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어처구니없는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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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에서 군것질을 하고 있는 원륭에게 진흑창이 다가왔다.
“뭐야, 왜 따라왔지??”
왠지 귀찮은 눈을 하는 원륭에게, 진흑창은 잠시 묵묵히 있다가 물었다.
“아까 그것, 어떻게 푼 거지?”
“응?”
“그 내력 대결 말이다.”
“아아, 그건가. 뭘, 간단한 일이다. 꼬여있는 내공은 풀면 그만이지.”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넌 네 무공의 비밀을 샅샅이 적에게 털어놓는 인물인가??”
“!!”
“다 비결이 있는 거다. 그냥 그렇게 알아줬으면 고맙겠군.”
“······그렇군. 내가 실례했다. 확실히 그런 법이지.”
“뭘, 알아줬으면 됐다. 그럼 돌아가 줬으면 좋겠군.”
“바쁜가?”
“보시다시피.”
“내가 보기엔 전혀 안 바빠 보이는데??”
“······.”
진흑창의 눈에 보인 원륭은 태연 그 자체였다. 심지어 양손에 군것질거리를 사들고 마구 먹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바쁘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허허, 바쁘다면 바쁘다고 알 것이지. 게다가 우리는 궁극적으론 중국 공산당에 대항해 단합하기 위해 이 대회를 연 것이지만, 그 와중에 서열을 가리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 아닌가?? 너와 나의 조는 정 반대편이라 서로 순조롭게 이겨 가면 반드시 결승에서 볼 것이다. 그런데 친목이 필요한가? 무림인이 나눌 것은 검과 검뿐이다. 그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지.”
“그렇군. 잘못 생각했군. 확실히 이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지.”
진흑창은 그 즉시 돌아섰다.
“다음에 보는 것은 시합장 위다.”
“그 날을 기대하지.”
진흑창에게 대꾸하며 원륭은 싱글싱글 웃었다. 그러자 진흑창은 한번 쳐다보더니 그대로 떠나버렸다.
“흐음······.”
입에 간식거리를 넣고 우물거리며 원륭은 생각했다.
‘4대 그룹의 총수뿐만 아니라 나머지 그 세 명들도 완전히 만만치 않더군. 이거 대회가 기대되는데.’
원륭은 씨익 웃었다.
다음날 8강 1차전 대회가 열렸다.
“자, 오늘 경기는 흑사 진흑창 선수와 악무양 선수의 대결입니다!! 이 둘은 과연 어떤 대결을 펼칠지? 두 사람 나와 주십시오!!!”
“와아아!!!”
관중석에서도 일제히 환성이 쏟아졌다. 흑사 진흑창은 시드권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한 채 128강부터 올라온 터라, 그 사나이다움에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악무양 역시 처음부터 통쾌한 도끼질로 상대방의 두개골들을 쪼개고 올라온 터라 열정적인 팬들이 있었던 것이다. 벌써부터 응원의 열기는 치열했다.
“악무양! 악무양! 악무양!!!”
“진흑창! 진흑창! 진흑창!!!”
“총수님! 이기십시오!!!”
서로 돈까지 걸었기 때문에 그 열기는 엄청났다. 실제로 경기결과에 따라서는 장기를 털릴 자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자신의 장기마저 걸었기에.
그렇게 암중에서 무시무시한 거래들이 오가는 가운데 장내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갑 조의 두 사람. 진흑창과 악무양이다. 진흑창은 맨손, 악무양은 손도끼를 양손에 든 모습이다.
“호오, 진짜로 손도끼인가?”
“어때, 놀랍지?”
“응?”
돌아보니 그곳엔 헐크G가 오고 있었다.
“어쩐 일이야, 헐크G.”
“후후, 관중석에 네가 보이길래 와봤다.”
“요 며칠 화구의 옆에서 보조 진행자로 활약하는 것 같던데 그 일은 그만뒀나??”
“변덕으로 며칠했을 뿐이야. 어차피 안해도 상관은 없지.”
“그런가······.”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화구는 막상 헐크G가 있다가 없으니 왠지 허전한 기분이었다. 헐크G는 시끄럽기는 했지만 일단 무공에 박식하여 경기의 흐름을 잘 짚어주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허전함을 떨치고 화구는 시합을 진행했다.
“자 그럼 시합 계속하겠습니다! 시작!!!”
시작과 동시에 악무양이 돌진했다.
