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9 뚱한 태도
“······너 뭐 하냐······.”
“으으······.”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악무양을 슬쩍 보다가, 원륭은 안구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허공섭물에 의해, 다리에 박힌 총알이 빠져나왔다.
“으아아아아악!!!”
생으로 총알이 뽑혀 나오는 고통에, 악무양은 자지러졌다. 그러자 원륭은 타박한 것이다.
“난리치지 말고. 자, 여기 금창약 있다.”
툭. 그리고 원륭은 뭔가를 던져주었는데 말로는 금창약이었으나 정체불명의 빨간 약(?)을 보고 악무양은 의문에 빠졌다.
“뭐요, 이게??”
“금창약.”
“내가 알던 금창약이랑은 좀 다른데??”
“최신식 금창약이다. 그냥 닥치고 좀 발라.”
“······.”
악무양은 궁시렁거리며 약을 발랐다. 본래 금창약(金瘡藥)은 이름 그대로 낱불이에 의해 입은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었다.
그러나 무림인인 악무양에게는 갑오징어 뼛가루로 만든 석회성분의 금창약이라든지 석회에 약초를 짓이겨서 석회의 지혈효과를 노리는 금창약이 상식인데, 이 정체불명의 빨간약은 도저히 신뢰가 안 가는 것이다.
그러자 원륭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휴우······. 정말로 깝깝한 녀석이로군. 그건 포비돈 요오드 액이다.”
“포비돈 요오드 액??”
“그래. 최강의 소독제 중 하나지.”
흔히 대한민국 군대에서 만병통치약으로 불리우는 빨간약이 바로 이 포비돈 요오드 액이었는데, 사실 군대에서는 온갖 병에 다 처방하고 이걸로 때워서 문제가 되지만 실제로 광범위한 효과를 지닌 약이었다.
우선 소독력이 탁월하고, 편도선에도 소독 효과가 있어서 희석된 시판 가글 제품 중에는 주성분이 이 포비돈 요오드 액인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도 요오드가 주성분이라 방사능 피폭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이다.
피부에 바르면 흡수되어 내부에서 피폭을 줄여주는데, 이 정도 되면 정말로 만병통치약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법 했다.
그 외에 에볼라, 사스, 노로 바이러스 등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과도 있고, 기타 검증되지 않은 온갖 잡다한 병에도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아무튼 이 무안단물(?)같은 포비든 요오드 액을 건넸으니 소독용 효과로서는 충분할 것이다.
악무양도 명색이 무림인이라 소독 정도만 하면 치유에는 시간이 걸려도 문제가 없을 것이고.
악무양은 빨간 약을 바르며 투덜대었다.
“후우, 그래플링 수련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대총기 수련에 비하면 장난이었소.”
“그야 당연하지, 이 멍충아. 총기가 장난인가??”
“끄응······.”
악무양은 신음했다. 결국 날붙이를 쓰든 맨몸을 쓰든 일반적인 대련에서 사망, 사고가 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상대방이 수준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경험이 적은 악무양을 위해 다른 이들은 모두 살살(?) 대응해주고 있었는데, 악무양의 입장에서는 그것도 봐준 것인가 싶었지만 실제로 살살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총기는 다르다. 한번 발사하면 통제가 안 되는 것이다.
가령 당화와 같은 경우 자신이 총을 발사하고 그 총알을 만천화우로 암기를 통제하는 느낌으로 조종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은 그게 힘들다.
당화가 가능한 이유는 그녀가 상단전이 극도로 발달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그런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허공섭물이 가능한 이들도 한두 개 정도의 조종이면 모를까, 다발로 날아오는 총알은 조종할 수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단 발사하면 눈먼 총알이 되는 것인데, 그러니 악무양이라고 봐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마 악무양에게는 총알을 적게 쏜다든가, 일부러 방향을 살짝 빗맞혀 쏜다든가 해줬는데 문제는 이 악무양이 지레 이상한 방향으로 피하다 본래는 안 맞을 총알을 맞아버렸던 것이다.
그 결과 총알을 쏜 궁요도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튼 악무양은 물었다.
