인의 진기는 보통 충돌하기 때문에 완전히 같은 사문의 것이 아니면 서로 접촉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지. 그래서 체내에 진기를 집어넣기만 해도 충돌하는 것인데 치유를 해버린다니······. 있을 수 없어.”
“그 말대로다, 헐크G. 사실은 내가 가장 믿기지 않아. 처음에 체내에 진기가 들어오길래 ‘역시나’하고 내력대결을 펼칠 생각을 했는데, 저 놈의 진기는 내 진기를 완전히 피해 체내 요혈과 심맥만을 치료하더군. 솔직히 무서운 일이야. 저런 진기를 다루는 실력으로 진짜 내력대결을 펼치면 어떻게 되겠나??”
“······.”
그 말에 헐크G는 물론 태사향도 침묵했다.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의술에 정통한 자들 중에선 가끔 인체를 파괴하는 것에도 정통한 자들이 있었다.
인체에 구조에 대해 그렇게 해박한 만큼 망가트리려고 하면 누구보다 더 잘 망가트릴 수 있는 것이다. 진흑창은 입을 열었다.
“내가 조사해보니 저 원륭이란 자와 행동을 같이한 쪽방촌의 무림인이란 자들 중에는 제갈세가의 후계자가 있었네. 아마도 그 자에게서 의술을 배웠겠지.”
“흐음, 그의 치료는 요행이 아니라 진짜란 말인가······. 행동을 같이하고 있기는 하지만 알면 알수록 무서운 사람이기는 하군.”
“헐크G, 그의 사문에 대해 듣지 못했나?? 보아하니 요새 같이 어울려 다니는 것 같던데.”
“전혀. 은근슬쩍 물어봤는데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하며 답변을 피하더군. 뭐 굳이 캐물을 생각은 없지만.”
“그래. 그는 무섭도록 강하고 까다로운 인물이지만, 의외로 건드리지 않으면 무척이나 순한 인간이다. 잘 지내는 게 좋을 거야. 너희 쪽에서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가 해코지할 일은 없을 테니.”
“물론. 그보다 진흑창. 결승전이 끝나고 나면 나와 다시 붙어주지 않겠나??”
“왜? 지난번의 패배가 인정할 수 없나??”
“그런 건 아니지만······. 뭐 그런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저 나는 너와 붙고 싶다. 너와의 대결은 아주 재미있었거든. 저 원륭이란 자와 마찬가지로.”
“그래······. 언제든지 오라구. 나는 거절하지 않을 테니. 그보다 헐크G, 묻고 싶은 게 있네. 자네는 나와 원륭 저 자를 모두 겪어보았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누가 더 강하지??”
“!!”
“!!!”
헐크G와 태사향은 모두 움찔했다. 그러다 입을 연 것이다.
“······그것은 자네가 직접 확인해보면 돼. 내가 이러쿵저러쿵해봐야 소용없겠지. 하지만 내가 본 바로는 너희들은 호각이다. 그저 내가 너희들의 실력을 완전히 끌어내지 못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호각인가······. 고맙네, 헐크G. 나도 그러리라 예측했어. 나만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것뿐이지. 뭐니뭐니해도, 자네 역시 나를 고전시킨 자 중의 하나일 뿐이니까 말이야.”
“미친 소리······. 너나 저 원륭이나 나를 상대로 하면서 전력을 내지 않은 건 알고 있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그만두시지.”
“진짜래도. 뭐 아무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하지. 자네를 강하다고 생각하는 건 진짜야. 그렇지 않으면 굳이 내가 미국까지 가서 데리고 올 이유가 없지.”
“그럼 그런 걸로 하자구.”
“후후.”
진흑창이 웃고 있는데, 갑자기 태사향이 포권을 하더니 말했다.
“진 총수. 나는 산동에서 온 태사향이라 하오. 대화중에 미안하오만, 결승전이 끝나면 나와도 한번 붙어주지 않겠소?? 같은 창술의 사용자로서, 당신을 꼭 한번 상대하고 싶소.”
“산동 창술의 명수 태사향······. 당신과도 꼭 붙어보고 싶었지. 16강전에서 원륭을 상대로 아쉽게 지긴 했지만, 만약 대진만 좋았더라면 최소 8강에는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소. 적어도 그 멧돼지 같은 악무양이나 반대로 샌님 같은 일지흔보다는 나았겠지.”
