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심연의 징조
술을 다 마신 후 원륭은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했다.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렇게 웃으며 말하는 당화였으나, 원륭은 자신 있게 카드를 하나 꺼냈다.
“마스터, 이걸로 계산해주시오.”
“잠깐, 그건 내 카드잖아!!”
당화는 화를 버럭 냈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는데 원륭은 지난번 당화의 다이아몬드 등급의 카드를 가져간 것이다.
그걸로 푼돈을 쓰고 다녀서 카드사에서 정지가 됐다고 전화가 올 정도였는데, 아무튼 잊고 있던 카드가 되살아나니 당화는 짜증이 났다.
“내 카드 내놔!!”
“아, 아까운데······.”
원륭은 진심으로 아까운 기색을 비쳤다.
그가 그 카드로 하는 짓이라고는 길거리 음식들을 사먹는다거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것도 없으면 나름 불편해지기에 진심으로 나온 반응인 것이다.
원륭은 돈에 딱히 구애되거나 사치를 하지 않지만 원륭도 사람이었던 지라 있던 카드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당화가 암기를 던지는 수법으로 뭔가를 던졌다.
휘릭!!
“엇??”
원륭이 받고 보니 그것은 한 장의 카드였다. 그것을 받고나니 당화는 말한 것이다.
“그 카드를 줄 테니 다른 카드를 내놓도록.”
“이 카드는 뭔데??”
“그것도 한도가 상당한 카드다. 카드 내역서로 날아오는 너의 구매내역들을 보면 아마 그 카드에 있는 돈도 다 쓰지 못하겠지.”
“그러면 어차피 같은 거 아냐??”
“너는 상관없지만 나는 상관이 있다고!! 매번 정지를 했다 풀었다한다고 카드사에선 연락이 오고 정지사유에 길거리 카레 어묵점에서 음식을 사먹어서 그렇다고 내역이 날아오는데 내가 안 열 받을 것 같으냐!!!”
당화는 진심으로 화를 내었다. 무림인이지만 그와 동시에 당화에게는 홍콩4대 재벌 총수라는 대외적인 면모가 있는 것이다.
재벌 총수가 다이아몬드 등급의 카드로 카레 어묵을 사먹다가 카드가 정지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재계에서는 수많은 망신살이 뻗칠 만했다.
현대의 귀족들인 재벌들의 사이에서는 그것들도 다 평판이자 가십거리인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입이 싼 카드사 직원에 의해 이미 이 사실이 대중에게 점점 알려지면서 당화가 서민적 소소한 행보를 보인다고 대중에게 당화의 평판이 올라가고 있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재벌 총수가 한국으로 치면 블랙 카드로 길거리 떡볶이점에 자주 들어가 결제를 했다고 알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의도치 않은 미담에 의해 당화의 계열사 매출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그런 이유로 자신의 계열사 매출이 오르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는 당화는 불같이 화를 내며 카드를 도로 받아갔다.
“앞으론 그 카드를 쓰도록. 알겠나??”
“이봐, 당화 하는 김에 부탁이 있는데.”
“또 뭘 말이야??”
당화는 앙칼진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 때문에 재벌들 사이에서 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도 모자란데 또 하나 부탁을 한다는 것이다.
“이 카드 좀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주면 안 되나?? 예를 들어 텅스텐 카바이드 합금 같은 것 말이야.”
“특수탄이나 특수포탄의 재질로 쓴다는 바로 그 합금 말이군. 참으로 가지가지 하는구나, 너는.”
“아니, 기왕 쓸 것 같으면 암기로 쓸 수도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원륭쯤 되면 그저 평범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카드도 하나의 훌륭한 무기가 된다.
던지면 암기가 되고 그으면 검보다 날카로운 것이다.
내공이 실린 카드는 어지간한 검보다 날카로울 정도였는데, 그렇다고 해도 처음부터 단단한 재질로 만들면 더욱 그 위력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원륭의 부탁을 들은 당화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카드사에 물어보지. 그러나 기대는 하지마라. 일부 VVIP용 카드의 경우 특별한 금속으로 만들어주는 경우는 있는데 설마하니 텅스텐 카바이드 합금으로 만든 카드는 들어보지 못했다.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만든다 해도 아마 네가 최초겠지.”
“부탁한다.”
“일단 말은 해본다고.”
그렇게 당화는 짜증 섞인 얼굴로 떠났다. 기분 좋게 술은 잘 마셨는데 잊었던 카드를 보니 짜증이 마구 났던 것이다.
매번 당화가 원륭을 볼 때마다 무슨 말을 하려다 까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당화가 원륭을 보면 약간의 짜증이 났는지도······.
그렇게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고 걸어가는데, 원륭은 스산한 어떤 기운을 감지했다.
“으응??”
번뜩. 원륭의 눈초리가 번뜩였다. 그리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사방의 기척에 예민해진 것이다.
‘누가 보고 있다??’
원륭은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그 어디에서도 자신을 보고 있는 눈초리는 찾지 못했다.
보통 원륭 쯤 되는 고수가 되면 상대가 자신을 쳐다볼 시 자신도 반대로 그 기운을 역탐지해 반드시 추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상대는 어디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지 감도 오지 않는 것이다.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숨 막히는 살기에 원륭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자, 구룡성채의 드높은 건물들에서 창문이 하나둘씩 열리며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아, 거 뭐야 잠 좀 자자고!!”
“네놈은 잠도 없냐!!”
“아, 미안하다.”
원륭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사과했다. 아무래도 이 자들에겐 지금 이 지독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치 자욱한 안개처럼 구룡성채를 뒤덮고 있는데 일반인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원륭은 생각했다.
