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0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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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이 너무 많이 소모됐군.”
“그렇다. 만천화우의 약점은 막대한 정신력 소모. 그에 비하면 그 많은 침들을 내공으로 움직이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기권할 셈인가??”
“첫째. 난 지금 막대한 정신력 소모로 인해 너에게 이길 재간이 없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제대로 널 당해내지도 못했는데 지금 이 상태로 고작 며칠 쉬고 널 이길 수는 없겠지. 이기든 지든 아마 사생결단을 내야할 것이다. 둘째. 네가 이기든 내가 이기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우리 둘 중의 하나만 이겨도 되는 것 아닌가? 너의 입장에서도 내가 끈질기게 저항하는 것보다 최대한 소모를 줄이고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이 나을 텐데?”
“확실히······.”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다음 상대는 일화고 일화는 4대 재벌 총수들 중에선 가장 약해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순 없다. 썩어도 4대 재벌이다.
분명히 뭔가 숨겨둔 수가 있을 것이다. 마치 눈앞의 당화가 그렇듯이.
“좋아, 네 말대로 하지. 그럼 노인네는 푹 쉬라구.”
“호오, 누가 노인네지?? 기권선언을 철회하고 정말로 한번 해볼까??”
노인네라는 말에 웃고 있으면서도 당화의 눈꼬리가 바짝 올라갔다. 입꼬리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당화의 심기는 극도로 불편해진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원륭은 그만두지 않았다.
“흥, 만약 젊은 나이였다면 만천화우 한번 썼다고 그렇게 안 지쳤어. 늙으니 그렇게 지치는 거겠지. 내 말이 틀린가??”
“······그럴지도······.”
당화는 순순히 납득하더니, 어깨를 으쓱하고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갔다.
“그럼 나는 기권처리를 할 테니 그렇게 알라구.”
“그래.”
원륭은 당화를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원륭은 헐크G 및 태사향의 도움을 받아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궁요를 찾아냈다.
궁요는 나타난 그들을 한번 슬쩍 보더니 눈을 돌리며 말했다.
“내게 무슨 일이지??”
“하아, 어째서 무림인이란 놈들은 패배만 하면 무조건 술이니······. 술 마시는 것 보니 그렇게 치명적인 상처는 안 입었나보군.”
“할 말은 그것뿐인가? 할 말이 없으면 돌아가 주지 그래.”
“당화가 기권선언을 했다.”
“!!”
“너와의 대결에서 나름 소모가 컸나보더군. 이걸로 정 조에서 내가 이기든 일화가 이기든 그녀가 결승전이나 준결승전에 진출하는 일은 없어졌다. 내가 속한 정 조의 승자가 곧바로 결승전 진출이야.”
“후후, 그런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중후반 이후로 압도적으로 밀렸다. 내가 남은 건 상처 입은 손과 부르튼 마음뿐이야.”
“부르튼 손과 상처 입은 마음이 아니고??”
“······.”
궁요는 자존심 때문에 의식적인지, 혹은 무의식적인지 문장의 순서를 바꿔 말했다.
그 자신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 입술을 깨물었던 것이다.
“왜 여기에 나타난 거냐?? 설마 패자를 조롱하려고 네 패거리까지 대동하고서 나타난 건가??”
“패거리? 후훗.”
그 말에 헐크G와 태사향이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피식 웃었다.
“그 말에는 좀 어폐가 있군. 패거리라고 하긴 좀 그렇고, 이들은 내 동료다. 나와 뜻을 같이 하고 있지.”
“무슨??”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동료다.”
“!!”
“너쯤 되는 무림인이면 아마 이 대회가 단순한 비무대회는 아니라는 걸 알거라고 생각하는데. 그저 단순한 놈들이야 명예와 상금을 얻기 위해 이 비무대회에 참가했지만, 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겠지.”
“······.”
“홍콩을 좌지우지하는 4대 그룹의 재벌 총수가 모두 모였다. 그들이 공식적으로 모여 대회를 운영하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 이 대회의 승자가 4대 재벌을 모두 규합하고, 이를 통해 언젠가 닥쳐올 중국 정부의 폭거를 예방한다. 그것이 이 대회의 진면목이다.”
“!!”