“좀 더 수월하게 총알을 피할 방법은 없소?? 솔직히 너무 힘이 드오, 후······.”
“왜 총알을 피할 생각만 하지??”
“음?? 하지만 다른 방법은······.”
“막으면 되잖아.”
“뭐?? 하지만 당신이 가능하면 맨 몸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을 배워두라고······.”
“‘가능하면’이었지. 지금 태사향도 실제 창으로 상대하고 있지 않나.”
“크흠······”
주위를 돌아보던 악무양은 할 말을 잃었다. 창으로 총알을 튕겨내고 있는 태사향은 물론이고, 천만홍도 검으로 총알을 막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비스듬히 받아낸다거나 튕겨내는 것에 가깝다. 내공을 주입하더라도 총알이 가진 에너지는 막강하기 때문에 잘못 받아내면 검이 상하거나 휠 수가 있다.
그래서 태사향도 그렇고 천만홍도 그렇고 무기를 이용하는 자들은 모두 정면으로 총알을 받아내지 않고 비스듬히 막거나 흘려보냈던 것이다.
사실 더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정말 무공이 부족한 경우 악무양처럼 피하거나 막기도 급급하다.
그러나 저 정도 경지쯤 되면 받아내는 각도나 그를 이용해 튕겨내는 각도를 조절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원륭도 그걸 지적했다.
“지금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들은 각자 총알을 받아내는 각도까지 계산해 여차하면 적에게 도로 튕겨내는 방법까지 연구하고 있다. 그것까진 무리일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막아내는 것까진 완벽하게 터득해라. 도끼를 사용해도 상관없다.”
“······.”
그러자 악무양은 한동안 봉인해두었던 그의 애병, 쌍손도끼를 꺼냈다.
본래 나무를 할 때 쓰는 도끼는 그보다 좀 더 크고 무거운 것이나, 악무양은 내공을 익혔기에 평소에도 작은 손도끼를 두 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병을 들자 악무양도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악무양은 말했다.
“이봐, 궁요. 다시 한 번 총알을 쏴봐. 이번엔 모두 막아주지.”
궁요는 말도 없이 그저 고개를 한번 끄덕, 하고는 다시 한 번 권총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연달아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탕탕탕탕!!!
총소리는 네 번밖에 안 들렸지만 실제로 날아온 건 여덟 발이었다.
소련의 토카레프 권총을 복제한 중국의 54식 권총은 원본을 따라 그 역시 여덟 발의 탄창을 지니고 있었는데, 궁요의 발사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마치 네발만 쏜 것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활의 달인인 궁요는 벌써 총기에도 익숙해진 것이다. 그렇게 여덟 발을 발사했는데, 악무양은 놀랍게도 그걸 다 막아버렸다.
태태탱!!!
손도끼에 막혀 온 사방으로 총알이 다 날아가 버렸는데, 원륭은 그 중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총알을 도중에 허공섭물로 틀어 벽에 박아버렸다.
팍!!
그리고 악무양을 바라보니 악무양은 자신의 실력에 감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 놀랍군, 이거. 나조차도 설마 내가 다 막을 줄은 몰랐는데.”
“막은 건 좋은데 다음부터는 막는 각도도 신경을 쓰라고, 악무양. 온 사방으로 총알이 다 날아간다.”
“알겠소. 하하, 하지만 역시 애병이란 건 들고 싸우면 참 마음이 편하군.”
악무양의 기분 탓이 아니라 누구라도 익숙한 병기를 들고 싸워야 평소 실력이 다 나오는 것이었다. 익숙함과 익숙하지 않은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숙련도의 차이가 달랐는데, 아무튼 악무양이 그렇게 스스로의 실력에 감탄하는 동안 누군가의 분노가 느껴졌다.
“이 총알을 날린 것, 너냐??”
“헉!!”
악무양은 깜짝 놀랐다. 얼굴에 피칠갑을 한 헐크G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헐크G는 따로 수련을 하다가 미처 눈먼 총알을 피하지 못하고 맞은 모양이었는데, 도탄이라 위력이 줄은 데다 워낙에 단단한 헐크G의 피부라 총알은 헐크G의 살을 뚫지 못하고 도로 튕겨나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하필 찢어지기 쉽고 출혈이 많이 일어나는 눈두덩이 부위에 총알이 맞아서, 지금 피가 상당히 많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흉신악살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헐크G를 보고, 악무양은 움찔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내 몸에 피를 보게 했으니 각오는 됐겠지??”
