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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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막 개시되는 시합을 보려는 찰나, 누군가가 다가왔다.
“같이 앉아도 되겠나?”
“우리는 괜찮지만 자리가······.”
세 사람의 옆에는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다가온 자가 말했다.
“여기 좀 내가 앉아도 되겠지??”
“아, 무, 물론이죠!! 그러고 말굽쇼!!”
앉아있던 자는 후다닥 사라졌다.
“친절하게도 자리를 양보해주는군.”
“양아치인가, 당신······.”
“난 그저 양보해준다길래 앉은 것뿐이야.”
옆에 다가와 앉은 자는 악무양이었다.
“시합 잘 봤네.”
“뭘, 그저 일방적으로 깨지기만 했는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악무양에게, 원륭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홍콩 4대 그룹 총수를 상대로 그 정도로 한 것만도 상당히 선전했다고 보는데. 듣기로는 진흑창과 맞붙은 자들은 대부분 단 1초를 못 버티고 한방에 그 창에 뚫렸다고 하더군. 그런 의미에서 너는 꽤 오래 버틴 셈이겠지.”
“그런 말을 해봤자······.”
여전히 쓴 미소를 짓는 악무양에게, 원륭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위에는 또 위가 있는 법이지. 무림에 사는 자들은 모두 한번쯤 그것을 겪어보았을 터다. 살아있으면 된 거다, 살아있으면. 그러면 또 언젠가 도전할 수 있지.”
“그런 건가······.”
한동안 그 말을 곱씹고 있는 악무양에게, 원륭이 물었다.
“근데 왜 우릴 찾아온 거지? 어차피 자리는 많은데 말이야.”
“내가 주목한 건 당신이거든.”
“나??”
“이 8강에 오른 자들 중에 시드 선수인 총수들을 제외하고 가장 주목하고 있었던 게 너였다.”
“나를 왜??”
“글쎄······. 딱 봐도 감이 오더군. 너는 다른 자들관 뭔가 다르다고 말이야. 그래서 한판 붙어보고 싶었지.”
“붙어보고 싶었다라······. 그런 걸 원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지. 난 아무 때나 상관없다. 원하면 지금이라도 붙어주지.”
“지금 이 자리에서?”
“그래, 지금 이 자리에서.”
그리고 쳐다보는 원륭의 눈빛에 악무양은 흠칫했다. 그리고 떨떠름한 미소를 지은 것이다.
“고향에 있을 때 사람들은 나보고 제발 행동거지를 조심하라고 했지. 넌 항상 즉흥적이라고 하며 말이야. 하지만 너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군. 나조차도 시합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관중석에서 한판 붙어보자고 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해볼 텐가??”
“나중에.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게다가 너는 아직 시합이 많이 남았지 않나. 괜히 나와의 시합 때문에 지장이 가면 곤란해지니까 말이야.”
“그것도 상관없는데.”
“호오······.”
악무양은 묘한 눈으로 원륭의 얼굴을 쳐다봤다.
원륭의 방금 그 말은 너와의 대결 따위는 시합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다라는 말로 들리기도 했고, 그냥 그런 것 상관없다는 걸로 들리기도 했다.
어찌됐든 무척 광오한 말이었던 것이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부디 남은 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얻길 바라지.”
“충고 고맙다.”
두 사람이 묘한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가운데, 옆에서 헐크G가 말했다.
“어이, 원륭. 그만하고 시합이나 보자고. 나름 흥미로운 대결이 되가고 있으니 말이야.”
“음.”
악무양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원륭도 시합의 흐름은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건 눈을 돌리지 않아도 다가오는 기파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더 강하고 약한지, 혹은 싸움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전부 알 수 있었다.
원륭은 악무양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시합에 집중했다.
“아직까진 호각인 것 같은데.”
“그래. 일지흔 녀석, 생각보다 4대 그룹의 총수인 천만홍을 잘 밀어붙이고 있어. 둘의 실력은 호각이다. 완전히 놀라울 정도군.”
옆에서 보고 있던 태사향도 혀를 내둘렀다. 8강까지 올라오긴 했지만 시드 선수인 4대 그룹의 총수와 나머지 4명의 실력은 총수들이 앞설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4대 그룹 총수의 명성은 야바위로 딴 것이 아닌 것이다.