“!!! 그런 건가?!?”
때마침 주점에 들어온 악무양과 일지흔이 움찔 했다. 그들은 원륭의 초대를 받고 이 주점에 온 것인데, 궁요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원륭이 그들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한 것이다.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하긴 4대 그룹 총수가 미쳤다고 갑자기 이런 일을 벌일 리가 없지.”
자리에 털썩 앉으며 악무양이 말했다.
“때마침 잘왔군 악무양, 그리고 일지흔. 들은 대로다. 비무대회를 통한 친선교류와 쓸만한 무림인의 발탁. 그리고 그를 통한 중국 정부에 대한 저항. 그것이 바로 우리의 진짜 목적이지. 어때, 너희들. 참여할 생각이 있나?”
“참여하지 않는다면 죽이겠지?”
“물론.”
“!!”
“!!!”
악무양과 일지흔은 물론이고, 덤덤한 편인 궁요도 움찔했다. 그들은 지금 외통수에 몰렸던 것이다. 다짜고짜 제안을 하고 그에 응하지 않으면 죽인다니. 그러나 원륭은 무르게 나갈 생각은 없었다.
“무려 중국 정부에 대항하는 대업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짓을 무려 25년간 해왔지. 25년간. 중국 정부에 대항한다는 것은 정말로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한다는 것이야. 금전, 명예, 그리고 가족까지도. 가혹한 일이라는 것은 안다. 정의를 행하는 대가로 너희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겠지. 그리고 제안을 해놓고 듣지 않으면 죽인다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 솔직히 너무 강압적이군. 그래서야 마치 중국의 방식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
정곡을 찔리자 원륭은 잠시 움찔했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괴물을 잡기 위해서 난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너희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보아하니 너희는 딱히 부나 명예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더군. 만약 그런 게 관심이 있었다면 곧장 공안 무림맹에라도 뛰어들었겠지. 공안 무림맹에서 유능한 무림인을 받는 건 어지간한 무림인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너희들은 현재 공안 무림맹에 투신하지 않았으며, 저마다 매우 고집이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건 너희들이 쓰는 무공만 봐도 알 수 있지.”
“무공??”
“나는 공안 무림맹과 매우 오래 싸워봐서 아는데, 그곳의 무림인들은 죄다 양산형들이다. 오직 수장인 파천황만이 독자적인 무공을 갖고 있지. 과거 파천황은 우리와 대만 음양당이라는 조직에게 상당수 휘하 무림인들을 잃어서, 그 후에 2세대 무림맹원들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각종 여러 문파에서 지원자들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전통적인 무공을 거의 다 말살한 채, 자신이 고안한 전혀 새로운 종류의 무공을 가르치고 있지. 심지어 총이라든가 폭탄을 사용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데, 사실상 무림인이라기보다 거의 특수부대나 다름없다. 무공을 사용하는 특수부대와 같지.”
“흐음······.”
일동의 얼굴이 죄다 심각해졌다.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같은 반란분자들이 들끓는 땅이라든가, 외국과의 영토분쟁에 그런 공안 무림맹을 특수부대처럼 보내어 진압을 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 대항할 수 있는 건 마찬가지로 무림인뿐이야. 제아무리 훈련이 잘된 군인이라도, 기본적으로 육체적 능력이 매우 부족한 그들은 절대 공안 무림맹을 이길 수 없지. 그 정도로 내공과 무공의 차이는 현저하다. 아무튼 내가 너희들은 공안의 끄나풀로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그 무공에 공안 무림맹 특유의 획일화된 흔적이 없고 오히려 어설플 정도이기 때문이다.”
“어설프다니······.”
“너, 지금 우리를 스카웃하려는 것이 맞나??”
“······.”
어처구니가 없어진 악무양과 일지흔이 묻고, 궁요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였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심기가 불편한 것은 동일한 것이다. 자신의 무공이 어설프다니.
그것은 자신의 무공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세 사람에게 있어 너무나 크나큰 도발이었다. 그러나 원륭은 계속했다.
“왜? 기분이 나쁘나?? 그러나 너희들은 4대 재벌 총수에게 졌다. 그것이 너희의 한계다. 이대로 있어선 절대로 너희들은 우리를 이기지 못해.”
