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 깨달음
그러나 그런 사실은 아랑곳없이, 진룡은 검을 휘두르기에 바빴다.
자신에게 총을 쏜 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장문환은 그렇게 한눈을 팔면서 상대할 자가 아니었다.
난데없이 총알이 날아 오길래 검으로 돌려주긴 했는데, 진룡은 매우 불쾌해졌다.
‘이것 때문에 큰일 날 뻔했지 않은가!!’
장문환을 상대로는 검격 하나도 신중하게 해야 했다.
검격 하나하나에 생사가 달렸는데 하마터면 총알 하나를 튕겨내다가 장문환에게 칼침을 맞을 뻔했던 것이다.
서로 예의를 차리고 하는 비무가 아니기 때문에, 장문환은 그런 사정 하나 봐주지 않았다.
만약 정상적인 무림 문파끼리의 비무였으면, 비무 도중에 암기가 날아온다거나 했다면 쌍방 간은 공정한 비무를 위해 그 순간엔 서로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무가 아닌 것이다. 실전이었다.
하다못해 구파일방간의 대결이었으면 고려할 여지가 있겠지만, 마교와 화산파는 예전부터 숱하게 싸워왔다.
신장의 마교가 곤륜산맥을 넘어 서안만 통과하면 곧바로 마주치는 것이 섬서성의 화산파인 것이다.
청해의 곤륜산맥에는 곤륜파밖에 없고, 서안에는 모산파밖에 없는데 곤륜파는 강력했으나 단독으로 마교를 막기엔 무리가 있어 항상 털려 통과지점이나 다름없었고, 모산파는 부적술이 강해 오만잡귀나 이매망량 등 초자연적인 존재들에겐 강했지만 대인 무공이 약했다.
그러니 결국 마교는 항상 청해와 서안을 통과해 화산파와 맞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천을 거쳐 섬서, 북경으로 갈 수도 있지만 사천엔 아미파나 청성파, 점창파, 당문과 같은 구파일방의 최정예 문파들이 모여 있어서 아무리 마교라 해도 사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마교는 청해 곤륜파, 서안 모산파를 거쳐 섬서로 갔는데, 섬서성은 마찬가지로 구파일방의 일원인 화산파와 종남파가 있고, 그 옆에 하남에는 소림사가 있는데다 다시 옆에는 사천이 있어 예로부터 마교와 무림맹 간의 치열한 격전지가 되어왔다.
그런 섬서성의 화산파 일원으로서 자신은 마교와 싸우던 세대가 아니지만, 아무튼 장문환은 예로부터 마교에 대한 악감정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허구헌날 장로들이 마교, 마교 타령하면서 빼앗긴 무공이나 보물들에 대한 얘기를 해왔기 때문에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장문환은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장로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 마교로부터 본파의 신공과 보물을 탈환하라고 말이야.”
“보물이라 하면······이걸 말하는 건가??”
진룡은 손에든 마룡검을 슬쩍 흔들어보였다.
“매화검!!”
장문환의 눈이 부릅떠졌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모두 매화가 새겨진 매화검이라 불리는 검을 정식 입문하면서 모두 부여받는데, 물론 재질이 좋은 양질의 철로 만든 검이지만 실제 매화검은 따로 있다.
화산파의 역사 초기에 만들어진 현철의 검으로, 그 특징이 매우 단단하고 검으며 파괴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사용자의 내공을 증폭하여 검기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매화검이 진룡의 손에서 모습을 들러낸 것이다. 그러나 진룡은 부인했다.
“이건 매화검이 아닌 마룡검일세.”
“하지만 그 특징은 어떻게 봐도 매화검인데!!”
“매화검이라 하면 손잡이에 매화문양이 있는 게 특징이지. 하지만 이 검을 보게. 자루에 매화 문양이 있나?”
“!!”
진룡이 살짝 보여준 자루에 매화문양이 없는 걸 보고 장문환은 당황했다.
“모습은 분명히 매화검인데 어째서?!”
“그러니 자네가 착각한 게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아까 내가 화산파의 잃어버린 보물을 얘기했을 때 그 검을 흔든 거지?? 그게 매화검이라는 증거가 아닌가??”
“정황증거만으로는 증거라 할 수 없지. 나는 그냥 흔들었을 뿐인데 자네가 착각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왜 그런 행동을 한 거지?!”
“그저 손목이 아파서 잠깐 흔들었을 뿐인데 너무 과대해석을 하는군.”
“이 자식이!! 본문의 보물을 훔쳐가 놓고 지금 나를 능멸하는 거냐?!”
