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 의화권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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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란 것은 단순한 힘의 덩어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수많은 성질을 가질 수 있다.
애초에 내공 자체가 유(柔)의 성질, 강(强)의 성질, 기타 수많은 성질을 가질 수 있었는데, 검기나 권기는 신체나 도구를 매개체로 발동되는 힘의 덩어리이므로 그런 내공의 성질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파천황의 검기가 놀라운 것은 그 수도 수지만 각 검기의 성질이 전부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어떤 것은 강하며, 어떤 것은 부드럽다. 심지어 어떤 것은 막는 순간 폭발했다.
쾅!!
“큭!!”
“괜찮나, 휘령?!”
“전 괜찮습니다!!”
콜록거리며 사휘령이 진룡에게 대답했다. 사휘령이 막은 검기 중 하나는 아마도 폭(爆)의 성질이 깃들어 있어 막는 순간 터져버렸던 것이다.
그것을 본 순간 일행은 더욱 검기를 막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검기를 피할 수는 없다. 심지어 지금 총알 역시 계속해서 날아오는 것이다.
채채챙!!! 사휘령은 쌍검을 휘둘러 총알과 함께 검기를 막아냈다.
이도류는 검 하나를 양손으로 드는 것보다 그 힘의 집중도는 떨어지지만, 반대로 수비에는 좀 더 수월하다.
아무리 검을 빨리 움직여도 양손에 든 검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만큼의 일을 하기는 힘들다.
말 그대로 두 배의 속도로 움직여야하니까.
그리고 날아오는 검기와 총알을 검 하나로 막는 동안 다른 손 하나는 그저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자세를 제어하는 데만 쓰이고, 맨손으로 총알을 막기는 힘들다.
금강불괴나 상당한 수준의 외공을 익히지 않은 이상 차라리 검기가 더 막기가 쉽지 총알은 막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작은 한 점에 엄청난 위력이 몰려 있는데, 그에 비해 검기는 매개체가 된 검의 형태를 따라 보통 최소한의 길이가 있으므로 반대로 한 점에 몰리는 충격량 자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막는 것이 까다로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게 미친 듯이 막고 있는데, 사휘령의 눈앞에 갑자기 파천황이 나타났다.
“어, 어엇?!”
“검기만 날릴 거라고 생각했나!!”
쐐애액!!!
파천황의 빙검이 날아왔다. 그러나 사휘령은 옆으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날아, 파천황의 검을 막으며 스쳐지나갔다.
챙!!
“흥, 맨손으로 붙으면 모를까 검 대 검으로 붙으면 지지 않는다. 애초에 네놈은 검이 전공이 아니지 않나!!”
“과연 그럴까??”
스르륵. 직선으로 된 빙검이 마치 뱀처럼 미끄러져왔다.
‘사곡검!!’
사휘령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사곡검은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생긴 검으로, 상대의 검을 받아내기는 편리하고 동시에 찌른 상처부위를 넓게 하는 특징이 있는 검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곡검의 형태를 흉내 낸 초식도 보통 사곡검이라고 하는 것이다.
직선으로 된 빙검이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들어온다는 것은 그만큼 파천황의 초식 운용이 절묘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런 것에 당하기에는 사휘령이 검으로 먹고 산 세월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흥, 이런 것에 당할까보냐!! 진동검!!!”
그러자 사휘령에 양 손에 든 간장과 막야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매우 귀가 거슬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위이잉!!!
사휘령이 내민 검은 파천황의 빙검과 격돌하는 순간 맹렬하게 진동하더니 파천황의 손을 쳐내버렸다.
“큭! 진동검의 원리인가! 머리 좀 썼군!”
“사곡검은 처음 보는 게 아니거든!!”
과거 사곡검의 고수와 대결한 적이 있던 사휘령은 그때 이미 대처할 수 있는 초식을 고려해놓았다.
만약 초고속으로 진동, 회전하는 기계에 사람이 손을 댄다면 튕겨나거나 오히려 빨려들어갈 것이다.
사휘령은 곡선으로 접근하는 상대의 사곡검에 대항해 내공을 이용해 초고속으로 진동하는 검으로 닿는 순간 상대가 튕겨나가거나 빨려들어오게 만드는 검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만약 상대의 검이 튕겨나가거나 놓치면 그것만으로도 빈틈이 생기고, 반대로 빨려들어오게 되면 그 역시 자세가 무너진다.
