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무궁
“자, 그럼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나오는 건 4대 그룹의 총수 중 하나인 당화!!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오는 궁요!!!!!!”
화구의 말을 이어 차례대로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화는 항상 그랬듯이 전통적인 한족의 한복을 차려 입었고, 궁요는 큰 활과 오른팔과 어깨가 노출된 독특한 복장, 그리고 등에는 커다란 화살통을 맨 채였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말야······. 저 활잡이들 특유의 불균형한 복장. 저건 실전에 쓸모가 있는 걸까??”
“흠······.”
헐크G의 물음에, 원륭은 생각에 잠겼다.
“글쎄, 나도 활은 써보지 않아서 모르겠군. 실전에서 활을 쏘는 건 무척 어려우니까 말이야.”
“그렇지.”
원륭의 말에 헐크G가 동의했다. 무슨 청나라 시대면 모를까, 아니, 청 말도 이미 서구 열강들이 군함과 대포, 총을 들고 쳐들어오고 있던 시기였다.
활의 시대는 이미 예전에 지나갔던 것이다. 수렵과 취미의 영역이면 모를까, 실전에서 살상을 위해 활을 쏘는 건 이미 수십 년 전에 사장된 문화였다.
원륭도 쪽방촌 무림인으로부터 각종 무공을 배울 때 권법을 비롯해 각법, 검술, 창술 등을 배웠지만 궁술만은 배우지 못했다. 배워도 쓸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시대에 궁술이라니······. 궁요의 모습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궁요에 비하면 당화의 암기술은 양반이군. 적어도 사용하기는 훨씬 편리하니까 말이야.”
“당화의 무공을 알고 있나?? 다들 당화가 당문의 인물이라 암기술이나 독공을 사용할거라 추측은 하면서도 실제로 붙어본 사람이 없어서 확신하지 못하던데.”
“붙어봤지.”
“그 결과는?!?”
헐크G는 물론이고 주변인들 모두가 움찔하며 쳐다봤다. 그러나 원륭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에게 이기면 말해주지. 아니면 당화와 직접 붙어서 이겨보라구. 애초에 이 대회에 날 초빙한 건 형식적으로 당화로 되어있으니까 말이야.”
“형식적으로?? 아무튼 널 이기는 게 더 빠르겠군. 당화는 4대 그룹의 재벌 총수 중 하나다. 그 위치는 무공과는 별개로 도전자들의 도전을 제한하는 권위도 있지. 4대 그룹의 총수란 명성은 허명이 아니니까 말이야.”
“글쎄, 정확히 말하면 이기는 게 더 빠르기 보다 도전하는 게 더 쉽다고 해야겠지만. 아무튼 나에게는 얼마든지 도전해보라구. 나는 사양하지 않으니까. 그보다 경기 시작한다.”
원륭의 말에 나머지 네 사람은 시선을 집중했다. 경기장 무대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담담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당화.”
“나는 그저 궁요다. 그런데 사천당가의 당화라니. 지평선 그룹의 총수라는 명칭보다 그 쪽을 더 우선시하는 건가??”
“당연하다. 재벌 총수의 모습은 나의 표면의 것. 오히려 나의 진면목은 사천당가의 가주로서 있다. 그러니 이쪽을 우선시 하는 건 당연하겠지. 너야말로 말이 없을 것 같은데 의외로 말이 많군.”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이다. 바로 시작하지.”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기수식을 취했다. 당화는 그저 두 손을 늘어뜨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비해, 궁요는 화살을 하나 화살통에서 꺼내어 활시위를 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만큼, 긴장감도 더해졌다. 그때 궁요가 먼저 화살을 쏘았다.
쐐애액!!!
순식간에 날아간 화살은 아마 범인(凡人)이라면 단번에 그 이마를 꿰뚫고 나아갔을 터였다.
그러나 당화는 평범한 필부(匹婦)가 아니다. 사천당가의 당주인 것이다.
당화가 소맷자락을 슬쩍 흔들었다고 보인 순간, 날아오던 화살이 다른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챙!!
“!!”
“!!!”
두 사람은 서로의 화살과 암기가 가진 위력에 놀랐다. 서로 자신의 무기가 상대방의 무기를 꿰뚫고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위력은 막상막하.
이후로 치열한 난타전이 펼쳐졌다.
채채챙! 타타탕!!!
화살이 난무한다. 암기가 허공을 가로지른다. 하늘을 수놓는 두 무기에 의해 경기장 무대는 벌써부터 대혼란이었다.
