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마탄의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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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신의 처지를 알기나 하나??”
“모르고 있는 건 네놈들 쪽이 아닐까?”
“······.”
정보원 할멈은 원륭은 눈을 똑바로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원륭의 눈이 마치 마귀처럼 붉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저런 눈이······. 흉흉하구나. 너무나도 흉흉해. 마치 흉신악살의 그것과도 같다······.’
할멈은 눈을 피하더니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조준을 해제하라는 뜻이었다.
곧 사방에서 살기가 사라졌다. 원륭을 조준하던 자들이 총을 내린 것이다.
물론 할멈이 신호만 보내면 곧바로 그들은 사격을 개시할 것이다.
그들은 그런 자들이니까. 현대의 살수라고나 할까. 암살자들이다.
“잘 생각한 거야, 할멈.”
“무슨 의미지??”
“목숨은 소중한 것 아니겠나. 이미 다 늙어 쭈그러진 할망구라도 목숨은 소중할 테지. 조직원들의 목숨도 그렇고 말이야, 큭큭.”
원륭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웃자, 정보원 할망구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다음 정보를 구하러 올 때까지 안 뒤지고 살아있으라고 할망구.”
“자네나 조심하게. 사지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정보나 파는 나보다 자네가 먼저 뒤지지 않을까??”
“좇이나 빨아, 할망구.”
“자네 좇이라도 대줄 텐가?”
원륭은 씨익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준 후 그 자리를 나왔다.
원륭은 원래 욕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지만 작년에 동료들을 모두 잃는 최악의 경험으로 인해 성격이 더러워진데다 이곳 홍콩 뒷골목의 범죄자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의식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것도 있었다.
그 결과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돌아온 홍콩에 완전히 적응했던 것이다.
아직까지 중국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드는 욕은 별로 대중적인 게 아니지만, 홍콩은 일찌감치 영국의 지배 아래 서구문물을 접한 터라 그런데 익숙했다.
음식 역시 홍콩인들은 중국인들에 비해 빵 같은 서양 음식을 접하는 빈도도 높았고, 아예 서양식과 중국식이 만나 새로운 퓨전 문화를 보이는 것이 각 계에 있었다.
아무튼 원륭은 정보상 할망구한테 들은 주소를 곱씹으며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주식회사 황룡이라······.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놈들이로군.’
유가령에게 배역을 제안했다 퇴짜를 맞은 삼합회의 회사가 주식회사 황룡이었는데, 이놈들은 어처구니가 없게도 본사건물에 유가령을 감금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원륭도 혹시나 했다가 본사 건물에 유가령이 감금돼있었다는 사실을 알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런데 주식회사 황룡의 건물에 도착한 원륭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상한데······. 경비가 너무 삼엄해.’
유가령을 납치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경계를 삼엄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유가령을 회유해서 영화에 출연하게 만들거나 본때를 보여 응징을 하고 다른 이들에게 본보기로 삼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면 인적이 드문 곳에 몰래 유가령을 납치해 볼 일만 보면 될 뿐이다.
그런데 본사 건물에 대놓고 납치한 것뿐만 아니라 이렇게 경계가 삼엄하다니.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지나가다 기웃거릴 정도였는데, 원륭은 이내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 개자식들, 나에 대한 정보를 팔아치웠군!!’
원륭은 조금 전 만난 정보상을 떠올렸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들이 원륭에 대한 정보를 팔아치운 게 틀림없었다.
상식적으로 유가령을 납치한 황룡 쪽에서 먼저 정보상에게 정보를 요구하기는 힘들다.
유가령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자가 나타나면 알려달라고 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조치를 취해놨을까??
그보다는 돈에 눈이 먼 정보상이 원륭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한 것이다.
‘개자식들, 어차피 죽은 목숨이라 이건가? 정보를 팔아치워도 아무런 뒤탈이 없다고 생각했나보군!!!’
처음엔 그저 호기심으로 할 일도 없어서 가능하면 유가령을 구출하려 했던 원륭이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여기서 유가령을 구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더라도 삼합회 정도의 조직이면 원륭을 뒤쫓아 충분히 귀찮게 할 여력이 있었다.
보통 범죄조직은 피해를 입지 않더라도 자신들과 엮인 자들은 무조건 죽여 없애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야 뒤탈이 없으므로.
인질을 구하든 안구하든 감히 자신들이 납치한 인질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인물을 범죄조직이 그리 탐탁지 않게 볼 것은 당연했다. 가능하면 죽이는 게 당연한 일.
