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6 최고의 샌드백
“식인이 일어났다고??”
“그래. 산의 나무들은 사라지고 식량은 모두 징발 당했다. 빼앗긴 식량은 단체급식소에서 조금씩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따로 밥을 먹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 식기까지 빼앗겼지, 후후. 애초에 뺏기지 않아도 토법고로에 던져질 운명이었지만 말이야. 싸구려 쇠를 생산량 충족을 위해 만든다고 식기가 없어서 급하게 나뭇가지를 잘라서 젓가락 대용으로 쓰거나, 손으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식인이 일어난 이유는, 식량이 압도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산의 나무가 사라지자 잡아먹을 야생동물들도 사라졌으며, 곡식을 축내는 해로운 새라고 참새를 조지는 바람에 해충이 창궐해 더욱 먹을 곡식이 사라졌다. 그리고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농약과 살충제를 치는 바람에 온 강과 들이 오염되어 물고기나 오리마저도 다 죽어버렸지. 먹을 것이 없어 헤매다 자신들의 자식까지 남의 자식과 바꾸어 잡아먹는 사람들의 원통함, 상상할 수 있겠느냐??”
“······.”
악무양은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산이 벌거숭이가 된다고 해도 운 좋게 먹을 게 남은 심산 오지의 산들이 있었는데, 악무양의 가족이 살던 산이 그런 곳이었다.
악무양은 그런 곳에서 굶어죽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주변엔 악무양의 가족 외에는 같이 사는 사람이 없었기에 식량을 정부에 징발당하지도 않았고, 남은 멧돼지 등 야생동물이나 나무열매, 풀등을 먹으며 살 수 있었다. 지옥을 보지 않은 자는 그 참상을 모른다.
그러니 악무양으로서는 감히 그런 실상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원륭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악무양은 믿을 수 없었다.
“정말인가?? 정말로??”
“사실이다.”
“그 당시 중국 전역이 지옥이나 다름없었지. 뭐, 그런 시절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고위직들은 징발한 식량으로 파티를 열고 해외에 원조를 하여 중국이 건재하다고 과시를 했지만 말이다.”
“······.”
일지흔과 태사향마저도 거들자 악무양은 의심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군······.”
“악무양, 너는 산에서만 자라서 현실을 너무 모른다. 현실을 모르는 자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너는 이 지옥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해.”
원륭은 중국이라는 지옥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고 악무양에게 지적했다.
그리고 악무양은 이에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러다 악무양은 입을 열었다.
“좋소. 내 식견이 짧은 것은 인정하지. 허나 그를 알기에 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소. 그리고 당신들을 따라 열심히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 것이지. 그래플링 기술도 배우고 말이야.”
말을 하며 알통을 들어 보이는 악무양이었는데, 확실히 그간 수련을 통해 착실히 근력은 물론 무공도 키운 것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원륭은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했던 것이다.
“그래플링 기술?? 그딴 거 소용없어.”
“뭐라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악무양은 또다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애초에 중국 전통의 무술이 효용성이 없다며 선진 서양의 무술을 배우자고 외친 건 원륭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기술들이 효과가 없다니?? 악무양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따졌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애초에 이런 걸 수련하자고 한 건 당신이 아니오?? 당신이 수련하자고 하고서 당신이 소용이 없다니 이게 대체 무슨??”
그렇게 따지는 악무양이었는데, 원륭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쏘았다.
탕!!
“!!”
“!!”
“!!!”
그것엔 다른 이들도 모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원륭이 꺼낸 것은 뜻밖에도 총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원륭이 당화의 손자인 당건과 당령을 죽이고 손에 넣은 것인데, 생각보다 꽤 괜찮은 총이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무려 이 총은 일반 탄환이 아닌 내공을 사용해 발사할 수 있는 것이다.
보기 드문 기물이라 원륭은 소지하고 있었는데, 그런 것을 발사한 것이었다.
주륵. 악무양의 뺨 옆으로 한 줄기 피가 흘렀다. 악무양은 멍하니 있다가 불같이 대노했다.
“당신 지금 무얼 하는 거요!! 정말 미쳤소?!”
그렇게 화를 내는 악무양이었는데, 원륭은 무표정한 얼굴로 총구를 한번 후, 불더니 그걸로 악무양을 겨눴다.
“못 피했군.”
“!!”
“못 피했어.”
“그것과 나를 쏜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요?? 대답하시오!!”
