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 이 자는 괴물인가
진원진기란 것은 내공을 익히지 않은 자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힘인데, 생명의 근본 그 자체였다. 그래서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매우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지만 결국엔 죽는 것이다.
원륭도 과거 무공을 익힌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북경의 불량배들 수십 명과 맞서 싸우다 결국 힘이 부족해 진원진기를 사용해버렸다.
그러나 다행히 도중에 기절해버려 진원진기를 다 사용하지 못해 살아났는데, 눈앞의 장문환에겐 그런 요행이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가 진룡이니까.
진룡은 한 치의 방심도 없는 남자였다. 만약 여기서 죽이지 못하면 다음에 더 큰 화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진룡은 검을 양손으로 들고 머리 옆으로 든 후 앞으로 찌르는 자세를 취했다.
스르륵.
이 역시 근본적으로는 매우 불편한 자세였다. 하지만 진룡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자세였다. 왜냐하면 수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도 없이 행해왔던 자세이기 때문이다.
아예 불편함을 느끼고 안 느낄 수준 자체를 떠나 그런 생각 자체가 들지 않을 수준이었는데, 그런 자세로 진룡은 묵묵히 앞을 응시했다.
한참을 진룡이 응시하고 있자, 결국 장문환이 먼저 움직였다. 진기가 시시각각으로 소진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쓰러트려야 하는 것이다.
시간은 진룡의 편이었다. 장문환에겐 움직이지 않는 것이 손해다.
그렇게 장문환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휘릭! 휘리릭!!!
허공을 베는 검의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듣기만 해도 살벌한 이 소리는 아무리 두터운 호신강기를 두른 진룡이라고 해도 맞으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진룡은 맞지 않았다. 심지어 이젠 아예 검마저 내리고 막는 것을 그만두며 비어있는 왼손을 까딱까딱 했던 것이다.
‘와봐.’
“으아아!!!”
쐐애액!!!
분노에 찬 장문환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으나, 진룡은 맞지 않았다. 그러다 진룡은 갑자기 장문환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스릉!
“어엇?!”
장문환은 멍청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가슴을 살폈다. 어느새 자신의 가슴이 반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갈라진 뼈와 심장마저 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장문환은 바닥에 쓰러졌다.
쿵!!!
“어, 어째서······. 어째서 한참 피하다 지금에야 날 공격한 거지?!”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 장문환은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물었다.
그러나 그의 갈라진 가슴에서 피가 미친 듯이 흐르고 있었고, 그 역시 빠져나가는 생명을 느끼며 숨을 헉헉거리고 있었다. 그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진룡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마룡검을 한번 휘둘러 핏물을 털어내고 조용히 검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스르릉.
“그것은 자네가 한 번에 쓰러트릴 수 있는 최고속도에 이르렀기 때문이네.”
‘아, 그런 건가!!’
장문환은 깨달았다. 복싱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카운터펀치는 상대방의 힘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효과적이다.
상대의 힘이 강할수록 자신의 힘과 합쳐 돌려주는 충격량이 많은데, 진룡 역시 이를 이용했던 것이다.
물론 검과 검의 대결은 복싱과는 달리 힘이라기보다는 속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데 진룡은 장문환이 최고조에 이르러 그 가속도와 관성에 의해 스스로 피하기도 어렵고, 진룡 자신의 검이 더욱 빨리 들어갈 수 있는 속도에 검을 내질렀다.
만약 장문환의 속도가 느렸다면 오히려 그렇게 치명적인 일격은 당하지 않았겠지만, 장문환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돌진했기에 미처 진룡의 검을 피하지 못하고 그 검에 당한 것이다.
참으로 묘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장문환 역시 자조적인 어조로 이를 말했다.
“참으로 묘하지 않을 수 없군······. 내 속도로 인해 내가 당하다니······. 차라리 천천히 상대했어야 하는 것을······.”
“그렇게 했다면 반대로 난 맹공을 퍼부어 자네를 도륙했겠지. 처음부터 자네의 승기는 없었네. 자네와 나의 경험치는 너무나도 차이가 나.”
“그런가······.”
