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 의외의 두 강자
산동꼬마는 화구가 말한 대로 1969년 소련과 중국과의 국경분쟁에서 활약한 인민해방군의 무술 달인이었다.
영토분쟁이 일어나자 두 나라 사이에서는 초반에 분쟁을 필요이상으로 키우지 않기 위해 순수하게 국경수비대 간의 육탄전만이 일어났다.
진보도(珍寶島. 전바오섬. 보물섬)라는 곳에서 일어난 이 분쟁에서, 초반의 승자는 소련군이었다.
신체적으로 압도적인 소련군은 패싸움에서 중국군을 개 패듯이 패버렸는데, 이후 중국군이 특수부대를 투입하고 여기에 밀린 소련군이 마찬가지로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육탄전도 그 수준이 달라진 것이다.
소련군이 투입한 특수부대의 지휘관은 절름발이 중위였는데, 그는 복싱 능력이 워낙 탁월해 맞붙은 중국군 특수부대원들의 코뼈를 모두 뭉개놓았다.
그렇게 다시 중국군이 투입한 것이 바로 산동꼬마. 특수부대 소속의 장교인데, 산동성 출신으로 무술이 능통했던 산동꼬마는 그 키가 작아 산동꼬마라 불린 것이었다.
산동꼬마가 대원들에게 가르친 목봉술과 그 자신의 무공은 절름발이 중위의 소련군 특수부대를 무차별하게 유린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절름발이 중위가 쏜 총에 산동꼬마는 쓰러졌고, 그 이후 산동꼬마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화구는 이 같은 사실을 관중들에게 소개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소문에 의하면 절름발이 중위의 총알을 무려 일곱 발이나 맞았다는 산동꼬마!! 그러고도 살아남았다고 하지만 그 사실은 진위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인민해방군의 조작이란 소문도 있었죠!! 하지만 여기! 산동꼬마가 이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우오오!!!”
“산동꼬마! 산동꼬마! 산동꼬마!!!”
“허허허, 인기가 장난이 아니군. 당신이 바로 그 산동꼬마인가??”
“그렇다. 만나보게 되어서 영광이군, 원륭.”
“나를 아나??”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뒤로 하고 원륭이 묻자, 산동꼬마는 오히려 원륭을 안다고 답해왔다. 그러자 원륭은 의문에 잠겼던 것이다. 그 물음에 산동꼬마는 천천히 답했다.
“나 역시 한때 인민해방군에 소속되어 있었으니까. 명색이 장교다. 너의 존재를 모를 수는 없지.”
“과연 그런가······.”
원륭은 납득했다. 그의 싸움은 주로 공안이나 그 아래 무림맹과의 것이었지만, 개중엔 인민해방군과의 싸움도 있었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싸움터였던 천안문 광장에도 예의 그 인민해방군이 투입되었고, 인민해방군과 그와의 악연도 공안 무림맹과의 사이에 있는 것 못지않았던 것이다.
“그런 자가 왜 인민해방군을 나왔지? 분명 인민해방군에 있으면서 이 대회에 참가하지는 않았을 테고.”
“뭐, 질렸다고 해야 할까??”
“질려?”
“인민해방군의 온갖 더러운 짓을 다 보았지. 1969년 소련과의 국경분쟁 때 총을 일곱 발이나 맞은 나는 후방병원으로 옮겨졌다. 가까스로 수술을 통해 살아나긴 했지만 무공이 많이 떨어져 있었지. 그렇게 재활을 하여 무공실력을 끌어 올리며 인민해방군 내 무술교관으로 일했다. 인민해방군 내에선 소련과의 영토분쟁에서 내가 보여준 행위로 인해 인민해방군의 전쟁에서의 육탄전 능력 역시 크게 강화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게 됐지. 그렇게 목봉술 등 무술을 가르쳤다. 그러길 20년······. 하지만 인민해방군은 썩어버렸어. 애초부터 국민당이 일본군과 싸우는 동안 야금야금 그 뒤통수를 쳐 성장한 모택동의 군대이기는 했지만, 베트남을 침략하고 대만에 분쟁을 걸고 인민해방군은 인민을 해방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억압하기 위한 존재가 되어버렸지. 내가 입대하기 전에도 티베트를 침략하고 인도와 분쟁을 벌이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 소수민족 자치구역을 탄압하고 인민해방군은 한 나라의 군대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어. 난 그런 걸 하기 위해 군대에 들어간 게 아냐. 소련과의 영토분쟁까지가 내가 인민해방군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행위였지. 그래서 그 후에는 적당히 무술이나 가르치다가 제대한 것이다.”
“과연 그렇군······.”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련과의 영토분쟁 사건에서 산동꼬마의 무용담은 아는 사람은 아는 전설이었다.
