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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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눈을······.”
“그래. 가장 출혈이 심하게 일어나는 부위다.”
헐크G의 말에 태사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눈두덩이는 한번 찢어지거나 베이면 무척 출혈이 심한 부위다.
게다가 무척 잘 찢어져서, 주먹질에도 가끔 찢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검으로 베였으니 알만했다.
진흑창도 온 몸에 강대한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지만 동급의 강자가 휘두르는 검에는 당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심장이나 뇌, 급소나 요혈 등은 오히려 지키기 쉽지만, 눈이면 모를까 눈두덩이같이 당해도 생명에도 지장이 없고 애매한 부위는 확실히 지키기가 어렵다.
원륭도 덧붙였다.
“음······. 눈두덩이는 확실히 까다로운 부위지······. 방어하기도 은근히 까다롭고, 게다가 다치면 출혈과 더불어 그것이 시야를 가려 매우 집중력이 떨어진다. 아까 전에 당한 검격보다 훨씬 더 골치 아픈 상처군.”
원륭의 말 대로였다. 진흑창은 이미 흘러내리는 핏물에 시야가 가려 오른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무림인들은 지혈에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법처럼 바로 짠 하고 멈출 수는 없다.
금강대 변인법을 익힌 데다 혈귀인 원륭이라면 모를까, 다른 무림인들에게는 무리다.
제 아무리 절정의 경지에 오른 진흑창이라 하더라도. 물론 눈두덩이를 살짝 베여서 흐르는 정도의 피는 조만간 곧 지혈될 테지만, 천만홍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샤악! 샤가각!!!
불쾌한 소음이 시합장을 가른다. 한쪽 시야를 잃어 극도로 불리해진 진흑창은 간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순식간에 크고 작은 상처를 허용하고 말았다.
게다가 오른 눈은 그의 주시안이기 때문이다. 같은 손이라도 좀 더 자주 사용하는 손이 있듯이, 눈도 자주 사용하는 눈이 있었고 그것을 주시안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 오른 눈을 당하다니······. 정확히 말하면 오른 눈 위의 눈두덩이를 당한 것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피해는 상당하다.
단순한 출혈로 인해 이렇게까지 상황에 몰리다니······. 태사향이 고개를 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막상막하였는데 이렇게 밀리다니. 역시 무림이란 알 수가 없군.”
“그래. 조그만 상처 하나로도 승패가 갈리는 게 절정의 경지의 싸움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미세하지만 천만홍 쪽이 좀 더 유리했어. 초반에 입힌 다리의 상처는 기선을 제압하는 한 수였지. 그리고 이번의 한 수로 천만홍은 훨씬 더 유리하게 됐다.”
“근데 왜 그렇게 된 거지?? 분명 방어술은 천만홍이 더 뛰어나긴 했지만, 그 직전에 진흑창도 각법을 한방 천만홍의 관자놀이에 먹이지 않았나??”
헐크G의 말에 원륭이 대답했다.
“그래. 거기까지는 분명 진흑창이 훨씬 더 유리했지. 보통은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상황에서 승부가 끝났겠지만, 천만홍은 오히려 버티고 눈을 감았다. 관자놀이에 입은 충격으로 시야가 흐려지니, 천만홍은 오히려 시야를 포기한 거야. 그렇게 하고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는데, 그 앞의 천만홍이 보여준 검격들과의 차이는 뭔지 알겠나?”
“글쎄······.”
“이 대결의 중요한 국면에서 나온 검격들은 수평 베기와 수직 베기였어. 사람은 신체 구조상 사선 베기가 가장 편하고, 정확한 수직이나 수평 베기는 의외로 힘들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동작이다. 훈련이 돼있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지. 그렇지 않나, 태사향??”
“그래. 나도 창으로 찌르기 뿐만 아니라 베기 공격을 즐겨 하는데, 검이든 창이든 완벽한 수직 공격과 수평 공격은 무척 힘들다. 그 단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그 말대로다. 조금만 단련이 부족하면 수직 베기도, 수평 베기도 아닌 어설픈 사선 베기가 되어 그 효과가 떨어지지. 천만홍이 처음 기선을 제압했을 때 그는 수평 베기를 날렸고, 진흑창은 그걸 뛰어 피함과 동시에 발차기를 날렸지. 하지만 그 직후 천만홍의 검에 다리를 베여서 기선을 제압당한 거야. 거기까진 아까 얘기했지??”
“그래. 수평 베기를 공중에 뛰어 피하는 순간 움직임이 제한되고, 거기다가 공격까지 이미 한 터라 진흑창의 움직임은 완전히 봉인돼버렸지. 거기서 반격을 한 건 천만홍으로선 당연한 한수였다고 할 수 있다.”
헐크G의 말에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에 행한 수직 베기. 수직 베기와 수평 베기의 차이점은, 수평 베기가 좀 더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평 베기는 상대가 나를 향해 반월형으로 검을 휘두르며 들어오기 때문에, 이걸 피하기 위해서는 뒤로 완전히 피하든가 진흑창처럼 위로 뛰든가, 아니면 밑으로 피해야 하지. 여기서 최악의 한 수는 뭐라고 생각하나?”