“이 자식!”
“말 다했냐!!”
“‘우리’라는 것은 누구를 말하는 거지?”
“!!”
발끈하여 따지는 악무양과 일지흔이었으나, 궁요의 침착한 발언에 이성을 찾았다.
궁요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전혀 흥분하지 않고 침착히 말하고 있었다. 과연 무림의 실전에서 궁술을 쓸 수 있는 남자. 그 침착함의 차원이 다르다. 이에 원륭은 차근차근 말했다.
“4대 재벌, 나. 그리고 여기 있는 헐크G와 태사향. 너희는 4대 재벌 총수나 나는 커녕 헐크G와 태사향도 이길 수 없다.”
“후후, 아직 경기를 안했다고 아주 자신이 만만하구나······. 너라고 다를 것 같은가?? 원륭, 너도 그 일화란 4대 재벌 총수의 앞에선 단번에 깨지고 말 걸.”
자신 있게 내뱉는 악무양이었으나, 원륭은 어깨를 으쓱했다.
“과연 그럴까? 당화가 왜 기권을 했는지 아나?”
“몰라. 뭐, 아마도 이 궁요란 녀석과 싸운 게 상당한 소모가 있었나보지. 내공이라든가 말이야.”
“그런 것도 있지만······. 당화는 이 대회가 열리기 전에 이미 나와 한번 붙은 적이 있다.”
“뭐?!?”
그 말에 모두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헐크G나 태사향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이냐, 원륭??”
“그래. 내가 왜 4대 재벌 총수도 아닌데 굳이 너희들을 회유하러 다니겠는가? 애초에 이 대회의 발안자는 나다. 내가 당화에게 제안을 해서 4대 재벌의 회합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나와 당화는 한번 붙었지.”
“그래서 결과는??”
태사향의 물음에 원륭은 답했다.
“무승부였다.”
“무승부??”
“그래. 더 이상 하면 서로 살수를 쓰게 될 것 같아 그쯤에서 마무리했지. 당화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로인해 우리는 서로 살계를 펼칠 필요가 없어졌다. 상부상조라는 거지.”
“하지만······. 결국 너도 그런 4대 재벌 총수에겐 못이긴 것이 아니가?? 결과적으로 보면 너나 우리나 다를 건 없다. 그런데 그런 너의 말을 들으라고??”
일지흔의 말에 원륭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과 내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첫째로, 나는 아직 경기를 치루지 않았다.”
“그런 건 해보나 마나 뻔한!!”
“그리고, 나는 우승할 것이다.”
“!!”
“!!!”
그 말에 다시 한 번 모두가 놀랐다. 우승 선언이라.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만약 당화가 기권했다 하더라도 먼저 일화를 이겨야 하고, 그 다음에 천만홍과 진흑창 중 이기는 자와 다시 붙어 이겨야 우승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일화의 실력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단 드러난 천만홍과 진흑창의 실력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다. 양팔을 쌍창과 같이 휘둘러 적들을 꿰뚫는 그야말로 ‘흑창(黑槍)’ 진흑창.
무지갯빛 일곱 검기를 자유자재로 휘둘러 견고한 방어의 전문가 일지흔의 빈틈을 꿰뚫고 그를 베어버린 ‘홍예(红霓)’ 천만홍. 홍예란 무지개를 뜻하는 단어였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의 별호와 같이 그에 걸맞는 무공을 선보여 적들을 분쇄했던 것이다.
사실 진흑창의 별호는 흑창이 아니라 흑사(黑蛇)였으나, 원륭은 왜 그런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별호를 흑창이라고 하자니 그 이름과 같고, 진흑창의 휘두르는 두 팔은 그야말로 검은 뱀과 같기도 했다.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그 팔이 마치 사나운 뱀과 같이 적들의 숨통을 끊어버렸던 것이다.
그런 실력의 소유자들인데 천만홍이 올라오든 진흑창이 올라오든 그런 자들을 이긴다니.
절대 쉬운 선언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절정에 달한 무인이었지만 특히 천만홍은 기교에 강하고, 진흑창은 힘에 특화된 인물이라 상대해야할 방법도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나 원륭은 당당히 선언했다.
“나는 우승을 하겠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 수하로 들어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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