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암흑비무대회
“처음부터 우리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불렀나? 이런 비겁한!!!”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이게 지금까지 너희들이 서민들에게 했던 방식이 아닌가?? 중국 정부와 결탁해서 발전하기 전의 홍콩 땅을 싼값에 대거 사들인 후 거의 풀고 있지 않지. 서민들은 그래서 닭장 같은 구룡성채 같은 곳으로 가기에 이르렀다. 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희가 악일까, 내가 악일까?? 너희들을 처단하고 이 사실을 공표하면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 같은데.”
“······.”
그러자 모두들 할 말이 없어졌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은 서로 이권을 다투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만, 홍콩 시민들 입장에서 그들은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존재였다.
기업 간의 정당한 경쟁이라고 하기엔 도를 지나쳤던 것이다. 애초에 불법과 밀월로 쌓아올린 성이었으니. 원륭은 채찍과 함께 당근을 던졌다.
“정 니들이 꺼림칙하다면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지. 홍콩 경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아마 지금 이상으로 더 대대적인 단속을 하겠지. 사실 그들도 너희와 중국 정부의 관계를 알면서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조직의 말단만을 단속하고 있던 것에 그치지 않아. 아직 홍콩이 반환된 것은 아니라지만 어찌됐든 일국양제 체제에 의해 중국의 눈치도 봐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너희 조직 간의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그들은 좀 더 대대적인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려고 하고 있어. 그것이 그 첫 번째 이유다.”
“첫 번째 이유? 다른 이유도 또 있나??”
“물론. 비무대회라는 공식적인 대회를 통해 경쟁을 하면 뒷말이 안나옴은 물론 설령 경찰이 개입한다고 해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겠지. 어디까지나 기업 간의 친선대회니 말이야. 그거 스포츠 대회일 뿐이다. 그리고 그 대회를 통해······. 너희 조직원들의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겠지. 그게 두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
“그렇다. 아무리 4대 재벌을 표방한다고 해도 너희 조직원들 중 다수는 그저 칼잡이 깡패들. 그동안에 기업 간의 합법적인 경쟁을 한다고 해도 오히려 거기에 불만을 품은 자들도 있었겠지. 너희 근본이 무림조직이기 때문이다. 무림인들은 싸워야 제 값을 하는 법. 그들은 아마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 갈등을 유발한 거겠지. 그렇지 않나?”
“······.”
총수들은 다시 한 번 말이 없어졌다. 확실히 그랬다.
그들은 겉으로는 홍콩 4대 재벌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그 근본은 어둠의 무림조직이었기 때문에, 그 빛과 어둠의 갈등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룹 내에서도 순수한 기업인인 빛의 무리들과 무림인으로서의 어둠의 무리들이 서로 계파를 짓고 갈등을 자아내고 있었는데 그렇게 그룹 내에서도 싸우고, 그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면 다른 그룹이나 일반 시민들에게도 피해가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유가령 납치사건도 다 그런 사례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얽히고설킨 뿌리를 파고 들어가 보면 그런 이유가 있었는데, 원륭은 그런 일들을 막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
“어떤가, 거절할 이유가 없을 텐데?? 구성원들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금까지의 피비린내 나는 방식이 아닌 좀 더 ‘신사적이고’ ‘세련된’ 방식을 제시해 주는 거다. 이보다 더 좋은 방안이 있나??”
“······.”
잠시 모두들 생각에 잠긴 가운데, 천만홍이 입을 열었다.
“대회의 진행 방식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천만홍!! 설마 받아들일 것인가!!”
“이렇게까지 들었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어. 너야말로 어떻지, 일화. 사실은 찬성하고 싶지만 그저 거부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말이야.”
“크윽!!”
일화는 얼굴을 찡그렸다. 확실히 그 말 대로였다. 어디서 굴러먹다 나온 지도 모를 개뼈다귀 같은 존재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홍콩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모두 뒤흔들 초유의 제안이었다.
만약 받아들이면 이 이후로 홍콩의 역사가 변하는 것이다. 일화가 갈피를 못 잡고 있자 천만홍이 나섰다.
“좋소. 그 제안 받아들이지. 구체적인 건 대회의 형식을 좀 더 들어봐야 되겠지만. 우리 네 명중 세 명이 찬성했으니 다수결에 의해 통과된 걸로 봐도 되겠지??”
“잠깐, 난 아직!!”
“일화! 고집 좀 그만 부려라! 이 이상은 너의 손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텐데?! 정녕 자충수를 둘 셈이냐!!”
