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2 가엾은 사람
“후후후.”
자기도 모르게 웃는 원륭을 보고, 의아해진 임소교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요??”
“웃기지 않나??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배식을 받으러 온 주제에, 저렇게 따지고 든다는 게 말이야. 아니, 따지고 보면 저들 중에는 먹고 살만한 자도 있을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다는 게 참 웃기는 일이지.”
“아니, 그건 그렇지만······.”
뭐라고 반박하려다 임소교는 그만두었다. 확실히 그렇다. 빈곤한 차림으로 배식을 받으러 와 연신 고맙다, 고맙다 하던 여자를 임소교는 홍콩 시내에서 마주친 적 있었다.
그 여자는 호화롭진 않지만 나름 괜찮은 옷을 걸치고 아이들과 함께 외식을 하고 있었다.
홍콩은 길거리 음식의 천국. 외식을 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굳이 배식을 할 땐 값싼 옷을 입고 왔던 여자가 아이들과 함께 한가하게 외식이라······.
그런 길거리 음식을 먹을 바에는 당연히 쌀과 재료를 사서 집에서 요리해 먹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식을 하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례를 오랜 봉사활동을 하면서 의외로 자주 목격한 터라 임소교 역시 묘한 불신감이 쌓여있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 정말로 가난한 자들이 맞는 걸까, 아님 먹고 살만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배식을 받으러 굳이 여기까지 오는 걸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처럼 음식을 더 달라던가, 왜 나만 적게 주느냐 하는 실랑이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임소교는 지쳐있었다. 그리고 그건 구세군의 사령관도 그렇다.
“사령관. 사령관도 잘 들으시오. 이래서 내가 굳이 구세군을 도와줘도 그 직책은 맡지 않는거요. 난 인간을 믿지 않아. 저들은 선량한 약자들이 아니오. 시시한 약자들일 뿐이오. 언제든지 도와준 사람들을 따지고 물어뜯을 수 있는 시시한 약자들. 악한 약자들이라고 해도 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들을 돕는 건, 일단 돈이 남아돌기 때문이고.”
여기서 원륭은 잠시 말을 끊었다. 비록 훔친 돈이긴 하지만 일단 돈이 남아도는 건 사실이다. 원륭은 뒷골목의 불량배들을 습격해서 피를 빨고 돈을 훔치고 있었다.
불량배들은 일반 시민들을 등치고, 원륭은 그 불량배들을 등쳐서 다시 그 돈을 식량의 형태로 시민들에게 돌려주니, 시민들은 결국 자기 돈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정확하게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피해를 입지 않은 자가 그 혜택을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까지 해주는 것만 해도 용하다. 보통은 불량배들을 족쳐서 돈을 얻더라도 자신이 챙길 테니까. 하지만 원륭은 돈에 관심이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관심은 여전히 딱 하나뿐이다.
파천황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복수. 아니, 셋일까?? 쪽방촌 무림인들의 행방과 자신을 구해준 자에 대한 궁금증. 천안문 사태 당시 자신이 살아날 길은 없었다.
그러나 비록 장애가 생겼긴 하지만 자신이 살아있는 걸 봐서 분명히 도와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누굴까??
전차의 포격과 파천황의 추격을 뚫고 자신을 외딴 곳에 안전히 숨겨놓고 사라진 걸로 봐서는 보통 고강한 무공을 지닌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누굴지 원륭은 대충 짐작이 가긴 했지만 섣불리 확신을 가지진 않았다.
모든 것이 직접 확인될 때까진 믿을 수 없다. 쪽방촌 무림인들의 죽음도.
자신도 살아있으니 그들도 어쩌면 살아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물론 살아난 후 그동안 그들끼리 공유해온 안전가옥과 수많은 은신처를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쪽방촌 무림인들의 흔적도 없었다.
도리어 어떻게 알려졌는지 잠복해 있던 공안 무림맹 요원에 쫓겨 원륭은 상대적으로 그들의 세력이 약한 홍콩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원륭은 여전히 칼을 갈고 있었다.