“이봐, 진정하게 젊은이. 누구도 자네를 능멸하고 있지 않네. 그리고 만약 이 검이 매화검이라 해도 이 검을 훔친 건 내가 아니야. 아주 오~래전에 언제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오래된 옛 선배가 하나 화산파에서 훔친 것이겠지. 그리고 듣자하니 화산파에는 매화검이 수도 없이 많다던데 그 중의 하나인지 알게 뭔가??”
“매화검은 많지만 그 중에 현철로 된 검은 하나뿐이다. 그러니 내 눈이 틀릴 리 없어!!”
“사람은 종종 착각을 하곤 하지!!”
카아앙!!! 두 사람은 서로 검을 부딪쳤다. 분노로 타오르는 장문환과는 달리, 진룡은 싱긋싱긋 웃고 있었다. 그제서야 장문환은 이유를 알아차렸으나 이미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아, 이 자는 이제 보니 나를 도발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구나!! 상식적으로 검 자루의 문양 따위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이상 감출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끈이나 가죽으로 감싸놔도 되고 일단 한번 뽑으면 손을 펼치기 전에는 볼 수 없지. 그러니 일부러 나를 격앙시키려 했구나!!’
그러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장문환에게 있어서 매화검은 반드시 탈환해야할 문파의 보물이므로 어렸을 적부터 세뇌가 되다시피 해서 결코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매화검 뿐만이 아니라 마교에서는 다른 강탈품들도 있었는데, 그것은 각종 무공비급들이었다.
마교가 매번 주원장에 대한 복수를 위해 중원을 침략하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결코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각종 문파를 침범했을 때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바로 비급인데, 각 문파의 서고에 있는 비급들을 훔쳐온 것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침략당하는 문파들과 달리 마교의 본거지는 저 멀리 신장 땅에 있는데다 중원에서 저 멀리 신장 땅까지는 3500km가 넘어 일단 한번 침략을 당해 초토화된 중원 문파들이 도로 침공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교를 쫓아내기는 했지만 문파의 존속이 어려울 정도로 큰 피해를 입는 문파들이 매번 많았고, 성세를 회복할 정도가 되면 다시 마찬가지로 마교가 쳐들어오므로 이 같은 일이 매번 반복되는 것이다.
마교의 침략은 10년을 주기로 명나라가 유지되는 동안 계속해서 반복되었는데, 멀쩡할 때 무림맹을 발동하여 마교를 치자니 3500km를 행군해 적 본거지인 신장 땅까지 가는 것도 무리인데다 신장 땅은 중원과 달리 대부분이 사막지대라 매우 험하고 가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 무리였다.
그리고 마교가 숨어있는 십만대산(천산산맥)은 길이 2000km에 너비 400km, 즉 300km X 400km인 남한 땅의 거의 일곱 배 가까이 넓은 지형이라 찾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십만대산은 그 험준함 뿐만 아니라 넓어서도 마교가 토벌당하지 않게 해주는 천혜의 요새였다.
명나라의 관군도 한번 토벌을 하려다 꼭꼭 숨어버린 마교인들을 찾지 못해 그대로 돌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되갚지도 못하고 명나라가 유지되는 근 300년 가까이 수십 번을 침략 당했으니 무림문파들의 마교에 대한 증오는 알만했다.
사실 쪽방촌 무림인들 중에도 개방의 상인관이나 소림의 소형승 등 정파 중에서도 구파일방에 속했던 자들이 있는데 그런 자들이 예전의 악감정을 뒤로 하고 마교인 진룡과 손을 잡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오직 그 목적은 국민들을 탄압하는 중국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그런 대의명분을 위해 모였는데, 그러니 이 쪽방촌 무림인들의 각오를 알 수 있었다.
과거의 적과도 힘을 합쳐야 할 만큼의 대의라······. 아무튼 진룡은 슬슬 약을 올리며 도발의 수위를 한층 더 높여갔다.
“우리 교에서 얻어온 게 여러 가지 있지······. 이 검이 매화검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고, 이것만큼은 내가 발뺌하지 못하겠군.”
화악!!
진룡의 얼굴이 자색으로 물들었다. 그러자 장문환은 경악해서 외쳤던 것이다.
“자하신공!!”
“그래, 화산파의 자하신공일세. 어떤가, 내 성취가 괜찮은가??”
“이, 이 자식이······.”
장문환이 부들부들 떨었다. 매화검과 자하신공은 다르다. 매화검이 화산파의 보물이라 해봤자 그것은 결국 일개 검에 지나지 않는다.
