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가위바위보
다음날 아침 수련장에서 원륭을 만난 악무양은, 그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러나 원륭의 안색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언제나의 항상 그 표정, 그 대로다.
악무양은 넌지시 물었다.
“원륭, 요즘 상태는 어떻소??”
“뭐?? 너의 상태 말이냐??”
“아니. 당신 몸 상태 말이오.”
“허허. 네가 걱정해주다니 나도 이제 갈 때가 됐는가보군. 헛소리 하지 말고 수련에나 열중해라. 오늘은 헐크G와의 수련이다.”
“헐크G??”
“오늘은 가위바위보 수련이다.”
“가위바위보???”
악무양은 의아해했다. 헐크G와 수련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그 가위바위보 수련이라는 말이었다. 원륭은 두 사람은 불러놓고 규칙을 설명했다.
“지금부터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기면 이긴 자가 이긴 동작으로 실제 공격을 감행하고, 진 자는 그것을 막거나 피하는 수련이다. 예를 들어 가위로 이기면 눈 찌르기, 바위로 이기면 권법공격, 보로 이기면 장법을 통한 내장 공격을 하는 식이다. 알아듣겠나??”
“알겠소.”
“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좋아. 뭐 해보면 알겠지. 몸으로 하면 금방 익힐 것이다. 헐크G, 너는 준비가 됐나??”
“나는 언제든지 물론.”
“좋아, 시작!!”
두 사람은 곧바로 가위바위보를 시작했다.
“가위, 바위, 보!!”
별 생각 없이 가위를 내려던 악무양은 당황했다. 헐크G의 거대한 주먹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분명 자신은 헐크G의 막강한 주먹 공격을 받아야만 한다.
그런 건 싫다. 헐크G의 육체능력은 이들 무림인들 중에서도 최상급의 수준이라, 맞고 멀쩡하게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건 수도 없이 맞아본 악무양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악무양은 황급히 가위를 내려던 손을 보로 바꿨다.
“!!, !!!”
헐크G는 움찔했다. 그도 확인했지만 분명 가위를 내려던 악무양의 손이 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이 두 사람은 이 게임의 진실된 목적을 확인했다.
“그래, 그런 거였군······. 좋아, 알았다 원륭. 그리고 이젠 봐주는 것 없다 악무양.”
“내가 할 말이오.”
“흐음······.”
헐크G는 무심한 눈으로 악무양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기에 질린 악무양이 덜덜거리고 있자 원륭이 재빠르게 말을 했다.
“자, 악무양. 일단 이겼으니 장법으로 공격을 해야지. 그 다음에 다시 다음 가위바위보를 하는 거다.”
“······.”
악무양은 말없이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강의 장법을 펼쳤다.
콰아앙!!!
그러나 헐크G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같은 화경이라고는 하지만 헐크G와 악무양의 수준 차이는 엄청나게 난다.
거기다가 헐크G가 타고난 천부적인 육체는 악무양의 장법을 별다른 동작 없이도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냈다.
쉬이이······.
악무양의 장법이 적중한 헐크G의 복부에서 김이 솟아올랐다. 순간적으로 열이 발생한 것만 봐도 악무양의 장법은 상당한 위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헐크G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끝났나??”
“예?!”
“끝났으면 다시 대결이다. 가위, 바위, 보!!”
“!!!”
악무양은 황급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머리에서는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있었다.
‘가위인가? 바위? 아님 보?!?’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해봤자 일체 소용없다. 이 대결의 핵심은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패를 파악하고 순식간에 자신의 공격을 바꿔 대응하는 것이다.
즉 순발력과 민첩성, 대응력을 키우는 것인데 실전능력을 키우는데 이만한 수련방법도 없었다. 원륭이 고심해 만든 방법이었다. 헐크G는 이번에 가위를 냈고, 실수로 악무양은 보를 내버렸다.
‘제길!! 허초에 속았어!!!’
악무양은 속으로 절규했다. 헐크G는 한번 지더니 사력을 걸고 하는지 무려 허초에 변초까지 섞어서 손동작을 교란시켰다. 그 결과 악무양은 속아버렸다.