‘두고 보자, 파천황······. 무공만 되찾을 수 있다면 널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나 단전은 파괴됐고, 왼팔과 오른발, 왼눈은 불구가 되어버렸다. 애꾸눈, 절름발이, 팔 병신이 되어서 어떻게 복수를 한단 말인가······.
다리를 다치면 보법에 제약이 있고, 한손으로도 강력한 검법은 쓸 수 있지만 원륭은 그런 검법을 모른다.
예전 마찬가지로 한 손을 잃고 독수검법을 익힌 자효진의 외팔이 검법은 본 적이 있지만 그런 건 단순히 본다고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괜히 무공비급이란 게 있는 게 아니니까.
초식과 구결을 모두 알아도 대성할 수 있을까 말까한데, 한번 본 무공을 완전히 따라할 수 있을까. 그건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원륭은 천재도 아니고, 그런 걸 믿지 않았다.
천고의 기재인 파천황이나 강호육도 그런 건 어려울 것이다. 잠시 그런 상념에 빠져 있다가, 원륭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사령관에게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아무튼 당신이 돕고 있는 건 선량한 약자가 아닌, 악한 약자들, 시시한 약자들이라는 걸 기억하시오, 사령관. 그럼에도 그들을 도울지 말지는 당신의 신념에 맡기도록 하지. 그럼 말일 날 다시 오겠소.”
저벅, 저벅. 다리를 절며 원륭은 걸어갔다. 그러다 뒤돌아서서 원륭은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계속해서 돕는다면 난 당신을 존경할거요. 물론 당신은 그러고도 남겠지. 가엾은 사람.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원륭이 사라진 후, 임소교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사령관에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사령관님. 저래 보여도 무척 좋은 사람이에요.”
자신을 다독거리는 임소교를 바라보더니,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하지만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군.”
“예? 원륭이 말한 것 때문에 말인가요??”
“그런 것도 있지만······. 그가 말한 건 대부분 맞는 말이야. 나도 오랜 세월 봉사를 해왔지만 그때마다 늘 오늘 같은 일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해왔지. 그러면서도 나는 봉사를 해왔어. 왜냐하면 그중에 소수라도 정말로 나눔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야. 그도 저렇게 열 받아 하지만 정작 저렇게 계속해서 후원을 끊지 못하는 건 그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야.”
“아······.”
임소교는 동의했다. 원륭은 평상시엔 얌전하면서도 한번 성질이 나면 물불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해졌지만, 한편으론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서 임소교는 그런 걸 느꼈다. 원륭에게선 어쩐지 허무와 공허한 냄새가 났다. 그건 그의 인격에서 느껴진 향기이기도 하다. 같이 지내고 있으면 어쩐지 알 수가 있다.
“그는 인간을 사랑해. 하지만 인간을 저주해. 사랑하면서도 저주하기 때문에 그런 모순 속에서 괴로워할 수밖에 없어. 그는 지나치게 순수한 거야. 상식적으로 그의 말이 맞아. 왜 봉사의 혜택을 받으면서 주변에 시비를 걸지?? 그런 사람들은 암 덩어리야. 해충이야. 박테리아야. 주변에 불쾌한 공기를 사정없이 터트리고 있어. 이 세상엔 필요하지 않은 암적인 존재라고 봐도 되겠지. 그에게는 그런 존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아. 대체 왜? 대체 왜?? 어째서 얌전히 음식만 받아가도 되는데 시비를 거는 거지?? 대체 왜??”
“······.”
임소교는 말을 잃었다. 사령관이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인간에 실망하면서도 인간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화가 나있어. 아마 그가 가장 파괴하고 싶은 건 자신일거야. 그는 분명 과거부터 인간에 실망했겠지. 하지만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하면서 계속 인간을 믿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상처를 받고 있어. 차라리 믿지 않으면 상처도 받지 않을 텐데······.”
울먹거리며 고개를 돌린 사령관은, 하늘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는 불쌍한 사람이야. 가엾은 사람. 그가 나를 보고 한 얘기는 분명 나에게 비친 자신을 투영하고서 말하는 거겠지. 가엾은 사람······.”
“······.”
임소교는 식량을 배급한 현장을 정리하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자신의 집에 이웃한 원륭의 집으로 들어갔는데, 원륭은 드러누워서 멍-하니 있다가 임소교가 들어오는 걸 힐끗 바라보더니 이내 눈을 돌렸다.