결국 원륭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게 돼버렸다.
‘그렇지. 그런 셈이지······. 세상일이란 게 그런 법이지······.’
원륭은 오밤중에도 대낮처럼 불이 활짝 켜져있는 황룡 본사 건물로 들어섰다.
“이 자식!!”
경비원들이 다짜고짜 달려오는 걸 보고 원륭은 확신했다.
‘분명히 정보가 넘어갔군.’
만약 그들이 원륭에 대한 정보를 몰랐다면 경비원들은 왠 장애인이 건물로 들어오는 걸 보고 용무를 묻거나, 쫓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인상착의나 복장, 신체 특징에 대한 모든 정보가 넘어간 것이다.
‘변장을 하고 오길 잘했군.’
그렇다고 해서 모든 특징들을 감출 순 없지만, 그래도 맨 얼굴로 들이대는 것보단 낫다, 혹시 모르므로.
원륭 역시 이들이 선량한 일반인이 아니라 사정을 알 것 다 아는 삼합회 조직원이라고 판단하고 곧바로 공격을 가했다.
퍽!!
“커헉!!”
경비원 둘이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턱 끝만을 교묘하게 노린 원륭의 주먹질에 곧바로 뇌진탕이 온 것이다. 그들이 채 쓰러지기도 전에 이미 원륭은 다음 목표를 찾고 있었다.
쿠당탕!!
한 박자 늦게 경비원들이 쓰러졌을 때, 원륭은 이미 다음 경비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뻐걱!!
“으아악!!!”
멀쩡한 발로 경비원 하나의 무릎을 걷어차 반대로 꺾이게 만든 다음, 쓰러지는 경비원의 얼굴을 발뒤꿈치로 짓밟는다.
콰직!!
인체로 가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 중 하나인 발뒤꿈치 찍기.
비록 내공은 잃었지만 무술에 통달한 원륭의 발뒤꿈치 찍기라면 한 발에 장애가 와도 사람을 쓰러트리기는 충분하다.
원륭은 발뒤꿈치 찍기로 경비원 한명을 쓰러트린 후, 그대로 몸을 돌려 움직이지 않는 왼팔로 다른 경비원 하나를 후려쳤다.
퍽!!
“크악!!!”
원륭이 가한 공격은 일종의 블랙잭 같은 것이다. 블랙잭은 주머니에 모래나 돌, 쇳덩어리 같은 것을 넣어서 휘두르는 무기인데 감각이 없는 자신의 왼팔을 그런 식으로 이용한 것이다.
팔은 어깨 죽지에서부터 전혀 움직이지 않지만, 오른발과 오른눈, 왼팔을 제외한 모든 몸은 움직이므로 원륭은 원심력을 이용해 한 다리를 축으로 빙글 돌면서 자신의 왼팔을 블랙잭처럼 이용할 수 있었다.
비록 움직이지는 않지만 20년 넘게 무공으로 단련됐으므로 그 팔은 거의 쇳덩어리나 다름없었다. 그 결과 맞은 자들은 곧바로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륭은 움직이지 않는 왼팔을 블랙잭처럼 이용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목을 조르는데도 사용했다.
“커헉!!”
1층을 다 정리하고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경비원이란 놈이 계단 아래쪽이 아니라 딴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단은 아래쪽을 보고 있어야지. 아님 최소한 위아래를 동시에 보고 있든가?! 응?!”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면 적에게 움직임을 바로 들키기 때문에 이런 침입을 할 때는 거의 무조건 계단으로 올라가는 게 상식이다.
낙하산 등을 이용해 옥상부터 침입하면 모를까, 기본적으론 계단을 지킬 때 아래쪽부터 보든가 아님 계단방향과 수직으로 서서 위아래를 동시에 살피는 것이 기본인데 원륭은 이 기본도 되어있지 않은 경비원의 목에 자신의 왼팔을 감아 마치 밧줄처럼 이용해 조르며 입을 열었다.
“다음 생애에는 꼭 그 사실을 명심하거라.”
우직. 단순히 질식을 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쇳덩어리 같은 왼팔을 감아 목을 조여 부러뜨렸는데, 그 힘이 거의 바이스(vice)나 다름없었다.
어지간한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풀 수 없는 것이다. 내공을 잃어버려도 20년 넘게 실전에서 구른 육체는 거의 인간흉기나 다름없었다.