그리고 관중들은 혹시나 자신에게 화살이나 암기가 튀는 게 아닐까 움찔한 것이다.
“이거 눈 먼 화살에 빗맞는 거 아냐??”
“암기는 어떻고!!”
평생 도박판과 뒷골목을 주름잡던 불량배들도 화살과 암기가 부딪칠 때마다 움찔움찔 놀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헐크G가 비웃었다.
“하!! 겁쟁이들이 따로 없군!! 저런 걸 보고 겁을 먹는단 말인가!!”
“너라면 괜찮다 이건가, 헐크G??”
“날 우습게보나, 원륭? 훗. 저 화살과 암기는 충돌하는 순간 이미 그 힘을 잃었잖아. 저런 건 혹시나 튕겨 나와 봤자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해. 일반인이라도 오히려 잡을 수도 있겠지.”
“······.”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당화의 암기와 궁요의 화살은 그 힘이 막상막하인 듯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서로 상쇄되어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원륭은 말했다.
“이거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겠군.”
“그래. 생각보다 궁요가 잘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근데 아무리 활을 잘 쏴도 어떻게 저리 잘 대응할 수 있지??”
태사향의 물음에 원륭이 답했다.
“아마도 힘의 차이겠지.”
“힘의 차이??”
“그래. 화살이 가진 힘과 암기가 가진 힘의 차이. 그리고 근본적으로 남자와 여자와 힘의 차이 말이야.”
“흐음······.”
“무공을 익힌다고 해서 근본적인 힘의 차이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동일한 내공과 기술이 주입됐다면, 암기보다는 화살이 가진 힘이 더 큰 게 당연한 거야. 물체의 파괴력은 그 질량과 속도에 비례하지. 그러니 둘의 속도가 똑같다면, 당연히 질량이 더 큰 쪽이 유리한 거야. 솔직히 말해서 화살로 날아오는 암기를 요격하는 건 매우 힘들어. 반대로 암기술에 능통한 당화는 암기에 비하면 더 큰 표적인 화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쏘아 요격할 수 있겠지. 그러나 놀랍게도 궁요 역시 날아오는 암기들을 격추하고 있어. 정말 놀라운 정밀성과 속사능력이로군.”
“······.”
그 말에 일동은 모두 대결에 주목했다. 확실히 둘의 화살과 암기는 서로의 무기를 철저하게 요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날아오는 상대의 화살이나 암기를 제거하지 않고, 그저 상대의 본체를 노리면 안 되나??”
악무양의 말에 원륭은 고개를 저었다.
“저것 봐라. 둘은 지금 가만히 서서 그저 포탑처럼 기계적으로 투사체를 날리는 것이 아니라, 맹렬하게 신법과 보법을 써가며 상대를 교란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장 무대는 제한이 있어. 그리고 나가면 장외지. 장외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합장 무대라는 ‘판’위에서 어떻게든 최대한 그 판을 활용해야 한다. 너는 장기나 바둑을 둬본 적 있나??”
“있지.”
“그럼 판에 새겨진 눈금이 아닌, 그 밖에 제3의 눈금들을 만들고 판밖에 말이나 바둑알들을 세워놓거나 움직이면 그게 성립하는가?”
“그건 아니지. 그건 반칙이야. 바로 실격패감이다.”
“바로 그거다. 둘은 지금 맹렬하게 투사체를 날려 보내 상대의 ‘판’을 좁히고 있다. 지금이야 비교적 공간이 있어 신법과 보법을 펼칠 수 있지만, 만약 상대의 무기를 요격하지 않고 계속해서 피해 다니기만 하면 언젠가 그 판이 매우 좁아져 운신하기 힘들게 될 거다. 그리고 그 순간, 장기로 치면 ‘장군’이 나는 거지. 이 싸움은 그런 싸움이다. 이해했나??”
“흐음······.”
악무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나무꾼으로 살며 산적이나 단번에 베어버렸던 그에게 있어서 이 싸움은 그가 한 번도 해보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한 고차원적인 싸움이었다.
그런 면에서 매우 공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가. 이런 싸움도 있군······.’
악무양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일지흔이 물었다.