분명히 다시 한 번 바위를 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헐크G의 손은 가위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악무양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좋아, 이번엔 내 차례로군!!!”
쐐애액!!!
헐크G의 눈 찌르기가 순식간에 들어왔다. 악무양은 긴급히 뒤로 향하며 피하다 끝까지 눈 찌르기가 쫓아오자 황급히 방향을 돌렸다. 그러자 헐크G도 역시 손을 휘두르며 크게 반원을 그렸다.
그 결과 헐크G의 두 손가락이 악무양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휘이잉!!
바람 소리와 함께 악무양의 앞머리가 잘려 떨어졌다. 그러자 악무양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뒤늦게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이마가 뜨거워지더니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주륵!!
악무양은 손을 대 액체의 정체를 살펴보았다. 액체는 피. 피를 흘리고 있었다.
설마설마 했지만 정말로 출혈이 발생한 것을 보고 악무양은 경악했다. 그리고 따졌다.
“뭐요, 이거 정말?! 정말로 피가 흐르고 있지 않소?!?”
“그런데??”
“!!”
냉정하기 짝이 없는 헐크G의 모습에 악무양은 충격을 받았다.
“그럼 내가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나?? 대결 규칙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나는 이미 사력을 다해 너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우리들이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나?? 아님 그저 가위바위보 대결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오······.”
“그런가, 원륭?? 내가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나??”
“아니. 자넨 잘못이 없어, 헐크G. 그냥 하던 대로 계속해서 하면 되네.”
“알겠네.”
말을 마치고 헐크G는 죽일듯한 눈빛으로 악무양을 쳐다봤다. 그리고 원륭은 말했다.
“가위바위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무술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가위는 급소 공격, 바위는 신체 공격, 보는 내장 공격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실제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방금 네가 경험했듯 그 위력만은 확실하니까. 그리고 악무양. 내가 금강대 변인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그건 이럴 때 쓰라고 가르쳐준 것이다.”
“헉!!”
정신줄을 놓고 있던 악무양은 뒤늦게 금강대 변인법을 발동해 출혈을 막아냈다.
과연 효과가 있어 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원륭은 그걸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쓸 줄은 아는군. 하지만 진정으로 금강대 변인법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위해서는 의식하지 않아도 출혈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10성에 이르면 네가 의식하지 않아도 신공이 알아서 출혈을 막아주고, 12성에 이르면 몸 안의 독소가 배출된다. 그런 경지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금강대 변인법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알겠소······.”
악무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앞으로 벌어질 중국 공안 무림맹이나 인민해방군과의 전투에선 분명히 출혈이나 독에 당할지도 모른다.
바이러스 등 생물병기가 출현할지도 모르지. 그런 상황이니 금강대 변인법의 수련은 필수적이다.
이제 화경에 이르러 최소한의 수준은 갖추었으니, 어떻게 보면 다른 무공들의 수련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금강대 변인법의 수련이었다. 정말 금강대 변인법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더욱 더 매서워져 갔다. 악무양은 열심히 동체시력으로 헐크G의 수를 파악해보려 애썼지만, 보다 노련한 헐크G의 변초와 허초를 모두 다 파악하는 건 무리였다.
보인가 싶었더니 바위고 바위인가 싶었더니 가위다.
그야말로 변초와 허초가 난무를 하는 상황에서 악무양은 모든 초식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상대의 수를 파악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 모든 상대의 수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어!! 그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단 상대의 패가 나온 뒤라도 어떻게 가장 적절하게 대응하냐는 것이다!! 원륭은 그걸 요구한 거야!!!’
악무양의 반응이 빨라졌다. 얼굴은 진지해지고, 눈은 매서워졌다.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륭도 그런 변화를 알아차렸다.
‘악무양 녀석, 드디어 눈치를 챘군······.’
애초부터 원륭이 요구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상대방이 무슨 수를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두 알 수가 없다. 그저 경험에 의해 추측할 뿐이다.
상대방의 습관이나 무공 등을 통해 상대의 수를 추측하고, 이를 한발 앞서나간다.
이것이 무림 상승 고수들이 싸우는 기본적인 이치였는데 원륭 등도 평소 이와 같은 이치를 통해 싸우고 있고, 이젠 악무양에게도 이를 요구하고 있었다.