근육이 겉보기에는 그리 크지 않지만 근밀도가 일반인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타격을 입었다고 해도 애초에 혈귀기 때문에, 더욱 그런 차이가 있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들로서는 절대로 대항할 수 없다.
그렇게 원륭은 학살을 계속하며 건물을 올라갔다. 도중에 경비원을 가장한 삼합회 조직원들이 계속해서 대항해왔지만, 원륭에겐 애송이들이나 다름없었다.
말이 삼합회 조직원이지, 총을 들지 않으면 그냥 길거리 양아치에 불과하다.
칼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조직원 하나가 주머니칼을 꺼내 찔러오는 것을 보고 원륭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코웃음을 친 뒤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로 그대로 잡았다.
“그래가지고 칼질 좀 하겠나??”
뚝!!
손가락 힘에 칼날이 부러진다.
“헉!!”
놀라는 조직원이었으나 원륭은 놀랄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정권을 날려 이 조직원의 얼굴을 분쇄해버렸다.
콰당탕!!!
그리고 낙법을 취하지도 못한 채 후두부부터 땅바닥에 쓰러졌는데, 사실은 땅에 닿기 전에 이미 죽은 후였다. 원륭의 살인적인 정권에 의해.
그러나 아마 살아있어도 재미는 없을 것이다. 정권 한방에 코뼈, 턱, 안면부 전체가 함몰되거나 부서졌는데 조각 조각난 뼈를 맞추는 대수술을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돈이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수술의 고통과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자살할 것이다. 원륭은 그렇게 피떡이 된 조직원 하나를 뒤로 남기고, 계속해서 건물을 올라갔다.
1층, 2층, 3층, 건물을 올라갈 때마다 시체가 늘어만 간다. 원륭은 이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납치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같은 조직원인 이상 살려둘 필요가 없다.
살려둬 봤자 사회의 쓰레기인 녀석들······. 사회의 악이다. 그런 이상 원륭이 분리수거해주는 게 도리에 맞겠지.
그렇게 구제받지 못할 쓰레기들의 영혼을 저승으로 분리수거해주고 있는데, 어느새 최상층에 도달했다.
‘여긴가······. 범죄적인 수단을 써서 영화사를 얼마나 불렸는지 건물이 참 높기도 하군.’
주식회사 황룡의 본사 건물은 무려 10층에 달했다.
무려 10층.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인 홍콩에서도 큰 이윤이 남는 영화 사업을, 무려 불법적인 수단까지 써가면서 하고 있던 삼합회니 그 건물도 클 수밖에 없다.
유가령 이전에 삼합회의 협박을 들어서 영화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유가령 역시 아마 단번에 납치된 것은 아니고 삼합회가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뚝심을 버리지 않아서 납치된 것이리라.
원륭은 각 층에서 10명 정도씩, 거의 90명에 가까운 조직원들을 쓰러트렸는데, 의외로 최상층은 조용했다. 마치 무덤가 같았다. 그러나 원륭은 눈치 챘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살기와 존재감이다. 대체 어디지? 누가 숨어있는 거지??’
내공을 잃기 전의 원륭이라면 자신보다 고수인 인물이라도 어렴풋이 그 존재감을 더욱 강하게 눈치 챘겠지만, 지금은 한 줌의 내공도 없는 터라 전혀 그 위치를 눈치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반인이라면 아무리 잘 숨어있어도 원륭의 혈귀로서의 본능이 그 위치를 파악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내는 피의 냄새가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순간 원륭은 깨달았다.
‘설마 무림인?!’
타앙!!!
총성이 실내를 갈랐다. 원륭은 곧바로 장애물 뒤에 숨어 은, 엄폐를 가했다. 이곳 주식회사 황룡 본사 건물의 최상층은 어째서인지 실내 세트장으로 되어있었다.
아마도 상당수 영화를 여기서 찍었을 듯한데 그러니 특유의 소품, 물건들이 많았다.
전통 중국식 전각마저 군데군데 지붕은 없지만 작게 소품으로 지어져 있었는데 원륭은 그 뒤에 숨은 것이다. 그때 소품을 뚫고 총알이 튕겨져 나왔다.
탕!!!
‘아무리 나무 조각이라 해도 이걸 이 정도로 뚫고 나오는 이 파괴력!! 이건 무림인이다!!’
원륭은 깨달았다. 상대는 단순한 총잡이가 아니었다. 총알에 내공을 실어서 쏘는, 현대판 마탄의 사수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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