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만병지왕의 이유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어딘가? 그분들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이 어딘가?”
“해전구요.”
“해전구??”
해전구는 북경의 중심지 중 하나로, 각종 대학과 중요기관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이 이들 쪽방촌 무림인들의 은신처 중 하나였던 것이다.
다만 그것도 20년 전 얘기였는데, 왜 하필 그들이 갑자기 추적을 무릅쓰고 북경 해전구에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표정을 보아하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보군. 나도 그들이 당신들을 찾아서 해전구로 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소.”
“우리를? 왜??”
“그거야 나도 모르지······. 어쩌면 중대한 연락사항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중대한 연락사항이라······.”
소형승은 잠시 말을 아꼈다. 그들 소림육승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3년 전 강청을 사로잡을 때였다.
쪽방촌 무림인들은 강청을 포함해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4인방 패거리들을 모두 체포했고, 소림육승은 그들과 대항하는 파천황을 쫓아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도망치는 파천황을 쫓아 소림육승이 사라지는 모습을 본 것이 마지막인데, 13년이나 지나서 왜 갑자기 자신들의 앞에 나타나려하는지 알 수 없었다.
“뭐, 그 이유는 곧 알게 되겠지······. 그보다 말을 많이 했더니 정신이 희미해지는군······. 당신의 부동심결이라고 했소?? 아주 대단한 무공이었소. 덕분에 저승길 자랑거리가 하나 늘었군······.”
“이봐, 죽으면 안 돼!! 너에게는 살아서 자신의 인생을 바로 잡을 의무가 있다!!”
“후후, 아까 말했지 않소? 난 이미 지쳤다고······. 그리고 지치지 않았더라도 내 몸은 만신창이요. 당신에게 당한거긴 하지만, 후후.”
“이 자식!! 결코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다!! 살아서 죗값을 갚아라!!”
그리고 소형승은 자신의 진기를 넣어 표공재를 살리려했다.
내공이란 치유 에너지고 그 중에서도 소림의 내공이란 정심하기란 으뜸이므로 아직 목숨이 붙어있다면 어지간한 부상자는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것이다.
과장 좀 보태서 아직 죽지만 않았다면 그 어떤 부상자도 살릴 수 있었는데, 문제는 내공이 들어가지 않았다.
퉁!!
“어?!?”
소형승은 당황했다. 본래 소림의 내공은 어지간한 무림인들과 대부분 잘 맞는다. 아주 극악한 사파의 내공을 익힌 것만이 아니면 그렇게 상성이 좋은데, 이 표공재에겐 소림의 내공이 아예 들어가지지 조차 않는 것이다.
“어째서??”
“내 내공의 근원이 마약성 환단을 통해 얻은 것임을 잊었소?? 사실 이는 사파의 수법이나 다름없는 것이지······. 아마도 내 몸의 마약성 내공이 당신의 정심한 내공을 거부하는 걸 거요. 그만두시오. 이 이상 넣으면 아예 내공다툼이 될 테니.”
“하지만!!”
“그러면 그냥 내공의 충돌이 일어나 극심한 고통만 일어날 뿐이오. 날 그냥 내버려두시오. 내 가는 길마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으면. 그리고 어차피 난 곧 산공의 고통이 일어날 거요.”
“산공의 고통??”
산공의 고통이란 사파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에게서 일어나는데, 정파, 그리고 사실상 정파나 다름없는 마교의 인물들은 정심한 내공을 가졌기에 산공의 고통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공을 급하게 모으거나 사이한 방법을로 모은 사파의 무림인들은 죽는 순간 어설프게 쌓인 내공이 빠져나가면서 어마어마한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다.
내공이 흩어지는 사파 무림인들과는 달리 정파, 특히 불가의 무림인들은 고강한 내공을 가졌을 경우 죽을 때도 그것이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결정화된다. 그것을 두고 사리라 했다.
아무튼 죽을 때 산공의 고통이 온다는 표공재의 말에, 소형승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명문 구파일방의 일원이자 종남파 제자인 자네가 산공의 고통이 온다니······.”
“후후, 나 말고도 공안 무림맹 소속 무림인들은 모두 같은 상황이오. 오직 파천황만 빼고는 말이지. 이처럼 마약성 환단을 사용했기에 우리는 내공에 공통점이 생겨서, 덕분에 기존에는 내공이 서로 충돌했던 문파끼리도 내공이 거스르지 않게 됐소. 본디 화산파의 자하신공과 본파, 혹은 다른 문파의 내공은 같은 구파일방이라도 서로 충돌이 극심했소. 하지만 마환단을 사용한다면 다른 문파끼리라도 내공이 호환되어 서로 진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오. 다만 그 대신 그 전에는 내공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던 문파라도 이 마환단을 한쪽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지.”