“방금 이런 공격이 공안 무림맹의 특수부대가 하는 짓이다. 너는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들은 이제 기본적인 무장으로 총기를 사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아. 예전에는 검과 창, 도 같은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총이 보통이지. 그 휴대성은 물론이고, 위력마저 압도적이다. 악무양, 너는 이런 무기를 사용하는 공안 무림맹의 요원들을 상대할 수 있겠나??”
“······.”
악무양이 총기를 든 대상을 상대로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맞은 것도 처음이다.
스치듯 지나갔다지만 원륭이 품 안에서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기고 그로인해 기탄이 악무양의 뺨을 스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미처 대응할 순간이 없었던 것이다.
악무양도 어렴풋하게 원륭이 품 안에서 권총을 꺼내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봤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원륭의 기량이 악무양보다 월등하게 위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인간 본연의 공포심 때문도 있었다. 총을 상대해본 적은 없지만 총을 본 순간 악무양의 몸은 뻣뻣하게 굳었다.
악무양도 최근 수없는 대련으로 상당히 기량이 올랐는데, 막상 여차하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원륭은 여전히 총을 악무양에게 겨눈 후 말했다.
“뱀을 앞에 둔 쥐는 움직일 수 없지.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편이 살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아. 그것은 본능이자, 공포다. 공포는 이성을 갉아 먹고, 반응속도를 늦추게 만든다. 하지만 늦으면 뭐다?? 그냥 죽는 거야.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말이야. 넌 그대로 죽었겠지.”
“······.”
악무양의 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자 이제는 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땅바닥에 계속 떨어졌던 것이다. 뚝, 뚝. 그렇게 정체불명의 액체가 흐르는 가운데, 원륭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그래플링 기술이 쓸모없다고 말하자 너는 그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냐고 물었지.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적인 것이다. 동일한 수준이라면 타격기가 그래플링 기술을 이길 수가 없지만, 타격기든 그래플링 기술이든 결국 총 앞엔 장사가 없다. 총기를 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속도와 반응을 보여야 해. 그렇게 할 수 있겠나, 악무양??”
“······.”
악무양은 잠시 조용히 있다가 물었다.
“그럼 우리에게 그래플링 기술을 익히라 한 이유는 뭐요?? 그렇다면 처음부터 배울 필요는 없었잖소. 그럼 사격술이나 배웠으면 될 것을.”
빈정거리는 악무양이었으나, 원륭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못 깨달았군, 악무양. 말했잖아.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그래플링 기술을 익혔다고 해서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게 아니야. 동일한 수준이라면 타격기를 익힌 상대로는 우위에 있고, 총기를 든 상대로도 이기는 건 불가능 한 게 아니다. 만약 일반인이라면 아무리 유단자라도 총기를 든 초짜를 이기긴 힘들지. 훈련된 교관이나 총잡이가 아니더라도 어설프게 덤벼들다가는 바로 벌집이 되기 딱 좋을 것이다. 그 정도로 총을 든 자와 들지 않은 자의 전력 차이는 크다. 하지만 이건 칼도 마찬가지야. 칼을 든 일반인과 칼을 들지 않은 유단자. 누가 더 유리한가??”
“······칼을 든 일반인이오. 아무리 유단자라도 흉기의 유무 차이는 엄청나오. 그 정도는 알고 있소.”
“그래, 하지만 무림인에겐 그것을 뛰어넘을 무기가 있어!! 그것이 바로 무공과 내공이다. 무공과 내공은 절망적인 무기와 화력의 격차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딱히 공안이나 군인이라고 해서 무술을 수련하지 않는 건 아니야. 항상 총기를 들고 다니거나 사용할 순 없고, 유사시에는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자기 몸이다. 안 그런가, 태사향??”
“그래. 그래서 인민해방군도 굳이 서양의 무술인 복싱을 배우고, 그렇게 무술을 수련하는 건 공안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으면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 범인을 제압하는 건 무리지.”
전직 인민해방군 장교이자 무술 교관이었던 태사향의 제보로 인민해방군이 복싱을 수련한다는 건 이들이 이미 다 아는 사실이었다.
소련과의 국경 분쟁에서 진보도 사건 때 소련의 복싱 고수인 장교에게 나가떨어진 중국의 특수부대를 교훈 삼아 중국은 전통 무술 뿐만이 아니라 복싱을 정규 과목에 편성했던 것이다.
그러자 악무양이 물었다.