“뭐 하러 왔지? 오늘은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텐데.”
“볼 일이 없으면 오면 안 되나요?”
“굳이 올 필요는 없지.”
“그렇군요······.”
“······.”
임소교는 쓸쓸한 표정으로 원륭의 집 안을 둘러보았다.
고작 10평정도 되는 작은 집인데, 사실 구룡성채 안에서 이 정도 크기의 집을 가지고 있다는 건 상당한 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다른 구룡성채 거주인들은 대부분 닭장 같은 수준의 집에서 거주를 하니까.
불빛도 들어오지 않고, 너무 좁아서 몇 안 되는 살림살이만 있어도 순식간에 가득 차 버리는 게 홍콩 쪽방촌의 특징인데, 그래도 원륭과 임소교는 나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원륭은 5년 전인 1985년에 처음 홍콩에 왔는데, 그때 살인적인 홍콩의 집세에 혀를 내두르다 이 구룡성채에 오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좁은 땅에 높은 밀도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구룡성채는 그야말로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나 다름없었다.
건장한 남성도 혼자 뒷골목을 걷다가는 돈과 옷가지를 다 털리고 나체의 시체로 발견 되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무공을 익힌 원륭이라면 뒷골목 잡배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에 오게 됐는데 오자마자 부동산 업자를 칭하는 불량배들과 마주쳤던 것이다.
말만 부동산업자지 깡패들이나 다름없었는데, 과연 구룡성채 거주민들다웠다.
그런 부동산업자들을 원륭은 주먹으로 잘 구슬려(?) 이처럼 좋은 방을 얻게 되었다.
구룡성채 안에서 이 크기에 그 가격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싼 집세를 내고 있었는데, 이것도 다 그때 친해진 부동산업자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원륭이 한동안 홍콩을 떠나 천안문 사태 등에 참가하느라 집을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집은 계속해서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 부동산업자들에겐 그때 원륭에게 당한 것이 상당한 충격으로 작용해, 언제 돌아올지 모를 원륭을 위해 그들은 집을 유지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옆집도 마찬가지로 좋은 집이었는데 그들은 임소교에게 그 집을 마찬가지로 싼 가격에 빌려주고 구룡성채의 범죄들로부터 임소교를 보호해주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원륭은 오랜만에 부동산업자들에게 인사나 하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땐 그저 쓰레기 같은 녀석들인 줄 알았는데 나름 쓸모는 있군. 물론 내가 다 힘이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만······. 내가 완전히 양팔과 양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그 부동산업자들은 그 전에 당한 분풀이를 하며 마구 그를 구타할까? 죽일까? 팔아버릴까??
물론 양팔과 양다리 중 하나도 못쓰는데 어디 팔 수 있을 데가 있을 리 없다.
‘아, 장기밀매가 남아있었군.’
최근 중국 전역에서 장기밀매 시장이 점점 커져간다는 소식이 원륭에게도 들어왔다.
전에 부동산업자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에게서 들은 소식인데, 왜 부동산업자가 그런 소식을 알고 있는 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뒷골목이 천지인 구룡성채 안에선 그런 소식을 구하기 쉬웠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거처를 잘 구했는지도.’
원륭 정도의 무림인이 이런 뒷골목에 거처를 정하면, 생명의 위협은 받지 않으면서도 의외로 사는데 도움이 된다. 짭짤한 수익은 물론이고, 갖은 정보가 다 들어온다.
때론 상인관의 개방 정보망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욱 나았는데,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기존의 개방도들은 대부분 다른 직업을 찾았다.
공산주의 국가 내에서 직업을 갖지 않은 거지는 더욱 천대 당하므로 위장으로라도 직업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 구걸하던 좋은 시대는 다 가고, 이젠 거지도 일을 해야 한다며 상인관이 푸념하곤 했는데, 그런 모습을 떠올리며 원륭은 웃었다.
‘그러고 보니 상 대협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아니, 살아는 있을까······.’
진룡, 상인관, 제갈의, 불사왕, 사휘령, 소형승, 하홍휘······.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이었다.