보통 검으로 검을 상대할 때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것이 상식이고, 실제로 하기도 쉽다. 만약 사휘령이 진동검으로 그렇게 한다면 상대의 검은 튕겨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쳐낸다면 상대는 검과 함께 안쪽으로 끌려 들어오게 되겠지.
하지만 사휘령은 파천황의 장법의 고수인 것을 잊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되는 순간 파천황은 빙검을 버리고 순식간에 장법으로 전환해 사휘령의 사각지대 안에서 장법을 작렬시킬지도 모른다.
검을 든 사람의 사각지대는 검의 사정거리 바깥뿐만이 아니라, 매우 가까운 초 근접거리도 사각지대인 것이다.
그래서 검을 쓸 때 중요한 것은 상대를 내 검날이 닿는 사정거리 안에 가둬두는 것이다.
사휘령은 그것을 잊지 않았다. 파천황의 빙검을 튕겨내고 파천황이 물러서는 순간, 스쳐지나가며 뺨에 상처를 내었다.
스르륵!!
“!!”
상처를 낸 사휘령이나 상처가 난 파천황이나 모두 놀랄 일이었다.
파천황은 뺨에 난 상처를 만져보며 대충 얼마 정도 상처가 났나 가늠해보았다.
“생각보다 놀란 얼굴이군. 상처를 낸 본인 스스로 믿겨지지 않는 건가??”
“20년 만에 낸 칼집이라서 말이야. 나 스스로도 믿겨지지 않는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게 네가 낸 마지막 상처일 것이다.”
“그건 아닐 걸!!!”
챙!!
다시 한 번 두 사람은 서로 검을 맞부딪쳤다. 그러나 사휘령은 그 순간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큭!!”
“검은 오래 쓰지 않아서 숙련도가 떨어지지만 말이야······. 내공을 쓰는 것에선 자신이 있거든!!!”
콰아아!!!
거센 파도와 같은 파천황의 막대한 경력이 밀려왔다.
검법의 정밀함에 있어선 검만을 전문적으로 다뤄온 사휘령을 능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파천황이 순수한 내공 대결을 시도해온 것이다.
파천황 역시 110세가 넘은데다 천하제일의 무공인 한빙신공을 익힌 터라 그 내공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음공을 상대할 때 그 특유의 으슬으슬한 감촉까지.
검을 타고 밀려오는 내공에 사휘령은 질식할 뻔했다. 그 정도로 막대한 내공이었던 것이다.
그때 양쪽에서 원륭과 진룡이 검을 들고 뛰어들었다.
쐐애액!!
타탕!!
날아오는 두 사람의 검을 파천황은 양 손에 든 빙검으로 막고 멀리 떨어졌다.
훌쩍!!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엔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안타깝군. 조금만 더 있었으면 죽일 수도 있었는데.”
“······.”
그러나 진룡은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사휘령의 상태부터 물었다.
“괜찮나??”
“하마터면 내공에 질식해서 익사할 뻔했습니다. 마치 대해(大海)를 마주하는 것 같더군요. 너무나 심오하고 고강한 내력입니다.”
“한빙신공은 그 내공에 있어서도 최강의 무공이니까······. 방심하지 말게!! 모두가 합공하는 거다!!”
“옛!!”
다시 한 번 이들은 서로를 보호하며 철저하게 파천황을 몰아붙였다.
도중에 날아오는 눈 먼 총알이 몸을 스치기는 했지만, 이들은 급소가 아닌 곳은 어느 정도 피격을 감수하며 싸움에 임했다.
치명타가 아닌데 총알의 피격에 너무 집중하다가는 파천황에게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파천황은 검으로든 장법으로든 단번에 그 누구든 두개골을 쪼개고 사지를 으스러트릴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팔괘진의 위력은 엄청났다.
진법의 가장 큰 효용성은 상대를 가두고 가장 약한 이라도 집중적으로 공격받아 쓰러지지 않게 철저히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쪽방촌의 무림인들도 비교적 그 무공이 약한 하홍휘 등도 단번에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집중공격을 받으면 하홍휘는 다른 이들의 보호를 받으며 뒤로 쏙 숨어버리고, 그 자리를 다른 자들이 메꾸며 다시 팔괘진을 형성했다.
