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 정지
“첫 경기 승리 축하하네.”
“뭘. 그깟 놈은 그냥 쓰레기에 불과했어. 아무리 마환단을 사용해도 그 정도라니. 쓰레기는 결국 쓰레기에 불과했던 모양이로군.”
당화의 말에 원륭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네가 처음 활동했던 당시에 비하면 전체적인 무림인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내가 활동했던 90년 전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구. 이미 환경오염이 시작되던 시기라 무림인들의 수준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지.”
“흥, 대선배 앞에서 우는 소리 해봤자 소용없다 이건가. 하긴 100년 전의 인물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200년 전의 인물들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점점 무림인들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말이야. 사실 상고시대 때만 해도 모든 인간은 다 무림인이나 다름없었다고 하지. 모두 선인(仙人)이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선인은커녕 무림인을 찾기도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렸어. 무림인이야 어찌됐든 양산형 마환단으로 그럭저럭 생겨나기도 하겠지만, 수행을 통해 이를 수 있는 선인만큼은 찾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지. 넌 선인을 본 적이 있나??”
그 말에 당화는 쓴 웃음을 지었다.
“전혀. 자본주의가 제일인 이 세상에서 누가 선술 따위를 익히겠는가. 무공이라도 배우면 그나마 다행이지.”
“과거에는 무공이 선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부산물 같은 거였다고 하지. 하지만 지금은 그저 강해지기 위해 무공을 익힐 뿐이야. 이런 시대에 태어난 것이 참 안타깝군.”
“후후후, 수천 년 전 상고시대에라도 태어나고 싶었나?? 하지만 그 시대도 나름 혼란스러웠을 걸. 나름 선계에 가까운 질서가 있다고 해도 그 시대 역시 각종 신수라든지 악한 선인들이 판을 쳤다고 하지. 선술을 익혔다고 해서 모두 선인은 아니니까 말이야. 심지어 선(善)한 선인(仙人)들이 선계(仙界)를 열어 떠난 것처럼, 악한 자들이나 비교적 중립적인 자들, 그 사상이 모호한 자들도 유계니 마계니 명계 등을 열어 떠났다고 하지. 결국 이 지상에 남은 건 인간들 뿐······. 좋든 싫든 인간들의 시대가 시작된 거지.”
“힘없고 악한 인간들의 시대가 말이야.”
“힘없고 악한 인간들의 시대는 싫어하나?”
“구역질나. 가끔 그런 인간들을 지킬 때면 회의감이 들어서 말이야.”
“······.”
원륭의 말에 당화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사람을 사랑해서 계속해서 원륭이 중국 공산당에 대항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많은 고뇌와 모순을 떠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정도 나이에 이 정도 무공을 익혀도 번뇌는 어쩔 수 없나. 사람이란 참 복잡한 존재로군······.’
당화의 얼굴에 쓴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근데 어디로 가는 거지?? 그래도 1차전이 끝났는데 쉬지 않아도 괜찮나??”
“뭘. 보면 알 텐데. 그런 놈을 처리하는 데는 내공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어. 그저 완력만으로 충분했다.”
“하긴······.”
VIP룸에서 본 광경을 당화는 떠올렸다. 원륭은 장황하게 떠벌떠벌 거리는 그 쌍두사라는 놈을 단번에 바닥에 처박아버렸는데, 그런 놈을 상대로 힘을 소모했을 리도 없는 것이다.
“그건 알겠는데 대체 어디로 가냐고. 점점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싫으면 관두라구. 왜, 당문의 100살 넘게 먹은 할머니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나??”
“누가 할머니야! 가자고!!”
“흥, 할머니란 소리는 듣기 싫은가 보군.”
“큭!!”
정신연령이 10대에 가까운 일화 정도는 아니지만, 당화도 상당히 정신연령이 젊은 편이었다.
정신연령은 살아온 세월이 아닌 의외로 외모에 많이 좌우되기 때문에 그녀들도 자신들의 외모에 비례한 정신연령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일화는 너무 어린 감이 있지만······.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일화를 떠올리며, 원륭은 생각했다.
‘조만간 한번 참교육을 해주어야 할 것 같군······. 어떤 방식이 좋으려나······.’
그렇게 원륭이 궁리하는 동안, 그들은 식당가에 도착했다.
“뭐야, 기껏 도착한 곳이 여기냐.”
“그럼 어디를 생각했는데??”
“난 또 도박가라도 가는 줄 알았지. 만약 네 스스로 베팅을 했다면 그 당첨금을 수령해야 하니까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깜빡 했군. 이봐, 당화. 여기선 돈을 좀 내주지 않겠나?? 지갑을 깜빡하고 안 갖고 와서 말이야.”
