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 사라진 두 혈귀
“그동안 그는 피의 흡수를 극도로 절제한 거군요. 힘의 감소를 감수하면서.”
하홍휘는 흠칫 떨었다.
“그래······. 혈귀에게 있어서 흡혈욕구는 그 어떤 욕구보다 이상이야. 하지만 그는 그토록 강한 욕구를 참으면서 수십 년간 우리 옆에 있었던 걸세. 참으로 독하다고 할 수 있지. 물론 그렇게 흡혈욕구를 절제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아무튼 공안 무림맹과의 싸움이 길어지면서 그가 금제를 푼 건 틀림없어. 그대로 있다간 그도 버티지 못한다고 확신한 거겠지. 직접 파천황과 일대일로도 싸워봤으니 말이야. 그리고 아무리 힘을 모으기 위해서라지만 과도하게 흡혈을 하고 다니면, 과거로 치면 무림공적이 되고도 남을 일이야. 실제로 역사상 퇴치당한 마인들 대부분이 색마라든지, 아니면 그렇게 타인의 피나 내공을 흡수하고 다니면서 막대한 피해를 주는 자였기에 배제 당했지. 하지만 지금은 그를 응징할 무림이라는 것이 사실상 없어졌으니, 더더욱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도 있을게야. 물론 너무 도를 지나친 행동을 한다면 우리가 막아야겠지.”
“그렇군요······. 아, 그러고 보니 또 다른 얘기할 거리가 있습니다.”
“뭔가??”
진룡을 비롯한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원륭의 말을 듣고 경악했다.
“뭐라?! 마약을 재료로 한 내공을 급속도로 얻을 수 있는 단약이 개발됐다고?!”
“그들의 피 속에서 마약성분이 감지되었고, 무공을 익힌 수준에 비해 내공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아마도 사실이겠지요.”
진룡 등은 원륭에게 핏속에서 어떻게 마약성분을 감지했냐고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당연히 피를 빨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원륭은 혈귀로서 체내 흡수한 내공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마약을 이용하고 있었다.
사실 불사왕도 전부터 대놓고 마약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모두 그런 효능이 있는 줄 몰랐던 것이다. 원륭이 혈귀가 되고 나서야, 모두는 그제서야 왜 불사왕이 마약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대만 고궁박물원에 있는 유물들 중 몇 가지는, 무학의 이치를 담고 있더군요. 보고 있으니 뭔가 새로운 경지를 깨달을 뻔 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없어서 다는 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예로부터 유물들 중에는 그런 무학의 이치를 담은 것이 있지······. 주로 절정에 오른 무인이 말년에 이르러 후학들에게 아주 비밀스러운 형태로 무학의 이치를 가르쳐주기 위해 만든 것이네. 단순히 장인이 만든 게 아니지.”
“그런 걸 왜 박물원에 대놓고 전시해놨을까요??”
“아마 자네도 그랬겠지만, 자네는 그 유물들을 한참을 넋 놓고 바라봤을 것이네. 맞나?”
“예. 음양당의 재촉이 없으면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바라봤겠지요.”
“즉 그 말은, 대만 음양당 측에서 고궁박물원에 들어오는 무림인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걸세. 자기 세력이 아닌 자들이 들어오면, 그들을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 는다는 말이지.”
“아······.”
그제서야 원륭은 깨달았다. 그 유물들은 매우 높은 무학의 이치를 담고 있어 무림인이라면 절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만약 강호육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로 하루 종일 그것만 쳐다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는 거군요.”
“그리고 아무리 물건을 잘 숨겨둬도, 훔쳐가려한다면 막상 취약한 법이지. 지키는 입장에서는 하루 24시간 종일 그 물건을 지켜야하지만, 훔쳐가는 쪽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방비가 소홀해질 때를 노려 훔쳐 가면 되네. 그것이 지키는 쪽보다 훔쳐가는 쪽이 더 유리한 이유일세. 게다가 대만 음양당은 이미 한차례 한빙신공이라는 가장 큰 유물을 도둑맞았기에 더더욱 그러한 방침을 취하게 된 건지도 모르지. 물론 한빙신공은 그 운반 중 가장 방비가 취약할 때를 노려 훔쳐간 것 같지만.”
“그렇군요······.”