“멧돼지라, 후훗.”
“뭐가 우습소??”
“아니, 원륭이 한 얘기가 생각나서 그랬소. 그도 악무양을 멧돼지라고 평가했거든.”
“하하하!!!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오?? 그것 참 재밌군. 아무튼 태사향. 대결은 언제나 환영이오. 결승전이 끝나고 얼마든지 상대해주지. 그 전에 당신과 붙었다간 기껏 나은 몸이 또 다칠 것 같으니 말이오.”
“과찬의 말씀.”
“이건 진심이오.”
“······.”
태사향은 진흑창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확실히 진심이었다. 태사향의 심장을 노리는 사일창법은 진흑창으로서도 상당히 충격적인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창대의 탄성과 공격력을 철저히 극대화하여 심장 등 급소에 단번에 내리꽂는 그 절기는 진흑창이라고 해서 쉽게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 절기를 상대로 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무척 궁금해지는군, 후후······.’
진흑창은 씨익 웃었다. 태사향의 절기는 그렇게 쉽게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혈귀인 원륭도 일부러 맞은 것이 아니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맞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혈귀인 그라 터진 심장을 재생해서 이겨낸 것인데, 그런 능력이 없는 다른 이들은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태사향의 절기를 본 자들은 모두 그 수를 궁리하고 있었다.
“아무튼 다음에 좋은 날 다시 보기로 합시다, 태사향. 그때는 끝나고 술이라도 한잔했으면 좋겠군.”
“바라던 바요. 나 역시 술을 많이 좋아하니, 그때 한잔합시다.”
태사향이 다시 한 번 포권을 하자 진흑창도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그리고 헐크G가 입을 연 것이다.
“그럼 돌아가겠네, 진흑창. 몸조리 잘하고 있으라고.”
“하핫, 다 나았다니까, 헐크G. 아무튼 알았네. 조만간 한판 붙을 날을 고대하지.”
“나 역시 물론.”
헐크G는 고개를 끄덕이고 태사향과 함께 VIP룸을 나섰다. 그리고 진흑창은 텅 빈 방 안에서 마치 홀로 옥좌에 앉은 왕처럼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것이다.
‘원륭이라 흐음······.’
그의 결승전 상대로 누가 올라올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아마 진흑창은 원륭이 올라올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자, 신사숙녀 여러분!!! 드디어 8강전 병 조의 경기가 다가왔습니다!! 관객 여러분들도 무척 기대되시죠?!?”
“닥쳐, 이 개자식아!! 뭐가 병 조의 경기냐!!”
“세상에 4강전 경기를 8강전보다 먼저 하는 대회가 어딨어!!”
“내 돈 내놔!!!”
관중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원인모를 이유로 인해 본래 치러져야할 일화와 원륭의 대결보다, 진흑창과 천만홍의 대결이 먼저 이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진행자인 화구는 당황한 것이다.
“아앗, 여러분! 그러지 마세요!! 잠깐, 누가 홍콩 명물인 카레어묵을 던진 거야!!!”
관중들이 화구가 있는 곳으로 각종 물건을 던지기 시작하자 처음에 사과하던 화구도 분개하여 받아쳤다. 그러자 난장판이 된 것이다. 그때 진흑창이 나섰다.
“아아, 잘 들리나.”
“진흑창??”
“이 목소리는 진흑창의 목소리다!!!”
진흑창이 무대 위로 뚜벅뚜벅 올라왔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이해한다. 병 조 선수였던 일화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경기 일정이 바뀌었다. 그로인해 큰 손해를 보았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대회의 도박장은 모두 우리 흑룡 그룹이 관할하는 것은 알고 있겠지??? 우리 그룹 역시 자체적으로 자금을 이용해 베팅을 하고 있었는데, 경기 일정이 바뀜으로 인해 큰 손해를 보았다. 그러니 여기선 양해하고 넘어가주지 않겠나?? 부탁한다.”
“······진 총수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운 좋은 알아, 대회운영위 놈들아!!!”
함성이 빗발치는 가운데, 진총수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이해에 감사한다.”
그리고 진흑창이 무대를 내려가는데 계속 함성이 날아왔다.
“진흑창, 이번 대회 우승은 역시 당신이야!!!”