“잠깐, 너 처음부터 얻어먹을 심산이었지!! 일부러 지갑을 안 갖고 온 것이냐!!”
“정말로 깜박한 거라고!! 그리고 따라온 건 너잖아!! 누가 따라오라고 했나?!”
“큭!!”
당화는 얼굴을 구기면서 카드를 꺼냈다.
“여기 카레 소시지 하나.”
“빨라!! 사준다고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는 소속 선수에 대한 복지 차원으로 생각하라고. 소속 선수에게 밥 한 끼 안 사주는 그룹 총수가 어디있나.”
“그건 맞긴 한데 너한테는 왠지 사주기가 싫단 말이야······.”
“짠돌이년.”
“뭐라고?!”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것보다 이 카레 소시지 좀 먹어보지 않겠나?? 생각보다 맛이 괜찮은데.”
“관둬라. 나는 매일 특급주사들의 요리만 먹는 몸. 그런 저급한 음식을 먹었다가는 혀가······.”
“괜찮으니까 한번 먹어보라고.”
“웁!!”
원륭은 다짜고짜 홍콩의 명물 카레 소시지를 당화의 입에 쑤셔 박았다.
“이, 이 소헤지 너무 허!!(이 소세지 너무 커!!)”
“잔말말고 먹엇!!”
“웁! 웁!!”
당화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카레 소시지를 다 먹었다. 아무리 무공이 고강한 그녀라도 불의의 기습에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녀보다 고수인 자가 목구멍까지 처박은 카레 소시지임에야.
겨우 다 먹고 당화는 바로 따지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놈!! 소세지를 목구멍까지 처박으면 어쩌란 말이냐!! 하마터면 나이 110에 소세지 먹다 질식사로 돌아가실 뻔 했지 않느냐!!”
“아, 방금 자기 나이 말했다.”
“무어라고!! 그런 건 상관없잖아!!”
당화가 길길이 날뛰고 있는데 상점 주인이 말을 걸었다.
“저기······ 슬슬 계산 좀 해주지 않겠소?? 다른 손님들도 기다리고 있어서.”
“쳇, 알았다! 일단 먹었으니 어쩔 수 없군. 자!!”
“저기, 카드는 좀 곤란한뎁쇼······.”
“이런데서 카드 거부라니!! 이 대회를 누가 주최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감히 이 대회 경기장에서 장사하면서 홍콩 4대 그룹 총수 중 하나인 나 당화를 몰라봐?!”
“아이쿠, 죄송합니다요!! 바로 결제해드리죠!!”
“흥, 무례를 용서해주마. 그 대신 공짜로 해줄 생각은 없느냐??”
“그건 좀 아니죠 손님.”
“······농담으로 한 말인데 너 정말 짠돌이구나······.”
“기업은 이렇게 해서 세워 올린 것이다. 본사 건물, 기타 자금, 모두 땅에서 솟아나오는 줄 아느냐?? 다 하나하나 아껴서 만들어낸 것이다.”
“예, 예, 어련하시겠습니까요.”
짠돌이 당화에게 빈정거리며, 원륭은 다음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흐음, 이 소롱포도 맛있어 보이는군.”
“흥, 이번엔 안 사줄 거니까 말이야. 너 혼자 잘 사먹어 보라고.”
“여기 소롱포 두 개요.”
“아니, 잠깐 내 카드!! 언제 뺏어간 거야!!”
“오늘부터 네 카드는 잘 사용하겠다.”
“돌려주지 못해!! 이 도둑놈!!”
“뺏어갈 수 있으면 뺏어가 보시지.”
“아니, 그보다 가슴골 깊숙한 곳에 숨겨놨는데 대체 어떻게 가져간 거야?!”
“뭘, 절대 카드를 가져가는 과정에서 은근슬쩍 네 가슴 따위는 만지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절대 모이지 않을 골 같은데 용케도 모이는군. 보정속옷의 힘인가??”
“이, 이!!!”
콰아아!!!
당화는 여태껏 없을 정도로 극도로 분노해있었다. 이 원륭이란 놈은 자신의 카드를 가져간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가슴도 주무른 것이다.
카드를 가슴골 사이에 끼워놨는데 그걸 가져갔다면 분명 몸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만졌을 것이다. 만져지고도 그 사실을 눈치 못 챈 자신이 어이가 없을 뿐.
그래서 지금 당화가 더 열 받는 것이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이런, 남의 소유 가게 앞에서 뭣들 하는 짓이냐. 영업방해로 신고하기 전에 썩 물러가거라.”