“그 유물들은 함정일세. 어차피 세상에 무공은 많고, 그 경로가 달라도 결국 한 끝에 가면 모든 게 모이게 되어있네. 소림의 무공을 익히든, 무당의 무공을 익히든, 그건 마찬가지지. 하지만 무림인들은 욕심쟁이야. 조금만 더 강한 무공이 있다고 하면 돌을 지고 불섶에 뛰어들곤 하지. 하지만 경계하게. 지나친 탐욕은 과욕일 뿐이야.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어차피 자네의 혈사마공도 위력이라면 그 어느 무공에도 뒤지지 않으니······.’
그런 말을 하려다 진룡은 관뒀다. 그는 아직도 원륭이 그런 저주받은 무공을 익히게 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원륭은 쪽방촌 무림인들에게 포권을 취하고, 집밖을 나오자마자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갔다.
수 미터에 달하는 높이였지만 그의 발걸음은 경쾌하기 그지없었고, 단 한 번의 발걸음으로 그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는 뛰어올라가자마자 물었다.
“불사왕! 불사왕 여기 있소?!”
불사왕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항상 근처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만약 근처에 있다면 그는 지붕위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원륭이라면 그러했다.
지붕처럼 쉬기 편하고 주변을 감시하기 편한 곳은 없으니. 과연 불사왕이 나타났다.
스르륵.
“애송이, 내가 있는 것을 눈치챘느냐?”
“정확히 눈치 채지는 못했소. 아마 당신이 여기 있을 것이라 추측해 물어본 것뿐이지.”
“아직 멀었구나. 뭐 그래도 내가 있는 곳을 추측한 건 좋았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때론 직감과 추론이 중요할 때도 있지. 그래,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나보군. 대체 뭐냐?”
“그 강순이라는 자와 싸운 게 사실이오?”
“내가 거짓말을 하겠느냐?”
“결과는 어떻게 됐소?”
“100여초를 싸우다 도망쳤다. 그건 인간이 아니더군. 혈귀가 된 나에게도 그건 너무 버거운 상대였다.”
“한심하군······. 그래놓고 당신이 그렇게 거만하게 나올 수 있소??”
“애송아, 네놈이면 아마도 10초도 못 버틸 걸??”
“······.”
“아마 10초 정도는 버틸 수 있으려나. 하긴 의미가 없는 일이지. 그래, 어땠냐. 혈마질주보를 사용해서 도망친 것이냐?”
“그렇소······.”
원륭은 조용히 말했다. 혈마질주보는 원래 혈귀들에게 내려오는 혈교의 보법을 불사왕이 개선한 것으로서, 본래는 단순한 보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거의 다른 무공으로 바꾸어놓았다.
전에는 단순히 빠르고 신묘하기만 했던 보법이, 이젠 아예 몸체가 희미해지고 마치 연기처럼 표홀히 날아갈 수 있도록 바뀐 것이다.
그냥 혈마유운공(血魔流雲功)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륭도 그 점을 지적했다.
“사실, 혈마질주보라는 게 이상하지 않소?? 이젠 더 이상 그 무공은 보법의 경지가 아닌 것 같은데······. 차라리 혈마유운공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겠소?”
“멋대로 해라. 어차피 이름은 허상에 불과하니까.”
“뭐라고??”
“혈마질주보라고 하든, 혈마유운공이라고 하든, 혈마지랄공이라고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얽매이고 있었나? 아직도 멀었군······.”
쯧쯧, 하며 불사왕은 혀까지 차댔다. 실제로 맞는 말이라 원륭은 할 말이 없어졌던 것이다.
“그래, 그건 그렇고 공안 무림맹 놈들 피에서 마약이 느껴졌다고??”
“그렇소. 실제로 마셔보고 파악한 거니까. 게다가 놈들은 대규모의 토지에 아예 대마를 심어서 재배하고 있더군. 이게 바로 그 정제액이오.”
킁킁. 원륭이 꺼낸 정제액이 든 통을, 혈마는 건네받지도 않고 냄새만으로 파악했다.
본래 대마라는 것은 담배와는 또 다른, 독특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결코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불사왕이 예전에 집안에서 피다 진룡에게서 한 소리 들은 그 물질의 냄새와 동일했기에, 원륭도 먹어보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그런 쓸데없는 경험도 도움이 되는군······.’