신병이기란 것은 구하긴 어렵긴 해도 구하려고 하면 화산파 쯤 되면 결국 구할 수 있었다.
매화검이 화산파의 상징이라면, 자하신공은 화산파의 ‘모든 것’이다.
화산파의 내공심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자하신공은 화산파의 모든 신공 중 으뜸이며, 각종 화산파의 무공도 자하신공을 통해서만 그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런 자하신공을 훔쳐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 일이지만, 당시 우리 선배 중 하나가 화산파를 침략했을 때 장로 하나를 사로잡았던 모양이더군. 마침 그 선배는 무공뿐만이 아니라 세뇌와 최면, 고문의 고수라 그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자하신공의 구결을 알아낸 모양이야. 그 후로 자하신공의 구결은 우리 명교에 계속해서 남아있었네. 어때, 마음에 드나??”
“이 개자식아!!!”
카앙!!!
장문환이 맹렬하게 덤벼들며 검을 휘둘렀다. 진룡은 가볍게 내려치는 그 검을 막고 싱긋 웃었던 것이다.
“너무 분노한 나머지 기세는 좋으나 검에 알맹이가 없군. 그런 분노뿐인 쭉정이 같은 검으로는 훔친 자하신공도 깨지 못해!!!”
캉!!
진룡은 맨팔로 장문환의 검을 튕겨냈다. 그리고 경악하는 장문환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던 것이다.
쾅!!!
“컥!!!”
아무리 자하신공을 둘렀다지만 맨팔의 호신강기로 자신의 검을 튕겨내는 위력, 게다가 검을 사용하지 않고 권법으로 자신에게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장문환은 이중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다. 쪽방촌의 무림인 중에서도 진룡만큼은 그 격이 다르다.
마도의 종주인 마교 문주였던 데다 중원을 수십 차례 침략했던 마교 문주의 특성상 훔친 온갖 문파의 무공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지식이나 연륜, 실력은 비할 바가 안 되는 것이다.
수백 살 묵은 혈귀인 불사왕 만이 그의 진짜 실력을 끄집어낼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런 불사왕과 대응, 혹은 그 이상으로 싸울 정도니 진룡의 실력을 알만했다.
파천황과의 싸움에서도 진룡과 불사왕이 대부분의 공격을 감당해서 그렇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이들은 이미 진작에 죽어 없어졌을 것이다.
그런 진룡에게 당한 충격으로, 장문환은 떨며 간신히 일어섰다.
전신의 오한이 멈추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충격을 받아 떨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진룡은 천천히 말했다.
“이미 완전히 끝났군. 자네가 졌네. 예전 무림 같았으면 여기서 장래가 촉망되는 후배를 비록 정파의 인물이라 해도 한번쯤 살려줬겠지만······. 지금은 시국이 그리 좋지 않아. 자네 같은 자를 살려뒀다간 분명 그 어떤 짓을 해서라도 실력을 올려 보복을 해오겠지. 마환단 같은 것마저 사용하는 자네들이니 말일세.”
내공을 급증시켜 주는 마환단은 마약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비록 다른 약품들과 섞어 정제했다고는 하지만 그 부작용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 효과만큼은 한 알에 한 갑자 단위의 내공을 올려주는 진짜배기 영약과 같은 것이라, 내공이 부족한 공안 무림맹의 요원들은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파천황의 압박도 있었고 무엇보다 자폭 테러 같은 게 일어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투입되는 공안 무림맹 요원들의 특성상 내공이 낮으면 그건 결국 본인 손해를 의미했다.
조금이라도 내공이 강해야 혹시라도 휘말릴 수 있는 자폭테러에서도 비교적 몸을 지킬 수 있고, 그 외 무공을 사용하는데도 유리했다. 섭취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마환단을 통해 얻은 내공을 이용해, 장문환은 꾸역꾸역 일어났다.
“······.”
“오오, 다시 일어났나. 근성은 의외로 나쁘지 않군. 하지만 근성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네. 우리 역시 그런 좌절을 충분히 맛봤지.”
“······죽인다.”
“뭐라고??”
“네 놈은 반드시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콰아앙!!!
장문환의 몸에서 맹렬한 투기가 일어났다. 자하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한 얼굴은 보랏빛으로 변하다 못해 검게 물들었고, 온 몸엔 튀어나온 힘줄이 꿈틀거렸던 것이다.
무학에 능통한 진룡은 그 모습을 보고 단번에 알아차렸다.
‘진원진기를 사용했군. 내가 쓰러트리지 않아도 이 자는 결국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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