지금이야 그룹이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히고 비무 같은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서 그랬지, 그들이 처음 기업을 일으킬 때만 해도 온갖 범죄조직과 이권단체가 날뛰는 홍콩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기업과 자금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뒤에서는 이권을 노리고 다가오는 각종 불나방들을 따끔한 무공 맛으로 혼내주어 퇴치했는데 그 명성은 과연 헛것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진흑창은 상당한 고수인 악무양을 시합 내내 압도하여 끝내버렸는데, 예상외로 일지흔은 잘 버티고 있었다. 그야말로 호각일 정도.
“흐응, 일지흔 녀석 잘 버티는군. 저 녀석이 강한 건가, 아님 천만홍이 총수들치곤 약한 걸까.”
원륭의 말에 태사향이 답했다.
“글쎄, 내가 보기엔 둘 다 상승의 무공을 펼치고 있는 것 같은데. 저 둘의 무공은 둘 다 절정이야. 퍼져 나오는 기파, 움직임, 눈빛, 어느 것 하나 의심할 여지없는 절정의 고수다. 과연 검도의 고수답군.”
“흐음······.”
확실히 그 말 대로였다. 원륭도 그냥 물어보긴 했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그 둘이 고수란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둘 다 검의 고수였지만 천만홍이 다양한 변화로 상대의 시선을 혼란시킬 정도의 다채로운 검법의 소유자였다면, 일지흔은 그 이름 그대로 딱 필요한 휘두름만을 절도 있게 내미는 느낌이었다.
“저거 완전 기계 같은데? 절묘한 순간의 발도 한번만으로 천만홍의 여러 검격을 단번에 막고 있어. 아주 효율적이군.”
“그래. 실력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너무 저돌적으로 덤벼들다 반쯤 제풀에 지쳐 쓰러진 악무양과는 달라.”
“어이, 지금 너 내가 옆에 있다는 것 알고 있겠지? ······.”
태사향에게 대답하며 악무양을 까내리는 원륭에게, 악무양이 어처구니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말했으면 모를까, 대놓고 옆에 있는데 비하를 해버리니 당사자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데다 순간 화가 날 정도였던 것이다. 그런 악무양에게 원륭은 말했다.
“사실을 말하는 건데 뭘······.”
“후후, 생각이 바뀌었다. 이 경기만 끝나면 곧바로 붙자고. 남은 대회를 생각해서 미뤄주려고 했더니······.”
“그러니까 난 아까부터 지금 붙어도 좋다고 말하는 건데.”
“이 자식······.”
뚜둑, 뚜둑. 악무양의 몸에서 정체불명의 뼈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다, 그럼 지금 바로 밖으로······.”
“어이, 시끄러. 잡담은 좀 밖에 나가서 해주겠나?”
“으응?”
악무양이 바라보니 그곳에는 험상궂은 표정을 지은 헐크G와 태사향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날보고 말했나?”
“그래, 시끄럽다고 말하는 거다, 이 진흑창에게 단번에 깨진 자식아.”
“호오, 아무래도 네놈부터 죽고 싶은가 보군······.”
헐크G의 도발에 악무양의 온 몸에서 붉은 빛 기류가 피어올랐다.
“네놈이 진흑창과 붙어보기는 했나? 너였으면 나보다도 더 단번에 깨졌······.”
“아아, 붙어봤지. 애초에 날 초대한 건 진흑창이었으니 말이야. 그리고 나도 지긴 했지만 그렇게 빨리 지진 않았다고. 난 너보다 100 여초는 더 버텼다.”
“······.”
헐크G의 말에 악무양이 입을 다물었다. 무림에서 수 초나 수십 초면 모를까, 100개의 초식을 더 버텼다는 건 확실히 엄청난 무공의 차이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헐크G는 단연 자신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악무양은 납득할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군. 32강도 아닌 64강에서 떨어진 자식이······. 64강이라니, 안 봐도 뻔하다. 보나마나 어중이떠중이 하나를 이겨서 운 좋게 64강에 진출한 거겠지. 너 같은 자는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
“호오, 그럼 그 어중이떠중이와 한번 붙어보겠나?”
“좋다.”
둘은 씩씩거리며 곧바로 일어섰다. 그러자 원륭은 말한 것이다.
“어이, 그 대결의 승자와 한번 붙어줄 테니 그렇게 알라고. 헐크G, 너는 불만 없지?”
