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 본격적으로
“후우, 일단은 쪽지에 적힌 주소대로 계속해서 가보죠. 얼른 이 구룡성채를 벗어나야 할 것 같으니까.”
“그 전에 구급차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아······.”
유가령의 말에 임상진은 당황했다. 확실히 정신이 없어서 순간 깜박했는데, 어찌됐든 정체불명의 남자가 쓰러트린 부랑배들을 후송해야 하는 것이다.
‘후우, 정말로 이런 것들도 구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니. 형사라는 직업은 내가 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참 안타깝기 그지없군.’
어쩌면 이들에 대해서 깜박한 것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원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임상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때 그는 경악했다.
“쓰러진 자들이······ 없어??”
“예?!?”
“보시오. 쓰러진 자들이 없어졌소!!”
“!!!”
유가령과 양조위 역시 경악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쓰러진 부랑배들은 그들 바로 근처에 있었고, 그들이 정체불명의 낯선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겨 그가 가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도 얼마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쓰러진 자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미친······. 설마 생각보다 그렇게 타격을 입지 않았던 걸까??”
“그건 아닐 것이오. 그들이 받은 충격은 그리 가벼운 것들이 아니오.”
“······.”
임상진의 말에, 양조위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이들도 각각 형사고 배우라 실전이냐 아니냐는 다르지만 나름 육탄전을 해본 적이 있었다.
임상진은 실제 범죄자들과 다투면서, 양조위는 무술영화 등에서 액션씬을 소화한 적이 있는데 아까 그 자들이 받은 타격은 딱 봐도 가벼운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건장한 남성이라도 단번에 죽거나, 영영 후유증이 남을 정도의 타격들이었는데 그들이 그런 짧은 시간 내에 제 발로 걸어서 사라질 리가 없었다. 그때 유가령이 가리켰다.
“저거 봐요!! 저거 방금 쓰러졌던 사람 아니에요?!”
“엇?!”
양조위와 임상진 역시 그를 발견했다. 아니, 그들. 왠 낯선 남자가 쓰러졌던 부랑배 하나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그 역시 이들 일행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부랑배를 마저 끌고 골목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거기서!!!”
“아, 형사님!!!”
임상진이 골목으로 달려가자 유가령이 외쳤다. 그리고 따라가려는 유가령을, 양조위는 붙들었다.
“조위!!”
“따라가면 안 돼!!”
“어째서?! 형사님과 같이 있는 편이 안전한 거 아니야?!”
“보통 때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이곳 구룡성채는 이상해. 곳곳에서 지켜보는 시선, 이상한 냄새, 불쾌한 소음이 느껴져. 못 느끼겠어??”
“어??”
유가령은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드높은 건물들마다 창에 커튼이 쳐져있고, 그 커튼 사이로 수많은 눈들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헉!!”
“나도 이제 알았어. 이곳 구룡성채에 들어서면서부터 불쾌한 시선이 끊이질 않길래, 겨우 주의를 기울여 지금 알아챈 것이지.”
그러나 그럴 만도 했다. 양조위가 시선을 느낀 것은 그 말대로 구룡성채에 들어온 직후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선은 계속해서 따라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그들은 그 이유를 알아챘는데, 분명히 양조위의 말대로 모든 건물의 창에서 시선들이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 느낌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익숙한 두 사람도 공포를 느꼈다.
“이, 이건 대체······.”
“그래, 불쾌한 시선이야······.”
양조위는 입술을 깨물었다. 시선에는 느낌이란 것이 있다. 그리고 인체에 존재하는 수많은 부위 중 가장 그 힘을 전달하기 쉬운 것이 바로 눈이다.
그래서 안력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도 있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수십, 수백의 눈이 도처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공포가 가라앉지 않았다. 게다가 단순히 눈이 많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들은 평소 촬영장이나 시상식, 온갖 도처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데 익숙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흠모나 연모, 존경과 애정의 시선이고 개중에 질투나 증오의 눈빛도 가끔 섞여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이처럼 묘한 느낌을 주는 불쾌한 시선들이 수없이 그들을 쳐다보니 공포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사라진 부랑배를 쫓아 골목으로 들어갔던 임상진 역시 당황했다.
“없어?!”
낯선 남자가 쓰러진 부랑배를 끌고 들어간 직후에 이 골목으로 따라 들어왔는데,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대낮인데도 햇빛이 들지 않아 암울한 기운이 감도는 구룡성채의 분위기에 맞춰, 을씨년스러운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그때 임상진은 어떤 비명소리를 들었다.
“아아악!!!”
콰직!!
“거기냐!!!”
소리가 들린 골목으로 곧바로 향했지만 그곳에 존재하는 건 피웅덩이 뿐, 다시 아무것도 없었다.
‘난 귀신에 홀린 것인가??’
임상진은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처에서 비명과 신음, 경악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구룡성채에 입성했을 때는 자제하고 있었던 것과 같은 느낌으로, 이제는 그 고삐가 풀려 사방에서 증오와 공포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 순간 임상진의 눈에는 마치 이 구룡성채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두근, 두근, 두근. 지금 뛰는 이 소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인가, 아니면 마경 구룡성채의 박동음인가. 구룡성채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들어오는 생물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가볍게는 그저 도시의 어두움으로, 무겁게는 직접 그 목숨을 단죄하는 것으로.