전에는 악무양의 수준이 낮아 이런 요구를 하기 어려웠지만, 이젠 악무양도 어느 정도 원륭 등이 하는 수련의 원리와 이치를 이해하고 있었다.
다 화경에 오르면서 상단전이 발달해 지능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무양은 필사적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헐크G의 공격에 대응했다.
“파(破)!!!”
콰앙!!!
헐크G의 장법에 맞은 악무양이 나동그라졌다.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히고 말았는데, 그러고도 모자라 다시 땅에 엎어졌다.
일어서지도 못하고 꿈틀꿈틀거리고 있는 악무양이었으나, 원륭은 냉엄하게 말했다.
“지금 자고 있나? 아님 졸리나?? 잠은 죽고 나서 얼마든지 잘 수 있다. 그 정도 장법 한 방에 나동그라질 정도면 집에 가서 푹 쉬어 버려라!!”
‘제길······.’
악무양은 속으로 욕지기를 하며 일어섰다. 얼굴은 분노해 있고 속엔 악밖에 남은 게 없었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시작한 가위바위보였으나, 어느새 악무양은 생사를 걸고 하고 있었다.
“가위, 바위, 보!!!”
쐐애액!!!
내려오는 손 끝에 달린 손가락이 순식간에 변화한다. 가위에서, 바위로, 그리고 보로.
헐크G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지금 장난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아까 악무양의 장법은 사실 위력적이었다.
상당히 아픔이 내장까지 치밀어 올랐는데 이대로 맞고 있을 수만은 없다.
헐크G도 진지하게 대응했다. 두 사람의 손끝이 점점 더 빨라지고, 어떤 결과가 나든 순식간에 대응했다. 상대의 권법과 장법과 눈 찌르기를 순식간에 피하거나 막아버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악무양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래!! 가위바위보의 규칙은 겉치레가 아니야!! 이건 다 매우 합리적인 상성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가위는 바위에 약하지만 보엔 강하다!! 마찬가지로 눈 찌르기 공격은 주먹 공격에는 약하지만 상대가 장법으로 나오면 대응하기가 쉬운 거야!! 그리고 상대가 권법으로 나오면!! 이번엔 내가 장법으로 대응하면 된다!!!’
콰앙!, !!!
‘통배권!!!’
악무양의 공격을 바라보던 원륭은 경악했다. 방금 헐크G는 가위바위보에서 이겨 권법 공격을 감행했고, 이걸 악무양은 장법으로 받아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통배권이 나가 헐크G를 강타해버린 것이다.
통배권(通背拳)이란 하북성에서 생겨난 무공의 한 가지로, 신속하고 경쾌한 움직임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무거움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부드러움과 강함이 공존하여 최강 무술의 한 가지로 꼽혀왔다.
그러나 통배권이라는 것은 어느 한 문파나 세가만의 독점적인 무공은 아니다.
본래 그 원형은 오형권(五形拳)의 한 가지인 후권(猴拳)으로 추정되는데, 후권이란 말 그대로 원숭이의 모습을 본 딴 무공이다.
오형권에는 사실 뱀의 움직임을 딴 사권이나, 용의 움직임을 표현한 용권, 표범의 움직임을 표현한 표권과 호랑이의 움직임을 표현한 호권, 학의 움직임을 본 딴 학권만이 있다는 말도 있었으나,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존재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없다. 따라서 다른 오형권의 무공들이 전부 실존하는 동물들의 움직임을 본 딴 것임을 볼 때, 용권보다는 후권이 본디 오형권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외에도 후권조차 아니고 그냥 당랑권이 오형권의 일종이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모든 오형권은 발동을 위해 진정한 ‘발경’의 위력을 필요로 한다. 어설프게 형만 흉내 내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진정한 오형권의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발경이 필수적이었다.
그래, 방금 악무양은 발경의 경지를 손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이 가하는 수련에 떠밀려 어거지로 화경의 경지에 오른 악무양이 처음으로 스스로 깨달은 상승 무학의 원리였다.
그 앞으로 헐크G가 쓰러졌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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