소련의 복싱 고수라 할 수 있는 절름발이 중위를 목봉술과 각법으로 때려눕혀 버렸는데, 그야말로 현대의 무림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영웅적인 인물이 인민해방군 내에 있다면 공산당은 어떻게 해서든 그를 영웅으로 받들고, 띄워줘도 이상하지 않을 판인데 이상하게 그 업적에 비해 산동꼬마의 이야기는 조용했다.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무림인. 잊혀진 무림인이다. 원륭은 주먹을 고쳐 쥐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물론.”
산동꼬마도 창을 고쳐 잡았다. 그의 주특기는 창술과 각법. 그는 오늘 자신의 절기를 선보이기 위해 창을 들고 나온 상태였다. 소련과의 국경 분쟁 때 선보인 봉술도 그의 특기는 아닌 것이다.
최대한 분쟁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목봉술로 상대했는데, 그런 그를 소련군 중위가 총으로 쏘는 바람에 그는 한동안 전선에서 이탈해야했다. 그리고 재활훈련.
하지만 오늘은 ‘진짜’다. 그런 산동꼬마가 자신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나선 것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산동꼬마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있겠군.’
원륭은 먼저 진각을 밟으며 주먹을 내뻗었다.
“하압!!!”
쾅!!!
우레와 같은 발 구름 소리와 함께, 시합장 바닥이 부서지며 원륭이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진각이란 권법을 사용할 때 그 손과 함께 내밀어 바닥을 밟는 발동작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그 손의 사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는데, 이 진각의 수준에 따라 주먹의 위력도 달라지는 것이다.
복싱 같은 무술에서도 풋워크라고만 하지만, 그 중요성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어떤 무술에서 어떤 이름을 하고 있더라도, 주먹을 내뻗을 때의 발동작이 중요한 것은 무림인, 아니 무술인만 되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폭풍 같은 기세의 진각에 맞춰, 원륭의 권풍이 발출됐다.
그리고 적중하려는 순간, 산동꼬마는 창을 한 바퀴 휘둘러 마찬가지로 풍압을 만들어냈다.
“하아압!!!”
쾅!!!
원륭의 권풍과 산동꼬마의 창풍이 맞물려 엄청난 굉음을 자아냈다.
“큭!!!”
“으윽!!!”
귀가 아플 정도의 굉음에, 관중들이 귀를 막기 시작했다. 내공이 약하거나 없는 일반인 수준의 무림인들에겐 이건 버티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런 가운데 헐크G는 담담히 팔짱을 낀 채 생각했다.
‘선수(先手)는 호각인가, 흐음······.’
선수란 말 그대로 첫 번째 수를 말한다. 바둑에서도 쓰이는 이 말은 매우 중요했는데, 선수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이후의 싸움이 흘러갔다.
그리고 선수에 제압당하면 이후의 싸움도 계속 질질 끌려 다니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륭의 권풍 공격은 상당히 나쁘지 않았는데, 그걸 창풍으로 막은 산동꼬마의 반격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 풍압 대결로 가면 창이 더 유리하지. 똑같은 풍압 공격으로 간다면 권풍보다는 창풍을 만드는 것이 더 쉽고 위력도 더 능가한다. 산동꼬마는 저 한 수로 자신의 판단력과 실력을 보여준 거야.’
헐크G가 본 대로였다. 창과 주먹을 한번이라도 휘둘러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주먹을 휘둘러서 바람을 발생시키는 것보다는 창을 휘둘러 발생시키는 게 더 쉽다.
그리고 그 위력도 더 강한 것이다. 산동꼬마는 원륭의 권풍 공격에 대해 그 수는 안 통한다, 다른 수를 써봐라, 하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흐음, 그렇게 나왔나? 그럼 정석적인 대결로 가볼까?!’
원륭은 고속으로 돌진해 주먹을 휘두르려했다. 그러자 산동꼬마는 가볍게 창을 한번 찌르는 것으로 그것을 막은 것이다.
휙!!
“큭!!”
그런데 원륭은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막히는 그 수를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하고 있었다.
그 결과 대결은 돌진하려는 원륭과, 그걸 창으로 찔러 막으려는 산동꼬마의 형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저게 뭐하는 짓이야?!”
“야, 원륭!! 옆으로 돌아, 옆으로!!”
“바보같이 그렇게 똑같은 수만 쓰면 통할 것 같냐, 하하하!!!”
관중석에 있던 무림인 몇 명이 원륭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만히 보고 있던 화구가 묵묵히 해설을 시작한 것이다.
“아, 지금 관중석에서 야유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저건 창을 상대하는 자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정석적인 행위입니다. 정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응??”
영문을 모르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의문을 표시했다.
“보통 일반적으로 창을 상대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의 사정거리를 벗어나 초근접거리까지 접근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문제는 거기까지 접근하는 과정과, 접근한 후에도 있습니다. 먼저 만약 저렇게 원륭 선수가 하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앞으로 왔다갔다 피하지 않고 옆으로 돈다거나 하면, 그게 더 힘들어집니다.”