콰아악!!!
“꽤 과감하군.”
“응, 저게 악무양의 방식이다. 매번 저돌적인 돌진으로 기선을 제압해 단번에 승리를 따내버렸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직위뿐만이 아니라 무공으로 봐도 홍콩 탑4라고 볼 수 있는 진흑창에마저 저러다니 대단하군.”
헐크G가 원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고수간의 대결일수록 좀 더 신중하게 상태를 살피고 몇 수 가볍게 주고받다가 본론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악무양은 본격적이었던 것이다.
단번에 돌진해 손도끼를 내려치는 악무양이었으나, 진흑창은 그걸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잡아버렸다.
탁!
“!!”
“!!!”
좌중이 모두 놀라는 가운데, 악무양은 한번 움찔 하더니 순간 거리를 벌려 떨어졌다.
착!!
“······.”
“·········.”
경기장에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조금만 무공을 아는 자라면 알고 있었다.
저렇게 두 손가락으로 날아오는 날붙이를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생각만으로는 쉬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고난이도의 동작인 것이다.
조금만 실수하면 상처를 입거나 손가락이 날아갈 텐데 진흑창의 움직임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저 자식, 대단히 담담하군.”
“응, 표정에도 변화가 없어. 그의 시합을 본 적이 있나?”
“아니. 나 말고 다른 사람 시합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그런가······. 그의 무공을 한번 잘 봐두라구. 자네 상대가 될 수도 있어서 그렇지만 그 외에도 아주 흥미로우니까.”
헐크G의 말에 원륭은 더욱 집중해서 진흑창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때 진흑창이 자세를 취했다.
“응??”
원륭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진흑창이 맨손으로 손바닥을 활짝 편 채 그 엄지만을 직각으로 구부려 손동작을 취했기 때문이다.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원륭의 눈에는 눈앞에 있는 듯이 다 보였다.
“설마 저거??”
“보면 알 거다.”
팔짱을 낀 채 대답하는 헐크G의 말에, 원륭은 더욱 안력을 집중했다.
그때 진흑창이 도약했다.
쾅!!!
‘빠르다!!!’
원륭은 순간 경악했다. 보통 신법이나 보법을 쓰면 그 도약수준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에 따르지만 1장, 2장, 이런 식으로. 그런데 진흑창은 단번에 도약으로 상당히 떨어진 악무양과의 거리를 좁히고 그 손을 내질렀던 것이다.
진흑창이 수도(手刀)를 내질렀으나, 악무양은 그걸 도끼로 막아냈다.
캉!!
놀랍게도 맨손과 도끼가 부딪쳤는데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악무양이 낭패한 얼굴로 도끼를 들어본 것이다.
“도끼날이 나갔군. 이 정도의 예리함이라니······.”
“후후, 오히려 나의 창에 안 부러지고 버틴 그 도끼가 대단하군. 상당히 이름 있는 도끼인가??”
“아니. 그저 오래 써온 도끼일 뿐이다. 이거 아까운 도끼를 하나 버리게 생겼군.”
낭패한 얼굴로 인상을 찌그러트린 악무양에게, 진흑창은 담담히 말했다.
“걱정마라. 이참에 나머지 도끼 하나도 바꾸게 해줄 테니. 그리고 잘못하면 그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도끼 걱정은 하지 말라구.”
“건방진 놈!!!”
쾅!!!
다시 한 번 수도와 도끼가 부딪쳤다. 그리고 그제서야 원륭은 진흑창의 무기를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설마 수도를 사용하는 건가??”
“그래. 정확히 말하면 저놈은 그걸 창(槍)이라고 하더군.”
“창??”
“나를 섭외할 때 내가 건 조건이 있었다. 그건 나와 한번 붙어보는 거였지. 그리고 진흑창의 ‘창’은 나의 방어를 가볍게 돌파해 나의 요혈을 점했다. 엄청나게 싱겁게 승부가 났지.”
“그 정도라니······.”
원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헐크G의 강함은 장난이 아니었다.
신체적인 능력만 보면 그가 상대해왔던 그 어떤 무림인보다 우위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를 가볍게 이겼다니. 예상은 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다.
“그런데 왜 저걸 수도가 아니라 창이라는 거야??”
“보면 알 거다.”
헐크G의 말에 원륭은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대결을 살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녀석, 정말로 팔을 창처럼 사용하고 있군.”