“그럼 처음부터 총기를 든 상대를 생각하면 그래플링 기술이든 타격기든 소용없다는 소리를 하지 않은 이유는 뭐요?? 그리고 이제 와서 굳이 총기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뭐요?!”
이만하면 알아들었을 줄 알았지만 끈질기게 악무양이 물었으나, 원륭은 침착하게 답해줬다.
“만약 처음부터 내가 총을 든 상대를 대상으로 그래플링 기술은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면 네가 열심히 무술을 수련할 마음이 들었을까??”
“!!!”
“너는 너무 단순하다 악무양. 그리고 고지식해. 아주 단순해서 뭐라고 말하면 곧바로 수긍하지 않는 주제에 막상 수긍하면 또 열심히 하지. 솔직히 짜증나는 성격이지만 이런 너를 가르치려면 그렇게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함께 가지 않으면 모를까 앞으로 함께 갈 사이이니.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결국 우리는 총을 든 공안 무림맹과 인민해방군을 상대해야 한다. 처음부터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그런 공안 무림맹과의 싸움을 얘기한다면, 너는 지레 기가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에겐 이제 상당한 기본 실력이 쌓였다. 그렇지 않나, 악무양.”
“······.”
악무양은 반박할 수 없었다. 확실히 그랬다. 심산유곡의 맑은 정기를 받으며 내공을 익히기 힘든 요즘 시대에서도 악무양은 스승도 없이 혼자 잘도 내공과 자기만의 무공을 깨우쳤다.
그러나 실전에서 활약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다.
고작 나무를 도끼질하며 혼자 깨우친 무공치고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공안 무림맹의 악독한 무림인들을 상대하기엔 너무나도 실전성이 없는 무술이었다.
그래서 이들 무림인 중에서도 가장 약한 것이다. 그러나 원륭은 그를 방치하지 않았다.
아예 데리고 가지 않을 자면 모를까, 데려갈 거면 철저하게 단련시킨다. 절대 쪽방촌의 무림인 같은 개죽음은 시키지 않겠다. 그것이 원륭의 바람이었다.
그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차의 포격 앞에 허무하게 스러져간 옛 동료들의 전철을 밟게 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원륭이 악무양을 구박하면서도 철저하게 단련시키는 이유였다. 살려야 한다. 죽이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을 믿고 구박 당하면서도 묵묵히 참고 견디며 수련을 따라오는 악무양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었다.
악무양도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런 원륭의 진심을 깨닫자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이다.
“원륭, 당신은 정말······.”
악무양이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올라 원륭을 끌어안으려고 다가가자, 원륭은 안아주는 척 하더니 악무양의 팔을 잡고 어깨 너머로 메쳐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쾅!!
“······.”
“······.”
“······.”
그 모습을 보던 다른 이들은 모두 어이가 없어졌다. 이런 때쯤에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해줘도 되는데, 원륭은 가차 없이 바닥에 처박아버렸던 것이다.
악무양이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동안, 원륭은 침착하게 말했다.
“자, 이러니 그래플링 기술이 쓸모없지 않다는 것도 충분히 알았겠지?? 이제는 그래플링 기술도 상당히 몸에 익은 것 같으니, 이제부터는 총기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하기로 하지. 내일부터는 대총기 수련을 한다. 각오하도록.”
저벅, 저벅, 저벅. 원륭은 그대로 뒤를 돌아 나가버렸다.
그러자 악무양은 처박힌 채로 꿈틀거리며 생각한 것이다.
‘나 좀 도와줘·········.’
그러나 다른 이들은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다가 자신들도 조용히 나가버렸다.
애초에 원륭은 악무양을 싫어하는 척 하지만 죽을 정도로는 타격을 가하지 않는다.
정말로 낙법도 취하지 못하고 목뼈 같은데 무리가 갈 정도로 처박히면 구해주겠지만, 애초에 그렇게 심하게 처박지도 않고 만약에 그렇게 되도 원륭 자신이 제일 먼저 아는 것이다.
악무양은 방금 낙법을 취해 타격을 최소한으로 줄이긴 했지만, 그래도 온 몸이 저려 당분간 일어날 수 없었다.
일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 그 안에 어떤 재료들이 들어갔는지 확연히 하나하나 다 맛이 난다고 하는데, 이 절정 무림인 원륭이 처박은 기술 역시 마찬가지라 악무양의 온 몸에는 그 충격이 하나하나 오롯이 새겨져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서, 악무양은 오늘도 혼자 속으로 소리질렀다.
‘나 좀 구해줘!!!’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