“하지만 이 싸움은 궁요가 불리해. 당화가 가진 암기가 과연 얼마나 있는지는 몰라도 저 펑퍼짐한 옷 속에는 아마 엄청나게 많은 암기들이 들어있겠지. 게다가 독도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궁요의 무기는 그저 활 하나와 등에 맨 화살통 안에 있는 화살 몇 십 개가 전부다. 그마저도 지금은 상당히 줄었지. 아마 본인보다 하수를 상대한다면 저 정도의 숫자로도 충분하겠지만 과연 자신과 대등, 혹은 그 이상인 당화를 상대로 저 정도의 화살 개수로 충분할까?? 내가 보기엔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
일지흔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원륭은 천천히 말했던 것이다.
“그래······. 일반적으로 보면 궁요가 시간이 갈수록 압도적으로 불리해지는 건 당연하겠지. 하지만 활을 실전에서 쓴다는 건 그러한 불이익을 모두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해. 내가 볼 때 궁요는 최소 두 가지 이상의 해결책이 있다. 혹은 세 가지?? 내가 봤을 때 궁요는 전혀 불리하지 않아.”
“불리하지 않다고??”
“······.”
일동은 모두 침묵했다. 이 대결은 어떻게 봐도 궁요가 불리해보였던 것이다.
그때 슬슬 자신의 불리함을 깨달았는지 갑자기 궁요가 엄청난 속도로 화살을 쏘아댔다.
“속사!!!”
쐐엑!!!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발의 화살이 발사됐다. 그리고 다시 속사를 하는 궁요.
“재속사!!”
쐐쇄쇄쇄쇄쇅!!!
이번엔 무려 여섯 발이다. 그러나 궁요의 화살통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저런 건 자살행위야!! 궁요가 아무리 빠른 속도로 화살을 발사해봤자 그 화살이 세 발이든 여섯 발이든 당화는 그저 똑같은 수의 암기로 요격하면 될 뿐이야!! 본래는 당화 쪽에서 먼저 걸어야 할 싸움을 궁요가 먼저 걸었군! 자멸할 셈인가!!!”
일지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철저한 방어를 기본으로 한다.
그런 합리적인 전술을 바탕으로 싸우는 그에게 궁요의 전술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궁요의 화살통은 바닥이 났다.
“끝났군. 준비된 화살은 이제 더 없나??”
“······.”
당화의 물음에, 궁요는 담담히 말했다.
“화살이야 많지 않나.”
“어디?”
“이 주변에 말이다!!”
“!!”
당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는 그녀와 궁요가 쏜 암기와 화살이 천지다.
그리고 궁요는 손가락을 들어 당화를 가리켰던 것이다.
“허궁(虛弓)!!”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화살들이 일제히 당화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화는 마찬가지로 손바닥을 펴며 말했다.
“만천(滿天)!!”
당화의 말에 따라 바닥에 마찬가지로 쏟아져있던 암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하늘을 뒤덮는다. 무수히 많은 암기들의 구름. 그리고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화우(花雨)!!”
쐐쇄쇅!!!
하늘을 뒤덮는 꽃비. 적들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리는 그 비는 죽음의 비라 불리며 뭇 강호인들의 두려움과 공경을 사왔다.
암기술의 절정인 만천화우가 수 십 년 만에 대중 앞에 공개되었던 것이다.
간혹 일화가 만천화우를 선보일 때는 있었지만 그것은 대부분 극소수의 인물들, 혹은 그녀와 적 단 둘이 있을 때뿐이었다. 그리고 적들은 모두 죽었다.
그녀의 만천화우를 보고도 살아있는 자는 원륭 단 하나 뿐이었다. 의화단 운동 당시 20대의 그녀는 만천화우를 익히지 못해 파천황을 상대로 쓸 수도 없었으므로.
그리고 궁요가 일으킨 도발에 의해, 이 죽음의 절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히이익!!!”
“피해!!!”
아까 눈먼 화살과 암기들이 튕겨져 나올 때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움찔움찔하면서도 막상 서로 상쇄되어 힘없는 암기와 화살이 튕겨 나오자 곧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 만천화우는 다르다.
사용자의 내공과 정신력이 다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적을 쫓아다니는 죽음의 절기다.
수천, 수만 개로 보이는 이 날카로운 철침의 구름에 뒤덮이는 순간, 그 자리는 갈기갈기 찢어지겠지. 고슴도치가 되어 죽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 대부분이 그 기세만으로도 겁먹고 도망치는 이 절기에 궁요는 정면으로 맞섰던 것이다.
“무궁(無弓)!!!”
화살 하나 없이 비었을 터였던 그의 빈손에 눈부시게 새하얀 화살이 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그것을 시위에 매겨 쏘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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