“그래. 수도처럼 보이지만 저건 ‘창’이다. 창의 움직임을 손을 이용해 구현한 거지. 그러나 일직선으로 된 창과 달리 팔과 손에는 관절이 있다. 구조상으로 보면 오히려 삼절곤에 가깝지. 그런데 그걸 굳이 이용하지 않고 뻣뻣해 보일 정도로 우직하게 창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거야. 웃기는 녀석이지.”
“흐음······.”
원륭은 팔짱을 끼고 가만히 지켜봤다. 진흑창의 움직임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러나 빠르다. 그리고 엄청나게 강력하다. 실제로 맞붙고 있는 악무양의 손도끼들은 이미 날이 상당히 나가버린 것이다.
“그래도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후후, 아무리 관리를 잘 해도 내공으로 단련된 몸 앞에 한낱 철 쪼가리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진짜 신병이기가 아닌 이상 어지간한 보검이라도 내 몸엔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지!! 오랜 시간 단련된 이 ‘창’!! 한번 맛 보거라! 회선무류창(回旋無流槍)!!!”
콰직!
“으아아아아악!!!”
온 몸에서 피를 흩뿌리며 악무양이 나가떨어졌다. 그의 쌍도끼는 이미 부서진 후였고, 경기장 사방과 악무양의 몸에 그 파편이 박혀있었다. 그러나 진흑창은 웃은 것이다.
“그 와중에 쌍도끼를 교차시켜 회선무류창을 막았나. 오히려 잘됐군. 만약 그러지 않았으면 내 창에 심장이 관통되어 대라신선이 와도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 한 가닥 하는군.”
그러나 쓰러진 악무양의 입장에서는 ‘뭐가 한 가닥이야······.’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의식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꺼져버렸던 것이다.
“아, 살아있습니까? 악무양 선수는 살아있답니다!!!”
의사의 진단에 따라 악무양의 생명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온 몸에 꽂힌 파편을 뽑고 그저 한동안 정양하기만 하면 될 뿐. 그러나 경기장 사방에서 날아오는 욕설은 무시무시했다.
“뭐가 쌍도끼의 고수냐, 악무양!!”
“저런 등신새끼를 내가 믿고!!”
“내 돈 돌려줘, 개새끼야!!!”
악무양에게 돈을 걸었다 날린 자들의 욕설이 난무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다 헐크G와 원륭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둘 다 어처구니가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래서 인간들이란 참 재밌어. 지들이 옹이구멍 같은 눈으로 돈을 걸어놓고 남 탓을 하는군.”
“누가 아니래.”
원륭의 말에 헐크G가 어깨를 으쓱하며 맞장구를 쳤다.
“악무양이 8강까지 올라온 실력자인건 맞지만 진흑창의 명성은 무시할 바가 못 되지. 강호에선 왕왕 그 명성이 과장되는 경우도 있지만 홍콩4대 그룹을 쌓아올린 데에는 그의 무력도 한몫했을 거야. 그런 걸 고려하지 않고 그저 배당에만 눈이 멀어 찍은 자들이 잘못된 거지.”
“역배충들의 최후 아니겠나.”
헐크G의 말에 원륭이 피식 웃었다. 도박에는 역배란 말이 있었는데, 바로 역배당의 준말이었다. 일반적으로 두 사람이나 팀이 경기를 한다면 누가 봐도 이길 것 같은 쪽이 배당이 낮다.
반대로 질 것 같은 쪽에 걸면 배당이 높아 의외로 가끔씩 역전이 일어났을 경우 수입이 쏠쏠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배당이 배당이 낮다고 해도 시도 때도 없이 무조건 역배당을 가는 자들을 흔히 비하하는 말로 ‘역배충’이라 불렀고, 실제로 그 성과도 낮았다.
사실 정배당이든 역배당이든 항상 맞추면 모를까 도박은 무조건 돈을 잃게 돼있는 구조이므로······. 잠깐 돈을 따더라도 결국 도박판에선 모두가 잃게 돼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알고 있으니 원륭의 눈에는 저 악무양에게 걸었다가 돈을 잃은 이른바 역배충이나, 반대로 정배인 진흑창에게 걸었다가 돈을 딴 소위 말하는 정배충이나 모두 같은 ‘벌레’일 뿐이다.
‘벌레 녀석들······. 성실히 일해 돈을 벌 생각은 안하고 도박이나 하는 쓰레기들······.’
원륭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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