“왜지?!”
관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설픈 자들은 그렇게 옆으로 돌면 창의 사정거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실제론 아닙니다. 더 힘들어지죠. 옆으로 돌면 사정거리는 그대로입니다. 다만 상대와 나와 방향만 바뀔 뿐이죠. 그럼 내가 돌면 상대는 가만있나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돌기 시작하겠죠. 그럼 두 사람은 계속해서 상대방의 사각, 즉 뒤를 노리는 대결로 들어가게 되는 거지, 결과적으로 말해서 사정거리의 대결로 들어가게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는 창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그저 배후만 잡게 되는 거죠. 그것도 성공했을 때의 얘기지만.”
“말 잘했다. 거기서부턴 내가 설명하지.”
“헐크G 선수?! 어느새?!?”
“방금 화구가 말한 대로다. 그래서는 결국 뒤잡기 싸움이 될 뿐이고, 결과적으로 창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습게 보여도 저렇게 앞뒤로 물러나는 거리재기 싸움을 해야 하는 거다. 그러다 빈틈이 나면 그 순간! 원륭은 단번에 돌진해 창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갈 거다. 즉 이 싸움은, 산동꼬마의 창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 그 사정거리 안으로 원륭이 들어가느냐, 아님 산동꼬마가 그걸 저지하느냐의 싸움이다. 두 사람도 그걸 알기에 그저 단순히 얼핏 보면 우습게 보이는 찌르고 피하고 전진하고 물러나고의 싸움을 할 뿐이다. 뭐, 어중이떠중이들은 그걸 모르겠지. 창술과 그걸 권법으로 대항할 때의 이치를 모르는 자들이라면 말이야.”
“뭐라고!!”
“누가 어중이떠중이라는 거냐!!”
관중석에서 분노한 어중이떠중이, 아니 삼류 무림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그러자 헐크G는 조용히 일어선 것이다.
“호오, 해볼 테냐??”
화구의 앞에는 대회중계용 긴 마이크가 하나 있었다. 헐크G는 그걸 뽑아 손을 수도(手刀)의 형태로 취한 뒤, 그대로 두 번 휘둘러 끝 부분을 창날로 만들었다.
“아니?!”
“저 자식 저렇게 섬세한 짓도 할 수 있었나?!?”
멀어서 잘 안 보이는 자들도 있었지만 조금만 안력이 높은 자들은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이크 대였던 것이 순식간에 잘려 예리한 창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이런 건 내공만 높아도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론 아무리 싸구려 쇠라도 쇠를 저렇게 예리하게 수도로 자르는 것은 쉽지 않다. 헐크G는 그것을 보여준 것이다.
“훗, 나를 단순한 프로레슬러라고 생각하지 마라. 온갖 무공의 이치를 깨달은 뒤에 하는 프로레슬링이다. 프로레슬러는 이런 걸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나!!”
“······.”
그 말을 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한편 그 모습을 VIP룸에서 보고 있던 진흑창은 싱긋 웃었다.
“헐크G녀석, 상당히 열받았나보군. 하긴 원륭만 안 만났으면 16강, 아니 그 이상도 갈 수 있는 녀석이었는데 하필 운 없게 64강에서 원륭을 만났으니. 이래서 대진이 중요한 거지.”
“저 자의 실력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결코 만만치 않더군. 진흑창, 대체 저런 자를 어떻게 데려온 거지?? 눈빛만 봐도 결코 하수가 아님을 알 수 있겠던데.”
“후후, 미국에 사업을 하러 갈 때 조금 알게 돼서 말이야. 만약 헐크G가 안 떨어졌으면 너희들도 긴장했어야할 걸. 원륭에게 감사하라구.”
그 말을 들은 나머지 세 명의 총수는 그제서야 헐크G의 진정한 실력을 대충 알게 되었다.
실제로 진흑창은 자신이 데려오긴 했지만 만약 대진이 꼬여 자신과 붙게 될 경우 헐크G를 기권패 시킬 예정이었던 것이다.
- 작가의말
저번화부터 다시 등장한 산동꼬마는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6-1 진보도 사건편부터 등장한 인물입니다.
정확히는 6-2부터 나오죠. 산동꼬마가 복싱고수인 소련군 중위 및 특수부대를 상대로 활약하다 총을 일곱발 맞고 퇴장한건 역사적 사실이나, 그 후의 일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 이후로도 살아남았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정확히는 알 수가 없죠.
개인적으로는 총을 일곱발이나 맞고 부상을 입은 산동꼬마라면 아마 인민해방군의 무술교관을 하다가 은퇴하지 않았을까하는 소설적 상상에서 이번편을 써보았습니다.
이처럼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과 상상을 넘나드니, 앞으로도 계속 사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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