“······.”
예상치 못한 천만홍의 분노에, 일화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좋아. 일단 들어는 주겠어. 하지만 대회의 규칙에 문제가 있다면 난 언제든지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거야. 알겠어??”
“뭐, 좋아. 그것도 결국 너의 손해일 것만 같지만. 홍콩을 지배하는 네 그룹 중 하나의 그룹만 외톨이가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아무리 4대 재벌 중 하나인 너라도 버티지는 못할 거라고 본다만.”
“큭!!”
원륭의 말에 일화는 이를 갈았다. 확실히 그 말 대로였다. 2대2면 몰라도 3대1로 형세가 변한 시점에서 그녀에게 승기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사나운 암고양이 하나를 조용히 시킨 후, 원륭은 본격적으로 설명에 들어갔다.
“자, 그럼 대회 규칙을 설명하겠다. 기본적으로 대회는 4강전으로 한다. 네 개의 그룹에서 한명씩 대표를 뽑아서 대결에 나서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기면 바로 결승전에 진출하고, 결승전에서 이긴 자가 우승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승자가 소속된 그룹이 네 그룹의 최종 총수가 되는 거지.”
“잠깐, 그래서는 너무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대결에는 무릇 변수가 있기 마련인데 고작 세 번의 경기로 홍콩을 좌지우지하는 대표를 뽑는단 말인가?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그건 그렇소. 좀 더 신중하게 경기 규칙을 재고하는 것이······. 8강전이나 16강전을 통해서 말이오.”
“어차피 그렇게 해봤자 대결만 길어지고 결승전에 진출할 자는 이미 정해져 있을 것 같은데······. 너희들 외에 그룹 내에 강자들이 그렇게 많나?? 물론 외부에서 초청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만······.”
“아까 네가 이 대회의 목적 중 하나는 구성원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도 포함돼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대회는 길면 길수록 좋을지도. 물론 너무 긴 것은 좋지 않지만 말이야.”
“으음······.”
일화와 천만홍에 이어 가만히 있던 진흑창까지 거들고 나서자, 결국 원륭은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기세로 재벌 총수들을 압도한 건 좋았지만, 진정이 되자 슬슬 그들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것 같은 방안을 찾아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재벌 총수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대회 규칙이 정해졌다. 대결은 무려 128강. 참가자격은 현재 4대 그룹의 구성원이거나 그 그룹으로부터 초빙을 받은 자.
현재 구성원이 아닌 자들도 초빙을 받으면 참가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4대 그룹이 무력 이외에 재력으로도 경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도 상당한 전력을 갖춘 4대 그룹이지만, 그것이 현재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전력은 아닐 것이다. 외부에서 고수를 초빙한다든가 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이런 규칙을 통해 선수를 좀 더 다양하게 보충하는 것은 물론, 각자 그룹의 선수 초빙 경쟁과 거기에 쓰는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도 다양한 볼거리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합의를 통해 4대 그룹은 똑같이 32명씩 선수를 내보내고, 그 중 단 한명씩은 8강부터 참여하는 시드 선수로 나서게 되었다.
최우수 전력의 실력이 노출되는 것을 막고, 관중들에겐 기대감과 신비스러움을 제공하며 어차피 8강전에 진출할 것이 뻔한 강자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초반부터 나와 피라미들을 때려잡으면 경기가 너무 싱거워지기 때문에, 오히려 이 규칙은 대회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였다.
관객들은 누가 4대 그룹의 최우수 전력일지, 그리고 과연 그들 중 정말로 우승자가 나올지 혹은 기대하지 않았던 제3의 무인이 우승할지도 관심사인 것이다.
대회가 결정되고, 진행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경기장 수배는 물론, 시설설치와 참가 선수 초빙, 경기에 따른 부수적인 수입원도 마련되고 있었다. 바로 도박이다.
여기서는 선수나 4대 그룹의 재벌 총수가 아니라도 운만 좋으면 한몫 잡을 수 있었는데, 참가하는 선수들이 워낙 많은데다 과거의 무림처럼 무림인들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다보니 돈을 거는 것은 정말로 신중해야했다.
오직 아주 작은 정보와 결국 자신의 눈썰미에 의존하는 것이다.
돈을 거는 방식도 무려 128강의 승패를 전부 다 맞추는 말도 안 되는 방식부터, 우승자만 맞추는 방식, 반대로 최초 탈락자를 맞추는 방식, 최다 연승자를 맞추는 방식 등 아주 다양해서 취향에 맞게 골라잡을 수 있었다.