“진 총수님!!!”
그렇게 소란스러운 가운데, 진흑창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무대를 내려왔다.
그리고 VIP룸으로 가는 길에, 그는 반대로 시합을 위해 오던 원륭과 마주쳤다.
“진흑창, 연기가 아주 능숙하군. 손해를 보았다는 말은 거짓말일 텐데??”
“무슨 말이지??”
“시치미 떼지 마. 손해를 보았다는 말은 배당이 바뀌었다는 말. 그러나 어차피 너는 너의 승리에 그룹의 자금을 걸었을 테니 딱히 손해 본 것도 없겠지. 배당이 낮아지든 높아지든 너는 이기면 그만이야. 이길 거라고 생각한 자신에게 돈을 걸고 실제로 이겼는데 무슨 손해를 본단 말인가.”
“후후, 그런 건 아냐. 실제로 예상했던 수익보다 약간 못 미쳤어. 갑자기 대진이 바뀌어 급하게 배당이 책정되느라 나에게 내가 생각한 배당보다 더 낮게 나왔거든.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좋았겠지만······. 뭐, 그 당시 돈을 건 사람들은 내가 이길 거라고 예상했다는 거겠지. 그것은 기분이 좋지만.”
“······.”
이 대회의 배당률은 철저히 얼마나 베팅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로 진흑창과 천만홍의 실력은 비등비등하다고 예상되었지만, 돈을 건 사람들은 진흑창 쪽에 더 많이 걸었고 그 금액도 더 많아 진흑창 쪽이 배당이 더 낮았던 것이다.
진흑창이 자신이 이기는 쪽에 돈을 걸긴 했지만 그룹의 자금이라도 그가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제한되있었고, 이 대결에 걸린 돈 자체가 워낙 많아 단순히 그가 건 자금 때문에 그의 배당이 낮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진흑창은 말했다.
“그리고 당초에 정해진 너와 일화의 경기가 밀려서 배당이 다시 정해졌거든. 골치 아픈 건 아니지만 다시 계산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귀찮은 건 사실이지. 정확히 말하면 번거롭다고 해야 할까?”
“번거롭긴 뭐가 번거롭지? 해답은 당연한 것 아닌가, 진흑창??”
“응??”
“배당이 아무리 낮더라도, 이기는 쪽에 거는 게 상식이지. 질 쪽에 걸어봤자 배당이 아무리 높으면 뭐하겠나. 맞추질 못하는데. 나에게 걸어라, 진흑창. 나의 절대적인 승리를 약속하지.”
“너에게 걸라고? 자금을? 하하, 하하하하하하!!!”
진흑창은 미친 듯이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그의 눈가에는 눈물마저 고여 있었던 것이다.
“이거 최근 10년 간 이렇게 웃은 적은 없는 것 같군. 넌 최고다, 장원륭. 나도 그룹을 운영하고 소싯적에는 도박판에서 구르며 자금을 마련했지만, 너처럼 자신만만한 놈은 처음 본다. 도박판에는 절대라는 게 없어. 그 어떤 강자라도 지고 비참하게 거꾸라질 수 있는 게 도박이다. 그래서 도박은 무서운 것이지······. 나는 어릴 적부터 도박판에서 자라서 안다. 도박은 마약이다. 그리고 마굴이다. 그것만큼 인간을 잠식하는 무서운 것도 없지. 그런 도박판에 절대, 절대라니! 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러나 진흑창의 말은 사실이었다. 스포츠 경기든 격투대회든 정말로 절대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역배라는 게 성립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언젠간 반드시 그것이 일어난다. 그것이 도박의 무서움이자, 인생의 무서움이기도 하다. 진흑창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좋아, 아직 시간이 있으니 너에게 걸어보지, 원륭. 솔직히 나도 일화 그 년은 마음에 들지 않거든.”
“내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나?”
“뭐 그런 것도 있지만······. 그 년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이야. 애초에 왜 너와 일화의 경기가 미루어졌는지 알고 있나??”
“글쎄······.”
“무려 그년, 프랑스로 쇼핑을 갔다 왔다. 수많은 관중들을 우롱하고 경기일정을 미루면서까지 쇼핑을 즐기고 온 거야.”
“뭐라고?!?”
뿌득. 원륭의 이가 갈렸다. 그리고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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