“밑으로 피하는 거겠지. 몸을 숙이든, 구르든, 무슨 수를 쓰던 검 밑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미 엄청나게 불리해진다는 뜻이다.”
“그래. 시야가 제한되고, 움직임도 검 밑에서 제한되지. 만약에 검 위로 뛰기라도 했으면 반격을 하지 않는 한 허공답보나 기타 신법으로 몸을 뒤틀어 피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검 밑으로 들어가면, 밑에서 위를 올려봐야 하기 때문에 그 시야부터 압도적으로 불리해지고, 또한 검의 궤적에 의해 행동이 제약 당한다. 그런 면에서 아까 진흑창이 행한 수는 상중하 중에 중의 하라고 봐야겠지.”
“음······.”
원륭의 말에 헐크G와 태사향이 무대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진흑창이 뒤로 뛰어 수평 베기를 피했다면 상의 선택을 한 것이고, 위로 뛰어 피했더라도 반격을 하지 않고 그저 태세만 가다듬었어도 중의 선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흑창은 피한 순간 생긴 찰나의 기회를 그만 놓치지 못하고 반격을 택했고, 그러다 오히려 빈틈이 생겨 다리의 상처를 허용한 것이다.
그것이 원륭이 진흑창이 택한 수를 중의 하라고 한 이유였다. 물론 그 정도라 그나마 중의 하였지, 대놓고 밑으로 피했다면 원륭은 그걸 최악의 수라 평가했겠지.
“아무튼 거기까지는 뭐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사실 여기선 진흑창의 실수라기 보단 천만홍이 진짜 대응을 잘한 것이야. 그러나 처음에 여기선 천만홍이 실수를 했는데, 천만홍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하나??”
“수직 베기를 했지. 그전과는 다르게 말이야.”
“그래. 모든 베기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게 수직 베기······. 수직 베기의 단점은, 의외로 피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수직 베기의 장점은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내려치는데서 오는 파괴력, 속도인데 그 궤도는 가장 단순하지. 가장 피하기 어려운 사선 베기는 물론이고, 수평 베기도 은근히 피하기가 쉽지 않아. 차라리 막기가 편하지. 수평 베기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나?”
“수직 베기겠지.”
“그렇다, 태사향. 역시 잘 아는군. 상대가 수직으로 검을 베어오면 수평으로 맞이하고, 수평으로 베어오면 수직으로 막는 게 가장 편하다. 반대로 사선으로 베어오면 모든 베기로 다 막을 수 있지만 반대편 사선 베기로 막는 게 가장 편하지. 이렇게 모든 베기란 다 상성이란 게 있다. 아무튼 천만홍은 다리를 베고 승기를 잡았다 생각해서 가장 빠르고 파괴력 있는 수직 베기를 한 모양인데, 수직 베기 최악의 단점은 옆으로 피하기가 쉽다는 거지. 물론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렇다는 거다. 적어도 수평 베기나 사선 베기에 비해서는 쉽지. 그러나 진흑창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도 그럴 만하지. 까다로운 수평 베기조차 순식간에 피하고 그 순간에 발차기를 날린 자인데, 수직 베기를 피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직후 반격기가 들어간 것이지.”
“으음······.”
그렇게 그들은 지금까지의 초식들을 복기하며 두 사람의 대결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무대 위의 상황은 급박했다. 당장이라도 진흑창이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진흑창은 지지 않고 있었다. 언제 쓰러질지 쓰러질 듯 말 듯 위태위태하기는 했지만, 천만홍의 공격을 잘 막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헐크G가 말했다.
“근데 말이야······. 지금의 상황, 왠지 아까와는 좀 반대되는 것 같지 않나?? 처음엔 진흑창이 몰아붙였는데, 이제는 진흑창이 방어를 하고 있고 천만홍이 몰아붙이고 있어.”
“흐음, 그럴 수밖에······. 제 아무리 방어가 뛰어나도 결국 상대를 끝장내기 위해선 공격을 해야 하는 법이지. 그런 이유로 인해서 공수가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진흑창의 방어술도 나쁘지 않군. 역시 지금까지 상처를 입은 건 조급함 때문인가.”
원륭의 말 대로였다. 보통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기세에 도취되어 자제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악무양 정도는 아니지만 진흑창도 어느 정도 그런 면모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본능 같은 것이라 쉽게 고칠 수가 없었는데, 초반에 유리할 때는 기세 좋게 마구 몰아붙인 진흑창이지만 후반에 불리해지자 그의 방어적인 기술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태사향이 혀를 내둘렀던 것이다.
“그의 방어술은 절대 일지흔이나 천만홍에 비해서 뒤지지 않는군. 오히려 일지흔 그 이상이다.”