장문환은 납득했다. 자신들 공안 무림맹의 요원들은 최소 5년 이상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 반란분자들을 토벌한 노련한 요원들이지만, 이들은 무려 수십 년 간 중국 정부의 추적을 피해 투쟁했던 것이다. 수십 년간. 그러니 그 연륜이 어디 갈 리 없었다.
“과연 괜히 피해다닐 수 있었던 게 아니군······. 그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소. 그 검은 진짜로 매화검이 아니오??”
“아닐세······.”
“그럼 진짜 매화검은 대체??”
이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끝까지 사문의 보물을 찾는 장문환을 보고, 진룡은 안타까워 고개를 돌렸다.
“매화검은 분명 아직도 존재하네. 하지만 그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명교 본거지에 있겠지. 비록 강탈품이라곤 하지만 매화검은 신병이기 중에서도 상당한 가치가 있는 현철검이니 말일세. 게다가 그 검은 평상시에는 검은색이지만 검기를 머금으면 하얀색으로 변한다고 하더군. 내 검이 그렇게 변하던가??”
“하긴······.”
장문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결의 도중, 진룡은 빠르게 승부를 내기 위해 검기를 사용했다.
그러나 검은 한 치의 색깔 변화도 없었던 것이다. 과연 매화검이 아니란 증거였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10년을 굴렀는데도 사문의 보물을 지척에 놔두고 몰랐단 말인가······. 참으로 웃기는 일이로군······.”
“그렇게 자책하지 말게. 매화검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말은 필시 수뇌부가 들고 있거나 창고에 처박혀 있다는 말. 자네가 찾으려 해도 절대 찾을 수 없었겠지······. 게다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넓네. 어지간한 나라의 대여섯 배의 크기는 되지. 자네가 찾는 건 불가능해.”
“그런가······. 죽는 건 안타깝지 않지만, 매화검을 되찾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
스르륵. 그 말을 마치고 장문환은 눈을 감았다. 그 점이 안타까워 진룡은 적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아파졌다.
‘그놈의 매화검이 뭐라고 죽는 날까지 매화검을 찾는단 말이냐······. 그렇게까지 세뇌가 된 건가!!’
좋게 말하면 화산파에 대한 충심 때문이겠지만, 진룡이 알기로 공안 무림맹의 요원들은 최근 고아들을 뽑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무공은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효과가 극대화되는데, 아무리 공산당 정부라도 그런 아이들을 강제로 납치하거나 부모의 동의를 구해 일일이 모으는 건 쉽지 않다.
그런 건 과거 사파에서도 아주 극악한 곳에서나 했던 것이다. 마치 혈교와 같은······.
그러니 그냥 중국 대륙에 널려있는 고아들 중에 자질이 뛰어난 자들을 고르는 게 더 편했는데, 그런 아이들을 모아 국가 소유의 고아원에서 교육을 시키다 나이가 차면 화산파나 태산파 같은 무림 문파에 보내어 다시 교육을 시켰다.
이제 대부분의 남아있는 무림 문파들은 그렇게 무림맹의 하부조직 같은 형태가 되어 있었는데, 그런 성장환경을 가지고도 죽는 순간에 고아가 부모가 아닌 고작 매화검 따위나 찾고 있으니 얼마나 세뇌수준으로 교육을 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매화검 따위가 뭐라고, 매화검 따위가······.’
그렇게 진룡이 답답한 가슴을 감추며 속을 쓸어내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뭔가가 날아왔다.
쿵! 쿠당탕!!
“원륭?!”
“진 대협!!”
날아온 것은 원륭이었다. 불사왕과 함께 파천황을 상대하던 원륭이 진룡 쪽으로 날아온 것이다.
“대체 어쩌다 이런?!”
“미처 피하지 못하고 한 대 맞았습니다.”
“잠시 쉬고 있게! 그동안에 내가 상대하지!!”
“아니요, 괜찮습니다. 금세 복귀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말과 달리 상태는 심상치 않아보였다.
쉬이익······.
원륭의 복부에 장법에 적중된 자국이 새하얗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건······.”
“한빙신장에 맞았습니다. 좀 있으면 치유가 될 겁니다.”
치이익!!