이에 제 아무리 강력한 파천황도 슬슬 지쳐오는 것을 느꼈다.
‘이 자식들······.’
그러나 이 자리를 피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파천황이 안개를 이용해 은근슬쩍 자리를 벗어나려고 이동해보았지만 자신을 주변으로 팔각형의 진법이 형성되어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하홍휘나 사휘령 정도면 몰라도 진룡이나 불사왕은 그가 단번에 쓰러트리고 도주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적이 아니었다. 심지어 원륭도 그렇다.
혈귀가 된 그를 단번에 격살하는 것은 어쩌면 진룡을 쓰러트리는 것보다 더욱 힘들 것이다.
혈귀가 된 자는 그 공격력은 몰라도 생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죽을만한 상처를 입어도 피만 얻을 수 있다면 회복할 수 있었는데, 심지어 원륭은 이번 싸움에서 뭔가를 깨달았다.
‘사실 총알이란 것도 단순한 작은 쇳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힘이 실려서 오는 거지. 이건 과거 무림에도 존재했던 암기와 다르지 않아. 그럼 총알을 막는 건 불가능한 걸까??’
본래 암기란 호신강기로 막을 수 없는 게 아니다. 단순히 생각해서 호신강기의 강도가 암기의 위력보다 강하면 막을 수 있고, 약하면 뚫린다.
그래서 과거 무림에서는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훼할 수 있는 암기나 무공 등이 존재했던 것이다. 다만 현대 소총의 위력은 그런 암기의 위력을 아득히 능가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총알도 막을 수 있는 호신강기를 펼치면 된다. 하지만 어떻게??’
싸움의 도중에 원륭은 생각했다. 과거 기책을 통해 요독사 당갈의 요독을 해독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내공으로 바꾸었던 게 원륭이었다. 기책이라 하면 원륭을 따를 자가 없는 것이다.
‘총알을 직선적으로 막으려고 하면 실패한다. 좀 더 빗면으로······.’
그러나 날아오는 총알에 대항하여 몸을 비스듬히 한다고 해서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원륭은 깨달았다.
‘그래! 호신강기를 비스듬히 하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힘의 흐름을 바깥으로 하는 거지!!’
결국 호신강기란 내공으로 만든 일종의 방어막 그 자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호신강기는 몸의 중심인 단전으로부터 내공을 일으켜 몸 바깥쪽으로 내공을 밀어내 호신강기를 형성할 뿐이었다.
그렇게 호신강기를 만들면 다가오는 총알의 힘과 호신강기는 서로 부딪칠 뿐인 것이다.
‘부딪치는 게 아니다. 비껴내는 거야!!’
원륭은 몸속에 흐르는 내공의 흐름을 조용히 상상해보았다. 지금까지 몸 바깥을 향해 직선으로 뻗치던 내공의 흐름을 회전하는 것으로 바꾼다.
그리고 일부러 날아오는 총알에 팔을 슬쩍 갖다대보았다.
탕!!
맞는 순간 총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른 곳으로 튕겨 날아갔다.
그러자 원륭은 외친 것이다.
“성공했다!!”
“어?!”
“뭘??”
옆에 있던 사휘령과 소형승이 물었다. 사휘령은 팔괘진 중 원륭의 옆 자리를 맡고 있다가 총알이 원륭의 몸에 맞고 튕겨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소형승은 그것을 보지 못했지만 원륭이 뭐라고 외치자 의아해하며 물어본 것이다.
“방금 총알을 튕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
제갈의와 상인관 등도 그것을 듣고 물어왔다. 그러자 원륭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한 것이다.
“보여드리죠.”
그리고 원륭은 총알이 빗발치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 저항 없이 그저 양손을 늘어트렸다.
자신에게도 안개가 방해되기 때문에 파천황은 어느새 안개를 사라지게 한 상태였다.
그리고 드러난 원륭을 향해 집중사격이 개시된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총알을 막거나 피하는 중이었으나 원륭이 갑자기 가만히 서있자 인민해방군들은 집중해서 사격을 개시했다.
타타탕, 타타탕!!!
“안 돼, 원륭아!!”
하홍휘가 다급히 외쳤으나 원륭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사격이 끝나자 원륭은 태연한 얼굴로 감았던 두 눈을 뜬 것이다. 진룡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의화권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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