원륭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처음에 당신이 대마를 피울 때 그저 미친놈이라 그런 줄 알았소. 대마 같은 걸해도 ‘불사왕이니까······.’하면서 납득하는 게 있었지. 하지만 혈귀가 되고 나서야 알았소. 당신은 그걸로 내공을 조절하고 있던 거였군. 나도 당신이 대마를 피우라고 할 때는 왜 그러나 당황했지.”
“끌끌, 내가 뭐 좋아서 피운 줄 아느냐?”
“그럼 즐기지 않았소?”
“전혀 안 즐겼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대마는 마약 중에서는 중독성이 낮은 편이다. 마약을 즐기고자했다면 굳이 대마를 피울 필요가 없었겠지. 그저 마약 중에 쉽고 빠르게 구하면서 부작용이 적은 것을 고르다보니 대마가 적합했던 것이다.”
“부작용? 혈귀에게도 마약의 부작용이 있소?”
“아이야, 혈귀는 만능의 존재가 아니란다······. 어디까지나 대마는 몸속에 가득 찬 타인의 내공을 규합하기 위해 필요한 촉매일 뿐이다. 체내에 대마 성분이 들어오면 인체는 그에 저항하고, 그로 인해 면역력과 각종 호르몬의 분기가 촉진되지. 보통 인간은 대마 같이 약한 마약이라도 장기간 하다보면 인체가 파괴되지만, 혈귀는 그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오히려 더욱 강해지지.”
“······.”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마약을 통해 가벼운 환각 상태로 들어가는 건 전 세계 어디에나 다 있는 일들이었다. 각 국가의 샤먼, 무당들은 그렇게 하여 신의 세계와 접촉했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명심해라. 대마는 필요악이라는 것을. 더 강한 마약을 하면 혈귀의 신체도 붕괴된다.”
“사실이오?”
“사실 무조건적으로 배제돼야 하는 건 아니다. 대마를 하는 건 결국 그를 통해 체내의 면역작용, 즉 반발을 불러 한 차원 더 높은 차원으로 무공의 경지를 승화시키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대마보다 더 강한 마약을 하는 건 지양되지만 최악의 경우, 죽기 일보 직전에 더 강한 마약을 하면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무공이 더 강해질 가능성도 있지. 죽기 직전에 놓인 사람에게 마약을 처방하면 소생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겠지??”
“······.”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의사였던 제갈의도 알려준 사실인데, 병원에서 특히 암 말기 등 불치병,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는 건 일반적이다.
그리고 원륭의 마을에서도 중병에 걸려 오늘내일하는 환자에게 약간의 대마를 최후의 수단으로 처방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효과가 있었는데, 이는 서양에서도 존재하던 사상이었다.
서양에서도 죽기 직전의 환자에게 샤프란을 먹이면 소생할 수 있다는 민간신앙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샤프란에 지혈이나 경련완화, 진정 작용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무튼 불사왕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최후의 방법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저 마약에 중독되어 오늘내일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나도 그런 혈귀를 많이 봤지.”
“······.”
잠시 불사왕을 빤히 쳐다보던 원륭은, 전부터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꺼냈다.
“불사왕,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소. 본래 당신은 혈귀들의 조직인 혈교의 수장이라고 들었는데 맞소?”
“맞다. 그래서 내가 혈마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혈귀들은 다 어디로 갔소? 모두 의화단 운동에라도 참여했다 죽은 것이오?”
“아니.”
“그럼 백련교도의 난이오?”
“아니.”
“그럼 모두 어디 간 거요??”
“내가 죽였다.”
“뭐??”
“모두 내가 죽였다.”
“어째서······.”
“왜, 잘못됐나??”
“그건 아니지만······.”
“이 얘기는 나중에 하지. 어차피 지금 들을 필요도 없겠지만. 하하하하하하!!”
“불사왕! 불사왕!!!”
원륭이 불러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원륭은 이번에야말로 그가 정말로 이 집을 떠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그 사역마인지 뭔지 하는 걸로 계속해서 감시는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제 할 말만 하다가 맘대로 떠나버리는군. 하여튼 정이 가지 않는 자라니까.”
원륭은 불만을 터트리며 그 역시 사라졌다. 두 혈귀가 사라진 지붕은, 어느새 음산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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