원륭의 복부가 붉게 물들더니 새하얗게 얼어붙은 부분을 녹이기 시작했다. 혈귀인 원륭이 혈기를 사용하여 얼어붙은 부분을 녹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륭은 혈귀라 내공의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 무림인들과 조금 달랐는데, 흡수한 피를 이용해 뜨거운 기운이나 찬 기운을 운용할 수 있었다.
즉, 정식적인 것과는 다르지만 일종의 음공이나 양공을 운용할 수 있다.
그렇게 언 부분을 녹이고 원륭은 곧바로 전선에 합류하러 간 것이다.
“자네, 다 녹았나?!”
“이미 다 녹았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이었다. 녹은 것은 겉 부분뿐이고, 오히려 내장이 녹지 않아 속에다 얼음덩어리를 하나 달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장법이란 본래 내장타격에 전문화된 무공이기 때문에 결코 그 상태가 가볍지 않은 것이다.
하물며 그 시전자가 파천황이라면······. 그나마 원륭이 혈귀가 되고 무공이 늘어서 그렇지, 혈귀가 되기 전의 몸이라면 단번에 내장이 얼어 터져 즉사했을 것이다.
그렇게 겉만을 녹여 눈속임을 한 후 다시 파천황을 상대하러 갔는데, 사실 진룡도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쉽게 녹을 리가 없는 게 파천황의 빙공이다.
원륭이 죽지 않고 싸우고 있는 건 대단하지만, 그것만으론 파천황을 쓰러트릴 수 없다.
진룡은 함께 가세했다.
“나도 싸우지!!”
“진 대협의 상대는 처리하신 겁니까?”
“이미 죽었네.”
“과연······.”
원륭은 잠시 시선을 돌려 쓰러져있는 장문환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파천황은 그렇게 어설픈 태도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닌 것이다.
잠시라도 행적을 놓치면 곧바로 당할 수 있었기에, 원륭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때 파천황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 이형환위?!?”
“빙설이형환위.”
파천황은 원륭의 말을 정정하며 곧바로 장법을 날렸다. 이형환위는 잔상이 남을 정도로 고속으로 이동하는 신법인데, 얼마나 빠른지 잔상이 남을 정도로 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게다가 파천황은 자신의 한빙신공을 응용하여 그 자리에 얇은 얼음조각들이 모인 잔상을 남기고 이동했는데, 그로인해 마치 눈꽃이 흩날리는 것 같았던 것이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어느새 본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눈꽃만이 흩날리는 것을 보다보면 어느새 자신은 죽어있었다.
이것이 파천황을 상대하다 죽은 자들의 수많은 말로 중 하나였는데, 원륭은 아까 한번 현혹당해 장법을 맞은 후로는 곧바로 속지 않고 계속 보법을 펼쳐 이동해다녔다.
어느 것이 진짜 파천황의 본신인지는 몰라도 이동하고 있으면 적어도 치명타를 맞는 확률은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제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그렇게 보법을 펼쳐 몸을 피하는 원륭이었으나, 어느새 파천황은 뒤에서 나타나 원륭의 등을 노렸다.
“잡았다!!!”
파천황은 이들 중 비교적 약한 편인 원륭부터 먼저 노리려는 듯 싶었다.
게다가 원륭은 이미 복부에 장법을 한방 먹어 이들 중 가장 취약해졌으므로 가장 노리기 편한 것이다. 제거대상 1순위였다. 그때 진룡이 뛰어들며 장법을 날렸다.
“마령장!!”
“오랜만이군, 진룡!!”
“인사나 나누고 있을 틈은 없을 텐데!!!”
쾅!!!
두 사람의 장법이 교차하자마자, 진룡은 파천황과 스쳐지나가며 그에게 보이지 않을 각도에서 순간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윽!!!’
13년이 지났지만 파천황의 장법은 무시무시했다. 이들이 파천황과 마지막으로 마주친 것이 1976년 강청의 저택 앞에서였는데 그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았던 것이다.
‘나도 그때보다 실력을 더 닦았는데······.’
진룡 역시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최강의 신공 중 하나인 한빙신공의 소유자 파천황에게는 여전히 무리인 듯 싶었다. 진룡은 자세를 잡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는 괴물인가??’
13년이 지나도 파천황을 만나면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100살이 먹은 노인인데도 불구하고 겉모습은 청년과 같고, 그 실력은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니 실로 두렵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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