사전에 네 그룹의 총수는 시드선수의 정보를 교환했다. 나중에 가서 사실은 다른 선수가 시드선수였다라고 하는 일이 없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면 대회막바지까지 강한 선수를 찾다가 초빙할 수도 있고 아무튼 혼란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네명, 아니 원륭까지 다섯 명은 모여서 시드선수를 확인했다.
“우리 지평선 그룹의 시드선수는 나, 당화다.”
“순홍 그룹의 시드선수도 나 일화.”
“천지 그룹의 시드선수도 나 천만홍이오.”
그런데 흑룡의 총수인 진흑창은 스스로를 시드선수로 등록하지 않았다.
“왜 자신을 시드선수로 등록하지 않았지, 진흑창??”
원륭의 물음에 진흑창은 대답했다.
“훗, 그건 너와 동일하다, 원륭. 너는 왜 시드선수로 등록하지 않았지?? 너의 발언권을 생각해보면 당화를 제치고 자신이 시드선수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건 재미없잖아. 마주치는 놈들은 모두 죽인다. 그게 내 룰이다.”
“마음에 드는군, 나도 같은 생각이다! 하하하하하하!!”
둘은 의기투합해서 눈을 마주쳤다.
“이 대회, 재밌어지겠군.”
“뭘, 서로 결승전까지 가기를 빌자구. 내가 생각하는 대로라면 분명 둘 다 결승전까지 가겠지만.”
그렇게 둘은 주먹을 부딪치고 헤어졌다. 둘 사이에서는 오직 순간 둘만이 알 수 있는 전류가 흘러넘쳤다. 그런 두 사람을 다른 세 총수는 보고 있었다.
‘알긴 아는 것일까. 이 대회엔 홍콩 4대 그룹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것을······.’
‘누가 이기냐에 따라 자신의 그룹은 흥하고, 다른 자의 그룹은 쇠하는 것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없을 진데······.’
‘과연 용감하군. 나로서는 감히 하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나에겐 나만의 사명이 있어.’
당화와 일화가 각자 생각하는 가운데, 천만홍 역시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말이 비무대회지, 이 대회에는 그야말로 자신들의 그룹의 명운이 달려 있었다.
애초에 원륭은 어떤 제안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대회 한번으로 영원한 홍콩의 맹주를 가리는 건 좀 그렇겠지. 한번 우승하면 5년간 네 그룹의 총수를 맡는 걸로 하자구. 그리고 5년 뒤에 다시 승부를 가리고 말이야.”
“5년이라?? 5년은 너무 길지 않소?”
천만홍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원륭은 덧붙였다.
“그리고 그 동안에 뭔가 갈등이 생길 수도 있겠지. 우승한 그룹의 행사에 불만을 품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러면 거기에 대한 불만제기와 해소는 또 비무로 하는 거지. 사실 기업 간의 갈등은 해결하기 쉽지 않아. 각종 위원회나 법정에 제소해야 하고, 그렇게 해도 결과가 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과가 나와도 승복하기 쉽지 않지. 그럴 바에는 그냥 비무로 해결하는 거다. 어때??”
“하지만 우승자가 있는 그룹은 이미 그만큼 강하다는 말인데, 비무대회가 열려도 결과는 또 같지 않겠소??”
“우승자라고 해서 우리 중에 압도적인 전력은 없다고 본다만······. 정 그렇다면 대회에서 우승한 자는 갈등조정을 위한 비무대회에는 참가하지 않는 걸로 하지. 어때?”
“그렇다면 좋소.”
“나도 동의하지.”
불만많은 일화까지 동의하고 나니 진흑창은 뭐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세부적인 규칙들이 결정되고, 대회가 결국 열린 것이다. 일명 ‘암흑비무대회.’
살인과 살상무기가 모두 허용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책임을 일체 묻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4대 그룹과 그 총수가 자신의 권한으로 어떻게든 무마하는 걸로 결정됐다.
급소가격 역시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 외 금지된 무공이나 수법 역시 없다.
한번 대결을 치른 선수는 최소한 하루 뒤에 다음 대결을 하는 것으로 결정됐으며, 선수들은 각자의 신분을 증명하는 패(牌)를 하나씩 가지고 이 신분증을 잃어버리면 실격으로 간주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규칙들이 있었고, 선수들 자신도 스스로에게 베팅을 할 수 있는 등 도박관련 규칙도 세세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드디어 대회가 시작되었다. 암흑비무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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