“그런가······.”
결국 마환단은 기존의 내공 체제를 완전히 깨부수고 마환단을 복용한자들만을 같은 내공을 가진 자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내공심법을 익혔더라도 한쪽이 마환단을 사용하면 내공의 주고받음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대체 어째서 그런 것이······.”
“지금 중국 전역의 토지에서 마환단의 재료인 마약성 식물들이 자라고 있소. 흑룡강성에 있는 농장 한 곳은 당신들 구성원들에게 발각되어 모조리 불탔다고 하더군. 하지만 그런 곳은 한두 곳이 아니오. 당신들 힘으로 모두 막을 수 있을까······.”
“······.”
소형승은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말했다.
“모두 막고 안 막고 중요한 것이 아닐세. 가능한 한 모두 막도록 노력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보면 어느새 상당한 양의 일을 해낼 수도 있고, 그러다보면 모두 해결되는 것일세. 일이란 그런 것이지······.”
“훗,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소. 이젠 정말로 가야할 때가 온 것 같군······. 그래도 마지막에 당신과 싸워서 다행이었소.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뭔가?”
“이제 난 곧 엄청난 산공의 고통에 시달릴 거요.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지. 산공이 시작되면 바로 날 죽여주시오.”
“하지만······.”
“내 처음이자 마지막 소망이오. 살면서 그런 소망을 가진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부탁하지도 않았지. 지금까지 내 선배들도 모두 그처럼 내가 장사지내줬소.”
“알겠네······.”
“고맙소······.”
표공재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곧 엄청난 고통에 의해 그의 눈은 부릅떠졌다.
“윽, 으악!! 으아아아아악!!!”
얼마나 심하게 비명을 지르는지 소형승은 이 자가 대체 어디에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그야말로 표공재는 목젖이 찢어질 정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서 빨리!!”
“하, 하지만!!”
“약속했지 않소!!!”
자신을 원망스레 노려보는 표공재의 시선을 견디다 못해, 소형승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내 결심을 한 듯 장심에 공력을 모아 표공재의 심장을 향해 내리쳤던 것이다.
꽝!!
“크헉!!!”
다시 한 번 표공재의 입에서 선혈이 튀어나왔다. 아까전의 부동심결이 표공재의 신체에 막대한 타격을 주기는 했지만 그도 명색이 무림인이라 생명력이 끈질겨 쉽게 죽지는 않았다.
어설프게 강하면 죽기도 쉽게 죽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형승의 장법이 완전히 심장을 멈추자, 표공재는 안도한 얼굴로 소형승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의 심장이 멈추고 운명하기까지 불과 몇 초전의 시점이었다.
“고맙소······. 내 심장을 멈추게 한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군······. 그리고 가능하면······. 당신처럼 살고 싶었소······.”
쿨럭쿨럭거리며 가까스로 말을 끝낸 뒤, 표공재는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불과 이십 살이었다······. 한편 소형승은 분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보는 대상은 파천황이었다.
“파천황!!!”
으득!! 소형승이 이를 갈았다.
한편 그 옆에서는 사휘령과 점창파의 강문기가 싸우고 있었다.
채챙, 채채챙!!!
두 사람이 사용하는 무기는 모두 검이다. 둘은 조우의 순간, 서로가 검을 든 것을 보고 곧바로 말도 없이 맞섰다. 자고로 검사의 적은 검사다.
장법을 사용하는 자가 최고로 경계하는 자가 장법의 사용자이듯이, 검을 사용하는 자도 검을 사용하는 자를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강문기가 말했다.
“아아, 역시 당신을 골라서 다행이오. 자고로 검을 사용하는 자는 검을 사용하는 자와 싸워야 제 맛 아니겠소?? 역시 만병의 왕은 검이지······.”
그렇게 말하는 강문기였으나, 사휘령은 싸늘한 어조로 대답했다.
“검을 사용하는 주제에 말이 많군. 내가 아는 검의 고수 중에 떠벌이는 없다. 검사라면 검으로 싸워라 입으로 말고.”
“과연, 그렇게 나왔나······.”
강문기의 표정이 묘해지더니 기세가 달라졌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쾌검을 구사하는 것이다.