그대로 악무양은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헐크G는 전속력으로 악무양을 쫓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 살려!!!”
“게 섯거라, 이놈아!!!”
“서면 죽일 거잖소?!”
“그야 당연한 이치지!!(?)”
그렇게 헐크G와 악무양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원륭은 그걸 보면서 한숨을 내쉰 것이다.
“뭐하는 짓인지, 휴우······.”
가만히 돌아보니 다른 이들도 모두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원륭도 묘한 웃음을 지은 것이다.
“뭐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겠지. 가끔은.”
그렇게 말하며 보니 진흑창도 자신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하고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천만홍을 바라보며, 원륭은 수련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세계적으로는 소련이 결국 공산주의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연방의 해체를 향해 나아갔고, 체코에서도 군을 철수하는 등 점차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넬슨 만델라는 출소했고, 미국에서는 허블 우주 망원경을 발사했다.
여름에는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 8월에는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걸프 전의 원인이 되었다.
9월에는 북경 아시안 게임이 개막되었는데, 세계적으로 이러한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중국이 벌인 로비와 공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러한 대회를 위해 중국이 전 세계에 돈을 뿌리는 동안 희생한 인민들의 노고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10월에는 독일의 통일이 정식적으로 동서독 총리에 의해 선포되었으며, 한국에서는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고르바초프는 냉전 종결에 이바지한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1991년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 공식폐지선언, 소련도 붕괴되었고 1992년에는 LA폭동이 일어난다.
한국에서는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이것은 32년 만에 일어난 군이 아닌 민간출신 후보의 당선이었다.
1993년. 판관 포청천이 대만에서 드라마화되었으며 미국 뉴욕 맨하탄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때 희생된 사람들의 명패가 만들어졌으나 이후 2001년 다시 한 번 9.11테러가 일어나게 되었다.
3월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를 했고, 한국 대전에서는 엑스포가 열렸다.
9월에는 북경을 제치고 아슬아슬한 차이로 호주의 시드니가 2000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90년 아시안 게임은 이미 이전 개최지가 북경으로 선정되어 상관이 없었지만, 이후 천안문 대학살로 인해 서방 세계에서의 중국의 인권문제가 급부상한 것이 올림픽 개최지 선정 탈락의 큰 원인 중 하나였다.
12월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개봉되었으며, 이 해 홍콩의 구룡성채는 철거가 시작되었다.
쿠릉, 쿠르릉, 쿠르릉. 온갖 중장비 소리가 난무를 한다.
그곳에서 원륭과 임소교, 아삼 패거리는 멀뚱히 철거되어가는 구룡성채의 잔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하죠??”
“응?? 우리라니??”
“······.”
어째서인지 선을 긋는 원륭의 말에 임소교는 말이 없어졌다. 임소교도 딱히 빌붙으려고 한 것은 아니라 그저 무심코 ‘우리’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원륭은 뚱한 태도로 나온 것이다.
- 작가의말
이번 화는 살짝 쉬어가는 화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수련에 돌입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이 시기 역사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소련 해체, 독일 통일, 세계무역기구 첫 번째 테러 등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국이 뿌린 씨앗이 업보로 돌아오는데, 언급했던 것처럼 천안문 사태 등의 원인으로 인해 2002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서 탈락을 하게 됩나다.
개최지는 1993년 모나코에서 선정하게 되었는데 총 4회에 걸친 투표에서 3차까지는 중국이 모두 이겼으나 막판에 호주의 시드니가 이기게 된 것이죠.
그러나 중국은 뻔뻔하게도 중국의 인권문제는 아무런 문제도 없고 다 서방세계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나섰는데 뭐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주인공 등은 집을 잃었습니다. 홍콩에서 일어난 구룡성채 철거 때문이죠.
앞으로 주인공들이 어떻게 될지, 계속해서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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