모택동의 정책 실패로 인해 먹고 살기 힘들어져 고향을 떠났다 북경에서 불량배들을 만나 죽어가던 그를 구해주고 20년 넘게 같이 싸워온 인물들이었다.
1965년부터 그들과 함께 했으니까 작년 1989년 천안문 사태까지 햇수로 따지면 정확히 25년 가까이 되었다, 자그마치 25년.
그런 가족과도 같은 그들을 잃어버렸으니, 원륭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누워서 혼자 얼굴을 찡그렸다, 혼자 웃었다 하고 있으니 보다 못해 임소교는 물었다.
“뭐해요?? 혼자 웃었다, 찡그렸다를 반복하고. 바보에요??”
“······아직 안 갔었나??”
“문도 안 열었는데 어떻게 나가요? 진짜 바보에요??”
“······.”
심기를 거스르는 임소교의 말이었지만, 그보다 충격적인 건 그런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는 자신의 상태였다.
‘그런가······. 기척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었군.’
예전 같았으면 아무리 딴 생각을 하더라도 조금만 인기척이 나면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조그만 부스럭 소리에도 곧바로 알아챘을 텐데, 단전이 파괴되고 내공을 상실하면서 원륭은 그저 주먹을 조금 잘 휘두를 줄 아는 일반인이 되어버렸다.
원래도 내공이 엄청나게 강한 건 아니었지만, 당갈의 요독을 해독하는 등 기연을 거치고 혈귀가 되면서 그래도 상당히 강력한 내공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젠 일반인이라니······.
물론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불량배들은 그냥 다 뚜드려 패겠지만, 이젠 내공을 익히지 않아도 전문적으로 무술을 수련한 프로 격투가들과 마주쳐도 과연 이길 수 있을지 원륭은 의문이었다. 그리고 원륭은 순간 깨달은 것이다.
‘그런가······. 난 약해진 거구나······.’
전성기의 원륭이라면 이런 생각 자체를 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만으로도 약해진 것이다.
‘그렇군. 난 약해진거군······.’
원륭은 쓴웃음을 지었다.
- 작가의말
이게 홍콩 쪽방의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고시원을 초월한다고 볼 수 있겠죠.
홍콩에 저런 쪽방촌들이 많아진 이유는 중국 자본들이 들어와서 재벌 위주의 성장이 펼쳐졌는데, 홍콩 주요재벌들이 땅을 묵혀만 두고 거의 개발자체를 하질 않아서 개발한 곳도 땅값이 천정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룡성채 같이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의 높은 건물들이 만들어졌고, 저런 쪽방들의 크기는 대략 3평정도이며 홍콩에선 28만 가구가 6만7천개 정도의 쪽방에서 생활한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 홍콩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건 범죄인 인도법 같은 이유도 있지만 예전부터 저렇게 극소수 재벌에게 부가 몰려 최소한의 생존조차 힘든 극한 상황에서 생존하고 있던 억눌린 자들의 분노가 터져나온 것도 있습니다.
저런 집 상태에도 불구하고 홍콩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세계 집값 순위에서 탑클라스라고 하죠.
최근 모 대학교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홍콩인들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붙이면서 ‘화냥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사실 이건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조선여자들을 비난하는 말이기도 하죠.
물론 이 설은 민간어원설이고 정설은 화냥년이라는 단어는 호란 이전에도 쓰였다곤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남의 나라에서 그렇게 민감한 단어를 마구 사용하면서까지 홍콩인들은 비난하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닐겁니다.
제가 예전에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중 하나로 갈수록 커져가는 중국의 위협때문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중국이 근본이라는 중화사상에 젖어있고, 자신들끼리 그런 사상을 가지고 살면 상관이 없으나 주변국, 주변 국민에게도 그런 사상을 강요하며 하나의 중국, 더 큰 중국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실제로도 이미 남의 나라에 유학을 온 유학생들이 화냥년 드립을 치며 홍콩인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모욕했죠.
그런 의미에서 하루하루 이 소설을 쓸때마다 저는 더욱 커져만 가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거기에 약간의 무협이라는 조미료를 쳐서 역사를 좀 더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려고 합니다.
오늘도 봐주시는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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