채채챙!!!
“뭔가 실수한 것 같군. 분명 나는 말이 많지만 내 말수가 줄어들면 나는 그만큼 검에 더 집중하게 되오. 지금까지 그 점을 지적하다 죽은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지. 어디, 당신도 그 대열에 합류해보겠소??”
“큭!!”
사휘령은 낭패한 표정으로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이 떠벌이가 경박한 태도와는 달리 그 실력도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2~30세 밖에 안 된 애송이 같은데, 어디서 이렇게 강한 실력을 쌓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네 이놈, 대체 무슨 짓을 해서 무공을 얻은 거냐?? 검마의 무공이라도 찾은 거냐??”
“검마? 전설상에 내려오는 그 외팔이 검마 말이오?? 분명 검마의 무공은 무림맹에 있소. 정확히 말하면 파천황이 알고 있지. 하지만 그에게서 검마의 무공을 배운 자는 이미 20년 전에 당신들에게 패해 죽었다고 하던데.”
‘자효진 말인가!!’
자효진이라는 화산파의 기재가 있었다.
젊은 나이에 장문인과 장로들의 신임을 얻어 차기 장문인 및 기타 중요인물에게만 전수되는 화산 최대의 절기 자하신공까지 얻었는데, 방심을 하다가 당시 햇병아리였던 원륭에게 당했던 것이다.
성인이 어린 아이에게 방심해 칼을 찔려 죽을 정도의 일이었다. 그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는데 그 일을 공안 무림맹의 인물이 스스로 꺼내니 사휘령은 어이가 없어졌다.
“그건 너희들의 실태가 아닌가?”
“그게 왜 나의 실태요? 그 자의 실태지?? 공안 무림맹 요원들의 실태는 모두 개인의 실태요. 그런 논리로 접근하면 개인의 실태는 조직의 실태고 되고, 조직의 실태는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실태가 되오. 그런 건 곤란하지······. 만약 당신의 공안 무림맹의 인물인데 그딴 말을 했다간 이미 진작에 자아비판을 하든가 처벌됐을 걸??”
“미안하지만 난 공안 무림맹이 아니라서.”
“그러니 그런 소리를 하겠지!! 공안 무림맹 맛을 한번이라도 봤다간 그런 소리를 못할걸!!”
“대체 공안 무림맹은 어떤 상태이기에 그렇게 소속원들이 꼼짝도 못하는 거지??”
움찔!! 그 순간 강문기가 미세하게 움찔했다. 그러나 그 정도는 매우 미세해 어지간한 무림인들도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강문기는 말했다.
“후후, 만약 당신이 고아로 태어났거나 혹은 부모가 있더라도 무공에 대한 자질이 뛰어나 납치되어 국가 소유의 고아원에서 자라났다면 어떠하겠소?? 그리고 10대 후반이 되면 위구르 자치구나 티벳 자치구, 후이족 자치구 등으로 파견돼 학살을 저지르는 거지······. 일반인들을 상대로 실전경험을 쌓으면서 말이야.”
“후회하고 있나?”
“전혀!! 난 나에게 살육의 기회를 준 중국 정부에게 감사하고 있소! 후하하하하하!!”
“미친놈!!!”
땅!!
사휘령의 쌍검과 강문기의 검이 격돌했다. 그러나 강문기는 검을 한 자루 쓰면서도 쌍검을 쓰는 사휘령을 아무렇지 않게 압도했다.
“참 이상하지 않소?? 권이나 장의 세계에서는 팔이 하나있는 쪽이 두 개있는 쪽에 비해 압도적으로 불리하지. 그러나 검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소. 검은 하나만 들고 남아있는 손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한 손에 든 검이 두 손에 든 검에 비해 불리하지 않소. 오히려 압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사실 이건 검만의 특이한 경우요. 창이나 활 같은 것은 한손만 있으면 아예 사용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고 말이야. 하지만 검만은 다르단 말이지······. 왜 그런 것 같소?”
“그딴 것 알바냐!!”
“쯧쯧, 난 이 점이 검이 만병지왕이라 불리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소. 단순히 길이가 적당해서 그럴까?? 단검보단 길고 창보단 짧아서 사용하기가 편하므로?? 하지만 군대에서는 또 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만병지왕이라고 불려왔고 여태까지 그 말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었소.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사실 그 점은 사휘령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생각해봤자 답이 없으므로 그냥 넘어갔던 것이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