그 순간 임상진은 공포가 치밀어 올라 전력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자신의 목숨에 대한 공포도 느꼈지만, 같이 온 두 사람에 대한 걱정으로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까스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니, 그곳에는 경직된 표정으로 가볍게 떨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괜찮소?! 어디 별 일은 없고?!”
“별 일은 없지만 저기······.”
“응??”
임상진은 유가령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온 사방에서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어요. 저 시선!! 저 눈!!”
“!!”
그제서야 임상진도 사방의 자신들을 둘러싼 건물에서 수많은 시선이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대체 어째서 저렇게나 많이?! 아, 내가 총을 쐈기 때문이구려!!”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형사님, 빨리 이곳을 벗어나요!! 더 늦기 전에!!”
“알았소!!”
그들은 즉시 쪽지에 적힌 주소로 뛰어갔다. 어쨌든 들어온 이상 끝장은 봐야한다.
이대로 공포에 젖어서 돌아가기에는 들어온 수고와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한번 나가면 이 공포의 구룡성채에는 다시는 들어올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골목과 골목에서는 온갖 소리가 다 들렸다.
스릉, 철컥, 끼기긱, 싹둑.
“으아악!!!!!!”
그리고 방금 전까지 타인을 핍박하던 위치에 있던 부랑배 하나가, 마찬가지로 핍박받는 위치가 되어 내는 비명소리가 홍콩 구룡성채 어느 뒷골목 하나에서 울려 퍼졌다.
“헉, 헉!!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만 뜁시다!! 너무 지쳐서 정작 위급한 상황에서는 도망도 치지 못할 것 같소!!”
“그렇군요. 이쯤이면 그만하죠.”
“······.”
양조위의 말에 임상진은 뛰는 것을 멈췄고, 가까스로 그들을 쫓아가던 유가령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가쁜 숨을 내쉬었다.
“헉! 헉!! 그건 그렇고 아까 그 부랑배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정말?? 우리가 알아채지도 못하게 금세 사라지다니.”
잠시 후 숨을 가다듬은 유가령이 묻자, 임상진은 대답했다.
“아마도 그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긴 순간, 다른 부랑배들이 그들을 끌고 간 것이 분명하오.”
“하지만 어째서요??”
“글쎄, 적어도 좋은 의도에서 그런 것이 아닌 거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군.”
“······.”
확실히 맞는 말이라, 유가령은 침묵했다. 만약 그들이 동료였다면, 처음부터 합세해서 자신들을 구타했든가 아니면 뒤늦게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료들의 생명을 우선시했다고 보기에는, 마지막 순간 눈에 들어온 그 부랑배를 끌고 가는 다른 자의 모습이 절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사냥감, 싸움에서 쓰러진 전리품을 어부지리로 챙기는 듯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쪽지에 적힌 주소는 어떻게 됐죠?? 지금 거의 다와 가는 게 맞나요??”
“어디보자······. 아마도 그렇소.”
“아마도라뇨??”
“이곳 구룡성채의 주소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난잡하여 심히 파악하기가 힘드오. 솔직히 몇 번 와보았지만 이처럼 복잡한 곳은 홍콩 그 어디에도 없소.”
“······.”
임상진의 말에 두 사람은 긍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룡성채는 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지은 건축물들이 많아서 그 주소도 제대로 배정되어 있지 않은 곳들이 많았고, 실제 주소와는 다른 곳들도 많았다.
그런 면에서 주소라도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그나마 이 주소는 내가 예전에 와본 곳 근처라 다행이오. 대충 주소를 보면 그나마 이 주소지는 구룡성채내에서는 번화가요.”
“번화가요??”
“그런 게 구룡성채 내에도 있소??”
“······.”
두 사람의 물음에 임상진은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까지나 구룡성채 내에서 번화가지만 말이오. 다른 곳들이었다면 마찬가지로 시궁창이라 치부될 곳이지. 그만큼 구룡성채가 암굴이라는 뜻이오.”
“······.”
그렇게 세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그저 주소를 따라 복잡한 구룡성채의 미궁을 따라갔다.
구룡성채는 너무나도 복잡해 그 구조가 미궁이나 다름없었고, 실제로 훗날 구룡성채의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전문 탐험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곳은 던전이었다. 소굴. 지하감옥이나 다름없었는데, 길고긴 미로를 지나 그들은 마침내 쪽지의 주소에 당도했다.
“여기가 맞소??”
“아마도······. 일단 들어가 봅시다.”
임상진은 처음부터 권총을 꺼내 장전하고 문을 두드렸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보면 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똑똑.
“들어오시오. 문은 열려있으니까.”
“······.”
끼이익. 문을 열자 불쾌한 소리가 먼저 그들을 반겼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건, 아까 전 부랑배들을 쓰러트린 그 남자였다.
“어?!”
“왜 당신이!!”
“기다리던 손님들이 왔군.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세 사람을 맞이한 건 원륭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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