‘이 살기가 노리는 건 뭐지?? 나?? 아님 무림인들?? 어느 쪽이든 먼저 조사를 해야 하기는 해야 한다.’
그렇게 원륭은 살기의 추적에 나섰다.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우 넓게 퍼져있는데다 자욱해서 도저히 그 근원을 알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원륭은 차근차근 추적해나갔다.
‘이럴 때 혈귀의 권능이 도움이 되는군.’
원륭은 피식하고 웃었다. 어둠의 주민인 혈귀의 권능 중 하나는 암흑의 기운의 전파와 그 추적이다.
뱀이 다니는 길은 같은 뱀이 가장 잘 안다는 말도 있듯이, 원륭에게 있어 이 기운의 주인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친숙한 것이다. 그러자 원륭은 의문이 들었다.
‘이 기운의 주인은 같은 혈귀?? 아냐, 혈귀는 아닐 텐데??’
자신이 알기로 혈귀는 자신과 불사왕 정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사왕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혈귀란 이제 그 맥이 끊기어 마지막 혈귀가 바로 자신들이라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뭘까······.’
이런 저런 의문에 휩싸인 동안, 원륭의 발걸음은 자동적으로 그 살기의 근원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원륭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이건 살기, 아니 지독하기 짝이 없는 마기!!’
저주받은 생명체인 원륭에게 있어 마기란 익숙한 것이었다. 혈귀 그 자체가 마성을 뿜어내는 존재인데 이 곳은 그런 혈귀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마기가 자욱했던 것이다.
마치 지옥 밑바닥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그런 장소였는데, 대체 구룡성채 어디에 이런 장소가 있었는지 원륭도 처음 알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그렇게 마기가 쌓일 만 했던 것이다.
구룡성채 자체가 보통 제일 외곽의 건물이 아니면 햇빛이 들지 않으나, 이곳은 그런 차원을 달리했다. 정말로 빛 한 줌 자체를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밤이라지만 달빛 한 줄기 정도는 비추기 마련인데 그런 달빛 한 줄기 없었던 것이다.
심연이 있다면 아마 이런 곳일 거라고 원륭은 생각했다. 그는 입을 열었다.
“누구냐!! 사람을 불렀다면 모습을 드러내라!!”
원륭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마기를 느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하루 이틀 있었던 것도 아닌 구룡성채에서 갑자기 이런 마기를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때 어둠 속에서 뭔가가 일렁였다.
“음!!”
원륭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곳으로 아까 당화에게서 새로 받은 카드를 날렸다.
쐐애액!!!
원륭의 8성 공력을 머금은 카드는 쏜살같은 속도로 어둠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뭔가를 꿰뚫고 벽에 처박힌 것이다.
퍽!!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지 카드 끝부분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원륭은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다른 중요한 것을 눈치 챘다.
‘허공?? 아니, 분명 뭔가를 뚫었다!!’
어둠이나 안개처럼 보였던 그것은 아무래도 뭔가 실체가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과 기파로 연결된 카드가 날아가며 꿰뚫었을 때 분명히 뭔가 감촉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카드가 기운을 꿰뚫고 벽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그 기운이 원륭에게로 다가왔다.
아니, 어둠.
“허엇!!”
원륭은 큰 숨을 들이 삼키며 급하게 회피했다. 다가온 기운이 마치 칼 같은 형태로 변해 자신을 공격했던 것이다.
채앵!!
원륭이 급하게 손에 공력을 모아 받아치자, 그것은 금속음을 내며 후퇴했다.
그것도 잠시, 그 기운은 미친 듯이 공격하며 공방을 주고받았다.
챙, 챙!!
“!!!”
원륭은 양 손에 힘을 주어 그 기운을 튕겨냈다. 그 기운은 매우 이질적이었다. 때론 칼처럼, 때론 낫처럼 매우 다양한 형태로 변해 어둠 속에서 원륭을 몰아붙였던 것이다.
혈귀가 되어 야밤을 대낮같이 볼 수 있는 원륭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빛 한 점 없는 어둠에서 그렇게 미세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는 건 매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빛이 한 줌이라도 있어야 증폭이 되어 사방을 밝게 볼 수 있는데 정말로 빛 한 줌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어둠, 심연이다. 이렇게 되자 원륭은 작전을 바꿨다.
‘그래, 차라리 이러면 눈을 감는 거다. 눈을 감으면 기운을 좀 더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겠지.’
원륭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의지가 되지 않는 두 눈을 감고 그 기운에 집중하자 선명하게 뇌리에 기운의 형태가 느껴졌다.
그리고 때로는 검이, 때로는 창 같은 형태가 되어 자신을 찔러대는 기운의 형태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원륭은 변화무쌍한 그 기운을 받아내다 결정적인 순간 허를 찔렀다.
“여기다!!!”
푸슉!!
허공을 찔렀는데 뭔가가 느껴졌다. 원륭의 공력을 실은 오른손이 뭔가를 포착했던 것이다.
원륭은 그것을 강하게 쥐고서 소리쳤다.
“나와라!! 그러지 않으면 이것을 터트려버리겠다!!”
“으으······.”
그러자 형체는 실체화되었다. 그것은 눈코입이 없는 인간이었다. 인간? 아니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다. 마치 인간의 형태를 한 어떤 기운 같은 것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뭐지, 너는??”
“나는 살문의 혼. 살문의 원혼이다······.”
살문의 혼이라니, 원륭은 깜짝 놀랐다. 살문은 과거 파천황의 일문으로 파천황이 한빙신공을 손에 넣고 나서는 대외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된 전설적인 암살자 일족이었다.
그런 가문의 원혼이라고 자처하는 이가 나타나 그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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