“그래······. 저 정도 무림인 쯤 되면 방어는 약한데 공격은 강하다든가 그 반대가 성립한다든가 그런 건 있을 수 없지······. 모두 절정에 이른 거야. 다만 아까까지는 진흑창 그 본래의 성격에 의해 방어술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은 것뿐이지.”
“음······.”
“아무튼 진흑창은 그 수직 베기를 피한 이후에 곧바로 발차기를 날렸는데, 이건 먹혔다. 아주 제대로 먹혔지. 하지만 여기선 천만홍의 대응이 예술이었어. 관자놀이를 맞아 시야가 흐트러지고 정신이 흐려지자 곧바로 눈을 감아 시야를 차단했지. 그리고 집중력을 올렸다. 사람의 눈이란, 그저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을 꽤 많이 소모하거든. 그리고 감각에 의지해 사람이 펼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 강한 검기, 사선 베기를 펼쳤는데 거기에 진흑창이 걸려든 것이야. 만약 진흑창이 신나서 달려들지만 않았다면 대결은 압도적으로 진흑창이 유리해졌겠지. 아마 지금쯤 반대의 전개가 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겠군······.”
헐크G와 태사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원륭은 덧붙인 것이다.
“결국 저 두 사람의 대결은 아주 찰나의 대결이야. 길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 그 대결은 정말 한순간 한순간의 흐름으로 일어나지. 몰아붙이는 진흑창을 수평 베기로 대응한 천만홍에게 뛰어서 반격까지 시도한 진흑창. 그리고 그걸 베어 기선을 제압한 천만홍. 반대로 상대가 수직 베기로 빈틈을 보이자 바로 그걸 피하고 관자놀이에 치명타를 입힌 진흑창. 그러나 천만홍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달려드는 진흑창의 눈두덩이를 베어버렸지. 그리고 이후에 역전된 경기의 흐름. 여기까지가 두 사람의 경기의 내용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정말 찰나의 순간 이루어진 대결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공격하고 그걸 피하며 도로 반격하는 데는 정말 몇 초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걸 일일이 해석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풀기에는 너무나 심오한 공격들이었다.
마치 작은 바둑돌로 두는 한 수에 어마어마한 깊이가 있듯이.
둘은 지금 검과 권으로 바둑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진흑창이 역전하려면 어떠한 수를 써야할까??”
“왜? 걱정되나?”
“어느 정도는······. 무엇보다도 그는 나를 이기고 초빙한 자니까, 다른 자에게 지기는 바라지 않지.”
“그렇군······.”
원륭이 헐크G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다 입을 연 것이다.
“진흑창은 아마 지금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고?? 뭐를??”
“피가 멎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굳는 것을.”
“뭐라고?? 아아!!!”
그 순간 헐크G는 깨달았다. 그도 지금 원륭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깨달은 것이다.
채채챙!!!
천만홍의 검을 수도(手刀)로 받아낸 뒤, 진흑창은 크게 힘을 주어 천만홍을 밀어냈다.
기술에선 앞서더라도 그 절대적인 완력은 진흑창에 부족한 터라, 천만홍은 진흑창의 공격을 부드럽게 흘려내며 뒤로 살짝 물러섰다. 그리고 다시 돌진하려는데, 진흑창이 손을 내밀었다.
“아, 잠시. 피 좀 닦지.”
“······.”
천만홍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진흑창은 손으로 감은 오른 눈의 위를 슥 닦아내더니, 담담히 말했다.
“좋아. 완전히 다 말랐군.”
“어차피 닦을 피도 없었으면서 무슨. 일부러 확인해본 건가?”
“그래. 혹시라도 완전히 마르지 않았나 확인해보고 싶었거든. 이 이후에는 한 치의 오차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말이다. 그보다 이걸로 너의 승리는 물 건너갔다. 만약 이기고 싶었으면 지금 공격해야 했을 텐데 말이야.”
“흥, 어차피 닦을 필요도 없는 수준의 피. 내가 방해했던 아니든 크게 상관은 없었겠지. 그보다 내가 막더라도 그걸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안 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
진흑창은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씨익 웃었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뜬 것이다.
번쩍!!
기광이 넘치는 진흑창의 오른 눈이 드러났다.
“역시 저걸 기다리고 있었군······.”
“역시??”
태사향의 말에, 원륭이 답했다.
“피가 흐르고 있는데 눈을 뜨고 있으면 시야만 흐려지고 눈이 답답할 뿐이야. 그리고 이후에 피가 멎어도 눈에 들어가 붙은 피는 씻을 때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 진흑창은 처음 상처가 났을 때부터 피가 멈출 때까지 기다릴 셈이었던 거야. 그리고 피가 멈추자 곧바로 감은 눈을 떠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생각이었던 거겠지. 아마 진흑창은 이제 곧 비기를 선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비기는 두 눈을 뜨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로 정밀한 비기임이 분명해!”
“!!!”
태사향은 눈을 부릅뜨고 진흑창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그러자 진흑창은 오른손을 올리며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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