“물론. 나는 너에게 한번 졌으니 그렇게 말해도 당연하겠지. 악무양, 너도 인정하나?”
“번거롭지만 그렇게 해주지. 건방진 네놈들을 싸그리 죽여 버리면 어차피 상관없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두 사람은 경기장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태사향이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말한 것이다.
“이래서 무림인들이란 참······. 별 걸 가지고 다 싸우는군.”
“후후, 평생을 싸우며 산 놈들이다. 싸움밖에 모르지. 결국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건 저 방법밖에 모르는 거다. 불쌍한 놈들이지. 우리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그런가······.”
태사향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원륭, 저들과 한번 붙어보고 나서 너에게 한 번 더 도전해도 되겠나?”
“왜? 아직 승복하지 못했나?”
“아니. 승복은 했지만 미련 같은 게 있어서 말이다. 아쉬움이라고 하는 거다.”
“훗, 그게 승복하지 못한 거겠지.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너의 기술은 깨끗이 잘 들어갔다. 자신이 봐도 의심할 여지없이 완벽하게 말이야. 그런데 쓰러지지 않은 나에게 넌 의문을 품고 있는 거다. 그렇지 않나?”
“······.”
태사향은 잠시 후 말했다.
“그래. 그럴지도.”
“승복하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도전해도 좋아. 저들과 붙지 않고 바로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런 건 상관없으니까.”
“아니, 역시 저들과 한번 붙어보겠어. 너 말고도 저들 역시 흥미로운 대상이거든. 나의 창술이 녹슬었는지, 아님 너에게만 통하지 않은 건지 시험 해봐도 좋겠지.”
“그게 나을지도.”
원륭이 어깨를 으쓱하고 경기에 집중하자 태사향 역시 경기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네 사람이 아웅다웅한지 꽤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대결은 끝이 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본 원륭이 말했던 것이다.
“초반과 분위기가 같군. 천만홍의 변화무쌍한 검을 일지흔이 담백하게 막아낸다.”
“아, 그 말대로다.”
시합장의 두 사람은 확실히 그런 상태였다. 천만홍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검격을 연거푸 쏟아낸다.
그리고 일지흔은 그 핵심이 되는 검격의 지점만을 정확히 타격하여 그 맥을 잘라냈던 것이다.
“사람의 몸처럼 검결도 ‘요혈’이 있지. 찌르면 반드시 약해지는 부분, 그리고 미리 검이 향하는 그 지점을 점하면 힘을 못 쓰는 검격도 있다. 일지흔은 그것에 익숙해. 마치 천만홍의 검결을 완벽하게 읽고 있는 느낌이야.”
“사전에 알고 있었을까?”
“아니, 그건 아닐 걸. 그렇게 파훼가 쉽거나 널리 알려진 검결이었다면 아마 천만홍은 옛날에 깨졌겠지. 일지흔은 그저 자신의 동체시력과 반사신경, 그리고 검결로 대응할 뿐이야. 그 이치를 알면 모든 검법에도 대응할 수 있는 법이지.”
“기본기가 충실한 형태의 무림인인가, 흐음······.”
태사향을 팔짱을 끼고 일지흔의 움직임을 눈이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와 원륭의 눈에 들어온 일지흔의 검법은 한줌의 낭비도 없는 그야말로 초실전적인 검술 그 자체였다.
천만홍의 검법이 다채로운 변화로 상대의 눈을 허용한다면, 일지흔의 검과 그 눈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핵심만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것 봐, 천만홍이 뭔가 할 생각인가 보다!”
“음!!”
태사향의 말에 원륭 역시 주목했다. 천만홍은 여태까지 맹렬하게 휘두르던 검을 뒤로 길게 치켜들었다.
시선은 앞으로 향하면서도 검을 관절이 저렇게 허용되는가 싶을 정도로 팽팽하게 치켜든다.
그렇게 스스로 팔을 부러트리는 게 아닌가 싶을 때, 천만홍은 눈을 부릅뜨며 외쳤던 것이다.
“채홍검법 절초(彩虹剑法 絕招)!! 칠색채홍폭격(七色彩虹爆擊)!!!”
콰콰쾅!!!
무지갯빛 검기가 일지흔을 향해 난사되었다. 그리고 경기장은 먼지로 뒤덮였던 것이다.
“누가 이겼지??”
관객들은 물론, 원륭과 태사향도 무대를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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