목소리의 주인은 일화였다. 그러자 당화는 물어본 것이다.
“남의 소유 가게라니??”
“이 경기장의 음식점은 전부 우리 그룹 산하의 점포들이다. 몰랐나??”
“큭!!”
그 말에 당화는 얼굴을 구겼다. 그러고 보니 급하게 대회를 준비하느라 세세하게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전부 다 할 수 없는 부분은 일화나 천만홍, 진흑창 등에게 각각 배분하여 맡겼는데 그것이 이리 돌아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네년이 수작을 부리지 않을 리가 없지. 홍콩 4대 그룹 총수를 뽑는 대회인데 그 와중에도 한탕 뽑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호호, 홍콩의 식(食)은 나의 것!! 모든 요식업계는 나의 손 안에 있다!! 나에게 이런 부분을 맡기고도 그것을 예상 못한 것이냐!!”
“크윽!!”
당화가 낭패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무심한 얼굴로 소롱포 하나를 먹고 있던 원륭이 말했다.
“하나 먹을래??”
“되었다. 난 항상 전속 특급주사가 해주는 밥만······.”
“그러지 말고 한번 먹어보라고. 여기 의외로 맛있으니까. 확실히 가게들을 잘 골랐네. 단발성 이벤트에 참가하는 가게들 치고는 수준이 높아.”
“웁!!”
일화 역시 원륭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원륭은 소롱포를 단번에 일화의 입에 쑤셔 넣고 뱉지도 못하게 양 손으로 일화의 입과 뒤통수를 잡은 것이다.
“읍! 으읍!!(놓아줘!! 뜨거워 죽겠어!!)”
“그래, 그래, 맛있지?? 둘이 먹다 죽어도 모를 맛일 거다.”
“웁, 우으읍!!!(둘이 먹다 죽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죽겠다고!!!)”
그렇게 소리 없는 아우성이 한동안 계속됐다. 원륭은 히죽히죽 웃으며 일화의 입 속에서 소롱포가 사라질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일화의 입 속에서 소롱포가 완전히 다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자 원륭은 그때서야 놓아주었다.
“파하!! 이 개자식!! 용케도 나에게 이런 짓을!!”
“흥, 당한 네가 잘못이다. 무림에선 당한 자가 잘못 아닌가??”
“크윽!!”
분노에 일화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당화는 묘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잘 알지······. 입속으로 뜨겁고 거대한 물체가 들어오는 그 당혹감. 나는 잘 알고 있다. 상당히 고통스러웠겠지. 하지만 나보단 낫지 않겠나. 난 목구멍마저 범해졌으니.’
그렇게 당화가 아련한 눈으로 적인 일화를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당화의 핸드폰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리리링.
“뭐지? 지금 이 시간에??”
지금은 늦은 시간이라 전화가 올 시간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연락 올 곳도 없고 세세한 일은 전부 비서를 시켜서 하는 터라 당화는 의문에 잠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쏼라쏼라쏼라.”
“······.”
그런데 전화를 받은 당화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리고 알았다고 몇 마디 하더니 굳은 얼굴로 전화를 끊은 것이다.
“왜 그래? 중요한 일인가? 여기서 말하기 뭣하면 전음으로 하라구.”
“이 개자식!!!”
“왜, 왜 그래?! 그렇게 카레소시지를 네 목구멍에 처박은 게 잘못이었어?!”
“그게 아니라 내 카드가 정지됐잖아!! 고작 카레소시지 하나 먹다가 내 카드가 정지됐다고!!”
“뭐라고?!?”
원륭은 몰랐지만 당화의 카드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신용카드 회사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발급된 것이었다.
특히나 그녀의 카드는 VVIP전용인 다이아몬드 등급이라, 가입비만 천만 원 정도가 필요하고 매년 최소 카드사용금액이 2억5천만 원 이하면 다음 갱신 때 회원등급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VVIP용 카드였는데 고작 몇 천 원 짜리 카레소시지를 샀으니 카드사에선 절도를 당한 게 아닌가 의심하여 정지를 때린 후 곧바로 그 주인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하지만 카레 소시지 먹다가 카드를 정지당하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던 것이다.
- 작가의말
본 화에서 나온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이하 아멕스)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신용카드 회사인 건 맞지만, 실제 아멕스 사에는 다이아몬드 등급 카드가 없습니다.
저런 조건의 카드가 있는 건 맞지만, 작중 시점인 1990년도에 실제로 그런 카드는 없었습니다.그런 카드가 나온 건 10년 정도 뒤인데, 작중에서는 그냥 저 시대에도 다이아몬드 급 혜택과 조건을 가진 카드가 있었다고 가정하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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